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예상치 못한-2
-오빠…… 오빠!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 동생의 목소리였다.
“지원아? 지원아!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김진원. 네 동생 김지원을 살리고 싶으면,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시간과 장소에 혼자서 와라.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알았나?
기계음으로 변조된 목소리. 성별조차 무엇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너…… 누구냐? 걔는 아직 청소년이다. 애라고! 건드리기라도 하면…….”
-네가 말만 잘 듣는다면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전화 밖으로 흘러나온 기계음은 소파에 앉아 있던 다른 세 명에게도 들렸다.
“뭐, 뭐야? 협박 전화야?”
“형, 무슨 일이에요?”
“당장 경찰에 신고를…….”
진원은 셋을 바라보며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시간은 밤 10시, 내가 지정하는 장소로 혼자서 와라.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뚝.
납치범은 간단한 용건을 남긴 뒤,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망할 새끼들이.”
빠득.
그는 이를 갈며 그대로 밖으로 나섰다.
“아무것도 하지 말아 줘. 그게 놈의 조건이니까.”
***
현재 시간은 밤 9시. 진원은 놈이 지정한 장소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오락실에 와 있었다. 다른 곳은 문을 닫았거나 장사를 하지 않았다.
길가에 서 있다가 괜히 놈들의 눈에 띄면 곤란할 수 있으니 어디든 들어갈 곳이 필요했다. 게다가 안은 손님도 별로 없어 한가해 보였다.
뚜워어-푸슝-두두두-
오락실 안은 여러 게임 소리가 합쳐져 시끄러웠지만, 그는 현재 다른 생각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원이가 납치된 것은 내가 S등급을 받은 후……. 설마?’
자신이 S등급이 되었다는 것을 빌미로? 아니, 아무래도 그건 아니지. 도대체 무슨 깡으로 S급 플레이어의 가족을 노린단 말이지? 적어도 일반인은 아닐 것이다.
혹시 보이스 피싱일까 싶어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알림 음이 계속해서 들려올 뿐이었다.
툭. 툭.
“어이, 아저씨? 아니면, 형? 아까부터 여기서 뭐 해요?”
“와, 이 오빠 되게 잘생겼다. 그치? 무슨 고민 있어요?”
오락기기 앞에 앉아 있던 그의 어깨를 치는 것은 불량해 보이는 고등학생 무리들이었다. 바지의 통을 줄인 거나, 교복의 치마 길이를 필요 이상으로 줄인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저희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저~기 가면 아직 열려 있는 슈퍼 있거든요? 거기 가서 담배 세 갑만 사 와 주세요. 돈은 우리가 드릴게요.”
겁대가리 없이 명령조로 말하는 말투. 딱히 한두 번 이런 짓을 해 본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여학생 하나가 다가와 진원에게 1만 원짜리를 하나 내밀었다.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가라. 나 지금 기분 안 좋으니까.”
“뭐야, 돈도 준다는데. 무게나 쳐 잡고 있네.”
그의 까칠한 대답에 앞으로 나온 남학생. 꽤나 근육이 다부진 것을 보니, 평소에 운동을 한 것처럼 보였다.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담배 사 오라고요.”
‘주군, 베도 되겠습니까.’
‘아니, 넌 가만히 있어.’
‘분부대로.’
보통 사람끼리 싸우게 된다면, 흉기를 쓰지 않고 단순히 주먹질만 한다고 가정하면, 폭행죄가 적용된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다르다.
플레이어가 일반인에게 주먹질을 하게 되면, 살인 미수가 적용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원은 딱히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말이 법이지, S급 플레이어에게 살인죄를 적용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구속조차 가능하긴 할까?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그대로 오른손을 뻗어 놈의 목을 잡고 위로 들어올렸다.
“지금 기분 안 좋다고 말했지. 죽고 싶냐?”
“커…… 커흑!”
남학생은 숨이 막히는지 컥컥대며 두 손으로 진원의 팔을 잡았다.
그 모습을 본 다른 고등학생들은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눈앞의 남학생은 자기 중에서 리더 격이며, 가장 싸움을 잘하고 힘이 세다.
거기다가 몸무게만 80kg 가까이 나가는데, 그걸 한손으로 들어 올린다니.
“프, 플레이어…….”
“죄, 죄송해요 아저씨! 아니, 오빠! 저희가 잘못했어요! 한 번만 봐주세요, 네?”
눈치 빠른 여학생이 앞으로 나서서 필사적으로 사과했다.
