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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 상점스킬-47화 (47/200)

47. 삼켜지다-5

심호흡을 한번 하고, 초대권을 사용했다.

‘말이라도 통하는 상대면 좋겠지만…….’

지성이 없는 짐승이 나온다면, 어떻게든 맞불을 붙이는 식으로 역병과 대결 구도를 만들 수밖에 없다.

[초대를 위한 포탈이 생성됩니다.]

허공이 마치 유리창이 깨지듯 금이 생기며 갈라졌다.

쩌적. 쩌저적.

점점 그 균열이 커지더니, 10미터 이상의 거대한 황금색의 포탈로 변했다.

‘황금색?’

처음 보는 색이다. 기본적으로 던전 포탈은 푸른색을 띄고 있었다.

간혹 가다가 검은색, 그리고 이번에 삼켜진 붉은색.

푸른색을 제외하면 전부 특수하거나 위험한 던전들이었다.

“키키키?”

“저건 또 뭐야…….”

“진원 씨!”

괴상한 현상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위쪽으로 쏠렸다.

띠링.

[이계의 존재가 성공적으로 소환되었습니다.]

즈즈즈즈-

황금색의 포탈이 터질 듯이 진동하다가, 이계의 존재를 소환하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니?”

자신도 모르게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그럴 것이…….

소환된 존재는 겉으로 보기에 그냥 어린 소녀였으니까.

새하얀 눈을 연상시키는 은발이 등까지 내려오는 소녀는 허공에서 천천히 내려와 진원의 바로 앞에 착지했다.

[뱀파이어 군주, 메시아가 성공적으로 초대되었습니다.]

붉게 빛나는 눈동자가 진원을 응시하다가, 힘없이 무너졌다.

[현재 메시아는 매우 약화된 상태입니다!]

진원은 무너져 내리는 몸을 받쳐 주면서, 입을 굳게 다물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거냐.’

자세히 보니 그녀의 목에 깊게 파인 듯한 흉터가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몸에 자잘한 상처가 세지도 못할 정도로 많았다.

흡사 고문을 당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무엇인가로 짓누른 듯한 화상 자국. 날카로운 것에 베인 것 같은 흉터들.

[살려 줘. 도와줘…….]

자신의 머릿속에 숨이 꺼져가는 듯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금방에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이 힘겹게 이어지는 숨결.

“혀엉!”

“진원 씨, 빨리 포션을 먹여요! 상처가 심각해요!”

파티원들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인벤토리에서 포션과 희석된 엘릭서를 꺼내려다가 순간 멈칫했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애는 뱀파이어의 군주다. 인간이 아니야. 냉정하게 생각해야 돼.’

띠링.

[특별 퀘스트-뱀파이어 군주 메시아]

현재 메시아는 상당히 약해져 있습니다.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완료 조건 : 메시아에게 일정량의 피를 제공.

수행 조건 : 계약 소환사

제한 시간 : 5분

보상 : 뱀파이어 군주 메시아가 당신을 따릅니다.

실패 시 : 메시아가 이성을 잃고 폭주합니다.

잠시 고민하던 사이, 진원에게 특별 퀘스트가 발생했다.

화르르-서걱!

“키키키! 배가 고파온다!”

고개를 돌려 보니, 앞쪽에서 임프와 붉은 늑대가 시간을 벌어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할 듯했다.

[흐으으. 후우욱.]

그의 머릿속으로 고통에 찬 숨소리가 들려왔다.

“제기랄.”

더 이상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이대로 제한 시간을 넘겨 버리면, 이성을 잃고 폭주한다.

이성을 잃은 뱀파이어 군주와 역병을 동시에 상대하게 되면 상당히 골치 아파진다.

‘살려야 한다.’

진원은 한쪽 팔을 걷은 뒤, 그대로 희미한 숨을 몰아쉬는 메시아에게 건네주었다.

[괘, 괜찮아?]

“그래. 너무 많이 마시면 나도 죽어 버리니까, 조절은 해 줘야 해.”

[고마워. 정말 고마워.]

그녀는 미약하게 떨리는 팔을 들어 진원의 팔을 잡고, 피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쯔읍-쭈욱-

날카로운 송곳니가 진원의 피부 안을 파고들었지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키키키키! 나 이제 배고프다! 꾸에에엑!”

