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삼켜지다-3
그 뒤로 약 1시간가량, 진원의 파티는 잠시도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수시로 덮쳐 오는 와일드 스네이크들과 독충들은 파티원들을 괴롭혔다.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없나 싶어 상점을 살펴보니, 초강력 해충 퇴치 스프레이가 있어 구입했다.
[아이템 : 초강력 해충 퇴치 스프레이]
웬만한 해충들은 근처에 다가오지도 못할 것이다.
종류 : 기타
가격 : 50골드
‘스프레이가 50골드라. 생활용품 주제에 포션보다 비싸지만 어쩔 수 없지. 일단 필요해 보이니.’
[보유 골드 : -410]
“다들, 잠깐만요. 이게 도움이 좀 될 거 같네요.”
그는 파티원들을 멈춰 세우고 X프킬라 크기의 스프레이를 골고루 뿌렸다. 강렬한 레몬향이 나는 스프레이였다.
치이이익-치이익-
“진원 씨, 인벤토리를 가지고 계신가요? 와, 그거 되게 희귀한 건데.”
“역시 여기에 있길 잘했다!”
강은지와 다른 파티원들은 그가 허공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오직 최은식만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그렇게 비싼가요?”
“다들 못 사서 안달이에요. 그거 얼마에 사셨어요?”
“운 좋게 얻었죠, 뭐. 다 뿌린 것 같으니, 이제 갑시다.”
그 뒤로 다시 2시간이 지났다. 스프레이의 효과 덕분인지 벌레들은 근처에 다가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강은지를 포함한 대부분의 파티원들은 체력이 좋지 않았다. 아까부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으니.
대열의 중간에 있던 진원은 파티원들의 누적된 피로를 눈치채고 걸음을 멈췄다.
“이 근방에서 잠시 휴식하죠. 주위에 몬스터가 안 보이니 괜찮을 것 같네요. 경계는 제가 하겠습니다.”
그 말에 플레이어들은 살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무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강은지 역시 상당히 지쳤는지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으며 숨을 돌렸다.
“형, 그런데 저희가 가는 방향이 맞을까요?”
최은식이 방패에 달라붙은 몬스터들의 사체를 떼어내며 자신에게 다가왔다.
파티원들이 아무도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은 이 녀석의 공이 컸지.
도발 스킬로 상당수의 어그로를 끌었으니.
“사실 나도 잘 몰라. 안 되면 여기 밀림을 미친 듯이 태워 버리지 뭐.”
“네……?”
“농담이야, 짜식아.”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 최은식의 어깨를 툭툭 쳤다.
‘흠. 그래도 2일 안에는 클리어할 수 있겠지?’
***
같은 시각, 진원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던 서지후 파티는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정지했다.
“저건…….”
“몬스터, 아니, 원숭인가?”
[몽키키]
백색의 털로 뒤덮인 몬스터는 겉보기에 원숭이와 생김새가 상당히 닮아 있었다.
C급 던전에서 출현하는 몬스터였다.
“바로 잡으면 되겠는데요? 1마리에, 크기는 좀 큰 편인 거 같지만.”
“흠. 괜찮겠지. 식량으로도 비축해야 하니, 최대한 한 방에 죽이도록.”
서지후의 허락이 떨어지자, 파티원이 스킬을 사용해 나무에 매달려 있는 몬스터를 조준했다. 몽키키는 플레이어의 시선을 느꼈는지, 손에서 노란 바나나를 만들어 냈다.
“풉, 그거 하나 가지고 되겠냐? 원숭이 새끼야.”
파티원 하나가 그 모습이 우스웠는지 몽키키를 비웃으며 스킬을 캐스팅했다.
그 순간, 몽키키는 바나나를 들고 상당히 빠른 속도로 파티원을 향해 돌진했다.
“우끼끼끼!”
“미친! 뭐야!”
몽키키는 보통 멀리서 바나나를 만들어 던지기만 하는 놈인데, 저쪽에서 돌진해 오다니.
“비켜!”
당황하던 파티원을 제치고, 전방에 선 서지후는 아까처럼 신성력을 몸에 둘러 오러를 만들었다.
퍼억!
[몽키키를 처치하였습니다.]
그가 휘두른 메이스 한 방에 몽키키의 머리가 뭉개지며 죽었다.
“역시 파티장님!”
“가, 감사합니다!”
그는 파티원들의 말은 듣는 척도 안 하고, 오러를 거뒀다.
‘흠. 이놈들이 이렇게 강력했나?’
