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상점스킬-56화 (56/200)

56. 세상은 좁다-3

송진호가 입원해 있는 대학병원의 중환자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간부님.”

가죽 장갑을 착용한 남성이 병원 안으로 들어서자 간호사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를 중환자실로 안내해 주었다.

“새벽이라 괜찮을 겁니다. 감시 카메라도 조치해 두었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그의 말에 간호사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

“송진호, 운 좋은 새끼. 이연우만 아니었어도 당장 네놈의 모가지를 비틀어 버리는 건데.”

유리벽을 통해 바라본 그의 상태는 처참했다.

얼굴과 양팔에 붕대가 둘둘 감겨 있었고, 의식이 없는 채로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고 있었으니.

그는 송진호의 팔을 보자 기억하기 싫은 과거가 생각났는지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천천히 중환자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 주머니에서 작은 박스를 꺼냈다.

딸깍.

겉보기에는 해바라기 씨앗처럼 생긴 악마의 씨앗.

“악마화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기술인지 나도 궁금하긴 하거든.”

작은 씨앗을 송진호의 배에 올려놓자, 마치 아이스크림이 녹듯이 흐물흐물해지며 검은 액체로 변해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씨익.

“피닉스 길드의 부사장이 어떻게 되는지 한번 지켜보겠다.”

그는 희미한 웃음을 남기며 중환자실을 떠났다.

* * *

“형! 인원도 다 모인 듯하니 이제 슬슬 출발할까요?”

“그래. B급 던전을 몇 번 클리어해야 된다고 했더라?”

“네 번이에요, 형.”

최은식은 인원수를 채우러 온 플레이어들이 사인한 계약서를 거둬 가며 한곳에 모았다.

‘이 녀석이 알아서 던전 예약해 줄 때는 편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해야 하네.’

오늘 자신이 들어갈 던전은 B급 던전. C급 판정을 받은 최은식은 등급 미달로 인해 자신이 직접 협회로 가 입장권을 구매해야 했다.

‘파티장 위임이야 뭐, 딱히 제지하지는 않았으니 괜찮나.’

진원은 최은식을 파티장으로 예약했지만, S급 플레이어인 자신이 파티에 소속해 있어서인지 직원이 따로 말리지는 않았다.

“다들 준비되셨으면 들어가죠. 제가 먼저 갑니다.”

간단히 말을 남기고 포탈로 들어가려는데, 등 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제가 바로 형 뒤니까 제 뒤에 서세요!”

“무슨 소리예요? 전 진원 오빠가 직접 데려왔거든요?”

“전 탱커니까 당연히 앞에 서야 해요!”

고개를 돌려 보니 최은식과 은지희가 서로 투덕대며 별것 아닌 걸로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

도대체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는 적당히 무시하고 감시원에게 입장권을 건네준 뒤, 포탈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휘이이이-.

“후우, 춥다.”

먼저 들어간 진원이 본 풍경은 사방이 눈으로 뒤덮인 설원이었다.

휘이이이-

하늘에는 시야를 방해할 정도로 강력한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었다.

“으으, 추워.”

“뭐야, 던전이 뭐 이래?”

“형! 어떻게 하죠? 추위에 대한 대비는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곧이어 뒤따라 던전 안으로 들어온 다른 파티원들도 추위에 몸을 떨기 시작했다.

‘이런 맵일 줄은 전혀 예상 못 했네.’

그동안 적당한 동굴형 던전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일까.

편하게 포탈로 들어갔는데, 사나운 날씨가 자신을 맞이할 줄이야.

협회에서 포탈의 마력 수치를 보고 대략 어떤 형식의 던전인지 알려 주었지만, 그다지 정확도는 높지 않았다.

‘붉은 늑대.’

‘예, 주군. 주위에 살기가 느껴지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다행이네.’

다른 파티들 같으면,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다.

물론, B급 던전을 공략할 정도라면 그만큼의 대비는 하겠지만.

“다들, 이거 하나씩 걸쳐요.”

진원은 상점을 열어 두꺼운 군용 모포를 하나씩 구매해 파티원들에게 건네주었다.

“역시 형! 감사합니다!”

“와, 오빠 방금 그거 뭐예요? 스킬이에요?”

손을 비비며 입김을 내뿜는 파티원들이 하나씩 감사를 표하며 모포를 받아 갔다.

그중 남성 세 명은, 무표정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받았지만.