진원은 그런 여학생을 힐끔 쳐다보고,
“하아……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라. 너네 그러다가 사람 잘못 만나면 큰일 나. 알겠냐?”
그리고 한 손으로 잡은 남학생을 그대로 오락실 입구 쪽으로 집어던졌다. 물론 적당히 세기 조절을 해서. 근력 스텟 50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일반인이었으면 팔다리 한두 개라도 아작 내려고 했는데, 아직 학생이니까.’
쿠웅!
“야야, 빨리 나가자. 빨리!”
그대로 던져진 남학생은 문에 세게 부딪혔고, 다른 남학생 2명이 부축해서 밖으로 나갔다.
“휴우…….”
한숨을 쉬면서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머릿속은 복잡한 채다.
이제 남은 시간은 40분가량. 슬슬 출발해야 한다. 이 근처는 택시도 다니지 않았다.
‘뭔가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상태 창을 켜서, 다시 한번 스킬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이대로 아무 대비도 안 하고 갔다가 놈들에게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
이윽고 눈길이 직업 스킬란에 다다랐을 때, 꼬마 임프의 추가된 특수 행동을 발견했다.
‘내가 왜 이걸 이제 알았지?’
꼬마 임프 소환의 스킬이 10레벨이 되면서 추가된 특수 행동 2개, 꼬마 지옥 불 투척과 변형.
상태 창을 닫은 후, 오락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다. 요란한 게임 소리만 들릴 뿐.
‘적어도 변형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돼.’
진원은 소환의 방을 사용해 꼬마 임프를 소환했다. 지배력의 스텟이 높아져서일까, 키는 그대로지만, 덩치가 상당히 커졌다.
스텟이 0일 때 어린아이 같았다면, 지금은 중학생 이상으로.
‘임프, 변이를 사용해 봐.’
“키킥!”
그의 말에 꼬마 임프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스으으-
눈앞에 보이는 현금교환기로 서서히 변했다. 겉으로 보면 전혀 모르겠다.
크기부터 재현도가 완벽한 수준.
‘좋아. 이 정도면 어떻게든 변수를 만들어 볼 수 있겠다.’
꼬마 임프를 다시 소환의 방에 넣고, 그대로 오락실을 나섰다.
20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곳은, 한참 전에 문을 닫은 공장이었다.
붉은 벽돌로 만든 듯한 외벽 여기저기에 금이 가 있었고, 래커 같은 것으로 낙서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도 상당해 보이는 크기.
‘안의 구조가 복잡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공장에 들어가기 전, 주위를 살피고 인적이 없는 것을 확인 후, 소환의 방에서 꼬마 임프를 꺼내 스마트폰으로 동물 사진을 보여 주었다.
‘이걸로 변할 수 있겠어?’
‘키키킥!’
스으으-
그가 보여 준 동물사진은 쥐였다. 폐 공장에 딱 어울릴 듯한 동물.
‘좋아. 그럼 내 근처에 있고, 되도록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 있어. 잘하면 맛있는 거 먹게 해 줄게.’
‘키키키!’
회색 빛깔의 쥐로 변한 꼬마 임프는 의욕 있는 대답을 한 뒤, 그대로 공장 외벽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후우, 침착하자. 냉정해야 돼.’
숨을 고르고, 눈앞에 보이는 녹슨 녹색 철문을 천천히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이이-
상당히 넓은 공간. 중형 차량 15대 정도는 거뜬히 주차할 만한 넓이다.
전력은 어떻게 공급했는지 천정의 전등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오빠……. 오빠!”
나무 의자에 앉혀져 팔과 발목이 묶여 있는 동생이 울면서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순간 이성의 끈이 끊어질 뻔했지만, 주먹을 불끈 쥐고 애써 참았다.
그리고 의자 뒤에 날씬한 남성 1명과, 양옆으로 녹슨 쇠파이프를 하나씩 쥐고 있는 거한들. 전부 검은색 복면을 쓰고 있었다.
“김진원, 그대로 앞으로 걸어와라. 당연히 아이템을 가져오거나 하지는 않았겠지?”
익숙한 목소리였다. 미친놈, 너였냐? 대형 길드가 갈 때까지 가는구나.
진원은 대답의 표시로 윗옷을 벗고, 주머니를 까뒤집었다.
“너 이 새끼! 무슨 깡으로 그렇게 나오는 거냐?”
“어차피 네놈은 여기서 뒈질 텐데 딱히 상관이 있나?”
짝짝.
저벅저벅.
