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격돌
김수환의 본거지 안쪽. 부하들에게는 절대 들어오지 말라고 한 자신의 방 안.
고풍스러운 느낌으로 꾸며진 한쪽 구석에 고재원이 묶여 있었다.
“후우……. 이제 떼는 그만 쓰고 숨겨 둔 아이템을 그만 넘겨라. 그럼 바로 풀어주고 너의 제자도 건들지 않겠다.”
머리카락을 위로 쓸어 넘기며 그에게 다가갔다.
김수환의 목적은 오래전, 고재원이 획득했다고 하는 아일랜드 전용 아이템이었다.
상당한 성능을 자랑하는 아일랜드 아이템.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이것을 노리고 100억 원씩 하는 티켓을 가지고 들어왔다.
자신 역시 그것 때문에 어떻게든 아이템을 사용해 상태 창까지 위장해서 고재원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던 것은, 말도 안 되는 훈련. 친구가 약한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놈의 쓸데없는 오지랖.
거기다가 예상치 못한 고재원의 강함에 자신이 아끼고 아꼈던 아일랜드 아이템 ‘봉인의 호리병’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놈이 좀처럼 안전 지역 밖으로 나오지 않아 곤란했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제자가 생겨서 그런 걸까. 그놈도 참 불쌍했다.
“이 고얀 놈이! 한때 친구였던 녀석이 무슨 짓이냐!”
고재원은 의자에 묶인 채로 마구 발버둥 쳤지만, 김수환의 그림자에 묶여 있어 별 효과는 없었다.
“뭐, 됐다. 그놈이 이쪽으로 찾아오게 되면 네가 보는 눈앞에서 죽여 버리지.”
“이놈이!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그는 듣는 체도 안 하고 그대로 입맛을 다시면서 밖으로 나갔다.
***
‘일단 스승이 잡혀 있으니 정공법은 안 되겠지.’
진원은 상점에서 HP 포션을 구입하려고 했다. 피로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때, 구매가 불가능했던 비약에 변화가 일어났다.
“뭐지?”
이전에 추가되었던 정체불명의 비약이 환하게 빛나면서 글자가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다.
이윽고 앞 글자가 모두 지워지고 다시 나타난 글자는 전직이었다.
[아이템 : 전직의 비약]
직업이 없는 플레이어는 건들이지 마라!
종류 : 비약
효과 : 주요 스텟이 40 상승합니다.
수량 : 1개
가격 : 2,000골드
스텟이 한 번에 40이나 상승하는 비약이라니.
현재 지배력 스텟이 0인 자신에게 필수적인 아이템이었다.
“가격이 2,000골드나 하네…….”
중급 골드 주머니에서 1000골드를 획득했음에도 비약을 구입하기에 상당히 부담되는 금액이었다.
“그래도 최대한 모아서 꼭 사야겠어.”
이 순간부터 10골드짜리 포션조차 최대한 아끼기로 결심했다.
하급 HP 포션을 하나만 사서 마시려는 순간, 멀리서 뭔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응? 몬스터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보니 황금빛을 띄고 보따리를 멘…….
“보물 고블린이다! 붉은 늑대! 저놈을 잡아야 돼!”
“분부대로.”
자신의 말에 실체화한 붉은 늑대는 빠른 속도로 사막 위를 달려갔고, 그 역시 순간 가속을 사용해 보물 고블린에게 다가갔다.
“끼기기긱!”
멀리서 플레이어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것을 본 보물 고블린은 발로 모래바닥을 몇 번 강하게 밟았다.
팍 팍!
그러자 잠시 후, 모래 바닥이 꿈틀꿈틀하더니 모래 기둥이 크게 솟아오르면서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촤아악-
촤악-
[거대 모래 전갈]
‘뭐야, 노란색이네.’
“쿠에에에!”
거대한 덩치와 함께 꼬리를 치켜 올리며 위협하는 모래 전갈 4마리.
그러나 전직을 한 진원에게 있어서 그저 좋은 경험치와 골드 수급용 몬스터였다.
[붉은 늑대가 스킬 - 발도 : 추격을 사용합니다. MP를 50 소모합니다.]
푸화악!
“크에에!”
자신이 인벤토리에서 토르의 장난감 망치를 꺼냈을 때는, 이미 모래 전갈들이 동강나 있었다.
[234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206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압도적인 장면을 본 보물 고블린은 도망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자리에서 몸을 벌벌 떨었다.
“끼긱! 끼기긱!”
진원과 붉은 늑대가 가까이 다가오자 보물 고블린은 등에 멘 보따리를 빠르게 풀어 진원에게 건넸다.
띠링.
