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아일랜드-2
포탈 안으로 들어가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아일랜드 -안전 구역A]
마치 해외의 소도시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유럽 양식의 작은 건물이 줄줄이 들어서 있었고, 그 사이를 플레이어들과 정체 모를 인간형 로봇들이 북적대며 지나다니고 있었다.
‘안전 구역이라. 그래서 서로 싸우지 않는 건가.’
진원은 주위를 둘러보고 미리 꺼내 두었던 토르의 장난감 망치를 조용히 인벤토리에 다시 넣고, 정보를 얻기 위해 플레이어들이 가장 북적이는 장소로 향했다.
“저기요, 그거 제가 먼저 본 퀘스트예요.”
“제가 먼저 집었는데요.”
플레이어들이 북적거리는 게시판 앞.
여러 장의 종이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플레이어들은 그것을 빠르게 읽으며 좋은 퀘스트를 차지하려고 경쟁했다.
‘흠, 퀘스트 보상이 경험치 캡슐이나 아이템, 그리고 재화인가.’
간단한 소일거리부터 섬의 몬스터들을 처치하는 퀘스트까지 다양했다.
물론 위험도가 높아질수록 보상이 좋은 편이었다.
주머니를 뒤적거려 초보자 가이드를 꺼내자 다른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일제히 진원에게로 향했다.
‘제길, 아무 생각 없이 꺼냈는데, 실수한 건가.’
이곳에서 노려지기 좋은 사냥감이 아일랜드에 막 온 초보 플레이어일 것은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시작부터 다굴 당하면 골치 아픈데…….’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곤란함을 느끼고 있을 때, 옆구리를 콕콕 찌르는 느낌이 와 고개를 돌렸다.
“너, 너 말이야. 죽고 싶은 게야? 아니면 그냥 미친놈인 것이야?”
그의 옆구리를 찌르고 있는 사람은 겉보기에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미소년이었다.
머리 색깔이 은발인 것과 흑색의 도포를 입고 있는 것을 빼면, 큰 특징은 없었다.
아, 말투가 이상한 것도.
“넌 무슨…… 아니, 그냥 초보입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초등학생이 100억이나 내고 아일랜드에 갈 수 있을 리도 없었고, 아무렇지 않게 다른 플레이어를 건드릴 리도 없었다.
“다짜고짜 반말부터 하면 그냥 뭉개 버리려고 했는데, 눈치는 있구나. 이렇게 보여도 너보다는 나이가 많지. 여기서 살아 나가고 싶으면, 나를 따라오거라. 딱 보니 무작정 온 거 같은데, 그 상태로 3일도 못 넘길 게다.”
섬뜩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은 남자애는, 그대로 등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 남자애한테서 최대한 거리를 멀리 두고 떨어졌다.
그는 속으로 조금씩 솟아오르는 긴장감을 죽이면서, 그대로 남자애의 뒤를 따라갔다.
현재로서는 마땅한 방법도, 정보도 없었기 때문이다.
‘안전 지역이기도 하고, 혹시나 싶으면 순간 가속으로 도망칠 수도 있으니까, 일단 따라가 보자.’
그렇게 한참을 따라 들어간 곳은 밀집된 건물들과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허름해 보이는 집이었다.
남자애는 문을 열고 들어가, 바닥에 있는 문고리를 열고 그대로 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따라오거라. 거기 커다란 짐은 그냥 위에 놔두고. 너에게 손찌검을 하지는 않을 테니 걱정은 말거라.”
그 말에 진원은 커다란 배낭을 조심스럽게 내려두고, 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어두워야 할 지하는, 오히려 밝았다.
천정에서 돌이 빛을 발하면서 내부를 환하게 밝혀 주고 있었기 때문.
남자애는 커다란 의자를 두 개 끌고 와 마주 보게 놓고, 앉으라고 말해서 그대로 앉았다.
“내가 너를 왜 이곳으로 데려왔는지 아느냐? 그리고 그대로 이곳으로 따라온 이유는?”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명확한 대답을 하기에는 어려운 질문이었다.
“왜 이곳으로 데리고 오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따라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따라왔다는 거구나.”
“그렇죠.”
“너, 상점 스킬 가지고 있지 않느냐?”
진원은 그 말에 상당히 당황했다.