“일단 주위도 어둡고, 날씨도 사나우니까 적당히 몸을 숨길 곳이라도 찾죠.”

끄덕.

진원의 말에 파티원들은 납득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길을 걷기 시작했다.

칭!

“끄아악!”

그 뒤로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대열의 맨 끝에 있던 파티원 하나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뭐야?”

분명히 감지되는 살기는 없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황급히 파티원에게 다가가 보니, 두꺼운 철로 된 덫에 다리가 걸려 있었다.

‘제기랄. 이래서 몰랐던 건가.’

“다들 더 이상 움직이지 마세요!”

덫은 두꺼운 눈 안에 파묻혀 있기도 했고, 덫 색깔도 눈의 색깔과 유사한 흰색이라 가까이 다가가야 겨우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형! 이거, 곰덫입니다!”

“곰덫?”

“네. 이 정도 크기와 두께면 곰덫 말고는 없습니다.”

“끄으으, 도와주세요.”

진원은 파티원의 신음에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 피가 흘러나오는 부위에 부어 주었다.

“지희, 너 화염 마법 쓸 줄 알지? 얘를 도와서 최대한 주위의 눈을 녹여 줘!”

“네? 아, 네!”

스스스-.

그는 소환의 방에서 꼬마 마도사를 불러내 시야에 보이는 눈을 최대한 녹여 달라고 명령했다.

그녀는 진원이 스킬을 사용하는 것을 신기하게 쳐다보다가 그의 지시에 빠르게 화염 마법을 캐스팅했다.

화르르르- 화르륵-.

마도사와 지희가 눈을 녹이고 있는 사이, 그는 덫을 해제하기 위해 파티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은식아, 이거 어떻게 해제하냐?”

“예, 형! 잠시만요! 조금만 참으세요, 아저씨!”

“으으으…….”

자신이 잘못 건드렸다가 덫이 더욱 깊게 파고들 수도 있었기에 최은식의 판단을 기다리기로 했다.

“형, 여기 스프링 보이시죠? 여기를 누르면 해제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부분이 지금 얼어 있어서 힘을 상당히 많이 줘야 됩니다!”

침착하게 덫을 유심히 관찰하던 그는 해결법을 발견하고 진원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래, 잠깐 비켜 봐.”

근력 50정도의 스텟이면 곰덫은 충분히 해제할 수 있겠지.

“흡!”

“흐읍!”

그가 스프링을 힘껏 누르자, 최은식이 곰덫의 양턱을 잡고 힘을 줘서 파티원의 다리를 빼냈다.

“후우, 됐다. 여기 포션 하나 더 드세요. 은식아, 여기 붕대 줄 테니까 저분 좀 감아 드려.”

“네, 형!”

바로 상점에서 붕대와 포션을 구매하고 파티원에게 건네주었다.

“끄으, 감사합니다.”

“오빠, 주위에 눈 다 치웠어요!”

지희의 말에 시선을 돌리자, 시야에 보이는 눈은 완벽하게 없어져 있었다.

‘제가 거의 다 치웠습니다. 저 꼬맹이는 별로 도움은 안 되더군요.’

‘그래, 잘했다.’

눈이 녹자, 밑에 숨어 있었던 덫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대충 보이는 곰덫만 7개 이상이었다.

“허, 이놈들 봐라.”

깡! 깡!

진원은 인벤토리에서 토르의 장난감 망치를 꺼내 덫들을 재사용하지 못할 수준으로 하나씩 망가뜨렸다.

쉬익!

그런 그의 등 뒤로, 갑작스럽게 커다란 돌이 날아왔다.

“형!”

“오빠!”

스걱!

날아오던 돌은 실체화한 붉은 늑대의 칼에 두 동강으로 갈라졌다.

“진원 씨, 저기 보세요!”

파티원 한 명이 멀리 떨어진 한 장소를 가리켰다.

당연히 그 전부터 진원은 놈이 서 있던 곳을 알고 있었다.

놈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기 위해 가만히 등을 내보이고 있었던 것.

그곳에는 1마리의 아이스 트롤이 서 있었다.

보통의 트롤과는 다르게 흰 피부를 가지고 추위에 강하다는 몬스터.

전투력과 체력은 보통의 트롤보다 약하지만, 놈이 주변 환경을 이용하는 지능과 간사함은 플레이어들을 애먹게 했다.

“크키키키!”

마치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 놈은 자신을 향해 웃다가 등을 돌리고 빠르게 멀어졌다.