[겁에 질린 보물 고블린이 자신의 보따리를 건넵니다. 보물 고블린을 죽이면 획득이 불가능합니다.]
“잠깐만.”
그의 지시에 붉은 늑대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흠……. 그런데 이놈을 죽이면 메달에 경험치에 골드도 줄 텐데 그냥 죽일까?”
마치 고블린 보고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끼, 끼긱!”
그러자 보물 고블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보따리를 제발 받아 달라는 듯이 더욱 앞으로 밀었다.
‘보물 고블린을 잡으면 메달, 아니면 뭐가 들었을지 알 수 없는 보따리라.’
한동안 고민하던 진원은 보따리를 받기로 했다.
“메달이야 뭐, 금방 모을 수 있지 않을까.”
띠링.
[아이템 : 보물 고블린의 보따리를 획득하였습니다. 개봉하시겠습니까?]
Y/N
“끼긱! 끼기긱!”
그 뒤 고블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뛰어서 도망쳤다.
“그럼 뭐가 들었는지 볼까.”
[아이템: 아일랜드 특제 포션]
아일랜드 전용 아이템.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종류 : 포션
효과 : MP가 서서히 1,000까지 회복됩니다. 다시 사용이 가능합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 2시간
보따리에서 나온 것은 몇 번이고 다시 사용할 수 있는 특제 포션이었다.
거기다가 한 번에 MP가 1,000이 회복되는 상급 포션!
“좋은데? 살려 주길 잘했네.”
그는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인벤토리에 보관했다.
그리고 상태 창을 열어 직업 스킬에 스킬 포인트를 사용했다.
“일단 소환의 방은 여유가 있으니, 임프에 전부 투자하자.”
꼬마 임프 소환. Lv10(MaX)
MaX레벨 달성으로 특수 행동 : 꼬마 지옥 불 투척, 변형이 활성화됩니다.
[꼬마 지옥 불 투척]
특수 행동
꼬마 임프가 손에서 지옥 불을 만들어 던집니다.
(MP : 100) (재사용 대기 시간 : 5분)
[변형]
특수 행동
꼬마 임프가 다른 물체로 변합니다. 대상의 능력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MP : 초당1) (재사용 대기 시간 : 10분)
10레벨을 달성하자 추가된 특수 행동 2개. 진원은 바로 확인해 보고자 스킬을 사용했다.
“꼬마 임프 소환!”
MP와 골드가 빠져나가며 온몸이 시꺼먼 꼬마 임프가 소환되었다.
진원의 무릎까지 오는 크기. 유치원생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500골드를 사용합니다.]
‘아, 제길. 골드량까지 올라가네.’
스킬 레벨이 올라간 만큼 소모되는 골드도 많았다.
띠링.
[지배력이 0입니다. 공격이 불가능합니다.]
골드는 골드대로 먹어 놓고 공격이 불가능하다니, 젠장.
하지만 어쩌겠어. 이미 소환해 버렸는데.
“키키킥!”
소환된 꼬마 임프는 마치 진원을 보고 비웃는 듯이 입을 가리고 웃고 있었다.
“얘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는 김수환이 있는 장소로 이동하며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30분이 지나고, 김수환이 가르쳐 준 장소에 도착한 진원은 그대로 건물 입구로 향했다.
꼬마 임프는 소환의 방에 넣어 두었고, 붉은 늑대는 실체화하지 않은 채로 자신의 뒤를 따랐다.
‘내가 혼자인 줄 알겠지.’
입구에는 부하로 보이는 플레이어 2명이 걸어오는 진원을 확인하고 칼을 뽑았다.
“잠깐! 난 스승을 되찾으러 왔다. 보급 아이템을 가지고 오면 돌려준다고 했다고!”
현재 스승이 잡혀 있는 상황.
무턱대고 날뛰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한 그는 위급 상황이 아니면 실체화하지 말라고 붉은 늑대에게 말해 두었다.
“아이템을 내놔라.”
“내가 직접 두 손으로 건네줘야 해. 김수환이 그러라고 했거든.”
급히 지어낸 말이었지만 눈앞의 플레이어가 그것을 꿀꺽하고 모른 척할 수도 있었다.
“따라와라. 허튼짓할 생각을 하지 말고.”
그는 부하를 따라 그대로 입구로 들어갔고, 다른 플레이어 하나가 자신의 등에 칼을 겨누며 따라왔다.
‘뭐야. 이놈들 생각보다 많잖아.’
넓은 건물 안에는 플레이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칼을 정비하고 있는 플레이어,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는 플레이어, 술을 마시고 있는 플레이어 등등.
그가 건물 안으로 들어오자 일제히 시선이 몰렸다.
“뭐야? 납치한 놈이야?”
