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아일랜드-1
진원과 최은식이 도착한 곳은 겉으로 보기에도 60층은 넘어 보이는 고층 빌딩.
회전문을 열고 들어가니 미리 기다리고 있었는지 길드원 1명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진원 씨, 맞으시죠?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지인인가요?”
“네? 그렇죠. 얘도 같이 들어가도 될까요? 일단 동업자라서요.”
길드원은 그의 말을 듣더니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문자를 보냈다.
잠시 후, 괜찮다는 확인을 받고 그대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길드장님을 만나기 전에, 제가 간단히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자 길드원은 깔끔한 양복에 넥타이를 정돈하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일단 김진원 씨가 던전 입장이 금지된 것은, 피닉스 길드가 벌인 짓일 확률이 상당히 높습니다.”
‘역시.’
“네? 그게 무슨? 도대체 형한테 그러는 이유가 뭐죠?”
그는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최은식은 당황한 기색으로 길드원을 향해 되물었다.
“자세한 설명은 길드장님께 들으시면 되겠습니다. 도착했습니다. 내리셔서 그대로 직진하시면 됩니다. 그럼.”
간략한 설명을 마친 길드원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대로 내려갔다.
둘은 나와서 그대로 직진해 길드장이라고 적힌 방문을 노크했다.
똑똑.
“김진원이야? 들어와.”
“1명 더 있는데 괜찮지?”
“그래. 태우 오빠한테 들었어.”
마치 친구끼리 대화하는 말투였다. 최은식은 옆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상당히 넓은 공간에 길드장 신혜진이라는 화려한 명패가 박힌 책상이 한눈에 들어왔다.
진원과 최은식을 본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앞에 있는 소파로 향했다.
“너희들도 여기 앉아. 오면서 대략적인 설명은 들었지?”
“그래.”
그대로 소파에 앉으면서 대답을 했다. 눈앞에 고급스러운 과자와 차가 보였다.
“저, 저기! 피닉스 길드가 형에게 왜 그러는 거죠?”
최은식도 그의 옆에 앉으며 그녀에게 질문했다.
“넌 이름이 뭐지? 얘 동생이야?”
“제 목숨을 구해 주신 형이죠. 친한 동생입니다.”
‘이놈이 누구 맘대로.’
“흐응……. 어쨌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강압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김진원 너는 그대로 계속 던전에 입장하지 못할 거야.”
그녀는 차를 들어 마시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왜 대형 길드가 너한테 그런 짓을 벌였는지는 모르겠어. 그런데 굳이, 내가 도와야 될 이유가 없어. 그렇지?”
신혜진은 씨익 웃으면서 마시던 차를 내려놓았다. 시작부터 주도권은 자신에게 있었다.
김진원이 이곳에 오기 전부터, 어떤 식으로 대화를 하며 자신의 길드에 넣을지 미리 생각했다.
“우리, 전설의 연합 영혼의 봇 듀오 아니었어?”
“이런, 씨…… 휴우.”
그의 말에 순간 욕이 나올 뻔했으나, 빠르게 진정시키고 말을 이어 나갔다.
“내 밑으로 들어와. 그럼 지금 바로 해결해 줄게.”
대형 길드의 길드장이 일개 플레이어에게 스카우트 제안을 하는 것은 플레이어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
그의 잠재력을 눈여겨봤다는 것이다.
‘혼자서 가볍게 손명유를 작살 내 버린 것도 그렇고.’
그러나 그의 입에서 바로 나온 대답은 의외였다.
“음……. 그건 안 되겠는데.”
“뭐? 왜?”
싫다는 대답이 나오자 그녀는 살짝 당황해 다시 물어봤다.
“옆에 얘랑 계약한 것이 있어서 말이지. 누구 밑으로 들어가는 건 안 돼.”
그 말에 그녀는 고개를 돌려 최은식을 쳐다봤다.
“형이랑 저는 길드를 만들 계획입니다. 물론 대형 길드로 성장시키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지금 상황을 도와준다면, 나중에 어떤 부탁이라도 들어줄게. 물론 사람을 죽여 달라거나 그런 것만 빼면.”
진원의 말을 듣던 그녀는 어이가 없는지 웃음이 나왔다.
앞의 길드를 만들어서 성장시킨다는 말도 그렇고, 너무 터무니없는 내용들뿐이었다.
“하……. 네가 뭐 랭커라도 돼? 그렇게 당당하게 요구를 말하니까 내가 오히려 당황스러운데.”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 난 자신 있거든.”