[진원, 내가 가서 죽일까?]

‘아니, 일단은 지켜보자. 되도록 한 번에 다 쓸어 담고 싶거든.’

[알았어.]

“아이스 트롤이네요, 형. 눈으로 뒤덮인 필드라서 예상은 했었는데.”

최은식은 놈을 보고 걱정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쟤들 머리 되게 좋다던데. 근데 그래도 오빠가 생각보다 세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그래. 너희들이 다칠 일은 없을 거다.”

방금의 아이스 트롤 1마리는 단순한 정찰 목적일 가능성이 컸다.

자신들이 얼마나 강한지를 간단히 시험해 본 느낌이 들었다.

아이스 트롤. 놈들은 사악하고, 영리했다.

플레이어만 보면 이를 드러내고 돌진해 오는 몬스터들과는 다르게, 사람들을 말려 죽이는 듯한 행동을 취했으니.

‘네놈들 마음대로는 안 될 거다.’

한정된 식량과 식수. 그리고 지속되는 추위. 놈들은 그것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인간들이 약해진 것을 느끼면, 그제야 단체로 몰려와 곤봉으로 플레이어들의 머리통을 부수곤 했으니.

“일단 몸을 숨길 곳을 찾죠.”

* * *

대천사 길드의 고층 빌딩. 책상과 의자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개인 사무실.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이곳은 뭐 하는 곳인지 궁금해할 수준이었다. 그 정도로 넓고, 소박했다.

“흐음, 좋아. 손명유는 잘하고 있고. 그다음은…….”

스마트폰을 보던 이연우는 방금 전, 길드원이 가져다 놓은 서류 봉투에 손을 뻗었다.

“얼마 전에 S급 플레이어. 그리고 길드를 만드신다라…….”

S급 플레이어 1명이 길드를 창설하기 위해 던전을 연속으로 클리어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 전 길드원의 보고를 통해 알게 되었다.

“힘을 전부터 숨기고 있었거나, 아니면 어느 계기로 각성을 하게 되었거나. 어느 쪽이든지 끌어들이는 것이 원칙이긴 한데…….”

그러나 자신이 얼마 전에 간부로 추천한 손명유. 그가 문제였다.

현재 그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복수심이나 마찬가지.

“손명유 또한 중요한 실험 샘플이기도 하니까. 우선은 그에게 일어날 변수를 최소화하는 것이 좋겠고, 우리 쪽에서 심은 길드원 3명. 그들이 잘해 줬으면 좋겠네요. 그가 얼마나 강한지, 직업은 무엇인지 알아 두는 것도 중요하니까.”

이연우는 그 말을 끝으로 서류 봉투를 열어 어느 실험에 대한 보고서를 차분하게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 * *

진원의 파티는 그 뒤로 3시간 정도 주변을 탐색해, 동굴 하나를 발견했다.

그렇게 멀리 떨어진 장소는 아니었지만, 중간에 곰덫을 경계하며 움직여야 했기에 제법 시간이 소비되었다.

타닥. 타닥.

파티원들이 모닥불을 둘러싸고 둥글게 앉아 있는 와중, 은지희가 궁금함을 못 참겠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오빠, 도대체 정체가 뭐예요?”

“왜?”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그래요. 예전에 D급 던전에서 레벨 6 짐꾼으로 오셨잖아요. 그런데 얼마 되지도 않아서 S급 판정이라니, 원래부터 엄청 강했던 것 아니에요?”

아무리 다른 플레이어의 도움이 있다고 해도, 짐꾼이 트롤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것부터가 말이 안됐다.

운이 좋아서 그런 건가 보다 하고 생각했었는데, 자신이 잘못 짚은 듯했다.

“내가 그걸 왜 말해 주냐?”

자신은 일부러 지희에게 불친절하게 대했다. 이게 다 자업자득이지 뭐.

“그래요. 너무 형에 대해 파고들지 마세요.”

“뭐요? 그쪽은 뭔데 끼어드세요?”

‘이놈들 봐라.’

그녀는 자신을 제외한 다른 파티원들에게는 까칠하게 대했다. 아니, 그냥 싸가지가 없었다.

‘내가 여전히 짐꾼 수준이었다면 나한테도 똑같이 대했겠지.’

진원은 의미 없이 논쟁을 벌이는 둘을 한 번 쳐다보고, 빨리 던전을 클리어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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