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전직 퀘스트-2
깡! 깡! 깡!
목이 날아간 좀비의 갑옷에 힘을 실어 망치로 미친 듯이 내려치니, 갑옷이 찌그러지면서 놈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
그와 동시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갑옷을 입은 좀비를 처치하였습니다.]
‘좋아! 메시지가 뜨는 것으로 확인하면 되겠다.’
“그워어어!”
“크웨엑!”
좀비 2마리가 팔을 휘적거리며 자신에게 느릿한 움직임으로 다가왔다.
‘이놈들 진짜 느리네.’
안 그래도 느려 보이는 좀빈데, 무거운 갑옷을 추가로 걸치고 있어서 그런지 행동이 상당히 굼떴다. 다만 그만큼 잘 죽지도 않았다.
하지만 딱히 긴장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여유로운 편이었다.
스승에게서 보이지 않은 기탄을 피할 때가 훨씬 긴장되었다.
‘그때와 비교한다면 껌이지.’
진원은 그대로 놈들에게 정면으로 달려가 처치 메시지가 나올 때까지 마구 두들겼다.
“휴우.”
이마에 맺힌 땀을 쓸어내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딱히 기척은 없는 듯했다.
“이놈들 되게 질기네. 도대체가.”
한 놈씩 집중적으로 머리를 터트리고, 망치로 갑옷을 미친 듯이 처치 메시지가 나올 때까지 두들겼다. 체감상 20분은 걸린 것 같았다.
[아이템 : 찌그러진 흉갑을 발견하였습니다!]
[202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198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201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특수 던전이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던전의 등급이 높은 것일까.
느릿한 좀비 기사 셋을 처치했을 뿐인데, 상당한 골드와 아이템을 드랍하다니.
[아이템 : 찌그러진 흉갑]
손상되어 있어 완전한 성능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종류 : 방어구
등급 : 레어
(1회에 한해 물리 데미지를 무시합니다. 효과가 사용 된 후, 아이템은 파괴됩니다.)
1회에 한해서 물리 데미지를 무시한다니. 무적과 유사한 효과!
그가 방어구를 획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쓸 만한 것은 써야겠지.’
잡몹처럼 보이는 좀비 기사 셋을 쓰러트려서 장비 하나 드랍.
보스급의 몬스터를 잡으면 어떤 아이템을 줄지 기대가 됐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착용해야 하는 거지?’
흉갑을 들어 올려 이리저리 움직여 보니,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이템 : 찌그러진 흉갑을 착용하시겠습니까?]
Y/N
손가락을 움직여 Y를 누르니 흉갑이 자석처럼 딸려와 진원의 가슴에 달라붙었다.
‘이런 식으로 장비하는 거구나.’
방금 전까지 좀비 몬스터들이 입고 있던 것을 생각하면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지.
챙길 건 최대한 챙기는 게 낫다고 판단한 진원은, 검을 주워들어 인벤토리에 넣으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검이 물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완전히 녹아 버렸다.
“아, 젠장. 돈 좀 나가는 아이템 같았는데.”
눈앞에 돈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괜히 아쉬웠다.
물 같은 액체를 털어내고, 다시 앞으로 걸으며 깊숙하게 들어갔다.
***
타이거 길드의 빌딩 내부.
신혜진은 커피를 홀짝이며 길드원이 건네준 보고서를 훑어보는 중이었다.
“해외에 있는 S등급 플레이어가 한국을 주시 중이라고?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러고 보니 얼마 전 C등급 던전에서 플레이어들이 대부분 전멸했던 사건이 생각났다.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플레이어는 단 2명뿐.
“김진원 때문에? 아니네. 아무래도 그건 너무 오버했어. 그런데 그놈은 잘 살아 있으려나.”
적당히 떠볼 생각으로 아일랜드 입장 티켓을 내밀었는데, 바로 눈앞에서 사용해 버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지만 진원이 돌아올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오! 거기 가서 뒈지기라도 해 봐라! 괜히 신경 쓰이게 하네!”
***
똑같은 몬스터들.
“그웨에엑!”
“꾸에엑!”
갑옷을 입은 좀비들을 처치 메시지가 나올 때까지 망치로 두들겨 패며 나아갔지만, 끝에 다다른 곳은 돌로 막힌 벽이었다.
띠링.
[토르의 장난감 망치의 내구도가 0이 되었습니다.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10마리도 채 잡지 않았는데, 망치의 내구도가 모조리 소진되어 버렸다.
“에휴, 망할 좀비 새끼들. 맷집은 좋아 가지고.”
진원은 툴툴대며 인벤토리에 토르의 장난감 망치를 넣었다.
