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귀환-2
타이거 길드의 사무실 안.
길드장 신혜진은 노트북으로 동영상을 보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아, 너무 귀엽다. 깨물어 주고 싶어!”
그것은 귀여운 새끼고양이들이 서로 깨물고 장난치는 영상이었다.
츠츠츳-
그때, 길드장실에 갑작스럽게 포탈이 열리며 그곳에서 흙과 피와 땀으로 범벅된 진원이 걸어 나왔다.
“뭐, 뭐야?”
그녀는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경계했지만, 그곳에서 나온 사람은 진원이었다.
-미야옹~ 야옹~
“응? 뭐야, 너 그런 거 보는구나?”
그리고 그것이, 아일랜드에서 돌아온 진원의 첫 대사였다.
그녀는 놀라움에 눈물 깜빡이다가 황급히 노트북을 닫았다.
“너, 너! 돌아왔구나! 어떻게 됐어? 거기서 아이템은 가져왔어?”
“잠깐, 잠깐만. 나 지금 모래투성이거든? 좀 씻게 해 줄래? 얘기는 그 뒤에 해 줄게.”
그 뒤로 진원은 길드원에게 안내를 받아 따뜻한 온수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이게 얼마 만에 하는 샤워냐. 천국이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나는 것은, 아일랜드 전용 아이템 ‘이계로부터의 초대권’을 얻었다는 것과 전직 퀘스트의 내용뿐이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길드원이 새 옷을 가져다 주었다.
“길드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대로 길드장실로 가시면 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거 비싼 옷 아냐? 그냥 트레이닝복만 줘도 되는데, 뭘 이런 걸 주냐.’
그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흰색 와이셔츠와 슬랙스를 입고 그녀에게 향했다.
똑똑.
“들어와.”
어느새 준비했는지, 소파 앞 테이블에는 홍차와 고급스러운 간식들이 놓여 있었다.
진원은 소파에 가서 앉은 후, 과자를 뜯으며 입을 열었다.
“고맙다. 네 덕분에 정말 많은 것을 얻었어. 내가 아는 것,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가능한 한 전부 말해 줄게.”
100억짜리 티켓을 건넨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 정도의 성장은 불가능했다.
받은 것이 있다면 최대한 돌려주는 것이 예의겠지.
돈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지만.
“하아……. 사실은 그 입장권, 너 한번 떠보려고 준 거야. 그런데 눈앞에서 찢고 들어가는 미친놈은 처음이야. 거기다가 보란 듯이 멀쩡하게 돌아오다니.”
그녀는 그럼 자신을 질렸다는 듯이 쳐다봤다.
“거기서 뭔가 기억나는 일은 없어?”
“전직 퀘스트에 대한 것이랑 아일랜드 아이템을 얻었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그 소문이 진짜였구나. 뭐? 전직 퀘스트? 그럼 유니크 직업이라는 말이야?”
보통 일반 직업들은 별다른 절차 없이 수락하는 것만으로 전직이 되었지만, 유니크 직업부터는 특수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전직이 가능했다.
‘아일랜드에서 올린 레벨이 8이라……. 거기다가 아일랜드 아이템을 가지고 나오다니. 대단한 놈이야.’
그녀가 가진 감정 스킬은 상대방의 기본적인 정보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는 스킬이다.
직업이 무엇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전직 퀘스트는 뭐였어? 직업은?”
그녀는 들뜬 마음에 순간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뭐…… 일단은 너만 알고 있어. 직업은 계약 소환사야.”
“계약 소환사? 들어 본 적이 없는 직업인데.”
그 뒤로 대략적인 퀘스트 내용을 말해 주었다.
상점이 개방된 플레이어가 전직 조건인 것은 빼고.
“모습을 드러내 줘.”
“분부대로.”
진원은 말이 끝나고 증명이라도 하듯이 붉은 늑대를 실체화했다.
스스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허리에 칼을 찬 사무라이가 나타났다.
꿀꺽-
그녀는 그것을 멍하니 보면서 침을 삼켰다.
씨익.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소환의 방을 사용해 꼬마 임프까지 소환했다.
“키키킥.”
“그런데, 쟤…… 내 다리만 쳐다보는 것 같은데?”
“키킥!”
그녀의 말에 진원은 꼬마 임프의 목덜미를 잡고 다시 소환의 방으로 집어넣었다.
“흠……. 사실 전직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래.”
