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대련
어두침침한 지하 방. 방 안은 오랜 기간 청소를 안 했는지 쓰레기봉투가 굴러다니고 있었고, 그 위를 파리들이 날아다녔다.
똑똑똑.
“계세요?”
젊은 남성의 목소리.
똑똑똑.
“계십니까?”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노크 소리에 쓰레기봉투를 사납게 치우고 몸을 일으킨 남성은, 문을 향해 소리쳤다.
“아, X발! 꺼져! 종교 같은 거는 안 믿는다고!”
그리고 다시 몸을 눕히려는 그의 귀에, 달콤한 말이 날아와 꽂혔다.
“당신의 팔, 저희라면 고쳐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강해지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 말에 몸을 빠르게 일으키고 문을 여니,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은 젊은 남성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환영합니다, 손명유 씨.”
“도대체 너는 뭐 하는 새끼냐?”
“저야 보잘것없는 흔한 플레이어죠. 그래도 생각은 있으신 것 같은데, 저를 따라오시죠. 당연히 강요는 하지 않습니다.”
뜬금없이 팔을 고쳐 주겠다고 하질 않나,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질 않나.
누가 봐도 수상한 상황. 평소 같았으면 당연히 거절하고 내쫓았을 것이다.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손명유는 붕대를 감은 손을 한번 지긋이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좋아. 간다. 어차피 X된 인생, 어디까지 X되는지 한번 가 보자.”
***
농구장을 연상시키는 실내. 길드와 정부가 투자해 만든 플레이어 대련실은 설비가 뛰어난 만큼, 1시간 이용에 100만 원의 비용이 드는 건물이었다.
대련실 한쪽에서 적당히 몸을 풀고 있는 남성은, 진원이었다.
‘이런 애들은 한번 따끔하게 혼을 내줘야 정신을 차리지.’
듣자하니, 손하윤은 A등급 이상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아직은 자신이 고등학생이라 등급 측정을 못 받게 하는 중이라며 입으로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중에 던전을 재패하며 랭커가 될 거라나.
“아저씨, 다 됐어?”
맞은편에서 말을 걸어오는 그녀는 상당히 즐거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야, 대련하는데 그게 뭐냐.”
“왜?”
“옷 말이야 옷. 그거 입고하려고?”
요새 교복이 얼마나 비싼데.
“괜찮아. 나 말고 얘가 대신 싸울 거야.”
그녀가 주머니에서 꺼내 바닥에 내려 둔 것은 장난감 모형 탱크 하나.
진원은 그것을 보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나 지금 진지하거든? 나중에 봐달라고나 하지 마.”
“자, 준비되셨으면, 보자, 진원 씨가 그래도 S급이니 우리 손녀가 먼저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네. 그러세요.”
“튼튼아!”
강화 유리벽 밖에 있는 협회장의 말에 그녀가 입을 열어 단어를 뱉자, 세계 2차 대전의 독일 전차, 티거를 연상시키는 장난감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신기하네. 그래도 허세인지 아닌지는, 봐야 알겠다.’
작았던 장난감 탱크는 어느새 중형 자동차와 맞먹을 정도로 커졌다.
덜덜덜-
마치 진짜 탱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리를 내뿜는 장난감의 대포가, 서서히 고개를 돌리며 자신을 조준했다.
“아저씨, S급이니까 안 봐줘도 되지?”
“그래라.”
‘붉은 늑대. 저기 탱크를 처리해라. 앞에 사람은 건들지 말고.’
‘분부대로.’
터엉!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탱크는 불을 뿜으며 진원을 향해 포를 발사했다.
쉬잉!
‘느낌이 진짜 같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공격도 가뿐히 피하는 자신에게는, 그냥 느릿한 굵은 탄환 한 개가 날아오는 느낌을 받았다.
서걱!
“와, 뭐야. 아저씨 네크로맨서야? 아니다. 저거 해골이 아닌데?”
진원의 앞으로 실체화한 사무라이가 튼튼이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 내자 내심 놀랐다.
할아버지가 보기로는, 실제 탱크랑 화력이 비슷하다고 했는데.
손하윤은 너무나 가볍게 튼튼이의 공격이 막히자, 주머니를 뒤적거려 장난감 RC카를 하나 더 바닥에 내려두었다.
이미 가볍게 대련한다는 기준은 훌쩍 넘은 상황.