‘큰일이네. 망치가 없으면 맨몸으로 싸워야 하는데.’
몬스터들을 잡으면서 추가로 400골드 가까이 얻은 것은 좋았지만, 장비 아이템은 드랍되지 않았다.
‘골드는 한 번에 많이 모였는데, 상점을 사용할 수가 없으니 답답하네. 그나마 1레벨이라도 오른 것은 다행이지만.’
그는 다시 갈림길이 있는 장소로 돌아왔다.
횃불이 밝히고 있는 오른쪽 길.
망치를 사용할 수 없기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걸어 들어간 지 10분이 지났을까, 주위는 그저 고요했다.
‘몬스터가 1마리도 안 보이네. 이쪽 길은 원래 없는 건가.’
스스슥-
한 인영이 그의 뒤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 기습했다.
푹!
“끅! 뭐야!”
띠링.
[찌그러진 흉갑이 공격을 1회 방어합니다. 효과를 사용해 장비가 파괴됩니다.]
메시지가 들리며 진원의 가슴팍에 있던 흉갑이 물처럼 녹듯이 흘러내렸다.
그는 빠르게 등을 돌려 복면을 쓴 인영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뻐억.
검은색으로 온몸을 무장한 인영은 그대로 벽으로 날아갔다.
띠링.
[암살자를 처치하였습니다.]
암살자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그대로 축 늘어졌다.
‘후, 하필이면 제일 까다로운 은신 몬스터라니.’
흉갑이 없었으면, HP가 얼마나 줄어들었을지 몰랐다.
기습이기도 했고, 자칫하면 불굴이 빠져 버렸을 수도 있다.
현재 자신에게는 은신을 간파하는 스킬이나 기술이 없다.
그 말은, 적의 공격을 무조건 한 번은 허용해야 된다는 말이었다.
‘아이템을 탐색할 시간은 없다! 최대한 빨리 벗어나자!’
그는 최대한 빠르게 정면으로 질주했다.
방금 같은 은신형 몬스터가 몇 마리나 더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숨이 차올랐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그렇게 달려 갈림길의 끝이 드디어 도착했다.
다른 갈림길과는 달리 푸른색으로 칠해진 거대한 철문이 있었다.
뒤를 한 번 둘러보고, 빠르게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커다란 문은 딱히 힘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열렸다.
‘이 안에도 은신 몬스터들이 있으면 곤란한데.’
포션으로 회복을 하지 못해서일까, 상당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어디선가 조용히 쉬어서 체력을 보충할 필요가 느껴졌다.
안으로 들어가니 칠흑같이 어두운 내부가 그를 맞이했다.
먼저 어둠에 적응하기 위해 기척을 최대한 죽이고 천천히 자세를 낮췄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야가 잡히자,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사박. 사박.
발밑은 모래투성이였다. 모래 안으로 무엇인가가 밟히는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앞으로 걸어 들어가자, 중앙에 세워진 거대한 횃불에서 불이 피어올랐다.
화르르륵!
단 하나의 횃불이었지만, 주위를 밝히기에는 충분했다.
진원은 조심스럽게 횃불 근처로 걸어갔다.
그 후,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확인했다. 마치 중세 시대의 콜로세움을 보는 듯한 느낌.
관중석으로 보이는 곳이 원형으로 둘러져 있었고, 그 뒤편에는 거대한 기둥이 촘촘히 세워져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느낌이다. 응? 저건 뭐지?’
주위를 둘러보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벽에 기대고 쓰러져 있는 사람과, 그 옆에 세워져 있는 검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오래전에 죽은 듯 움직임이 없었다.
‘겉보기에는 사무라이 같아 보이는데……’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체인 것일까.
얼굴에 생기가 없는 것만 빼면 그냥 사람이었다.
‘흠, 이 검도 집으면 사용하지 못하려나.’
밑져야 본전이다. 무기는 하나라도 확보해 놓는 것이 좋다.
진원은 천천히 도를 잡고 들어올렸다.
홱!
“아니?”
그때, 죽은 듯이 쓰러져 있던 사체의 손이 도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는 바로 거리를 벌렸다.
띠링.
[전직 퀘스트-1 : 붉은 늑대]
붉은 늑대는 현재 섬겨야 할 주군을 잃은 상태입니다.
완료 조건 : 어떤 방법으로든, 붉은 늑대를 굴복시키거나 주군으로 인식시키십시오.
제한 시간 : 180분
보상 : 붉은 늑대가 당신을 섬깁니다.
실패 시 : 붉은 늑대가 당신을 적대시합니다.