‘어떻게든 우리 길드로 끌어들일 순 없을까.’
그녀는 이미 어떻게 하면 진원을 자신의 길드원으로 만드는지에 대해 관심이 팔려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사무라이는 자신과 동등할 정도로 강해 보였기 때문이다.
“너 말이야, 우리 길드에서 계약금으로 400억 원을 준다고 하면 올 생각 있어?”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경력 있는 베테랑이라 해도 400억 원을 받기 힘들었다.
신인이 400억 원 정도라면, 길드가 플레이어를 정말로 원한다는 말이었다.
“응? 아니, 돈도 돈이긴 한데, 난 의리가 먼저라서.”
그는 최은식이 제시한 계약금보다 2배 이상 높은 금액에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거절했다.
‘미안하잖아. 최은식 그놈한테 소고기를 얼마나 얻어먹었는데.’
“그래. 뭐, 넌 그럴 것 같더라. 그래도 이렇게 된 게 전부 내 덕인 거는 알지?”
“그래. 물론이지. 나중에 전설의 연합 듀오도 얼마든지 같이해 줄 수 있어.”
“씨……. 후우, 나중에 실컷 부려 먹어 주지. 너, 번호 바꾸기만 해 봐.”
“그래. 응?”
그러고 보니, 스마트폰……. 잃어버렸다. 그 후 길드원에게 건네받은 모래로 범벅된 옷을 뒤져 보았지만,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아일랜드에서 잃어버린 듯했다.
“어쩔 수 없지. 다시 바꿔야겠네.”
“내가 바꿔 줄게.”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몸을 일으키며 차 키를 찾았다.
“응? 아니, 그렇게 까지는 안 해 줘도 되는데.”
“나도 마침 볼일이 있어서 겸사겸사 가는 거니까. 그래서, 싫어?”
“갈게. 고맙다.”
그녀는 차 키를 돌리며 기분 좋은 듯이 콧노래를 부르며 밖으로 나섰다.
“자, 타.”
도로 위를 달리면 모세의 기적을 볼 것만 같은 스포츠카.
“이게 그…… 램보르기니?”
“램보르기니 어벤타토르SS. 내가 꽤 마음에 들어 하는 차야.”
길가를 지나가던 사람들은 스포츠카를 보고 눈을 떼지 못했다.
‘흐음…….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나도 차 한 대 장만해야겠네. 붉은 늑대, 여기 탈 수 있겠어?’
‘말과 같은 것입니까. 주군과 같은 말을 탈 수는 없습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시길.’
‘흠……. 그래.’
부와앙-
성난 듯한 램보르기니의 배기음과 함께 둘은 휴대폰 매장으로 향했다.
20분? 아니, 10분은 걸렸나? 도로의 차들이 알아서 옆으로 비켜 줬기 때문인지 상당히 빨리 매장에 도착했다.
“어서 오세요, 손님!”
“어서 오십시오!”
직원들이 매장 안에서 신혜진의 차를 봤는지 그녀가 매장 안으로 들어오자 허리를 숙이며 깍듯하게 인사했다.
“스마트폰 최신 모델로 두 개 주세요.”
“응? 두 개? 너도 바꾸게?”
“아니, 다른 한 개는 여동생 줘.”
“뭐야, 왜 이렇게 잘해 줘? 무섭게.”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
그녀는 쿨하게 최신 기종 스마트폰을 카드로 결제하고, 자신의 집 앞까지 태워다 주었다.
“뭐, 아일랜드에서 이제 막 다녀왔으니, 일단 당분간 쉬어.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고. 그럼 간다.”
부와앙-
‘뭐지, 너무 잘해 주는데? 괜히 꺼림칙하잖아.’
차가 멀어지고, 그대로 집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오, 오빠…….”
동생과 귀신같이 마주쳤다.
“어, 다녀왔다. 잘 지냈냐?”
빠악!
“씁! 아! 내 다리! 도대체 한 달 넘게 뭐 하다가 이제 온 거야! 무슨 일 생겼나 싶어 걱정했잖아! 문자 답장조차 없고! 진지하게 실종 신고하려고까지 했거든?”
지원은 오빠를 보자마자 달려가 정강이를 걷어 찾지만, 아픈 것은 자신이었다.
오빠가 갑작스럽게 던전에 간다고 하더니 40일이 넘게 문자조차 받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질려 도망가지 않았을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들었다.
