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예상치 못한-1
“오빠, 친구들이 나 못살게 굴어…….”
뭔가 시달린 듯한 모습이다.
“뭐? 누가 너 괴롭혀?”
“아니, 오빠 S등급 된 거 우리 학교에 쫙 퍼졌거든? 괜히 내가 고생이야! 한 번만 소개시켜 달라고 하지를 않나, 거기다가 무슨 선생님들까지 나를 불러내서 오빠 연락처를 달라고 하지를 않나! 어휴!”
동생은 질렸다는 듯이 가방을 내려놓았다.
“흠, 그래? 내가 한번 찾아가서 따끔하게 혼을…….”
“아, 뭔 소리래. 그러면 진짜 학교 뒤집어지거든?”
“그래. 이게 다 잘난 오빠 탓이지 어쩌겠어.”
“아, 딱 한 대만 치고 싶다.”
하지만 속으로 오빠가 자랑스러웠다. 그럴 것이, 한국에서 3명밖에 없다는 S등급, 전 세계에 10명도 없는 플레이어가 되었으니까.
***
피닉스 길드의 부사장실.
“이런 X발!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는 거냐!”
사납게 머리를 긁으며 육성으로 욕을 뱉는 남성은 부사장 송진호였다.
그리고 그의 앞에 검은 양복을 입은 길드원 3명은, 식은땀을 흘리며 그의 눈치를 보는 것에 정신이 없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놈이, 세계적으로 10명도 없는 S급 플레이어였다니.
거기다가 기자들한테 폭탄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꼴 보기 싫었다.
안 그래도 손명유 때문에 길드 이미지가 크게 깎였는데, 이제 슬슬 잊히려던 시기에 크게 한 건 터트려 주다니.
망할 놈. 길드원들이 조금씩 탈퇴하고 있었는데, 이걸로 탈퇴가 더욱 가속화되게 생겼다.
“하아. X발, 이번엔 진짜 위험하다.”
피닉스 길드의 사장인 자신의 아버지. 송현성.
S등급 플레이어이기도 하며, 자신의 핏줄이라도 쓸모없으면 내다버린 자식 취급하는 냉혹한 성격의 소유자.
현재 아버지는 해외의 S등급 던전 공략에 참가해 있어 이곳의 소식을 모르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어떻게든 자신의 선에서 수습해야 한다.
지금 생각나는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공식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김진원에게 금전적으로 피해 보상을 준다.
이 방법이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그런 꼴사나운 모습을 용납할 리 없었다.
다른 하나는, 김진원의 발언을 철회하게 한다. 그렇게 하려면 당연히 그를 짓밟을 정도의 힘이 필요했다.
“흥, 내가 그놈한테 고개를 숙인다고? 어림없지.”
김진원은 S등급이지만, 소속한 길드가 없고, 장비도 없어 보였다. 어떻게 S등급이 나왔는지는 의문이지만.
반면에 자신은, A등급에 직업 전용 유니크 장비와 방어구, 액세서리까지. 장비 차이도 당연히 무시할 수 없다.
길드 때문에 스트레스를 계속해서 받아 왔던 송진호를, 김진원의 발언으로 결국 극단적으로 행동하게 만들었다.
“어디 한번 갈 데까지 가 보자고. 나도 이제는 무를 곳이 없어졌다.”
그는 굳은 결심을 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어딘가로 연락을 취했다.
***
띠링. 띠링.
-야, 너 S등급이라며? 너 도대체 뭐야? 야, 연락 좀 해 봐. 너 설마 나한테 단물 빨아먹고 잠수……
-형, S등급 축하드려요. 제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확실한 거 같네요. 이제 B급 던전까지는 무리 없이…….
-진원 씨,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강은지예요. S등급 받으신 것 축하드려요. 혹시 괜찮으시면 다음 던전에 저도 불러주시면…….
알림이 멈추지 않는 진원의 스마트폰.
“허, 등급 받기 전에는 그냥 시계였는데.”
S급 플레이어가 되자마자 몰아치는 연락들.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그대로 책상에 놓인 스마트폰을 집어 올렸다.
“오빠, 나 오늘 학원 수업 오래하는 날이라 밤늦게 올 거야.”
동생은 요즘 들어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성실하고 성적도 좋은 편이다.
얼마 전에 자신에게 돈이 필요하다길래, 뭔가 싶었더니 학원을 다니고 싶단다.
‘얘는 좀 놀았으면 좋겠는데. 너무 성실해서 오히려 걱정되네.’