그가 메시아에게 피를 주고 있는 사이, 역병이 돌발 행동을 했다.

최은식과 파티원들이 있는 방향으로 입을 열어 시꺼먼 피를 세차게 뿜었다.

촤아아아!

마치 소방차에서 뿜어 나오는 듯한 붉은 핏줄기.

“미친놈이! 은식아!”

“퍼펙트 쉴드!”

하지만 최은식은 침착하게 대처했다. 그가 치켜든 방패를 중심으로, 파티원들을 감싸는 원구 형태의 배리어가 생성되었고, 자신을 포함한 파티원들을 지켰다.

“형, 오래는 못 버텨요!”

“그래! 조금만 버텨!”

지금까지 피를 얼마나 빨렸는지 모르겠지만, 조금씩 현기증이 몰려왔다.

이 이상 빨리면 위험하다고 느낀 순간, 퀘스트가 완료되었다.

[이제 다 됐어.]

띠링.

[특별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메시아가 당신을 따릅니다.]

그녀는 입가를 닦으며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목의 흉터를 제외하고, 자잘한 상처들은 치유가 되었는지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당신의 피는 특별한 맛이 나. 이름을 알려 줘.]

“다행이네. 내 이름은 김진원이다.”

[뱀파이어 군주 메시아가 김진원과 피의 계약을 맺길 원합니다!]

“피의 계약?”

[피의 계약]

일정 주기마다 계약자의 피를 제공받는 대가로, 메시아는 당신에게 완전히 귀속됩니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 계약이다. 상대는 뱀파이어 군주.

이 상황을 해결하는 열쇠가 되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많이는 못 줘. 그래도 괜찮겠어?”

[다음부터는 한 모금씩만 마셔도 충분해.]

“좋아. 그럼 부탁한다.”

[그럼 손을 내밀어 줘.]

그가 오른손을 내밀자, 메시아가 그 손을 잡았다.

치이이-

움켜잡은 손에서 빨간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계약이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꺄악! 최은식 씨, 정신 차려요!”

“크으, 도망쳐요……. 어서요!”

그녀와 계약을 맺는 사이, 어느새 배리어가 뚫렸는지 최은식이 역병의 피를 맞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메시아! 저놈의 발목을 묶을 수 있겠어?”

[맡겨만 줘.]

타타탓.

진원의 말에 순식간에 총알처럼 튀어나가 역병과 거리를 좁힌 메시아는 송곳니로 놈의 목을 물고 피를 빨기 시작했다.

[메시아가 라이프 드레인을 사용합니다.]

“크키키! 내 피! 빠져나간다!”

그사이 그는 인벤토리에서 희석된 엘릭서를 꺼내 최은식에게 뛰어갔다.

“은식아! 정신 차려라! 이거 마셔!”

“혀, 형…….”

최은식은 보스에게 HP가 빨려나가고 있는지 얼굴이 창백했다.

“은지 씨, 힐 좀 부탁드릴게요! 부족하면 이걸 하나 더 먹이세요!”

“네…… 네!”

최은식에게 희석된 엘릭서를 하나 먹이고, 여분을 강은지에게 맡긴 뒤 보스에게로 발걸음을 돌렸다.

“키키키! 아프다! 내 생명력! 사라진다!”

역병에게 달라붙은 메시아는 놈의 물고 절대 놔주지 않았다.

놈이 몸을 흔들 때마다 오히려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놈의 생기 있던 피부가 점점 문드러지는 것이 보였다.

‘지금이 기회다!’

그는 앞으로 나가 마구의 부가 스킬을 사용했다.

MP: 440/2,100

MP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젠 여분의 포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번 한 방으로 끝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 위의 마구가 세차게 진동했다.

“메시아, 떨어져! 붉은 늑대! 임프!”

[알았어.]

“맡겨만 주시길.”

“키킥!”

와인드업을 하고, 메시아가 놈에게서 떨어지자마자 놈의 머리를 향해 진동하는 마구를 힘껏 던졌다.

쉬이이익-

“키키! 피가 부족하……”

퐈학!

마구는 역병의 머리를 뚫고 지나갔고, 붉은 늑대와 임프가 추가적으로 공격을 강행했다.

화르르르- 서걱!

꿀럭. 꿀럭.