“미안해. 이번엔 좀 많이 힘들었거든. 스마트폰은 거기서 잃어버린 것 같다. 그 대신에 여기. 신혜진이 너 주라더라.”
진원은 미안한 듯이 동생에게 최신 기종 스마트폰을 건네주었다.
별일 없어 보여서 다행이었다. 자신도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와, 이거 얼마 전에 나온 모델 아니야? 100만 원은 그냥 넘을 텐데. 잠깐, 설마…… 그 언니가 오빠를? 도대체 뭘 보고?”
“야야, 그런 사이 아니거든? 빨리 들어가자. 오늘은 먹고 싶은 거 다 사 줄게.”
“오늘만?”
동생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을 째려보았다. 상당히 많이 삐쳐 있는 듯하다.
“후……. 그래, 내가 진짜 미안하다. 5일. 그리고 용돈 10만 원. 콜?”
“콜!”
그런 동생을 보며 웃으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
다음 날, 진원은 죽은 듯이 침대에 뻗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일랜드에서 제대로 된 휴식은 취하지 못했고, 포션을 마시면서 피로를 회복했다고 해 봤자, 어디까지나 소량의 피로일 뿐.
띠리리-띠리리-
스마트폰의 벨소리가 그의 잠을 방해하는가 싶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 듯이 꿈쩍도 안 했다.
띠리리-띠리리리-
몇 분째 벨소리가 울렸을까, 침대에서 조금씩 꿈틀거리던 진원이 손을 뻗어 폰을 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눈을 감은 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피곤에 찌든 듯한 목소리. 목이 잠겨 있는지 갈라지는 소리가 나왔다.
-형, 아일랜드에서 돌아오셨다면서요! 어디 다치시진 않으셨어요?
최은식이었다. 자신이 돌아온 것은 또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연락해 왔다.
“그래……. 이번에는 좀 많이 힘들어서 말이지. 내가 나중에 연락할게.”
-네, 형!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나중에 꼭 연락주세요!
눈치가 빠른 최은식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는 스마트폰을 쥔 채로 다시 잠에 빠졌다.
그 후로 눈을 뜬 것은 낮 12시.
전날에 저녁 7시에 잠들었으니까, 무려 17시간을 잤다.
“진짜 피곤했나 보다.”
침대에서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럼 뭘 해 볼까……. 최은식한테는 나중에 연락하고, 통장 정리를 먼저 해야겠다.”
하지만 그전에!
“상태 창.”
<플레이어>
이름 : 김진원
레벨 : 28
직업 : 계약 소환사
등급 : 유니크
업적 : 끈질긴 놈
칭호 : 레드 플레이어 꿈나무
HP : 3,500
MP : 2,000
[스텟]
근력 : 45 민첩 : 35 체력 : 50 마력 : 50 지배력 : 0
미분배 포인트 : 10
#플레이어 중 유일하게 상점 기능이 개방됩니다.
#모든 데미지 10퍼센트 감소 효과가 적용됩니다.
[스킬]
마구 Lv.10 (MaX)
불굴 Lv.1
순간 가속 Lv.10 (MaX)
미분배 포인트: 1
[직업 스킬]
소환의 방 Lv.1
계약 소환 : 꼬마 임프 Lv.10 (MaX)
[상점]
Lv.3
전날, 피곤한 와중에도 한번 확인해 보고 잠든 상태 창. 아일랜드에 가기 전, ‘없음’으로 빼곡했던 공간들과 네 자릿수를 가뿐히 넘긴 HP와 MP.
‘이 정도면 피닉스 길드 놈들도 함부로 못 건들겠지.’
자신에게 대들던 송진호 앞에 붉은 늑대를 실체화해 보여 주고 싶었다. 과연 붉은 늑대 앞에서도 똑같은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거기다가……. 인벤토리에 보관해 둔 ‘이계로부터의 초대권’의 사용기한이 9일 남았다.
여기서 나온 존재까지 전력이 된다면 더욱 강력해지겠지.
A급 던전도 혼자서 털고 다니지 않을까?
‘그래도 신중하게 사용해야겠지. 초대권에서 나온 녀석이 적으로 돌아서면 곤란할 테니.’
전직을 마친 지금, 자신의 기량이 얼마나 될지 궁금했다.
C급 던전은 당연히 쉽겠고, B급 던전도 노려 볼 만하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잊고 있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 나 던전 입장 금지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