59. 씨앗-1
놈들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주춤하며 뒤로 물러났다.
퍼엉!
“크으, 이 새끼들이! 크아악!”
악마들이 빠르게 자세를 회복하고, 날개를 펼쳐 진원에게 달려들려고 했을 때, 놈들의 몸에서 갑작스럽게 폭발이 일어났다.
“오빠!”
고개를 돌려 보니 지희가 놈들에게 스킬을 사용하고 있었다.
“마도사, 너도 합세해라!”
“맡겨만 주십시오!”
진원의 말에 소환의 방에서 나온 꼬마 마도사가 마력탄을 연발하며 지희의 공격에 합세했다.
두두두두.
“이익! 벌레 같은 새끼들이!”
“크으, 네 녀석부터 찢어 버리겠다!”
놈들은 빗발치는 스킬에 몸을 움츠리고 방어 자세를 취했다.
“주군, 제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십시오.”
자신이 인벤토리에서 토르의 장난감 망치를 꺼내 달려들려던 찰나, 붉은 늑대가 옆에서 무릎을 꿇으며 부탁해 왔다. 왠지 분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 그렇다면…….”
진원은 근처에 있던 보스의 시체로 다가가 아이템을 하나 꺼냈다.
[아이템 : 흑천검]
어둡게 물든 칼날은 그 어떤 것이라도 베어 낼 것만 같다.
종류 : 무기
등급 : 유니크
공격력 +26
효과 : 내구도가 소모되지 않습니다.
레벨 제한 : 35 이상
‘상당히 쓸 만하다.’
이전에 자신이 건네준 카게마루보다 월등히 뛰어난 성능이었다.
진원은 그것을 가져와 붉은 늑대에게 내밀었다.
“주군, 그 검은…….”
흑천검을 바라보던 붉은 늑대의 눈동자가 강하게 흔들렸다.
주군이 자신에게 건네준 카게마루라는 검도 좋은 검이었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저 검은 보기만 해도 쥐어 보고 싶다는 욕구가 피어올랐기 때문이었다.
“받아. 너에게 좋은 장비를 챙겨 주는 것도, 주군이 할 일이니까.”
흑천검을 유심히 바라보던 붉은 늑대는 자신의 말에 무릎을 꿇어 예를 취하고, 두 손을 뻗어 흑천검을 천천히 받았다.
“반드시…… 반드시! 기대에 보답하겠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알림음이 들리며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띠링.
[붉은 늑대의 충성도가 100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당신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합니다!]
[최대치의 충성도 달성으로 인해 붉은 늑대의 스킬이 추가됩니다!]
‘이건 예상치 못했는데.’
진원은 의외의 메시지에 내심 놀랐지만, 흑천검을 들고 앞에선 붉은 늑대가 어떤 스킬을 보여 줄지 기대되었다.
“크아아! 망할 새끼들아!”
“오빠, 저 이제 MP가 다 떨어졌어요!”
“형!”
교차된 팔을 풀고 앞으로 돌진하려는 악마들에게 붉은 늑대가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갔다.
스읍-
붉은 늑대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띠링.
[붉은 늑대가 스킬 : 귀신 태우기를 사용합니다. MP를 500 소모합니다.]
티잉!
그 뒤 흑천검을 높이 치켜들고, 그대로 지면을 내려치자 흑색의 도신에서 생성된 거대한 검은색의 검기가 땅을 타고 뻗어 나갔다.
스스스스.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은 기묘한 움직임.
악마 놈들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검기는 놈들의 신체를 순식간에 헤집고 사라졌다.
“크하……?”
“어? 뭐냐?”
잠시 후, 놈들은 먼지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졌다.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자신들이 어떤 공격을 당한지 전혀 모르는 듯한 표정이었다.
띠링.
[불안정한 악마를 처치하였습니다.]
[불안정한 악마를 처치하였습니다.]
‘MP가 많이 든다 했더니 역시.’
상당히 강력한 스킬이었다. 붉은 늑대의 스킬 귀신 태우기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뱀을 보는 듯했다.
“형, 이제 끝난…… 건가요?”
“와…….”
그 장면을 보던 다른 파티원들은 멍하게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그래. 다 끝났다. 빨리 아이템 챙기고 돌아가자.”
