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세상은 좁다-5
“은식아, 정신 차려라!”
“쿨럭! 형…….”
메시아와 임프가 악마 형태를 한 남성 2명에게 달려들어 싸우는 사이, 진원은 그의 몸을 일으켜 희석된 엘릭서를 먹였다.
추가적으로 HP 포션을 하나 더 입에 넣어 주고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붉은 늑대, 여기 있는 사람들을 지켜 줘.”
“분부대로.”
그리고 뒤쪽에서 달려오는 남성을 향해 마구를 힘껏 던졌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남성은 자리에 멈춰 팔을 교차해 마구를 가볍게 막아 냈다.
“생각보다 공격이 가볍군. 크하하.”
“이것도 가벼운가 한번 맞아 봐라, 개자식아.”
까앙!
“크악!”
그사이 순간 가속을 사용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진원은 놈의 머리에 토르의 장난감 망치를 힘껏 내려찍었다.
상당한 충격에 놈이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자신의 등 뒤에서 꼬마 마도사가 마법을 연사했다.
“크아악!”
두두두두.
탄환처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마력탄에 놈은 팔을 들어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이런 벌레 같은 새끼가!”
그는 자잘한 공격에 열이 났는지, 팔을 풀고 자신에게로 돌진해 왔다.
퍼엉!
“크악! X발!”
그러자 놈의 등 뒤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고, 그 충격에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너부터다. 이 개자식아.”
빠악! 빠악! 빠악!
진원은 넘어진 놈에게 접근해 머리를 계속해서 내려찍었다.
“크아아악!”
생명력이 얼마나 질긴지 놈은 자신에게 맞고 있는 와중에도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다.
띠링.
[불안정한 악마를 처치하였습니다.]
“뭐라고?”
이 알림음과 메시지. 몬스터를 처치해야 출력되던 것이다.
“이놈은 분명히 플레이어였을 텐데……. 뭐냐, 도대체.”
그러나 길게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악마는 이놈 말고도 두 놈이 더 있었으니.
“크하하! 김진원, 역시 네놈은 강하구나. 일단 여기는 물러난다!”
어느새 메시아와 임프를 상대하고 있던 악마 두 놈은 빠르게 박쥐 같은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고 있었다.
[쫓을까, 진원?]
‘아니, 일단은 이쪽이 먼저야.’
[알았어.]
“오빠…….”
“괜찮냐? 방금 마법 날린 거 너지?”
“네…….”
“잘했다.”
그러자 그녀는 자책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최은식 씨가…….”
“그건 어쩔 수 없었어. 일단 아까 있었던 동굴로 돌아가자. 그렇게 멀지는 않으니.”
그는 악마의 형태로 변한 플레이어에게서 흘러내리는 보라색의 피를 보고, 발걸음을 돌렸다.
* * *
그로부터 최은식이 부상에서 어느 정도 회복하기까지 하루가 걸렸다.
“이제 괜찮냐?”
“네, 형. 감사합니다. 걸을 만하네요. 윽!”
최은식은 그의 말에 일어나서 걸어 다니다가 옆구리를 부여잡고 다시 주저앉았다.
“야야, 무리하지 마라.”
다행히 이전에 상점 레벨이 오른 덕분인지 희석된 엘릭서의 수량이 열 개로 늘어나 있었다.
옆구리가 완전히 꿰뚫린 중상. 보통의 포션으로는 치유가 힘들었지만, 희석된 엘릭서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두 개를 사용한 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가 있었으니.
“오빠, 이제 어떻게 하죠?”
은지희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어왔다. 아무래도 악마 형태로 변한 플레이어들 때문인 듯했다.
“놈들이 알아서 찾아와 주는 것이 제일 좋긴 한데, 그럴 리는 없을 것 같다.”
앞으로는 몬스터들. 뒤로는 악마 둘.
몬스터들이야 별걱정은 안 되지만, 악마 형태로 변한 놈들이 문제였다. 비행 능력까지 가진 듯했으니.
“빠르게 보스를 처치하고 귀환 포탈을 통해 나가는 것. 그것 말고는 떠오르질 않아. 다른 사람은?”
이대로 시간을 계속 끌게 되면 놈들이 무슨 짓을 해 올지 몰랐다.
최대한 던전을 빠르게 클리어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파티원들도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저도 그거 말고는 생각나는 것이 없네요, 형.”
“저도 그래요.”
“좋아. 그럼 그렇게 하자.”
그때, 붉은 늑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군, 놈들의 본거지로 보이는 장소를 발견했습니다.’
