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특별 퀘스트-2
“크륵!”
“끄르륵!”
띠링.
[고블린 무리를 막아 냈습니다.]
[레드 워 울프 무리를 막아 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몬스터가 몰려들기 시작한 지 30분이 지났다.
그동안 10분 간격으로 D급에서 C급 수준의 몬스터가 적게는 20마리, 많게는 50마리 정도가 무리를 지어 몰려왔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것이 이런 거네.’
등급이 낮은 몬스터라도 많은 개체 수를 처치하니 레벨이 오르긴 했다.
지금까지 처치한 몬스터의 수로만 봐도 대략 던전 5개 분량 정도.
이 정도 수의 던전을 예약하고 클리어하려면 적어도 하루는 걸린다.
그런데 여기서는 고작 30분에 레벨 1이 올랐다.
‘아. 60분이 아니고 600분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는 놈들의 개체수가 적게 몰려오면 실망감이 들 정도였다.
어느덧 남은 시간은 절반. 앞으로 B급에서 A급 수준의 몬스터들이 몰려온다면, 상당한 레벨 업을 기대해볼 만하다.
“크워어어!”
“크워어!”
“드디어 괜찮은 놈들이 나왔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밖에서 달려오는 몬스터들은 이전에 C급 던전에서 잡았던 보스, 부패된 워 베어였으니.
“전에는 상당히 애를 먹었지만, 지금은 어떨까.”
성채 위에 올라간 그는, 마력에 스텟 10을 사용하고 마구를 사용했다.
이로써 마력은 70. 거기다가 자신이 착용한 장갑으로 원거리 추가 대미지까지.
잘하면 한 방에 죽일 수 있지 않을까.
“흡!”
와인드업을 하고, 그대로 달려오는 곰에게 마구를 힘껏 던졌다.
퐈학!
이전에 그토록 애를 먹었던 부패된 워 베어가, 단 한 방에 머리가 터져 나가며 쓰러졌다.
“레벨을 올린 성과가 있네.”
한 방에 한 놈. 도탄 특성을 이용하면 두 놈까지.
10마리가 넘는 몬스터들은 힘 한번 써 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쓰러졌다.
[블랙 워 베어 무리를 막아 냈습니다.]
“얘들아!”
“키긱!”
“맡겨 주십시오, 주군.”
그리고 몬스터가 쓰러지면 임프와 붉은 늑대가 성문 밖으로 나가 아이템들을 재빠르게 수거해 왔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중간에 메시아를 불러 봤지만, 대답이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잠깐 나가서 골드까지 수거해 오고 싶었지만, 혹시 모를 변수가 있을까 싶어 최대한 심장에서 눈을 떼지 않기로 했다.
인벤토리에 차곡차곡 쌓인 아이템들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것들 전부 다 팔면 얼마나 하려나. 기대가 되네.”
* * *
“아. 김진원, 이 자식 왜 이렇게 연락이 없어?”
훈련을 나갈 짐을 챙겨 놓고, 현관에서 그에게 전화를 거는 남성은 최영호였다.
사실 영호는 이전부터 그가 플레이어인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자신을 구해 주던 그 날렵한 움직임을 우연히 인터넷 동영상으로 봤기 때문.
거기다 방금 전 플레이어 협회에서 기자 회견을 열어 공식적으로 그에게 사과문을 발표했으며, 협회장이 직접 S등급에 관한 기사와 소문은 모두 거짓이라는 말과 함께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한국의 세 번째 S급 플레이어가 이놈이라니. 야구할 때도 그렇고, 지 혼자만 앞서 나간다니까.”
투수로서 상당한 능력을 발휘하던 진원은 프로 구단에서 탐내던 인물 중 하나였다.
자신도 그의 투구를 보며 쉬지 않고 배트를 휘둘러 왔다.
나중에 공을 멋지게 치고 나갈 때 바라볼 그의 허탈해하는 표정을 기대하면서.
진원이 어깨 부상으로 은퇴하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어쨌든 잘돼서 다행이네.”
고개를 돌려 티비에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던 영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던가. 그런데 자신은 그런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녀석이 플레이어의 정점을 향한다면, 자신도 타자계의 정점을 향할 뿐이었기에.