* * *
콰직! 콰앙! 쨍그랑!
“×발…… ×바알!”
험한 말을 내뱉으며 방 안의 물건을 던지고, 부수고 있는 한 남성.
“아버지가 돌아오셨다니……. 젠장할!”
김진원. 그에게서 당하던 기억을 마지막으로 대학 병원의 침대에서 의식을 되찾은 송진호는 한동안 패닉에 빠져 비명을 질러 댔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그는 정밀 검사를 받자는 의사를 사납게 밀쳐낸 뒤, 곧바로 길드로 향했다.
“아버…… 지?”
택시에 몸을 맡긴 송진호가 건물 앞에서 내리려 할 때, 건물 내부에서 송현성의 모습이 보여 곧바로 자세를 낮추고 은신처로 향했다.
“하……. ×발. 진짜 난 ×됐어. 분명히 다 탄로 났을 거라고!”
아버지가 해외의 던전 공략에 참가해 있는 사이, 어떻게든 자신이 저지른 일을 수습하고, 길드의 손실을 메우려고 했었는데.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부어 버렸으니.
“×발. 동생과 똑같은 취급을 받을 수는 없다고!”
그가 머리를 박박 긁으며 성질을 내고 있을 때, 눈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똑똑똑.
“송진호 씨, 택배요!”
“×발, 택배 같은 거 시킨 적 없으니까 꺼져!”
“문 앞에 두고 가겠습니다. 당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니까 받으셔야 해요.”
택배를 전하러 온 남성은 자신의 화난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문 앞에 택배를 두고 사라졌다.
“나한테 꼭 필요한 것? ×랄하고 있네.”
송진호가 혀를 차며 현관문을 열자, 작은 상자가 앞에 놓여 있었다.
“뭐냐? 이건 또 무슨 장난질이냐?”
그는 화를 내며 그 상자를 바로 걷어차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왠지 그러기가 싫었다. 송진호는 들었던 발을 내리고 뭔가에 이끌린 듯이 상자를 열었다.
딸깍.
그 안에 들어 있던 것은 작은 씨앗 하나.
송진호는 마치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씨앗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스스스스-
그러자 그의 손과 접촉한 씨앗이 순식간에 물처럼 녹아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한동안 송진호의 움직임이 멈췄다.
시간이 흐르고, 굳게 닫혔던 그의 입이 열리며 기괴한 내용의 말이 흘러나왔다.
“신에게 선택받지 못한 불쌍한 양들에게…… 안식을…….”
그의 눈동자는 점점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 * *
“다들 수고 많으셨어요. 예상치 못한 상황도 많이 발생했지만,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진원은 던전 밖으로 나오고 나서, 인원수를 채워 주었던 플레이어들을 미리 돌려보냈다.
그러자 지희도 자신에게 고개를 한번 숙이고, 돌아가려 할 때 진원은 그녀를 멈춰 세웠다.
“야, 잠깐 기다려 봐.”
“네?”
그는 인벤토리에서 중급 마정석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어? 중급 마정석? 이걸 저에게 줘도 돼요?”
지희는 진원이 건네주는 아이템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은 이번 던전에서 그의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내가 그렇게 양심 없는 사람은 아니다. 너, 생각보다 도움되더라.”
“정말요?”
“그래. 그러니까 그거 가져라.”
“그, 그럼 다음에도 데려가 줘요! 이거 안 받아도 돼요!”
“한 번만이라고 했잖아.”
“아, 오빠! 도움된다면서요! 머릿수 채우는 플레이어 중에서는 그래도 도움이 된다는 거잖아요!”
진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희는 다음에도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떼를 쓰며 그의 팔을 붙잡고 늘어졌다.
“저기요! 형한테 버릇없이 그러지 마세요!”
그러자 최은식이 그녀에게 일침을 가했다.
“뭐요? 그러는 너는 몇 살인데 저한테 그러는 거예요!”
“열아홉 살인데요? 그쪽은요?”
“저도 열아홉 살이거든요?”
“야야, 그만해, 이놈들아.”
진원은 유치하게 싸우는 둘을 보며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 나갔다.
“너, 약속해. B급 던전까지는 데려가 줄 수 있어. 그런데 A급은 절대 안 돼. 알겠냐?”
“정말이죠?”
“그래.”