동굴 안에서 최은식이 회복을 하는 사이, 그는 붉은 늑대를 보내 놈들의 본거지를 탐색하도록 했다.
‘수고했다.’
“좋아. 그럼 빠르게 놈들의 본거지로 가자. 어딘지는 방금 알았으니.”
그 뒤로 파티는 빠르게 대열을 정비하고, 붉은 늑대가 가르쳐 준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렇게 빠르게 움직인 이유는, 날씨에 대한 변수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눈보라가 심하게 휘날리면 시야를 확보하는 것도 까다로웠으니.
‘이곳에는 덫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다들 덫은 조심히 피해서 걸어요.”
진원은 놈들을 습격하기 위해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본거지로 다가갔다.
덫들을 피하고, 놈들이 경보용으로 설치해 놓은 밧줄을 넘어가니 아이스 트롤들이 보였다.
‘별로 없네. 겨우 6마리인가. 문제는…….’
다른 몬스터들에 비해 확연히 커다란 덩치. 보스였다.
[보스 : 정예 아이스트롤 족장]
다른 놈들은 커다란 곤봉을 들고 다녔는데, 이놈은 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가지고 있었다.
‘마법형이라. 주술형만 아니면 괜찮을 텐데.’
아직 놈들은 자신의 기척을 못 느낀 듯했다.
진원은 고개를 돌려 파티원들에게 조용하라는 신호를 보낸 뒤, 와인드업을 하고 마구 부가 스킬을 사용했다.
우웅-
시간이 지나며 손에 있는 마구가 강렬하게 진동하자, 놈들이 무언가를 느꼈는지 진원이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크키키!”
“이미 늦었다. 뒈져라! 흡!”
쐐애액-
퍼억!
“크카카칵!”
“젠장. 안 죽었나.”
마구 부가 스킬이 놈의 머리에 깔끔하게 적중했지만, 놈은 고통스러운 듯이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감쌀 뿐이었다.
띠링.
[보스 : 정예 아이스 트롤 족장이 당신에게 저주를 내립니다.]
[앞으로 5분 동안 모든 스텟이 50퍼센트 하락합니다.]
“주술형인가.”
상대방에게 저주나 약화 마법을 퍼붓는 주술형 몬스터.
생각보다 디버프의 체감이 커서 플레이어들이 상대할 때 애를 먹는 몬스터였다.
“크키키!”
다른 아이스 트롤들이 곤봉을 들고 자신의 파티를 향해 돌진해 왔다.
“얘들아!”
그의 말에 붉은 늑대와 메시아를 포함한 소환수들이 앞으로 나서 전투를 시작했다.
자신의 지배력 스텟이 낮아진 영향인지, 임프와 마도사는 생각보다 힘을 쓰지 못했다.
퍼억!
“키긱!”
놈들이 휘두르는 공격을 그대로 허용한 임프는 뒤로 크게 밀려났다.
‘얘들은 안 되겠다.’
임프와 마도사를 다시 소환에 방에 넣고, 붉은 늑대와 함께 보스에게로 달려 나갔다.
“은식아, 지희! 놈들은 너네들이 맡아 줘! 메시아도 걔들 좀 도와주고.”
“네, 형!”
“네!”
[알았어.]
띠링.
[보스 : 정예 아이스 트롤 족장이 당신에게 저주를 내립니다.]
[앞으로 5분 동안 쇠약 상태에 빠집니다.]
그사이 보스는 쉬지 않고 지팡이를 치켜들며 자신에게 디버프 주술을 시전하고 있었다.
“망할 놈이. 그래, 얼마든지 해 봐라.”
그러나 붉은 늑대는 주술의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
보스에게 검기를 날리며 접근했지만 놈은 별것 아니란 듯이 지팡이를 들어 쳐 냈다.
칭! 치잉!
보스에게 접근한 붉은 늑대가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부었지만, 놈은 힘겨운 듯하면서도 자신에게 몰아치는 검을 막아 내고 있었다.
“후우, 제기랄. 몸이 무겁다.”
놈이 자신에게 건 쇠약 효과 때문일까. 몸이 물먹은 듯이 무거웠다.
“어쩔 수 없지. 써야겠어.”
그는 떨리는 손으로 인벤토리에서 희석된 엘릭서를 꺼내 마셨다.
띠링.
[희석된 엘릭서의 효과로 쇠약 효과가 해제됩니다.]
“후우.”
그 뒤로 숨을 크게 들이키고, 마구를 사용해 와인드업을 했다.