“얼굴이 꽤나 반반한데? 돈 좀 되겠구만!”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오는 플레이어들.
‘저게 전부 돈이랑 경험치라고 생각하니 군침이 도네.’
예전 같았으면 긴장하고 경계했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유니크 직업으로 전직한 진원은 근처의 플레이어들이 골드로 보였다.
‘원만하게 해결되면 건드리지는 않을 테지만, 그럴 일은 없겠지.’
지난번에 당한 굴욕을 갚아 줄 때가 드디어 왔다.
계단을 몇 번 타고 올라간 방문 앞.
부하가 노크를 하자 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라. 생각보다 의리가 있는 녀석인가.”
방문을 여니 아무것도 없는 돌로 만들어진 것 같은 내부였다.
거기에 나무로 된 의자가 두 개.
속으로 붉은 늑대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내 목소리가 들려?’
‘예, 주군.’
시험 삼아 해 보았는데 의사소통이 된다! 이러면 일이 좀 더 수월해진다.
‘스승님을 좀 찾아줘. 백발에 어려 보이는 남자애야.’
‘분부대로.’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붉은 늑대가 자신의 주위에서 사라졌으니 은신에 대한 대처가 힘들어진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한다.
“보급 아이템을 가져왔다. 그런데 스승님은 어디에 있지?”
“너 혼자 보급 아이템을 가져왔다고? 그럼 이리 건네라.”
“그 전에 스승님이 먼저야. 스승님은 어디에 있지?”
“내가 잘 모셔 뒀으니까 걱정은 필요 없다. 아이템부터 건네라. 그럼 바로 풀어 줄 테니.”
“아이템 받고 바로 죽이려고?”
그 말을 들은 김수환이 우스운지 피식 웃었다.
“네놈이 이전에 보급 아이템 빼돌린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았나?”
스스스-
그의 주위에서 그림자가 일어나 뾰족한 송곳처럼 변해 자신을 노렸다.
‘아, 젠장. 말발도 없는데 여기서 어떻게 시간을 더 끌지?’
붉은 늑대를 보낸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나를 죽이면 보급 아이템은 절대로 못 얻을 텐데. 내가 아무 생각도 없이 여기 왔을 것 같아? 이번 보급은 아일랜드 전용 아이템이던데?”
진원은 표정 변화 없이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아일랜드 전용 아이템? 그러고 보니 꽤 오랫동안 보급에서 나오지 않기는 했지.’
아일랜드 전용 아이템은 대부분 강력한 성능을 자랑했다. 당연히 그만큼 물량이 적었다.
한동안 턱을 만지며 고민하던 김수환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고, 그림자를 거뒀다.
“좋다. 그럼 나를 따라와라.”
진원은 그의 뒤를 따라가며 붉은 늑대에게 지시를 내리려고 했다.
‘찾았습니다, 주군.’
그런데 생각보다 붉은 늑대가 유능했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고재원을 찾아낸 것이다.
‘좋아. 상태는 어떻지?’
‘무엇인가에 속박되어 있습니다.’
‘잘라 낼 수 있겠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좋아, 바로 잘라 내 줘.’
‘분부대로.’
“응? 뭐지?”
놈은 고재원을 속박했던 자신의 그림자가 사라진 것을 느끼고 급히 방으로 향했다.
진원 역시 그 뒤를 따라갔다.
‘그놈…… 무슨 힘을 숨기고 있었나?’
어느새 도착한 방문 앞.
김수환이 문을 열자, 얼굴 한쪽에 화상을 입은 사무라이가 눈에 들어왔다.
“네놈은 무슨……”
퍽!
“큭!”
그와 동시에 진원은 김수환을 발로 밀어내고, 방문을 닫았다.
그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부하들이 신속하게 달려왔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신경 쓰지 마라.”
고재원은 그림자 속박에서 풀려나 있었고, 자신의 목에 칼이 들이밀어져 있었다.
그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자신의 부하들이 멀어지자 입을 열었다.
“도대체 네놈은 누구지? 기척을 전혀 못 느꼈는데.”
눈을 치켜뜨며 눈앞의 사무라이에게 묻지만 아무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걔? 나의 충실한 부하.”
대답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껄껄, 제자야! 이렇게 훌륭한 인재를 부하로 두다니! 자랑스럽구나!”
고재원은 몸이 뻐근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이리저리 돌렸다.
‘이게 왜 이렇게 되는 거냐……. 도대체 왜?’
김수환은 입술은 질끈 깨물었다.
자신조차 전혀 기척을 못 느꼈다면 은신 스킬을 보유한 암살자라는 뜻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지만 마음을 다잡은 그는 진원을 향해 조소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