뭔가 위화감이 들었다. 신성력을 완벽하게 둘렀는데, 갑옷에 살짝 상처가 난 것이다.
‘앞으로 주의해야겠군. 뭔가가 이상하다.’
***
진원의 파티는 적당히 휴식을 취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던 중 전방에 있던 최은식이 무엇인가를 봤는지 손짓으로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에 진원은 앞으로 나가 무슨 일인지 살펴보았다.
[몽키키]
‘몽키키? 그런데…… 털이 흰색이네. 덩치도 꽤나 큰 편이고.’
진원이 발견한 것은 C급 던전에서 출현하는 몬스터. 보통 몽키키는 원숭이 정도의 덩치에 털색은 노란색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몬스터는 사람만 한 덩치를 가졌다. 이전의 와일드 스네이크도 그렇고, 확실히 이상했다.
땅에 걸어 다니던 몽키키는 진원을 발견했는지 허공에서 바나나를 만들어 냈다.
서걱!
그러자 붉은 늑대가 순식간에 실체화를 해 놈에게 돌진한 뒤, 몸을 두 동강 냈다.
[몽키키를 처치하였습니다.]
‘주군, 살기를 느껴 바로 처치하였습니다.’
‘그래. 잘했다.’
그리고 붉은 늑대의 모습을 본 다른 플레이어들은 놀랐는지 뒷걸음질 쳤다.
“허, 헉! 몬스터! 다들 조심해요!”
“몬스터가 아니고 저의 유능한 부하입니다.”
“그,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이 파티에 남아 있길 잘했어. 그래도 S등급인데. 역시 뭔가가 있었어.’
그때였다.
“혀, 형!”
“진원 씨, 앞에!”
“코카트리스!”
끼이익!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며 천천히 다가오는 코카트리스.
날개와 발을 이용해 사족보행을 하는 몬스터.
익룡과 비슷한 생김새였다. 검은 깃털로 뒤덮인 몸과, 길쭉한 부리.
놈이 몸을 일으킨다면 워 베어의 덩치는 우스울 정도일 것이다.
놈은 그만큼 거대했다.
꿀꺽.
최은식이 전방에서 방패를 들어 올리고 조금씩 뒤로 빠졌다. 다른 파티원들도 마찬가지.
“어, 어떡하죠! 여긴 마법사가 아무도 없어요!”
코카트리스의 부리는 닿는 것을 석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근접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의 천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몬스터였다.
거리를 충분히 두고 얼리거나 불태우는 것이 놈을 처치하는 데 가장 효과가 좋았다.
‘흠. 붉은 늑대는 안 되겠고…… 임프!’
“키킥!”
“나랑 타이밍 맞춰서 저기 몬스터한테 지옥 불을 던져! 아무도 저놈 건들지 마세요!”
경험치를 독식할 좋은 기회다. 뺏길 순 없지.
“형, 저놈은 상급 몬스터예요! 아무리 형이라도 혼자서는 위험해요!”
최은식이 나서서 말렸지만,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소환의 방에서 나온 꼬마 임프는 손에서 작은 불씨를 만들어 냈다.
띠링.
[꼬마 임프가 지옥 불 투척을 사용합니다. MP를 100 사용합니다.]
거의 라이터에서 나오는 화력의 초록빛을 띄는 불.
“……그걸로 가능해?”
그러자 임프는 마치 자신을 믿으라는 듯 가슴을 땅땅 쳤다.
“키긱! 키긱!”
인벤토리에서 글러브를 꺼내 착용하고, 마구를 사용해 와인드업을 했다.
“지금!”
“키긱!”
그의 신호에 코카트리스를 향해 마구와 꼬마 지옥 불이 함께 날아갔다.
코카트리스는 먼저 날아온 마구를 부리로 쪼아 석화시켰지만, 뒤에 날아온 자그마한 불씨는 보이지 않았는지 반응하지 않았다.
‘마구도 닿으면 석화가 되는 건가.’
확실히 근접 계열이면 애를 먹을 듯한 몬스터였다.
화르르르!
“끼익! 끼이익!”
자그마한 불씨가 코카트리스의 검은 깃털에 떨어지자, 무서운 속도로 놈의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놈은 상당히 고통스러운지 몸을 이리저리 틀며 괴성을 질렀다.
‘뭐야, 엄청 세잖아.’
그것을 본 진원은, 마구의 부가 스킬을 사용해 코카트리스를 조준했다.