그리고 도탄 특성을 이용해 놈이 예상하지 못하는 뒤를 노렸다.
쉬익! 툭. 툭. 툭.
지면과 나무들 사이를 튕기던 마구는 붉은 늑대를 상대하고 있던 보스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크칵!”
놈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잠시 행동을 멈췄다. 그로기 상태에 빠진 것이다.
붉은 늑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놈을 연속해서 베어 나갔다.
서걱! 스걱! 퍼걱!
“크카카악…….”
연속된 참격이 계속되는 와중, 놈은 다시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온 마구를 맞고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띠링.
[보스 : 정예 아이스트롤 족장을 처치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아이템 : 흑천검을 발견하였습니다!]
[780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랭크 : A
추가 보상: 중급 마정석 2개
[귀환 포탈이 생성됩니다.]
“후우…….”
생각보다 까다로운 놈이었다. 붉은 늑대와 교전을 하는 와중에도 자신에게 주술을 시전하다니.
띠링.
[보스의 죽음으로 인해 저주를 발동합니다!]
[앞으로 5분 동안 모든 스텟이 60퍼센트 하락합니다.]
“망할 놈이. 끝까지 귀찮게 하네.”
하락된 스텟이 돌아오자마자 다시 자신에게 디버프가 걸렸다.
“그래도 악마 놈들이 없으니 일단 안심이네. 얘들아, 빨리 나가자!”
뒤쪽도 아이스 트롤들을 처치했는지 놈들에게서 아이템을 탐색하고 있었다.
그 후, 자신도 보스의 시체에서 아이템을 집으려 손을 뻗은 순간,
쉬익- 퍼억!
“큭!”
어느새 날아온 악마 놈들이 자신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하락된 스텟의 영향인지, 단순한 발차기에도 진원은 상당한 고통을 느끼며 뒤로 밀려났다.
“타이밍이 정말 좋아. 알아서 보스도 처리해 주고. 정말 고맙습니다. 크하하!”
“역시 S급인가. 꽤나 단단하네. 단단한 샌드백이야. 크하하!”
“주군!”
“오빠!”
붉은 늑대는 보스와의 전투로 체력이 소모되어 있었는지, 놈들의 기척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형, 이리로!”
붉은 늑대가 시간을 끌고 있는 사이, 최은식이 방패를 치켜들고 자신의 앞으로 나섰다.
“큭…… 메시아!”
[미안해, 진원. 나 지금 엄청나게 졸려…….]
‘제기랄! 하필 이럴 때.’
현재 자신은 저주로 스텟이 하락한 상황이고, 메시아도 사라진 상태.
챙. 챙.
“이놈 잘 버티는데?”
“그럼 좀 더 속도를 올리자고! 크하하!”
“크으…….”
‘2분이라…….’
보스가 자신에게 건 주술이 풀리려면 아직 2분이 남았다.
그러나 붉은 늑대가 공격을 버티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형, 방패의 효과를 쓰겠습니다. 저분은 제 뒤로 오게 해 주세요!”
그래. 그러고 보니 내가 준 방패에는 그런 효과가 있었지.
‘이 녀석의 뒤로 후퇴해라!’
‘크으……. 죄송합니다, 주군.’
붉은 늑대가 뒤로 물러나자, 최은식은 방패를 높이 들고 효과를 사용했다.
띠링.
[피를 마신 방패의 효과를 사용합니다. 범위 안 대상들에게 HP를 흡수합니다.]
붉게 물든 방패가 더욱 새빨갛게 물들더니, 악마들의 HP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응? 이건 또 뭐냐!”
자신의 보라색 피가 서서히 빠져나가자 당황하던 악마들은, 최은식의 방패를 보고 그대로 빠르게 돌진해 왔다.
“퍼펙트 실드!”
“망할 새끼가!”
쿵! 쿵!
그는 생각보다 단단한 최은식의 스킬이 짜증나는지, 쉴 새 없이 배리어를 타격했다.
“으으……. 형, 이젠 못 버틸 것 같습니다.”
“괜찮다. 잘해 줬어.”
최은식은 그 후로 5분 가까이 배리어를 유지했다.
“크하하! 이제 쓸데없는 짓거리는 그만하고…… 끄억!”
“네놈부터 먼저 죽여 버리겠다! 크아악!”
진원은 배리어가 풀리자마자 놈의 얼굴에 주먹을 힘껏 날렸다.
붉은 늑대도 동시에 튀어나가 다른 놈에게 참격을 가했다.
“늬들은 오늘 죽었다고 생각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