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상점스킬-54화 (54/200)

54. 세상은 좁다-1

“오빠! 오빠아! 빨리 좀 나와 봐!”

뭔가 화난 듯한 목소리. 무슨 일인가 싶어 문을 열어 보니 동생이 팔짱을 낀 채로 서 있었다.

“뭐야? 무슨 일인데?”

“오빠, 설마 고등학생 건드린 거는 아니지?”

“그건 또 뭔 소리야.”

자신의 말에 지원은 스마트폰을 들어 SNS에 적힌 글을 내밀었다.

“진원 오빠랑 저번에 한판 했는데 되게 강렬하…… 와, 얘는 어떻게 앞뒤를 다 잘라 놓고 글을 저렇게 썼냐.”

글만 보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지만, 다행히 플레이어 대련장의 사진이 같이 업로드되어 있었다.

“야야, 여기 사진 봐라. 대련장이야. 이 녀석 할아버지가 플레이어 협회장인데, 제발 손녀랑 대련 한번 해 주면 안 되겠냐고 고개까지 숙이면서 부탁하시길래 짧게 한 거야.”

그 말을 들은 동생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언니가 중학교 때부터 장난기가 많긴 했지. 아니, 그런데 나는 언니랑 친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연락이 와서 오빠 어떻게 지내는지 묻더라.”

그 말에 진원은 스마트폰을 꺼내 쌓인 문자 메시지함에 들어갔다.

요즘은 코코아 톡이 유행이긴 했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귀찮아서 문자 기능을 애용하고 있는 그였다.

-오빠, 나중에 한 번만 더 대련해 줘요. 다음엔 제대로 준비해서…….

-다음에 언제 시간 돼요?

-답장 좀 해 주시면 안 되나요?

-우리 할아버지가…….

음, 귀찮아서 읽지도 않고 있었는데 동생한테 연락을 했다 이거지.

“오빠, 어쨌든 나 2일 뒤에 학부모 진로 상담 있는거 알지? 부모님이 해외에서 일하고 계시니까 오빠가 와 줘야 하는 거.”

“응? 그런 것도 있었나? 그래, 진로에 관한 상담이면 당연히 가야지.”

여전히 태평해 보이는 오빠를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오는 그녀였다.

‘학교가면 또 난리 날 텐데, 그렇다고 안 부를 수도 없고. 어휴, 내 팔자야.’

* * *

“어떠십니까? 이게 바로 악마의 씨앗이라는 것입니다.”

손명유를 길드 지하의 실험실로 데려온 젊은 남성은 조심스럽게 작은 상자에 담겨 있는 물건을 보여 주었다.

‘이연우 이 새끼, 역시 제정신이 아니잖아.’

자신을 데려온 남성의 이름은 이연우. 대천사 길드의 주요 간부인 듯했다.

간부 특별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자신을 회의실로 데려가 일대일로 교육을 해 주었는데, 정말 터무니없는 내용밖에 없었다.

‘뭐? 하늘이 갈라져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것은 신이 우리를 벌하려 하는 거라고?’

무분별한 자연의 파괴로 지구의 수명이 줄어드는 것을 막으려고 신께서 보낸 사자들.

그리고 플레이어로 각성한 사람들만이 신에게서 선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나 뭐라나.

‘이래서 세뇌가 무서운 것이군.’

처음에는 뭔 되도 않는 개소리를 지껄이는가 싶어 어이가 없었지만, 가만히 듣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조금씩 끄덕였다.

‘뭐, 어찌 됐건 시궁창 같은 삶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니.’

시선을 내려 자신의 양팔을 바라보았다. 흉측한 흉터와 함께 절단되어 있었던 팔이 튼튼해 보이는 보라색 팔로 바뀌어 있었으니.

‘정기적으로 주사를 맞아야 유지가 가능하다니. 빈틈이 없는 놈들이야.’

적당히 돈을 모으고 안정되면 빠지려고 했는데, 그리 쉽게는 안 되는 듯했다.

“자, 그래서 이 악마의 씨앗이 남은 마지막 단계가 바로 실험이죠. 제가 하나 제안을 해 드리자면, 현재 대학 병원 중환자실에서 누워 있는 피닉스 길드의 송진호. 그에게 이 영광스러운 기회를 한 번 주는 것은 어떻습니까?”