불에 휩싸인 놈이 괴성을 지르면서도 자신에게 다가오려 할 때, 완성된 부가 스킬은 놈의 몸통을 꿰뚫었다.
[코카트리스를 처치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한 번에 2레벨!’
역시 경험치 독식은 최고다. 상급 몬스터라 그런지 1마리만 잡았는데도 레벨이 쭉쭉 올랐다.
“진짜 S급 플레이어잖아?”
고개를 돌려보니 멍한 표정의 D급과 E급 플레이어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부터 S급이 아니라니, 뭐니. 도대체 뭐라는 거야.’
그는 플레이어들에게 다가가 그게 무슨 말인지 물어보았다.
“아, 그게 커뮤니티와 뉴스에서 진원 씨가 측정기에 무슨 조작을 했다는 소문이 퍼져서요. 물론 저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하는 플레이어들.
‘어디 아픈가? 왜 저러지?’
일단 등급에 관한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저거, 먹을 수 있어요?”
일단 먹고…… 아니, 살고 봐야지.
***
시간이 흘러 늦은 밤.
딱히 시키지도 않았는데 파티원들이 앞서서 모닥불을 피우고, 코카트리스를 적당히 해체했다.
자신도 도와주려고 했지만 파티원들이 괜찮다고 극구 만류해 적당히 자리를 잡고 구경했다. 자신이야 편해서 좋지만.
화르르르-
불 위에 큼직한 고기 덩어리의 기름이 조금씩 떨어지며 익어 갔다.
“오! 그냥 좀 질긴 닭고기를 먹는 것 같네요. 생각보다 맛있는데?”
“그렇죠? 생각보다 먹을 만하죠? 나머지는 훈제로 만들어 두겠습니다.”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다는 플레이어 1명이 적당히 소금과 후추를 치고 구워서 파티원들에게 나눠 주었다.
“와, 형! 이거 생각보다 맛있네요. 커억! 무, 물 좀!”
“저도 물 좀 주시겠어요?”
최은식은 상당히 배가 고팠는지 정신없이 닭고기를 뜯고 있었다.
강은지는 아까부터 불안한 기색이 보였는데, 지금은 한결 나아진 모습이었다.
2리터짜리 생수에, 간이 텐트까지. 진원의 상점에 필요한 생필품들은 다 갖춰져 있었다.
이제는 걸어 다니는 마트라고 해도 될 수준.
‘덕분에 놈한테서 얻은 280골드를 다 써 버렸지만.’
다들 정신없이 고기를 뜯고 있는 와중에 진원이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주위를 좀 더 둘러보고 올게요. 몬스터가 남아 있을 수도 있으니.”
코카트리스 수준의 몬스터라면 혼자서도 충분하다. 경험치를 끌어 모을 좋은 기회인데, 놓칠 수야 없지.
파티원들은 그런 진원을 딱히 말리거나 하지 않았다. 코카트리스를 혼자서 쓰러트리는데 누가 막을까.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플레이어들이 하나 둘씩 입을 열었다.
“김진원 씨는 도대체 직업이 뭘까요?”
“강력한 원거리 스킬에, 소환수까지. 역시 유니크 직업일까요?”
최은식은 그 말에 형의 자랑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그러나 말했다가 그에게 무슨 말을 들을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강은지도 조용히 듣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
‘주군, 이 근방에서 아까와 같은 괴물의 기척이 두 개 감지됩니다.’
밀림을 뒤지고 다니던 진원에게 붉은 늑대가 말을 걸어왔다.
‘그렇단 말이지. 그럼 그쪽으로 안내해 줘.’
‘분부대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나아가니, 어지럽게 얽혀 있는 덩굴들 너머로 거대한 둥지가 보였다.
그 위에 코카트리스 2마리가 엎드린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니 자는 중인 듯했다.
씨익.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리던 진원은 소환의 방에서 꼬마 임프를 꺼냈다.
‘주군, 이번에는 저에게도 전투를 허락해 주십시오.’
붉은 늑대가 뜻밖에 부탁을 해 왔다.
이전의 전투에 참여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사실 붉은 늑대의 기량은 전혀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기가 잘못해 석화라도 되면 곤란해져서 실체화를 시키지 않았다.
‘이번엔 가만히 자고 있으니. 괜찮겠지. 일격에 죽지 않으면, 바로 물러나라.’
‘분부대로.’
스스스-
허락이 떨어지자 실체화한 붉은 늑대는 코카트리스를 응시하며 검집에 손을 올리고 조용히 발도 자세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