놈이 손뼉을 치자 거한들이 추가로 옆에서 쇠파이프를 들고 나타났다.
“너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 알아?”
그리고 놈은 천천히 자신에게 다가오며 복면을 벗었다.
“그때 병원 이후로는 처음인가?”
“송진호, 이 미친 새끼가! 너 지금 일반인, 그것도 애를 건드린 거라고! 알아?”
“내 동생도 애였어. 그런데 네놈이랑 같이 던전을 들어갔다가, 죽었지. 네놈만 빼고.”
“그러니까 내가 죽인 게 아닌…….”
“당연히 알지. 그건 별 신경 안 쓴다. 네놈이 기자 회견 때 한 그 발언 때문에, 길드의 주가가 엄청나게 폭락했어. 거기다가 길드원이 대거 탈퇴했고. 경찰 조사도 받아야 하고.”
‘주군.’
‘조용히 동생 근처로 가 있어 줘. 내가 지시하기 전까지 다른 행동은 하지 말고.’
‘분부대로.’
“일단 네놈의 우리 길드에 대한 발언을 철회하는 것을 먼저 녹음하고…… 응?”
현재 붉은 늑대는 실체화를 하지 않은 상태다. 소리조차 들릴 리가 없다.
그런데, 놈은 붉은 늑대가 조용히 걸어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뭔가 이상한데…….”
‘뭐지? 어떻게 아는 거지? 스킬인가.’
감지 계열의 스킬을 가지고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붉은 늑대에게 일단 그 자리에서 멈추라고 지시했다.
“흠……· 기분 탓인가. 어쨌든 내가 요구하는 건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이 녹음기에다가 네놈의 발언을 철회하고,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것.”
송진호는 사악하게 웃으며 자신에게 녹음기를 들어 흔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네놈이 1시간 동안 두들겨 맞는 것.”
놈의 말을 끝으로 쇠파이프를 든 거한들이 자신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오빠! 오빠아!
그리고 그것을 보는 동생은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아아, 나도 참. 배려심이 없었네. 이봐.”
“예.”
송진호의 지시에 의자 옆에 서 있던 거한 하나가 검은색 머리띠로 지원의 눈을 가렸다.
“조용히. 네가 얌전히만 있으면 오빠가 덜 다칠 수도 있어.”
-끅. 끄윽!
그 말에 애써 울음을 삼키는 동생.
“괜찮아. 오빠 괜찮다. 나 믿지?”
그는 동생을 안심시키려고 최대한 달래는 말투로 말을 걸었다.
끄덕끄덕.
‘내 HP는 3,500이다. 최대한 버텨 보는 수밖에.’
“잠깐만. 녹음은 먼저 해야 되지 않겠냐?”
“해라. 1분 주겠다.”
건네받은 녹음기를 키고,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는 척을 하며 천정 쪽을 조금씩 쳐다봤다.
‘아직인가…….’
“나, 김진원은 피닉스 길드에게 했던 발언이 거짓이었음을 인정하며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 정도면 됐냐?”
녹음이 끝나자마자 녹음기를 가로채 가는 송진호.
“너희들, 이놈은 지금부터 샌드백이라고 생각하고 맘껏 치도록. S급이니 그래도 꽤나 버티겠지. 아니면, 그냥 죽어라.”
그리고 놈의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쇠파이프 찜질이 시작되었다.
티잉-티잉-티잉!
“큭! 끄헉!”
그는 팔을 교차해 머리를 보호하며, 배는 천정을 향하도록 누웠다.
“꼴사나운 모습이 보기 좋구나. 흐흐.”
팅! 티잉!
계속되는 쇠파이프 찜질. 그런데,
‘생각보다 별로 안 아프잖아?’
HP: 3,141/3,500
이전이었다면 진작에 치명상일 수준이었지만, 전직으로 인해 HP의 양이 엄청나게 늘게 되었기 때문일까. 그렇게 큰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충분히 견딜 만했다.
팅! 티잉!
‘키긱! 키긱!’
신호다!
‘너, 지금 의자에 묶여 있는 여자애 보여?’
‘키기긱!’
‘의자 옆에 거한 2명도 보이지?’
‘키긱!’
‘붉은 늑대와 함께 놈들을 처리해. 1명씩 맡아서 한 번에. 내가 신호를 줄게.’
‘키기긱!’
‘분부대로.’
HP : 2,822/3,500
진원은 HP가 계속 깎여 나가는 와중에도, 타이밍을 계산했다.
의자 옆의 두 놈들이, 빈틈을 보이는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