다른 플레이어라면 바로 매몰차게 거절했겠지만, 감정 스킬을 가진 자신은 달랐다.
‘대략적인 정보밖에 열람할 수 없지만, 뭔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자신은 플레이어가 되면서 감정 스킬을 가지고 시작했다.
단편적인 정보밖에 알 수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되는 스킬이었다.
‘??.Lv.3이라. 나처럼 무슨 특수한 스킬이겠지. 거기다가 스킬 레벨도 올릴 수 있으니 마냥 개소리는 아니겠지. 그럼 어떻게 할까…….’
그녀는 한동안 소파에 가만히 앉아 다리를 꼬고 가만히 생각했다.
그러자 매끈하고 새하얀 다리가 드러났다.
최은식은 그것을 보더니 당황하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진원이 앞에 있는 과자를 집어 다 먹어 갈 때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눈앞에 앉아 있는 그를 한번 떠보기로 했다. 허세인지, 아닌지.
“좋아. 도와줄게. 이 빚은 상당히 클 거야.”
“그래, 믿어 줘서 고맙다.”
그녀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자신의 책상으로 가 꺼내 온 것은, 티켓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놀이공원 입장권처럼 생겼다.
“이건 아일랜드 입장권이야. 여기서 레벨 업을 하고, 다시 돌아와서 정식으로 플레이어 카드를 발급받아. B등급 이상만 받아도 피닉스 길드에서 건드리기 까다로울 테니까.”
티켓을 진원에게 넘겨주고, 그대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주의할 점은, 아일랜드는 무법 지대야. 법이라는 것이 없어. 몬스터가 우글거리고, 플레이어들끼리도 서로 못 죽여서 안달인 곳이야.”
“그, 그런 곳을 형 혼자서 가는 건가요? 저도 같이……”
그녀는 손을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최은식을 막았다.
“내가 볼 때 네가 같이 가게 되면 오히려 걸림돌이 될 것 같은데?”
“크윽. 굳이 형이 아일랜드에 갈 필요가 있나요? 그냥 신혜진 씨가 도와주신다면……”
“미래를 위한 투자라며? 그럼 그 가치를 증명해야 되지 않을까?”
맞는 말에 반박할 수가 없는 최은식은 입술을 깨물며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물론 강요는 안 해. 그리고 이 티켓, 기본가가 100억이야. 거기다 물량도 그렇게 많은 편이 아냐. 나도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란 거지. 거기다 위험한 만큼, 취할 수 있는 이득도 많다는 거지.”
티켓을 가만히 바라보던 진원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갈게.”
“형!”
“흐응. 남자답네. 그럼 여기 이 각서에 사인해. 무슨 일이 발생해도 타이거 길드에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각서야.”
모든 던전의 입장 경로가 막힌 상황. 그리고 신혜진이 건네준 100억 원짜리 입장 티켓. 거기다가 각서까지.
‘위험해도 갈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돌아와서 꼭! 피닉스 길드를 먼저 조져 주지.’
진원이 엄지손가락으로 각서에 지장을 찍자, 잠시 후 노크 소리가 들리고, 길드원 1명이 문을 열고 들어와 그에게 커다란 배낭을 건네주었다.
“응? 이게 뭐지?”
“서바이벌 키트입니다. 물이나 간단한 식량, 응급 도구 등이 들어 있습니다. 아일랜드에 가실 거면 도움이 될 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혹시 다른 정보는 없나요?”
“없습니다.”
그는 길드원의 대답에 고개를 돌려 신혜진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대로야. 아일랜드에서 돌아온 플레이어는, 돌아왔다는 기억만 있지 그 안이 어땠는지의 기억이 없어.”
‘미리 대비를 해 봤자 큰 효과는 없겠네.’
“그래. 그럼 이건 잘 쓸게.”
진원은 스마트폰을 꺼내 동생에게 문자와 함께 돈을 보내고, 그 자리에서 바로 티켓을 찢었다.
파지지직-
그러자 눈앞에 푸른 포탈이 생겨났다. 사람 1명이 간신히 들어갈 만한 크기.
“어? 뭐야, 바로 가려고?”
그 장면을 보던 그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일부러 그를 떠보려고 각서까지 건네며 살짝 무리수를 뒀는데, 눈앞에서 보란 듯이 티켓을 사용하다니.