으드득.

송진호라는 말이 나오자 손명유의 표정이 사납게 변했다.

‘죽일 놈의 새끼.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죽여 버리고 싶다.’

“물론 당신의 마음은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분노에 몸을 맡기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죠. 자, 여기 악마의 씨앗을 받으시죠.”

이연우는 웃는 얼굴로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손에 작은 박스를 쥐여 주었다.

* * *

“오늘로 C급 던전 클리어 횟수 다 채웠네요! 역시 형입니다!”

“그래. 이 속도라면 금방이겠는데?”

진원은 그 뒤로 2일 동안 최은식의 길드 창설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연속으로 던전을 클리어했다.

‘C급은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알아서 정리되네.’

꼬마 마도사의 성능은 강력했다. 한 발의 데미지가 그리 세진 않았지만, 쉬지 않고 쏟아지는 하급 마법의 연사에 몬스터들이 줄줄이 갈려 나갔다.

그리고 놈들이 전부 쓰러지면, 임프와 최은식, 메시아와 붉은 늑대까지 나서서 아이템을 수거해 왔다.

[던전을 클리어하였습니다.]

[붉은 늑대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귀환 포탈이 생성됩니다.]

랭크 : S

추가 보상 : 중급 마정석 2개

‘이건 뭐, 거의 매크로네.’

그 광경을 뒤에 빠져서 바라보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그저 입을 벌리고 감탄하기에 바빴다.

“와, 미쳤네요. 저건 그냥 자동 사냥인데요?”

“그러게 제가 말했죠? 이 자리가 괜히 경쟁률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요.”

“아니, 그래도 던전 인원수 채우러 가는데 자기소개서까지 들고 오는 것은 조금···.”

‘흐음, 계약금을 받으면 바로 사야 되겠는데.’

상점 창을 들여다보던 진원은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상점 레벨이 오르면서 추가된 캐시 샵. 현금으로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는 기능이었다.

현재 캐시 샵에서 구매가 가능한 아이템들은 스킬 북과 목걸이 하나.

스킬 북의 가격은 현금으로 100억. 플레이어 거래소에 판매되는 스킬 알약의 가격에 비하면 상당히 저렴한 편이었다.

‘새로운 마구 스킬이라. 이거 기대된다.’

띠링. 띠링.

여러 생각을 하며 귀환 포탈로 나오자마자 스마트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오빠, 3시간 뒤에 알지? 늦지 마! 그리고 깔끔하게 입고 와야 돼!

‘아, 맞다. 오늘 동생 진로 상담 하는 날이지. 정신없이 던전 돈다고 잊고 있었네.’

“은식아,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조금 있다가 학교 좀 들러야 돼서. 여러분도 수고하셨어요.”

“네, 형. 그런데 학교요?”

“동생 진로 상담.”

“아, 그렇군요. 그럼 B급 던전은 내일부터 하죠.”

“그래. 너도 수고했다.”

* * *

진원이 먼저 은행에 들러 부모님께 3억을 송금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잔액에 입금 내역을 확인했다.

‘허, 최은식 이놈이 언제 2억을 보냈지?’

아마 이전에 피를 마신 방패를 줘서 그런 듯했다. 신경 쓰지 말라고 했는데.

2억이나 보내 줘 놓고는 던전을 도는 동안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준다는데 뭐, 마다할 이유는 없지.’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5억을 부모님 계좌에 송금했다.

두 번째로 들른 곳은 고급스러운 브랜드의 옷가게. 정장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가게인 듯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단정한 정장 차림의 직원이 고개를 숙이며 예의 바르게 그를 맞아 주었다.

“네, 정장을 하나 사려고 하는데요. 괜찮은 게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손님의 체형을 고려했을 때, 여기 있는 정장을 추천드립니다.”

직원이 내보인 옷은 가장 무난한 검은색 정장 세트. 물론 자신도 처음부터 검은색을 생각했지만.

‘검은색이 어딜 가든 입기에 무난하단 말이지.’

“한번 입어 봐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탈의실은 저쪽입니다.”

