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상점스킬-38화 (38/200)

38. 등급

진원은 먼저 은행에 들러 통장 정리를 하기로 했다.

던전이야, 등급 판정을 받고 살며시 기자들에게 피닉스 길드가 개수작을 부렸다고 말해 주면 되니까.

……·너무 김칫국인가. B등급 이상만 나왔으면 좋겠는데.

그는 평소에 사용하던 모바일 어플을 이용해 통장의 잔액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번 스마트폰 분실과 함께 등록된 체크카드까지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 그냥 은행을 이용하기로 했다.

‘방 어딘가에 굴러다니겠지 뭐.’

ATM과 은행 안 모두 상당히 복잡했다.

서 있는 것보다는 들어가서 앉아 있기로 해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176번 고객님.”

자신의 순서가 되자 은행원 앞에 앉으며 통장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통장 정리 좀 부탁드릴게요.”

“네.”

직원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진원에게 통장을 건네받았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자 직원은 정리된 통장을 건네주며 작게 감탄사를 터트렸다.

-잔액: 2억 4841만 원

“어머, 고객님 젊으신 거 같은데 열심히 일하셨나 봐요.”

기껏해야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의 통장에 2억 원이 넘는 돈이 모였다니.

“무슨 사업이라도 하시나 봐요?”

“아뇨, 그냥 플레이어입니다.”

“아, 그러시구나.”

플레이어의 절반 정도가 평범한 직장인 월급 정도로 버는 직업이라는 것을 여직원도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남성은 단기간에 2억 원이 넘는 돈을 벌었다.

‘많이 버시는 분은 엄청 버시는구나.’

자신도 나름 열심히 공부해 시험을 치고 괜찮은 은행에 들어왔지만, 눈앞의 남자의 급이 달랐다.

‘등급이 높으신 플레이어라면 잡는 것이 무조건 이득일 거야. 게다가…… 자세히 보니 잘생겼어.’

“저희 은행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 혹시 투자…….”

“괜찮아요. 제가 갚아야 할 빚이 많거든요. 그럼.”

그는 여직원의 말을 빠르게 끊고 자리에서 일어나 ATM 근처로 갔다. 분명히 시간을 상당히 잡아먹겠지.

‘2억이 넘는 걸 보니, 플레이어 거래소에 등록한 아이템은 전부 팔렸나 보네. 생각보다 훨씬 많이 벌렸구나.’

그리고 부모님 계좌에 1억 4천만 원을 입금했다.

1억은 혹시 모를 비상금으로 남겨 두기로 했다.

돈 문제야,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알아서 해결될 수준까지 왔다.

‘좋아, 그럼 플레이어 협회로 가 볼까.’

그는 자신의 등급을 측정하기 위해 플레이어 거래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

플레이어 협회의 안내 데스크.

“등급 측정하러 오셨나요?”

“네.”

“예약을 안 하시고 오셨으면, 저쪽으로 가셔서 기다리시면 되겠습니다.”

직원은 손을 들어 다른 장소를 가리키며 안내했다.

‘사람 되게 많네.’

한 줄로 서 있는 사람들. 전부 등급 측정을 받으러 온 플레이어인 듯했다.

진원도 뒤에 서서 가만히 순서를 기다리는 와중,

“형씨, 플레이어야?”

자신의 뒤에 서 있던 사람이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등을 돌아보니, 뚱뚱한 체구와 한쪽 팔에 전갈 문신을 한 남성이 보였다.

“얼굴은 꽤나 반반한데……. 그냥 모델이나 하지?”

시비를 거는 듯한 말투. 그것은 마치 자기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말처럼 들렸다.

놈은 만만한 상대를 찾고 있는 듯했다.

‘주군, 베어도 되겠습니까.’

‘아니, 괜찮아.’

아무래도 보는 눈이 많기도 하고, 그냥 시비 한번 걸었다고 죽이는 건 너무하잖아.

그냥 적당히 무시하기로 했다. 굳이 상대해 줄 필요가 있을까.

“어이! 무시하는 거냐? 내가 우스워?”

그러자 진원은 발끈하는 돼지에게 손을 들어 중지만 들어올렸다.

“X새끼가!”

돼지가 욕을 하며 자신에게 다가오자 안내 데스크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쪽! 자꾸 소란부리시면 등급 측정 금지시킬 거예요!”

직원의 제지에 문신 돼지는 씩씩거리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가서 보자. X새끼.”

“그러든가.”

-D등급입니다.