[붉은 늑대의 원혼]
꽁지머리를 위로 묶어 올린 사무라이.
잿빛 가죽을 걸치고 있는 모습은 이전의 둔해빠진 좀비 몬스터와는 다르게 상당히 날렵해 보였다.
얼굴 한쪽이 화상을 입었는지 일그러져 있었다.
‘겉으로만 보면 그냥 사람 같은데.’
붉은 늑대는 칼집에서 도를 꺼내고, 자신에게 서서히 다가왔다.
나무로 만든 듯한 각반이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제길. 빨간색이다.’
접근전으로는 불리하다고 판단한 그는 거리를 최대한 벌린 후, 인벤토리에서 글러브를 꺼내 착용했다.
붉은 늑대는 그 모습을 보고, 자리에서 멈춘 후, 한번 와 보라는 듯이 검을 까닥였다.
‘망할 놈이. 도발하는 건가. 그럼 제일 강한 놈으로 먹여 주지.’
진원은 마구의 부가 스킬을 사용했다. 이것으로 MP는 거의 바닥난다.
하지만 눈앞의 붉은 늑대는 자신을 만만히 보고 있는 중이다.
스킬을 사용하기에 딱 좋은 상황!
손에 생성된 마구가 서서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붉은 늑대는, 그를 기습하지 않고 검집에다가 오히려 검을 집어넣고 자세를 취했다.
‘이걸 받아 내겠다고? 대체 얼마나 나를 얕보는 거냐.’
[3…… 2…….]
강하게 진동하는 마구를 쥐고, 와인드업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체중과 힘을 잔뜩 실었다.
“한번 받아 내 봐라!”
쐐에엑!
공기를 찢을 듯이 날아간 마구는 순식간에 붉은 늑대에게 도달했다.
쉬익! 서걱!
검집에 손을 올리고 있던 붉은 늑대는, 엄청나게 빠른 동작으로 검집에서 검을 꺼내 강하게 진동하는 마구를 일도양단했다. 발도였다.
“하, 저걸 저렇게 간단하게 막는다고?”
한꺼번에 MP가 빠져나가 현기증이 일었다.
눈앞의 붉은 늑대는, 생각보다 강했다.
쩌적. 쩌저적.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자신이 던진 마구로 검이 산산 조각나 버렸다는 것이었다.
붉은 늑대는 조금 놀란 듯한 표정으로 부서진 검 자루를 바라보더니, 검을 버리고 일직선으로 자신에게 달려왔다.
탓, 탓, 탓!
엄청난 스피드!
진원은 현기증이 나는 와중에도 팔을 교차해 머리를 보호했다.
순식간에 그의 앞으로 다가온 붉은 늑대는 주먹으로 복부를 가격했다.
퍼억!
“커억!”
HP : 350/500
단 한 번의 타격으로 HP가 100 이상 깎여 나갔다.
그리고 놈은 이어서 공중으로 도약해, 발로 진원의 얼굴을 노렸다.
진원은 억지로 몸을 날려 발차기를 겨우 회피했다.
촤악!
모래가 사납게 튀면서 안에 들어있던 뼛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졌다.
‘제길, 비겁하지만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다.’
모래를 한 움큼 집어 들어, 그대로 놈에게 던졌다.
촤악!
붉은 늑대는 손을 들어 모래를 막았고, 그 틈에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현재 상황은……· 답이 없었다. 놈이 너무나도 강했다.
MP도 바닥나 버린 진원은 위기감을 느꼈다.
저벅저벅.
붉은 늑대는 서서히 그를 향해 걸어왔다.
‘방법이 없는 건가. 큭, 아이템만 사용할 수 있었어도!’
자신도 계속해서 거리를 벌렸지만, 아까처럼 빠르게 돌진해 오지는 않았다.
어느새 등이 벽에 닿는 것을 느꼈다.
파사삭.
돌조각들이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다가오던 붉은 늑대의 눈이 조금, 커졌다.
“……?”
작은 변화. 붉은 늑대의 시선은 자신의 등 뒤, 벽을 향하고 있었다.
진원은 고개를 돌려 벽 쪽을 바라봤다.
자세히 보니, 갈라진 틈 안으로 무엇인가가 있는 듯했다.
“합!”
쿵! 쿵!
잠시의 고민조차 하지 않고, 주먹으로 벽을 강하게 쳤다.
주먹의 살이 까지며, 피가 흘러나왔지만,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파사삭!
근력 40의 힘으로 벽이 갈라지고, 그 안에 들어 있던 것은 나무로 조각한 듯이 보이는 늑대 형상의 조각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