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브레이크-4
“괜찮아요. 어린 것 같은데 학생이에요?”
“네……. 고등학교 1학년이에요. 정말 죄송합니다.”
동생이 어깨를 부딪친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진원이 동생에게 다가가 꿀밤을 먹였다.
딱!
“아!”
“그러게 조심하라고 했지. 죄송합니다. 제 동생이 오늘 신이 났나 봐요. 어?”
“이렇게 또 뵙게 되네요. 안녕하세요.”
방금 전까지 PC방에서 자신에게 발차기를 하던 여성이었다.
“야구장에서도 때리려고 하지는 않을 거죠?”
“어머, 농담도 잘하시네! 호호!”
그녀는 부드럽게 웃어넘기는가 싶었지만, 눈은 진원을 째려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언니. 오빠 아세요?”
그녀는 그런 지원을 귀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조금 인연이 있지. 동생이 되게 착하고 귀엽게 생겼네요. 저는 신혜진이에요. 그럼 야구 재밌게 보세요.”
간단히 인사를 끝내고 난 후 부드럽게 웃던 신혜진은 중앙 쪽 자리에 가서 앉았다.
“오, 뭐야? 던전 간다 하고 나가더니 저런 예쁜 언니를 어떻게 알게 된 거야?”
‘PC방에서.’
지원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진원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까불지 말고 빨리 치킨이나 받아 와.”
“알았어!”
동생이 치킨을 받아 오고 얼마 후, 투산과 심송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오늘 투산과 심송의 맞대결이 시작되겠습니다. 그전에 지난번 경기를 살펴보면 심송이 강력한 타선을 보여 주며 일쥐를 가볍게 잡았었죠.]
[네! 그렇습니다. 투산도 마찬가지로 승률 1위인 팀답게 높은 승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해설자들의 해설을 시작으로 선수들이 몸을 풀고, 마운드로 가 자리를 잡았다.
[오늘의 투산 수비 위치를 알아보자면, 오늘의 선발 투수 강민호 선수와 김준호 선수가 배터리로 호흡을 맞춥니다. 외야 쪽 수비가 강세인 만큼…….]
“오빠, 영호 오빠 이길 수 있겠지?”
“흠, 좀 더 봐야 알겠는데. 야구야 뭐 질 때도 있으니까 너무 아쉬워하진 말고.”
“응.”
그렇게 무난히 경기를 시작하나 했지만, 선수들이 출입하는 출입문 쪽 앞에서 포탈이 생겨났다.
츠츠츳-.
[아, 하필이면 경기 시작 전 포탈이 나타났군요. 규정에 따라 아쉽지만 경기 중지를 해야 되겠습니다.]
‘참나, 운도 없지.’
스포츠 경기나 중요한 행사 장소에 포탈이 갑작스럽게 등장하고는 했다. 그로 인해 당연히 경기나 행사 일정은 취소되었다.
관중들은 경기가 중단되자 아쉬움에 소란을 피웠다. 어떤 사람은 손에든 팝콘을 경기장 안으로 집어 던지면서 화를 내기도 했다.
해설자들이 소란을 진정시키려 애쓰고 있을 때,
쩌적. 쩌저적.
하늘이 갈라지는 소리가 나며 기괴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3년 전의 그 악몽, 그 누구도 기억하고 싶지 않을 대참사.
그 소름 끼치는 소리에 사람들의 소란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고, 시선은 하늘로 향했다.
[지금부터 던전의 몬스터들이 포탈 밖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튜토리얼 이후로 몬스터가 던전 밖으로 나오거나 하늘에서 쏟아지거나 하는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투산과 심송의 야구 경기가 있던 이날, 하필이면 ‘던전 브레이크’라는 현상이 발생했다.
“키긱!”
“크아아!”
“크워어어!”
기괴한 음성이 끝남과 동시에 포탈에서 몬스터들이 하나둘씩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 장면을 본 관중들은 혼비백산하며 밖으로 도망쳤다.
“꺄아악!”
“빨리 나가세요! 빨리!”
‘큭, 제기랄. 하필 이럴 때에.’
진원은 당황하지 않고 동생부터 찾았다. 현재 패닉에 빠진 관중들에게 밀려 동생이 다칠 수도 있었다.
“오, 오빠…….”
지원은 눈앞에서 몬스터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두려움에 울먹였다. 우선은 동생이 먼저다.