-D등급입니다.

측정실 안의 공간은 꽤나 넓었다. 곧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자 내부를 간단히 볼 수 있었는데, 커다란 검은색의 구가 안에 들어서 있었다.

측정을 담당하는 사람 둘과, 등급 측정을 받는 플레이어 1명. 나머지는 측정이 완료될 때까지 밖에서 대기.

밖으로 연결된 스피커에서 플레이어의 등급이 기계음으로 흘러나왔다.

‘왜 다 들리게 해 놓은 거야. 수치 플레인가.’

앞에 있던 플레이어들 대다수가 D등급, 간혹 가다가 C등급이 나왔다.

‘그래도 B등급 정도는 나오겠지?’

-C등급입니다.

이윽고 진원 앞의 플레이어가 측정을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안녕하세요, 플레이어님. 저희 중소 길드는…….”

“플레이어님! 저희 길드와 계약하시면…….”

C등급 판정임에도 미리 대기하고 있던 길드의 직원들이 플레이어를 낚아채 가려고 3명 정도 달라붙었다.

‘C등급도 생각보다 귀한 전력인가 보네.’

곧이어 자신의 차례가 되자 진원은 측정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와…… 되게 크네.’

간이 측정기가 자그마한 축구공 정도의 크기였다면, 눈앞의 측정기는 만화에서나 나오는 거대한 쇠공, 그런 느낌이었다.

‘저걸 어떻게 안으로 옮겼지?’

그의 감상도 잠시,

“김진원 씨, 이 앞으로 오셔서 측정기에 손을 올려 주시면 됩니다. 단단히 고정되어 있으니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추가 설명. 측정기는 단순히 레벨이 높다고 해서 높은 등급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잠재력을 포함해 종합적인 수치를 측정한 뒤, 최종적으로 등급을 결정한다고 했다.

안경을 쓴 협회의 남자 직원은 그를 측정기 앞으로 안내하며 설명을 해 주었다.

다른 여자 직원은 측정기와 연결된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아, 잠깐, 잠깐만요!”

측정기에 손을 올리려던 그는 무엇인가 생각났는지 한쪽 구석으로 이동했다.

여자 직원은 그런 진원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지만, 이내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어떻게든 높은 등급을 받으려고 남은 스텟까지 전부 투자하려는 거겠지.’

“1분만 기다려 드리겠습니다.”

진원은 등을 돌리고 직원들이 못 보는 방향에서 상점을 열고 전직의 비약을 구매했다.

[아이템 : 전직의 비약]

직업이 없는 플레이어는 건드리지 마라!

종류 : 비약

효과 : 주요 스텟이 40 상승합니다.

수량 : 1개

가격 : 2,000골드

[보유 골드 : 70골드]

‘마시려면 지금이다.’

그리고 바로 전직의 비약을 마시자, 알림 음이 들리며 스텟이 상승했다.

이어서 남은 스텟까지 근력과 민첩에 5씩 알뜰하게 전부 사용했다.

띠링.

[전직의 비약 효과로 지배력이 40 상승합니다.]

[스텟]

근력 : 50 민첩 : 40 체력 : 50 마력 : 50 지배력 : 40

이 정도 스텟이면 A등급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김진원 씨, 1분 지났습니다.”

“네네, 갑니다.”

측정기 앞으로 가서, 고민 없이 오른손을 올려놓았다.

우우웅-

거대한 측정기가 미약하게 떨리면서, 측정이 끝나는가 싶었지만,

우우우우웅-

점점 크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큰일 나는 거 아냐?’

덜덜덜덜-

“이거 괜찮은 거예요?”

“아…… 네. 괜찮을 겁니다. 아마도…… 이게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협회 직원이 당황했는지 스마트폰을 들어 어딘가로 연락을 했다.

“안녕하십니까, 측정실의 측정기 상태가 이상해서…… 심하게 떨리네요. 예? 아, 여기서 근무한 지는 이제 세 달 정도 되었습니다. 예? 어떻게든 잡아 두라니 그게 무슨 말씀…….”

남직원이 통화하고 있는 중, 강렬하게 진동하던 측정기가 드디어 멈추고,

“와……. 진짜야, 이거?”

모니터를 보고 있던 여직원은 입을 크게 벌리며 측정된 등급에 놀라워했다.

‘뭐야, A등급이라도 나왔나?’

잠시 후, 스피커를 통해 진원의 플레이어 등급이 알려졌다.