머리가 없어졌는데도 피를 내뿜으며 움직이던 역병은, 서서히 움직임이 멎더니 그대로 앞으로 넘어졌다.

띠링.

[보스: 역병을 처치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붉은 늑대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랭크 : B

[칭호 : 피의 계약자를 획득하였습니다.]

[귀환 포탈이 생성됩니다.]

‘후. 드디어 끝난 건가. 상당히 위험했다.’

던전이 클리어되었다는 메시지를 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형, 던전을 클리어한 거예요?”

“최은식 씨, 그냥 가만히 누워 있어요!”

“사, 살았다! 살았다고! 위장 포탈에서 살아남았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진원의 등 뒤로 파티원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자신을 포함한 파티원 11명. 전원이 큰 상처 없이 살아남았다.

“그럼 이제 아이템 챙기고 빨리 나가죠.”

***

밤 11시, 위장 포탈이 열리고 난 지 5일이 지났다.

“음…… 안에서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길드에 업무를 보고 온 김태우와 이시현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던전 공략을 마치고 돌아온 신혜진에게는 쌓여 있는 업무가 있어서 일부러 김진원에 대한 소식은 알리지 않았다.

위장 포탈 주위에는 응급차 10대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뒤에 빠져 있던 협회의 직원이 더는 못 참겠는지 앞서 나와 입을 열었다.

“흐음. 아무리 많은 인원이 삼켜졌다 해도, 이 이상은 인력 낭비에. 세금 낭비입니다. 아무래도 오늘 까지만 하고…….”

“위, 위장 포탈이!”

그때, 이시현의 눈이 커졌다.

그의 말에 협회의 직원과 김태우도 위장 포탈로 시선을 옮겼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빠져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던전을 클리어한 건가!”

“부상당한 사람은 이쪽으로 오세요!”

‘김진원 씨는 무사하겠지?’

우르르르-

그 현상에 기자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이 포탈 앞으로 몰렸다.

‘생각보다 많은 플레이어가 살아 돌아왔다! 역시! 서지후와 김진원 씨가 힘을 합친다면 가능한 거였어!’

세 번째로 발생한 위장 포탈.

이전까지만 해도 소수의 플레이어 말고는 대부분이 사망했던 던전이었다.

그런데 1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살아 돌아오다니!

진원이 마지막으로 빠져나오자, 포탈이 크기가 점점 줄어들며 사라졌다.

‘역시! 김진원 씨는 S급이 확실했어!’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하는 이시현. 김태우 역시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어? 서지후는? 서지후는 어디 있지?”

서지후가 보이지 않자 협회 직원이 당황한 듯했다.

“서지후 씨의 파티원들은 전부 전멸했습니다. 여기 이분 말고요.”

상당히 지쳐 보이는 진원의 말에 협회 직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니? 그게 말이 돼? 서지후는 신성 기사라고! 이번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서, 협회 쪽으로 계약을 하기로 말이 끝난 신성 기사라고! 기자들에게도 이미 떡밥을 다 던져 놨는데!”

그의 말을 믿지 못하겠는지 고함을 치는 협회의 직원에게, 살아남은 서지후의 파티원 1명이 쐐기를 박았다.

“서지후 씨는…… 죽었어요. 저를 도망치게 하려고 하시다가…….”

“뭐? 네가, 네가! 서지후의 발목을 잡았지? 엉?”

화난 표정으로 여성에게 다가가려는 협회의 직원을, 진원이 앞서나와 가로막았다.

“그만하시죠. 추합니다.”

“뭐, 뭐라고?”

“그만하고 꺼지라고요.”

으득.

자신의 말에 이빨을 굳게 깨물던 협회 직원은 사납게 발걸음을 돌려 현장을 떠났다.

그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던 김태우는 그에게 다가갔다.

“진원 씨, 피곤하시겠지만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일단 오늘은 좀 힘들고, 제가 다음 날 길드로 찾아가겠습니다. 그래도 되죠?”

현재 그를 포함한 파티원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이런. 내가 너무 급했군.’

“물론입니다. 제가 마음이 급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옆의 여자애는? 설마 위장 포탈에 같이 삼켜진 겁니까?”

파티원들의 상태를 살펴보던 김태우의 눈이 커졌다.

그럴 것이…… 겉으로 볼 때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가 진원의 옆에 붙어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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