“괜찮아. 길드에서 플레이어들이 금방 올 거야. 일단 빨리 나가자. 사람 많아서 다칠 수도 있으니까 내 손 꼭 잡고.”
진원은 그런 동생을 최대한 안심시키며 함께 야구장 밖으로 나갔다.
야구장 밖은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어떻게든 택시를 잡아 동생을 태웠다.
“택시 타고 집에 가 있어. 여기 포탈에서만 몬스터가 빠져나왔다니 괜찮을 거야. 나는 영호가 괜찮은지 잠깐 보고 바로 갈게. 집에 도착하면 문자 꼭 보내고. 알겠지? 그럼, 잘 부탁드려요, 기사 아저씨.”
택시가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바라보던 진원은, 몸을 돌려 경기장 안으로 내달렸다.
**
그사이 야구를 관람하던 신혜진은 관중석에서 뛰어내려 포탈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을 막고 있었다.
“오빠, 동원 가능한 길드원들 최대한 지원해 줘! 포탈에서 몬스터가 나왔어! 내 무기도 좀 챙겨 줘!”
그녀는 길드에게 연락하며 지원 요청을 보냈다.
-네? 몬스터가요? 그게 무슨…….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몬스터들의 등급이 대부분 C~D급 사이였다는 것과 그중 다른 길드에 소속된 플레이어들도 있었다는 점이다.
“키엑!”
“끄륵!”
각자 다른 소속의 플레이어들 몇 명이서 무난하게 몬스터들을 처치하는가 싶었는데,
“잘 찍고 있냐, 얘들아?”
“예! 물론이죠!”
한쪽에서 영화 촬영하는 기분을 내면서 몬스터들을 처치하고 있는 마법사 계열 플레이어가 보였다.
“승진 각 제대로 잡혔다! 나 손명유! 피닉스 길드의 간부진까지 간다!”
머리를 금발로 물들인 남성은 파이어 볼을 몬스터들에게 난사하고 있었다.
“형, 화려한 걸로 한 방 해야 더 눈에 띄죠!”
“그렇지! 네 말이 맞다! 와하하!”
손명유는 그 말에 고민하지 않고 신나게 캐스팅을 시작했다.
‘염병하네. 그건 그렇고, 딱히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되겠다.’
어느새 다시 경기장 안으로 들어온 진원은 눈으로 영호를 찾았다.
영호를 포함한 야구 선수들은 다행히 한쪽 구석으로 잘 도망쳐 있었다.
“휘몰아치는 화염!”
캐스팅이 끝난 손명유가 손을 위로 올리며 마법을 시전했다. 손에서 화염이 사납게 몰아치며 주위 몬스터들에게 퍼져 나갔다.
화염은 몬스터들을 집어삼키며 살아 있는 듯이 날뛰었다.
그렇게 무난하게 몬스터를 처치하나 했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억, 젠장. 너무 무리했나.’
그가 얼마 전에 습득한 직업 스킬, 휘몰아치는 화염은 생각보다 범위 조절이 까다로운 마법이었다.
그는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 주려 했지만,
“억! X됐다!”
손에서 사납게 몰아치던 화염은 결국 제어권을 벗어나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했다.
“히익!”
그리고 그 화염은, 떨어져 있던 다른 야구 선수 1명을 향해 몰아쳤다. 그것을 바라보던 진원의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이름 모르는 야구 선수 1명 때문이 아니다. 그 선수를 구하려고 달려드는, 영호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저 착해 빠진 놈이 뭐 하는 거야!”
진원은 경악하며 바로 영호를 향해 순간 가속을 사용했다.
퍼엉!
마법이 폭발하며 폭음이 들렸다. 그것도 진원이 영호 앞에 도착하기, 단 세 걸음 전에.
“최영호!”
영호는 폭발의 충격에 뒤로 날아갔다. 진원은 영호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뒤로 가서 받았다.
“야, 정신 차려! 인마!”
새하얗던 야구복은 숯으로 칠을 한 듯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진원은 인벤토리에서 HP 회복 포션을 꺼내 영호의 입에 부어 주었다.
영호는 스킬의 피해로 기절했는지 의식이 없었다.
그것을 본 손명유는 경악했다.
‘마, 망했다.’
일반인을 상처 입힌 것도 문제인데 야구 선수이자 현재 큰 기대를 받고 있는 슈퍼 루키에게 상처를 입혔기 때문이다.