손태욱은 손녀를 말릴 생각도 하지 않고 정신없이 대련을 쳐다보고 있었다.
“뾰족아!”
그녀가 순식간에 크기를 키운 것은 RC카.
앞부분에 철로 된 커다란 가시가 박혀 있어 상대방을 찔러 죽이겠다는 의도가 전해져 왔다.
‘네이밍 센스하고는…….’
메시아는 붉은 늑대를 한번 쳐다보고, 자신에게 시선을 돌렸다.
왠지 지기 싫어하는 표정인 느낌이다.
[진원, 저건 내가 해도 돼?]
‘그래.’
“아저씨, 얘 되게 튼튼하거든? 진짜로 크게 다칠 수도 있는…….”
[메시아가 다크 레이를 사용합니다. HP를 300소모합니다.]
지잉-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은색을 띈 얇은 두께의 레이저가 RC카를 뚫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구멍이 뚫린 뾰족이는 다시 원래의 크기로 돌아갔다.
“어…….”
그것을 본 손하윤은 당황한 듯한 목소리를 냈다.
‘라이프 드레인도 그렇지만, 저거도 되게 세네.’
그녀가 괜히 뱀파이어 군주가 아니란 것을 다시금 느꼈다. 이것도 힘을 잃은 수준이라니. 그래서 자신의 HP를 사용하는 건가.
[후후.]
속으로 순수하게 감탄하자, 메시아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덜덜덜-
붉은 늑대가 남은 탱크를 베려 하자, 진원이 앞서서 막았다.
‘이제 내가 한다. 수고 많았어.’
‘예, 주군.’
자신의 말에 붉은 늑대는 칼을 거두고 뒤로 빠졌다.
“아저씨, 뭐 해? 소환사가 뒤로 빠져 있어야지! 그러다 죽는다고!”
그렇지. 보통의 소환사라면 말이지.
그런데, 지금 철을 마음껏 두들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 손맛을 느껴 보고 싶은 기분이다.
“내 걱정은 그만해도 된다. 너 그러다 덜덜이? 튼튼이도 망가진다.”
그는 인벤토리에서 토르의 장난감 망치를 꺼내며 입맛을 다셨다.
“튼튼아!”
터엉! 터엉!
‘순간 가속!’
콰아앙!
굵은 탄환이 자신을 향해 연속으로 발사되었지만, 이미 그는 탱크 위에 서 있었다.
탄환은 그대로 유리벽을 향해 날아가 폭발하며 굉음을 냈다.
진원이 그대로 망치를 힘껏 내려찍으려는 순간,
“아저씨! 잠깐만! 내가 졌어.”
“아저씨?”
“아니, 오빠! 내가 졌어. 튼튼이는 할아버지가 사 준 거란 말이야. 제발 부수지 말아 줘. 응?”
의기양양하던 손하윤의 태도가 갑자기 변하며 자신을 말리기 시작했다.
“뭐야. 얼마 짜리길래 그래?”
“20만 원이나 한단 말이야. 생일 선물로 겨우 받은 거야.”
‘미친. 장난감이 저렇게 비싸다고?’
자신이 탱크 위를 내려오자, 그녀는 튼튼이를 원래 크기로 되돌린 후, 정성껏 닦아 가방에 넣었다.
밖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협회장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소환사 직업류에, 본인도 저 정도의 날렵함이라니.’
손녀가 가진 스킬의 화력은 실제 탱크보다 약간 떨어지는 정도다.
자신이 판단하기로는 평범한 B급 플레이어는 베테랑이 아니고서야 손녀를 이기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도 들었다. 스킬의 내구성 또한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물론, 눈앞의 경우는 예외겠지만.
거기다가 김진원도 무기를 꺼낸 것으로 보면, 본인도 어느 정도 전투가 가능하다는 말!
‘이건 진짜…… 그가 길드를 잘못 들어가기라도 하면 나라가 흔들릴 정도다.’
그런 자신의 걱정을 전혀 모르는지, 손녀가 자신에게 웃으며 다가왔다.
“할아버지, 저 오빠 되게 세더라.”
“요 녀석아, 진원 씨가 마음이 좋아서 그렇지, 다른 사람한테는 절대로 그런 행동하면 안 된다. 알겠지?”
“알았어.”
협회장은 태평한 듯이 대답하는 손녀를 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김진원 씨, 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제 연락처 하나 가져가시죠.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네. 그러죠.”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명함을 들고 가는 그의 등을 쳐다보고 있자니 옆에서 손녀가 신난 듯이 말했다.