눈을 크게 뜨고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눈앞의 남자애를 쳐다봤다.
“어떻게 알았냐고? 나도 그런 거 가지고 있다네. 심안이라고 하지. 내가 널 여기로 데리고 온 이유 중 하나라네. 그대로 놔두면 2일도 안 지나서 개죽음 당할 것 같아서 말이네.”
‘미친, 여기는 무슨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거지. 생각을 더 하고 왔어야 됐나.’
“흠, 자네 금수전가 뭔가 하는 그건가? 레벨이 20인데 어떻게 여기로 온 거지? 입장 티켓이 한두 푼 하는 것이 아닐 텐데. 거기다가 여기 있는 플레이어의 평균 레벨은 40대라네.”
“금수저는 아니고……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
그 말을 시작으로, 자신이 아일랜드로 들어오게 된 계기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흐음…….”
진원의 말을 듣던 남자애는 눈을 감고 생각에 빠진 듯이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나도 요새 늙은 것 같아. 변덕이 심하단 말이지.”
이윽고 눈을 뜨고 의자에서 일어난 남자애는 진원을 향해 말했다.
“너, 나의 제자가 되거라.”
“네?”
도대체 이게 무슨 개소리지.
다짜고짜 이상한 지하로 끌고 온 것도 모자라 자신의 제자가 되라니.
심안이라는 괴상한 스킬을 가진 것도 그렇고.
“뭔가 다른 목적이 있으신 건가요? 아니, 그런데 그전에 혹시 나이가 어떻게……?”
그냥 자신이 다른 플레이어보다 조금 더 특별하다고 굳이 제자가 되라는 말까지는 하지 않겠지.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거기다가 아까부터 말투가 너무 신경 쓰였다.
“60부터 세는 게 귀찮아져서, 자세한 나이는 나도 모른다네. 딱히 관심이 없어서 말이지. 이대로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 자네에게서 가능성을 봤다네. 그래서 될 텐가? 말 텐가?”
겉보기에는 영락없는 초등학생인데 60 이상 먹은 할아버지라고?
보통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
하지만 플레이어라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제안. 당연히 바로 결정내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진원이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남자애는 씨익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나는 레벨이 64라네.”
“잘 부탁드립니다, 스승님.”
그리고 그날, 그는 눈앞의 남자애의 제자가 된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
“허억! 허억!”
“어~허! 이제 겨우 반 했다. 쉬지 말고 계속하거라.”
‘이 미친 악마 새끼가.’
그 뒤로 그는 한 달 동안, 정말 최소한의 수면 시간 이외에는 지하실에 갇혀 반복적인 훈련을 수행했다.
“구우십팔, 구우십구! 허억! 백! 끄으!”
“좋아. 이제 백 번만 더하고 1분 동안 쉬게 해 주도록 하지.”
그것은 살인적인 체력 강화 훈련이었다.
정말 지옥 같은 나날이었다. 체력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 진원이었지만, 운동 강도가 높아 갈수록 입에서 저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으으! 술 냄새 때문에 집중이 안 되잖아요! 술은 제발 나가서 마셔 주세요!”
현재 스승은 자신의 등에 앉아서 술을 병째로 들고 마시고 있었다.
도수가 높은 술인지 알코올 냄새가 코를 강하게 찔렀다.
“어~허! 이게 어디서 스승한테! 이것도 다 훈련이야, 훈련!”
‘제기랄. 체력 훈련은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오늘만 견디자!’
진원은 이를 악물고 계속해서 팔굽혀펴기를 반복했다.
‘흐음, 그래도 의지는 꽤나 있구만. 역시, 내가 보는 눈은 있단 말이지.’
그가 자신의 제자가 되자마자, 별다른 말없이 한 달 동안 체력 강화 훈련만 주야장천 시켰다.
중간에 도망칠 법도 한데, 묵묵히 따라와 주니 나름 뿌듯함을 느꼈다.
‘강도를 조금 더 올려 볼까? 정말로 키울 맛이 나겠어.’
흠칫.
그는 자신의 등 위에서 입맛을 다시는 스승을 보고 뭔가를 느꼈는지 몸을 잠시 떨었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나고,
“헉! 헉! 다, 다했다.”