“그래.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은식아, 나 신경 쓰지 말고 너도 따로 던전 돌고 있어.”
본래 같으면 충분한 대비를 하고 가야 하지만, 그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정확히는, 돈이 없었다.
최은식에게 빌리든가, 아니면 계약금을 당겨서 받는다는 방법이 있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저놈에게 의지하다니, 그건 안 되지.’
“……네?”
“아니, 잠깐만! 진짜 간다고? 바로?”
말을 끝낸 진원은 빠르게 포탈 안으로 들어갔고, 포탈은 순식간에 크기가 줄어들며 사라졌다.
신혜진과 최은식은 그것을 보고 한동안 벙쪄서 아무 말도 못했다.
***
“뭔 나무들이 저렇게 크냐.”
진원이 포탈로 들어가고 처음 본 광경은, 엄청나게 큰 나무들이었다.
고층 빌딩 수준으로 높게 자라난 나무들을 살펴보다가, 진원의 눈에 어떤 인물이 들어왔다.
‘플레이어인가.’
낡은 듯한 로브로 전신을 다 가리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멀리 떨어져서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일단 저 사람에게 가서 물어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바스락. 바스락.
‘플레이어나, 몬스턴가.’
일부러 기척을 죽이고 움직이는 듯한 분위기.
천천히 눈동자를 굴리며 소리로 위치를 파악하고는 어떻게 나올지 지켜보았다.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다! 죽이자!”
“이햐! 오늘은 운이 좋구만!”
수풀에서 험악하게 생긴 남자 2명이 차례로 튀어나와 단검을 들고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미리 대비하고 있던 진원은 인벤토리에서 토르의 장난감 망치를 꺼내 오른쪽에서 달려드는 남성을 향해 휘둘렀다.
“끼학!”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날아간 남성은 나무에 부딪혀 그대로 기절했다.
“어, 어어! 이봐! 괜찮아? 에이 씨, 튀자!”
남은 1명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무슨 아이템을 사용했는지 그대로 몸이 빛에 휩싸이며 사라졌다.
‘뭐지, 이 X신들은.’
그대로 기절한 플레이어에게 다가가 발로 툭툭 건드려 보았지만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그대로 놔두고 앞으로 향했다.
로브를 뒤집어쓴 인물은 눈으로는 보이는 거리에 있었지만, 막상 걸어 보니 상당히 거리가 있었는지 30분 이상 걷고 나서야 눈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기요. 혹시 플레이어신가요?”
그 말에 로브 안에서 종이를 하나 꺼내 진원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아일랜드-초보자 가이드]
1. 아일랜드는 플레이어들의 인생 역전을 위한 섬이자, 던전입니다.
2. 이곳에서 법은 없습니다. (안전 구역 제외) 강한 플레이어가 곧 법입니다.
3. 아일랜드에서만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 존재합니다. 때로 그것은 강력한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4. 가끔씩 등장하는 보물 고블린을 사냥하거나, 플레이어들을 사냥하거나 항복 선언을 받아 메달 7개를 획득해 저에게 가져오면 귀환 포탈을 열어드립니다.
5. 메달 7개를 가져온 자에 한해, 아일랜드의 아이템 하나를 가지고 돌아갈 수 있는 특권을 드립니다. 그 대신, 아일랜드에 관한 기억은 모두 사라집니다.
6. 중도 포기가 가능합니다. 대신, 플레이어 레벨 절반이 하락합니다.
‘섬 자체가 던전에, 법도 없다라……. 신혜진의 말대로 정말 무법 지대구만. 항상 긴장감을 유지할 필요가 있겠어. 그리고 의외인 점은, 중도 포기가 가능하다는 것인가.’
그만큼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그렇게 찬찬히 초보자 가이드를 읽어 내려가자 눈앞에 있는 인물이 손을 휘휘 저어 포탈을 만들었다.
“뭐야. 여기 들어가라고요?”
끄덕.
로브를 뒤집어쓴 인물은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가라는 듯이 두 손으로 포탈을 가리키며 정중하게 자세를 낮췄다.
“하긴, 여기 주위로는 아무것도 없긴 하네.”
이곳에 있어도 아무것도 없다.
아마 본격적으로 저 포탈 안에 들어가야 무엇이라도 알 수 있겠지.
초보자 가이드를 자신에게 준 것을 보면, 눈앞의 인물은 아마 관리자 같은 역할일 것이다.
초보자 가이드를 곱게 접어 주머니에 넣고,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