-S등급입니다. 대한민국의 세 번째 S등급, 축하드립니다. 김진원 님!

다른 플레이어들과는 확실히 다른 결과 내용이었다.

그 내용이 협회 안을 휩쓸고 지나간 뒤, 사람들은 일순간 동작을 멈췄다.

“미, 미친! 야! 특종이다 특종! 대박이라고! 빨리 기사 써야 돼!”

“뭐, S등급? 미쳤네. 3년 가까이 구경도 못 했던 등급 아냐?”

협회 안에 우연히 있었던 기자와, 플레이어들과, 다양한 길드의 스카우터들까지. 그야말로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S등급 플레이어의 얼굴을 보려고 측정실로 좀비 떼처럼 몰려와 문 앞에 달라붙었다.

‘어우, 보는 내가 다 무섭네.’

“축하드립니다, 플레이어님! 생각보다 소란이 커져서……. 잠시 이곳에 기다려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괜찮아요. 그럼.”

그는 직원의 말을 가볍게 거절한 뒤, 등을 돌리고 그대로 문으로 향했다. 협회장이 잡아 두라고 했지만 자신이 뭘 어쩌겠는가, S급인데.

그가 문 가까이 오자, 문 앞에 달라붙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문에서 떨어졌다.

S급 플레이어의 작은 심기라도 건드리지 않게 조심스러운 표정들이었다.

‘제기랄. 중소 길드는 말도 못 거는 수준이잖아.’

‘그림의 떡이다. A급도 감당하기 버거운데…… S급은 무리야.’

아쉬운지 입맛을 다시는 중소 길드의 스카우터들. 그는 그들 사이를 걸어 나가며 한 인물을 찾았다.

“야! 그래, 거기 문신 돼지. 나랑 한판 붙자며?”

흠칫.

당연히 돼지도 그 발표 내용을 못 들었을 리 없었다. 진원의 발언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돼지에게로 향했다.

‘X발, S등급? 내가 미쳤지.’

사람을 건드려도 제대로 잘못 건드렸다. 여기서 괜히 센 척을 했다가는 뒷일을 감당할 수 없다.

“죄, 죄송합니다아!”

근육 돼지는 바로 고개를 숙이는 정도가 아닌, 바닥에 엎드려서 절하는 자세로 진원에게 사과를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찍었고, 추가로 기자까지 합세해 전설의 양아치 참교육짤이 탄생하게 되었다.

씨익.

‘아직 안 끝났다.’

무려 S등급을 받았으니 이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현재 피닉스 길드가 저를 심각하게 견제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던전 입장이 금지된 상태입니다.”

당연히 그 발언은 기자들에게 있어서 최상의 먹잇감이었다.

그 후, 각종 뉴스나 인터넷기사, 커뮤니티 등 진원에 대해서 언급 안 하는 곳이 없었다.

[피닉스 길드! 아무 이유 없이 S등급 플레이어의 던전 입장을 금지시키다? 경찰 조사 들어갈 것.]

[양아치, 시비를 건 상대는 S등급 플레이어?]

[대한민국의 세 번째 S등급 플레이어의 등장!]

[전설의 참교육 짤.jpg]

-불타는 코레아 : 와, 사이다 원샷 한 거 같다. 짤 보소 ㅋㅋ

-이이잉 : 이제 피닉스 길드는 X됐어요, 아시겠어요? 하필이면 건드린 플레이어가 S등급이었죠~ 개망했죠~

-침대 위의 호널드 : 제발 참교육 좀 더 해 주세요 형님. 미치겠습니다.

그리고 뉴스에 나오는 진원을 본 영호나, 여동생인 지원이나, 최은식이나, 신혜진 등이 제각각 놀라게 되는 것도 당연했다.

***

다음 날, 진원은 침대에 누워 인벤토리에 있는 초대권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8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소멸합니다.

‘이제 8일이라……. 무슨 방법이 없으려나.’

사용하려면 최대한 안전한 장소에서 써야 하는데, 도대체 어디서 써야 하는지 마땅한 곳이 생각나지 않았다.

사실 여전히 고민 중이다. 잘못 사용했다가 나라가 망하는 것은 아닌지.

그건 그렇고, 도대체 자신의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는지 그 뒤로 대형 길드와 협회장을 포함해 수많은 기자들한테까지 전화가 끊이질 않았다.

그가 나중에 연락 주겠다는 음성 메시지를 녹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연락 안 할 거지만.

달칵.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생이 학교에서 돌아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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