그는 티비를 끄고 짐을 챙긴 뒤, 집을 나섰다.
오늘부터 훈련량을 배로 늘리기로 마음먹으면서.
* * *
[24:56]
서걱!
[암살자를 처치하였습니다.]
‘방금 거는 조금 위험했네.’
성문을 향해 오는 몬스터 무리들을 무난히 막는가 싶었더니, 복면을 쓴 암살자가 한 놈씩 뒤쪽에서 나타나 카라나의 심장을 노렸다.
‘혹시 몰라서 미리 당부해 두길 잘했어.’
붉은 늑대에게 심장에 주위에 수상한 기척이 느껴지면 그쪽을 우선시하라고 말해 두길 잘했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어쨌든 방금 걸로 레벨 업. 약 35분 정도 만에 2레벨이 올랐다.
이대로 간다면 이 퀘스트로만 5레벨 정도는 오를 듯했다.
꿀꺽 꿀꺽.
“으, 역시 포션은 쓰네. 좀 달달한 맛으로 만들면 안 되나.”
MP 포션을 마시고 입가를 닦던 진원은 고개를 들어 타이머를 체크했다.
대략 10분 간격으로 몬스터 무리들이 성문을 향해 돌진했고, 방금은 뒤쪽에서 암살자가 추가적으로 나타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어려워진다 이거지.”
[괴한의 복면을 획득하였습니다.]
이것으로, 공간이 많이 남았던 인벤토리가 절반 이상 찼다.
퀘스트가 끝나고 나서 넘쳐날 인벤토리를 기대하며 다음 몬스터들이 몰려오기를 대비했다.
[19:56]
“……안 오네.”
시간이 지났지만 괴성을 지르며 성문을 향해 달려오던 몬스터들이 잠잠했다.
위로 올라가 밖을 내다보았지만, 모래바람만 휘날렸을 뿐.
“저건 뭐지?”
뭔가를 발견했는지 진원의 눈이 가늘어졌다.
자세히 바라보니, 새하얀 안개가 서서히 다가왔다.
몬스터인가 싶어 마구를 던져 보고, 임프에게 지옥불을 던져 보라고도 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안개는 성채를 향해 서서히 다가왔고, 어느새 성채 주위는 시야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연 연기로 가득 찼다.
그는 심장 주위에서 최대한 경계를 하고 있었는데,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얌마, 여기서 뭐 하냐.”
그 목소리를 들은 진원의 눈이 순간 커졌다.
“네가 왜 여기 있냐? 뭐 해?”
경계를 풀고 가까이 다가가려던 그를 일깨운 것은 붉은 늑대였다.
‘주군, 저건 인간이 아닙니다.’
진원은 그의 말에 고개를 휘젓고 인벤토리에서 토르의 장난감 망치를 꺼내 영호의 모습을 하고 다가오는 것을 힘껏 내려쳤다.
스스스-
그러자 영호의 외형은 안개가 흩어지듯이 새하얀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이거, 나이트메어다.”
실제로 놈들을 마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신체적인 피해를 주진 않지만, 정신적으로 플레이어를 피폐하게 만드는 몬스터.
정신력과 의지가 강하지 않으면, 아무리 플레이어의 등급이 높아도 놈들의 공격을 허용해 버리게 된다.
‘신성력을 사용한다면 쉽겠지만.’
붉은 늑대의 말이 없었으면, 자신 또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나이트메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등 주위의 가까운 사람의 모습으로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다.
“아이고, 진원아, 내가 지금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나한테 왜 그러는 거냐.”
“오빠, 나한테 왜 이래?”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다가오니 저것들이 몬스터인 것을 알고서도 공격하기가 망설여졌다.
‘주군, 용서를.’
붉은 늑대는 그런 진원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다가오던 나이트메어를 베어 냈다.
“후우, 고맙다. 처음 당해 보니까 익숙해지질 않네.”
[나이트메어를 막아 냈습니다.]
[9:56]
성채를 가득 채웠던 안개가 걷히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그의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
‘괜히 A급으로 분류되는 몬스터가 아니네.’
그러나 땀을 닦아 내며 포션을 마실 새도 없이 진원이 시야가 다시 변했다.
띠링.