[잘 어울려, 진원.]

‘응? 아, 그래.’

형체가 보이지 않는 메시아가 순수하게 자신의 감상을 전해 왔다.

그녀는 던전을 공략할 때나, 가끔씩 집에 있을 때 말고는 힘을 비축하려는지 어둠에 휩싸여 사라지곤 했다.

‘258만 원이라. 비싸기도 되게 비싸네.’

하지만 이 정도의 돈은 신경 쓸 때가 진작에 지났지. 동생이 다니는 학교에 가는 거니, 선생님께 좋은 인상을 보여 줘야겠지.

진원은 그 뒤로 적당히 택시를 타고 동생이 다니는 학교 앞에 도착했다.

‘얘 교실이…… 2층이네.’

적당히 주위를 둘러보며 동생이 수업을 받고 있는 교실로 향했다.

“김지원!”

마침 수업이 끝났는지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나가고 있었다.

남성의 목소리에 여고생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동생 역시 진원을 발견하고, 놀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

“와, 저분이 네가 말한 오빠야? 대박! 존잘이다.”

“키도 되게 커. 미쳤다.”

“거기다 S급 플레이어라며?”

“야, 오빠 여자 친구 있으셔?”

180이 넘는 키와 고급 브랜드의 정장.

그냥 평범하게만 생겨도 이목이 집중되는 효과가 생기는데, 진원의 경우는 그것이 상당히 컸다.

우루루루.

동생에게 몰려가 진원에 대해 묻던 여학생들은 순식간에 그를 에워쌌다.

“오빠, 몇 살이에요?”

“여자 친구 있어요?”

안 그래도 여고다 보니 더욱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듯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복도가 가득 차 지나갈 틈조차 없게 되자, 선생님이 직접 나서서 학생들을 자리로 돌려보냈다.

“오늘 오시기로 한 지원이 오빠분,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제가 담임입니다.”

학생들을 돌려보낸 젊은 남선생은 앞장서서 상담실로 진원을 이끌었다.

등 뒤로 아쉬운 듯한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자, 이쪽에 앉으시죠. 커피랑 녹차 뭐 드실래요?”

“커피로 부탁드립니다.”

선생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커피 두 잔을 가져와 한잔을 진원에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그 뒤로 담임은 소파에 마주 앉은 그에게 간단한 이야기를 시작해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풀어 갔다.

‘좋으신 분이네. 담임 잘 만나는 것도 중요한데.’

“제가 사실 지원이 걱정을 많이 했었거든요.”

“네?”

“그…… 아무래도 가정 사정이 조금 있다 보니……. 아, 불편하시면 당연히 말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대략적으로만 알거든요. 담임이라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알 필요가 있어서 말이죠.”

“네. 괜찮습니다.”

“그래도 오빠가 S급 플레이어시니, 앞으로 큰 걱정은 없을 겁니다.”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가던 담임은 미리 프린트해 둔 자료를 보며 진원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현재 지원이가 변호사를 목표로 하고 계신 것은 들으셨나요?”

“네, 얼핏 듣기는 했습니다.”

“상당히 모범생입니다. 성실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요. 아직은 이르긴 하지만, 이대로만 가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얘가 성실하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칭찬 일색인 담임의 말에 자신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 뒤로 약 20분간, 무난하게 상담은 끝나갔다.

딱히 상담이랄 것도 없었다. 자신은 일반적으로 듣기만 했으니.

“상담은 여기까지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네?”

갑자기 조심스러워진 담임의 태도. 동생에게 뭔가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

“실례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만, 가족분께서 플레이어 판정을 받으신다면 던전에 보내실 수 있습니까?”

“절대로 안 보냅니다.”

진원은 그의 질문이 다 끝나기도 전에 칼같이 말했다.

험한 일은 겪는 것은 자신만으로 충분했다.

“역시 그렇죠? 혹시 괜찮으시면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먼저 들어 보고 결정해도 될까요?”

“감사합니다! 물론입니다.”

물론 아무나 부탁한다고 해서 들어주지는 않는다.

단지, 담임은 자신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고, 동생을 상당히 신경 써 주는 듯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는 진원의 대답에 안심한 듯이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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