졌다는 듯이 말하는 그를 보고 나서야 지희는 매달렸던 팔에서 떨어졌다.
“오빠, 여기요. 여기 제 번호요. 다음에 갈 때 무조건 부르셔야 해요!”
“아, 알았으니까 그만 들어가라.”
“네! 다음에 봐요, 오빠!”
그녀는 자신에게 손까지 흔들어 가며 중급 마정석을 쥔 채로 멀어졌다.
‘와, 진짜 성격 장난 없네.’
“은식아.”
“네, 형.”
“너도 이거 하나 가져가라.”
진원은 남은 하나의 중급 마정석도 꺼내서 최은식에게 건네주었다.
“저도 받아도 되나요?”
“그래, 짜식아. 너 내가 준 방패 잘 활용하더만. 네가 지희보다 낫더라.”
“역시 그렇죠? 크으! 형은 보는 눈이 있다니까요!”
그는 만족스러워하는 최은식을 보고 피식 웃은 후, 협회로 향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형, 그러고 보니 처음에 얘기했던 계약이요.”
그러자 최은식이 뭔가 잊은 것이 생각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응? 그게 왜?”
“아무래도 선금을 드리는 것이 예의인 것 같아서요. 제가 최대한 빨리 100억 정도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래? 나야 뭐 상관은 없는데. 너, 그런데 옆구리는 괜찮냐?”
“아직 좀 쓰리긴 하네요.”
자신의 물음에 최은식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푹 쉬어라. 난 따로 볼일이 있거든.”
“네, 형!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진원은 먼저 협회로 향하려 했지만, 최은식이 100억을 보내 준다고 하니 우선순위가 바뀌게 되었다.
* * *
그가 택시를 타고 향한 곳은 플레이어 거래소였다.
‘이번에 긁어모은 아이템. 역시 이 정도로 150억은 부족하겠지.’
그가 150억을 모으려는 이유는, 이전에 캐쉬샵이 열리고 판매하는 스킬 때문이었다.
‘흠, 이제는 팔아도 되지 않을까?’
예전이야 상점에서만 판매하던 아이템들을 거래소에 내놓는 것이 꺼려졌었지만, 지금은 딱히 상관없을 듯했다.
“안녕하세요. 김진원 씨!”
거래소 안으로 들어서자, 판매원이 환한 미소로 그를 맞아 주었다.
그는 이미 거래소의 VIP 회원이 되어 있었다.
단기간에 수많은 아이템들을 처분하러 와 주니, 거래소 입장에서는 그가 이제 하루라도 안 오면 아쉬운 느낌이었다.
“오늘은 또 어떤 아이템을 파실 건가요?”
“이거 한 개에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판매원의 말에 그는 희석된 엘릭서를 하나 꺼내서, 올려두었다.
‘아직 여덟 개 정도 여유가 있으니, 한 개 정도는 괜찮겠지.’
“이것은? 처음 보는 포션이네요. 색깔도 신기하고. 이름이…… 힉!”
신기한 눈으로 포션을 쳐다보던 여직원이 갑자기 숨이 넘어갈 듯한 행동을 취했다.
그녀의 행동에 다른 플레이어들도 무슨 아이템인지 궁금증이 생겨 하나둘씩 몰려들기 시작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 아닙니다. 히끅! 입찰 방식으로 해 드릴까요? 히끅!”
그녀는 얼마나 놀랐는지 급기야 딸꾹질까지 시작했다.
“네. 뭐, 그렇게 해 주세요.”
“그…… 이런 아이템은 처음이라 시작가를 얼마로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10억을 권장해 드립니다.”
“10억이요?”
이게 그렇게나 비싸다고? 물론 효과야 괜찮긴 한데. 그래도 한 번 마시면 없어지는 포션인데?
“그럼 그렇게 해 주세요. 그리고 다른 아이템들도 같이 부탁드릴게요.”
“네, 고객님! 항상 감사합니다!”
“와…… 씨……. 희석된 엘릭서란다. 너 저런 포션 본 적 있냐?”
“당연히 없지! 미친……. S급 플레이어들은 벌이의 급이 다르네. 아, 현타 세게 온다.”
진원은 웅성거리며 포션을 구경하는 플레이어를 뒤로하고, 거래소 밖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