체력 훈련을 끝마친 진원은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그것을 본 스승은 어디서 HP 포션을 꺼내와 진원에게 건네주었다.
“그대로 마시면서 듣거라. 이 정도면, 체력은 완성되었을 게야. 너는 처음부터 몸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 있어서 한 달 정도로 끝냈다. 그럼 이제 전반적인 상황 설명을 해 주도록 하마.”
스승은 의자를 꺼내 와 걸터앉은 뒤, 목소리를 고르고 말을 시작했다.
“아일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이야. 몬스터를 사냥하면서도, 동시에 플레이어의 습격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라네. 그래서 하루 종일 체력 훈련만 시킨 것이 첫 번째. 두 번째로는, 여기는 이미 편먹을 애들은 다 편을 먹어 버렸지.”
“그렇군요.”
진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말해서, 너와 나 빼고 다 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네.”
이어서 스승은 아일랜드에 대해 추가적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아일랜드는 도중에 포기가 가능하다. 중도 포기자들의 경험치는 계속 축적된다.
일정 경험치 이상이 모이면 캡슐 형태로 저장되는데, 이것을 “보급” 형태로 로봇들이 특정 지역에 뿌린다는 것이다.
그 외로도 가끔씩 아이템이나 메달도 뿌린다고 하니 눈여겨보는 것이 좋을 듯했다.
거기다가 아일랜드에서 보이는 로봇들은 추정되는 레벨로만 최소 80 이상.
아마 NPC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듯했다.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겠지.
“시간이 지나면서 그룹이 생기고, 서로 싸움을 피하려고 하다 보니 깡통 놈들이 만든 이벤트지. 일단 보급 알림이 오려면 여유가 좀 있으니, 그때까지 열심히 단련을 목표로 하면 된다. 현재 너 정도 레벨이면 캡슐 1개만 건져도 5레벨은 그냥 오를 게다.”
현재 자신의 레벨은 20.
6레벨을 올리려면 C등급 이상의 던전을 최소 열 번 이상은 돌아야 한다.
그런데 보급 캡슐 하나로 5레벨이나 오른다니. 플레이어들이 눈독을 들일 만했다.
스승의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던 진원은, 헛기침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크흠, 흠! 그리고 내 친구였던 놈한테 통수를 좀 세게 맞아서 말이네. 열심히 가르쳐 놨더니 아이템을 써서 내 힘의 절반 이상을 봉인해 버렸어.”
“친구? 제자가 또 있었나요? 스승님, 설마 저랑 똑같이 한 달 동안 체력 훈련은……”
“응? 아니, 너만 특별한 거고, 걔는 세 달 정도.”
‘뒤통수 때릴 만했네. 아무리 그대로 세 달은 너무 심하잖아.’
스승의 지독함에 입이 저절로 벌어지는 듯했다.
“지금 이 몸 상태로 그 녀석을 이기는 건 힘들어서 말이네. 반쯤 포기했었는데, 네놈이 내 눈앞에 나타났지 뭐냐. 껄껄껄!”
“그래서 저보고 대신 이겨 달라는 거죠?”
“응? 그렇게 되느냐? 물론 혼자서 하라고 하지 않는다. 나도 도와줄 테니. 힘의 절반밖에 못 쓴다고 해도 아일랜드의 플레이어 절반 정도는 죽일 수 있다.”
‘뭐야 그게. 엄청나잖아.’
“그래도 아직 갈 길은 멀다. 체력 훈련을 끝냈으니, 너에게 본격적으로 나의 기술을 가르쳐 주지. 그 뒤로 몬스터를 잡든지 캡슐을 얻으러 가든지 하면 된다.”
빈 술병을 한쪽에 집어 던진 스승은, 가볍게 몸을 풀면서 진원에게 다가갔다.
“자, 그럼 밖으로 나오거라. 여기는 좁아서 안 되겠다.”
‘이번엔 또 무슨 훈련을 시키려고……’
진원은 한숨을 내쉬며 스승을 따라나섰지만, 아일랜드에서 무사히 나가기 위해서는 별도리가 없었다.
‘아, 보급 이야기만 아니었어도 오늘 안에 탈주했다.’
스승을 따라 그대로 넓은 평야로 나가자, 그는 진원에게 서 있을 장소를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