“아! 그리고 나 저 오빠 폰 번호 땄다! 잘했지?”
“응? 뭐라고?”
“진원 오빠 말이야. 알고 보니까 지원이네 오빠던데? 내가 다녔던 중학교의 후배. 그렇게 말하니까 주더라. 어때? 예쁜 손녀 둬서 좋지?”
“허허, 요 녀석이. 오늘 할아버지가 소고기 사 줘야겠다.”
“진짜? 아싸! 그러면 지금 바로 가자! 나 대련했더니 배고파!”
손태욱은 이 순간만큼은 손녀를 둬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
타이거 길드의 길드장실.
“배론 먹자! 지금! 빨랑 와, 미친놈들아!”
현란한 듯이 마우스를 움직이며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는 여성은 길드장, 신혜진이었다.
소파에 앉아 조용히 커피를 마시고 있던 남성은 이제 더 이상은 못 참겠는지 입을 열었다.
“길드장님, 이제 게임은 그쯤 하시고…….”
“태우 오빠. 이 판만 하면 나 승급이야. 이거만 끝나면 바로 밀린 업무 처리할게! 진짜로!”
“아니 2시간 전에도 그 말씀을…….”
“야야! 장로 뺏긴다! 멍청이들아! 뭐 해!”
그는 그냥 포기하고 기다리기로 했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신문을 보고 있자니, 사무실 밖에서 익숙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들어가도 되냐?”
“예! 들어오시죠, 김진원 씨.”
노크 소리에 김태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쏜살같이 뛰어나갔다.
“뭐야, 너 왔어? 잠깐만. 이제 곧 끝나. 아니! 거기서 왜 던지냐, 이 X벌 놈들은! 아악!”
“전설의 연합 하고 있었냐? 듀오 한번 해줘?”
“아, 됐거든? 아! 미친놈이! 저걸 들어가네. 아악! 열받아아!”
그녀는 게임에서 졌는지 사납게 노트북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그래서 너 위장 포탈에 다녀왔? 와…… 얘 누구야? 되게 귀엽다!”
신혜진은 그의 바지를 잡고 있는 메시아를 보자 빠르게 앞으로 걸어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신혜진을 밀쳐 내려고 했지만, 고급스러운 과자를 뜯어 한 개씩 먹여 주니 가만히 있었다.
그는 그로부터 위장 포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했고, 메시아에 대해서도 대략적으로 말해 주었다.
“역병이 보스였다고? 그걸 프리스트가 없는데 잡았다고? 너 혼자서? 그게 말이 돼?”
그녀는 그의 설명에 이해가 가지 않는 듯이 되물었다.
역병이 말을 하는 것도 그렇고, 그것을 또 혼자서 잡은 것도 그렇고.
“그러니까 말했잖아. 메시아가 없었으면 못 잡았을 거라고.”
그때, 자신의 무릎에 앉아 있던 메시아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스킬을 사용한 영향인지, 나른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나 갑자기 졸려.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아.]
‘응? 그래.’
그 말과 동시에 그녀의 몸을 어둠이 감싸더니, 이윽고 완전히 사라졌다.
그 장면을 보던 신혜진이 불만스러운 듯이 입을 열었다.
“하아……. 너를 보면 가끔 내가 A급 플레이어가 맞나 생각이 든다니까. 정화 스킬이 있는 프리스트를 포함해서 미친 듯이 연계해야 겨우 잡는 보스를 그렇게 쉽게 잡다니. 세상 참 불공평하네.”
“김진원 씨, 정보를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의 뒤로, 김태우가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도움도 많이 받았는데, 이 정도는 괜찮죠.”
“아! 그리고 너 말이야. 한 달 뒤쯤에 있을 A급 던전 공략, 용병으로 와 줄 수 있어?
“용병?”
“그래. 마침 1명이 비기도 하고. 너 정도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도 될 것 같아서.”
‘한 달 정도면 괜찮겠지.’
“그래. 아마 될 거다. 시간되면 연락 줘.”
“아, 잠깐만! 이거 가져가. 너 주는 거 아니야. 메시아 주는 거야.”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을 뒤적거리더니 고급스럽게 포장된 과자 상자를 자신에게 건네주었다.
“그래. 고맙다.”
그는 그녀의 말에 피식 웃으면서 사무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