[악몽의 근원이 당신의 몸으로 침투했습니다! 일정 시간 내로 떨쳐내지 않으면 몸의 주도권을 빼앗기게 됩니다!]
“허억!”
갑작스럽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주군!”
“키긱!”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린 붉은 늑대와 임프가 다가왔지만, 이미 그의 눈이 완전히 감겨 있었다.
[크크크크,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는구나.]
그의 입에서 기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눈은 여전히 감긴 채였다.
“주군, 정신 차리십시오!”
[정신 공격을 처음 겪는 녀석이었다니. 놈에게서 강력한 기운이 느껴져 나름 걱정을 했었지만, 크크크.]
악몽의 근원은 나이트메어와는 다르게, 상대의 몸을 숙주로 삼는 몬스터였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장악당해 몸의 주도권을 뺏기게 된다.
그러나 의외로 해결 방법은 간단했다. 숙주가 된 상대방에게 강한 충격을 주면, 그걸로 끝.
즉, 혼자만 아니라면 대처법이 너무나도 간단한 몬스터였다.
“크윽.”
“키긱!”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는 붉은 늑대와 임프로는 당연히 진원의 몸을 건드릴 수가 없었다.
[크크. 여기만 신경 쓸 게 아닐 텐데? 네 주인이 심장을 지키라고 하지 않았나?]
두두두두.
성채 밖에서 몬스터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붉은 늑대는 혼란에 빠졌다.
주군의 몸을 우선으로 지킨다. 그러나 주군이 자신에게 한 명령도 거부할 수는 없다.
“키긱!”
그리고 그것은 진원의 소환수인 임프도 마찬가지였다.
* * *
“나를 세게 때려라! 붉은 늑대! 임프!”
그리고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진원은 소리를 힘껏 질렀지만, 입에서는 악몽의 근원의 괴상한 목소리만 흘러나왔다.
[크크크, 나한테 먹힌 이상,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대로 얌전히 먹혀라.]
‘X발. 어떻게 해야 하지.’
전혀 예상치도 못한 몬스터가 나오다니.
퀘스트 실패 시 몸의 주도권을 뺏긴다는 것을 보고 이 상황을 예측했어야 했는데.
[이대로 카리나의 심장을 무난하게 손에 넣는다면, 그 누구도 나를 넘볼 수 없게 된다! 크크크!]
그나마 다행인 건 성채로 몰려드는 몬스터를 임프가 처리해 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5:56]
이제 남은 시간은 대략 5분. 어떻게든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
이를 악물고 힘을 쥐어짜 냈지만, 자신의 몸이 단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거기다가 마지막 몬스터 무리들이라 그런지, 임프 혼자서는 막기가 버거워 보였다.
뿌각!
“무우우우!”
어느새 성채의 문을 부수고 들어온 놈들은 미노타우로스.
엄청난 거구와 근육질을 가진 놈들이 커다란 쇠구를 들고 천천히 카리나의 심장을 향해 다가왔다.
놈들이 안으로 들어오자 붉은 늑대도 가세해 싸웠지만, 미노타우로스의 묵직한 공격을 받아 내기는 무리였다.
“무우우!”
터엉!
“크으윽!”
놈이 휘두르는 쇠구를 막은 붉은 늑대의 몸이 크게 뒤로 밀려났다.
당연히 놈들의 느리고 강력한 공격을 굳이 받아 줄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뒤에는 지키라고 했던 카리나의 심장과 함께, 주군이 쓰러져 있었기 때문에 피할 수가 없었다.
[크크크크! 좋아! 더 세게! 더 강력하게 공격해라!]
터엉! 텅!
자신이 피해를 입는 것은 딱히 상관이 없었다. 주군의 MP로 얼마든지 복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진원은 MP를 회복할 수가 없는 상황!
이대로 미노타우로스의 연속된 공격을 허용하게 되면 붉은 늑대의 실체화가 풀리게 된다.
‘도저히 방법이 없는 것인가. 나는 이번에도 주군을 지키지 못하는 것인가.’
[이놈! 꽤나 잘 버티는구나. 하지만 그것도 곧 끝이다, 크크크. 응?]
붉은 늑대가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고 있는 도중, 진원의 몸 주위에서 서서히 변화가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