부모의 영향인지, 아니면 자신의 영향인지.
“그래. 너무 무리하진 말고. 끝나면 데리러 가줘?”
진원은 피식 웃으며 그런 동생의 어깨를 툭툭 쳐줬다.
“아, 됐거든요. 걸어서 10분이면 금방 도착해. 그럼 간다.”
띠링. 띠링. 띠링.
그 와중에도 멈추지 않는 문자 세례.
“아오, 내가 연락한다, 연락해.”
진원은 먼저 최은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띠리리-
-혀엉! 연락을 너무 안 주셔서 설마 저를 버리는가 싶어서 얼마나 쫄렸는지 아세요?
3초도 지나지 않아 전화를 받은 최은식은 진원에게 불만부터 쏟아냈다.
그동안 연락이 되지 않아 섭섭한 듯했다.
“야, 너를 버리긴 왜 버리냐. 나 이래 보여도 의리파다. 워낙에 전화가 많이 와서 그랬지. 그동안 레벨 업은 좀 했냐?”
-29레벨 찍었어요, 형! 물론 파티장으로 던전을 클리어하는 건 형이랑 같이해야 의미가 있는 거라, 다른 파티 위주로 던전을 돌았죠.
뭐야. 이놈 나보다 레벨이 높잖아?
“29레벨이면 전직했겠네. 직업이 뭐냐?”
-만나서 얘기해요, 형! S등급 축하도 할 겸.
이놈이 또 여기서 끊으려 하네.
“그래. 너한테 상담할 것도 있고. 밥도 먹을 겸 고깃집에서 보자. 오늘은 내가 쏜다.”
-정말요? 꼭 갈게요 형! 조금 있다 봐요!
최은식은 신난 듯이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비싼 거 사 준다고는 안했는데.”
가만, 최은식 부르는 김에 나머지도 그냥 불러 버릴까? 내가 밥 산다고 하고.
그래, 그게 좋겠어. 일일이 1명씩 보는 건 비효율적이지.
이어서 신혜진과 강은지에게 연락해 자신이 밥을 살 테니 올 수 있으면 오라는 말을 남겼다.
***
그 후, 약속된 시간이 지난 고깃집 안. 사람이 많은 것으로 볼 때, 상당히 장사가 잘되는 곳인 듯했다.
치이이이이-
불판에 먹음직스럽게 올린 삼겹살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신혜진, 그 옆에 강은지, 그 옆에는 최은식이 둥근 테이블에 앉아 있다.
최은식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열심히 고기를 굽는 중이다.
“야, 너 고기 사 준다고 해놓고 이게 뭐야?”
신혜진은 가만히 불판을 바라보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응? 왜? 고기 싫어해?”
“아니! 이 미친놈아! 그게 아니라! 밥 사준다는 녀석이 여자 둘 데리고 무슨 고기 뷔페를 오냐고!”
순간 언성이 커져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일순간 집중되었다.
그녀는 주위를 시선을 느꼈는지 헛기침을 했다.
“저, 저는 괜찮아요! 요즘 고기 뷔페는 품질도 괜찮고 맛도 괜찮고 해서…… 크읍!”
강은지는 전혀 상관없다는 말투로 말하다가 마늘을 집어먹고 매운지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래. 맛있기만 한데 왜 그러냐. 음료수도 사 줘야겠네.”
그는 벨을 눌러 그대로 콜라와 사이다를 2병씩 주문했다.
그녀는 그런 진원을 어이없는 듯이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 말이야,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응? 뭘?”
“하아……. 소속도 없는 플레이어가 갑자기 S등급이 된 것을 사람들이 납득할 거라고 생각해? 분명히 측정기가 잘못되었다고 다른 플레이어들이 이의제기 엄청나게 할걸. 나도 엄청나게 노력했지만 S등급은 도저히 안 되더라.”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긴 하다. 남 잘되는 것을 꼴 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야 어딜 가나 있으니.
“거기다가 대형 길드 중 단두 개의 길드만 S등급 플레이어가 소속해 있어. 피닉스 길드하고, 대천사 길드. 그리고 네가 얼마 전에 나온 S등급 플레이어. 나중에라도 두 개의 길드는 너를 데려가려고 발악을 할걸? S등급을 2명이나 보유해 버리면 뭐든지 독점할 수 있게 되니까.”
“그건 뭐, 어차피 들어갈 생각 없으니 괜찮아.”
태평스러운 그의 대답에 그녀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어휴……. 너 플레이어 카드는 받았어? S등급은 따로 제작해서 시간이 좀 걸린다던데.”
“응? 그랬나? 그런 말 못 들었는데.”
진원이 스마트폰을 꺼내 문자 메시지함을 뒤지다가 발견한 한 개의 문자.
“……문자로 가르쳐 줬네.”
하긴, 그때는 너무 정신없었지. 제작에는 약 7일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라. 무슨 특별한 기능이라도 있는 것일까.
당연히 그동안 던전에 들어갈 수 있도록 임시 번호가 밑에 적혀 있었다.
“그건 그렇고, 최은식이야 알겠는데, 옆에 얘는 누구야? 네 여자 친구?”
그녀의 말에 강은지는 화들짝 놀라며 고기를 테이블에 떨어트렸다.
“아, 아니에요! 예전에 같이 던전을 한번 클리어한 것 말곤 없어요! 그, 그쪽이야말로 누구세요?”
“응? 나야 뭐, 이 녀석이랑 단순한 사이는 아니지.”
흠칫.
그 말에 강은지의 어깨가 살짝 흔들렸다.
치이이이이-
“제가 형이랑 가장 친한 사이에요!”
아니, 너는 고기 굽다가 갑자기 왜 그러는데.
“일단 여기서는 맘껏 먹고, 내가 너희들을 부른 건, 너희들의 의견도 듣고 싶어서 그래. 나 혼자서는 생각해도 도저히 답이 안 나오더라.”
“그게 뭔데 그래?”
가볍게 콜라를 마시고 있던 신혜진이 궁금한 듯이 물었다.
“여기서 말고, 조용한 곳. 그래, 네 길드 어때?”
“뭐야, 내 길드가 무슨 아지트야?”
“나중에 기자들한테 너랑 친한 동료라고 얘기해 줄게.”
“흥! 이번은 그냥 넘어가 줄게.”
그 후, 최은식이 바쁘게 움직이며 야채나 고기를 리필해 오는 동안, 조용하던 진원의 머리에 무슨 비명이 들렸다.
‘키기긱! 키긱!’
소환의 방에 있던 꼬마 임프가 갑자기 진원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한 것.
자세히 들어 보면 떼를 쓰는 것 같기도 하다.
‘뭐냐, 갑자기 왜 그래?’
‘키킥! 키키킥.’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 지배력 스텟이 높아지거나 하면 알아서 번역되고 그런 기능은 없으려나.
그는 가만히 삼겹살이 익어 가는 불판을 보면서 혹시나 싶어서 물어봤다.
‘너, 설마 고기가 먹고 싶은 거야?’
‘키킥! 키킥!’
마치 맞다는 듯한 목소리. 소환수가 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 것은 처음 봤다.
설마…….
‘붉은 늑대. 너도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저는 음식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음…… 그렇단 말이지.
‘임프 너, 앞으로 말 잘 들으면 내가 나중에 맛있는 거 줄게.’
‘키키킥! 키킥!’
맡겨만 달라는 듯한 꼬마 임프의 대답. 왠지 못미더운 건 기분 탓일까.
***
타이거 길드의 길드장실.
소파에 진원을 포함한 네 명이 앉아 있었고, 그들의 시선은 전부 테이블 중앙을 향했다.
“이게 네가 말한 그거야?”
“그래.”
중앙에 놓여 있는 것은 검은색의 편지 봉투.
“형, 이게 그 아일랜드 아이템인가요? 확실히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오네요.”
그저 이계의 존재를 이곳으로 불러들인다는 간결한 설명.
이제 사용 기한은 7일하고 20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지 자기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는, 여러 명이서 생각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 진원이 한 번에 지인들을 모은 것이다.
“저기, 잘못했다가 강력한 몬스터라도 나온다면…….”
강은지의 걱정스러운 말투.
“이건 아무래도 우리들끼리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일단 너, 그거 섣불리 사용하지 마. 잘못했다가 진짜 나라가 망해 버릴 수도 있어. 아일랜드 아이템이면 충분히 말이 되거든.”
소파에 앉아 팔짱을 끼고 있던 신혜진은 골치 아픈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시간은 남아 있으니, 각자 레벨을 올리고 있는 게 낫겠어. 나는 얼마 뒤에 있을 던전 공략에 참가해야 되거든.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자.”
“그래. 일단 그러는 게 좋겠네.”
그의 대답을 끝으로, 갑자기 벨소리가 울렸다.
띠리리- 띠리리-
자신에게 온 전화. 모르는 번호다.
끊으려고 했다가 왠지 모르게 이상한 느낌이 들어,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