이것은 피닉스 길드의 명성에 먹칠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본래라면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해도 모자를 판에, 손명유는 냅다 달리며 자리에서 빠르게 도망쳤다.
“야! 당신 미쳤어? 뭐 해?”
신혜진이 그 광경을 보고 경악했지만, 무기 없이 워 베어를 단신으로 상대하고 있어서 달아나는 손명유를 잡을 수가 없었다.
진원은 손명유가 도망치는 것도 모른 채 HP 포션을 꺼내 영호에게 계속 부었다.
“조금만 참아라! 제발!”
시간이 지나면서, 소식을 듣고 달려온 다른 길드원들까지 합류해 상황은 금방 종료되었다.
영호는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여전히 의식은 없는 채였다.
진원은 한동안 마운드에 멍하게 서 있다가, 이빨을 꽉 깨물었다.
뿌득.
포탈 밖으로 나온 것은 하급 몬스터들이었고, 다른 플레이어들이 무난하게 그것을 막아 주었다.
그래서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겠거니, 했었는데.
‘손명유라고 했지. 거기다가 피닉스 길드. X 같은 놈들. 너는 내가 꼭 찾아낸다.’
진원은 당장이라도 사람 죽일 기세로 사납게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 장면을 본 신혜진은 급하게 달려 나가 진원을 멈춰 세웠다.
“잠깐, 잠깐만! 너 이상한 생각하는 거 아니지?”
진원은 그런 그녀를 무심하게 쳐다보고, 다시 몸을 돌려 걸어 나가려 했다.
“네가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피닉스 길드는 대형 길드야. 적으로 돌려서 어쩌려고 그래? 너 동생도 있잖아.”
하지만 그녀의 만류에도 진원의 표정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어 보였다.
“후우……. 말려도 소용없겠네. 적어도 그럼 죽이지는 않겠다고 약속해. 방금 도망친 놈, 우리 길드원 총동원하면 충분히 찾아낼 수 있어. 너 그놈 어디로 도망쳤는지도 모르잖아?”
“……그래.”
진원은 짧은 대답을 남기고 신혜진에게 연락처를 넘겨주고 그대로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경기장을 나갔다.
“하, 도대체 길드원 관리는 어떻게 하는 거지, 이놈들은?”
신혜진은 방금 상황을 어이없어 하며 타이거 길드 조사 본부에 연락을 했다.
[야구 유망주 최영호! 플레이어의 스킬 불발로 인해 중상! 현재 상태는?]
[피닉스 길드, 해당 길드원에 대해서 엄정 조치를 하겠다. 최영호 선수에게 지원 아끼지 않을 것.]
[경찰, 고의성이 있는지 조사 중. 몬스터를 막으려다가 발생한 실수라면 처벌하기 어려워…….]
[3년 전의 악몽이 재현되나? 이번에는 포탈에서 몬스터가 나와…….]
[국방부, 시급히 군 병력을 포탈 주위로 배치하도록 하겠다.]
그 후 한동안 여론은 뜨거운 감자처럼 달아올랐다.
기자들은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 기사를 날랐다. 네티즌들은 그런 기사를 보고 분노해 각종 커뮤니티에 비판 글을 올렸다.
나는야 지존플레이어 : 와 미쳤네;; 사람 반 죽여 놓고도 처벌을 안 해?
치킨 매니아 : 하, 나 영상 봤는데 영호 선수가 다른 선수 감싸다가 저렇게 된 거임.
심송 파이팅 : 피닉스 길드가 대형 길드라고 경찰이 안 건드리는 것 같은데 X발놈들 안 망함? 저래 놓고 그냥 잠수 탄다고?
불타는 코레아 : 이게 나라냐?
그로 인해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대부분이 하루 만에 발생했던 사건으로 도배가 되었다.
띠리리- 띠리리-.
책상에서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신혜진이다.
-찾았어. 손명유 이놈 피닉스 길드가 마련해 준 은둔처에 있는 것 같아. 아마 C급 플레이어에 화염계 마법사라 보호해 주는 듯해.
“뭐? 은둔처? 정확한 위치는 어디지?”
그 말을 듣자니 어이가 없었다. 실컷 폼 잡다가 실수한 뒤, 사과는커녕 도망쳐서 숨어 있다니.
그 뒤로 영호는 여전히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 피닉스 길드는 문제를 회피하며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앞으로 마법 쓸 생각은 절대로 못 하게 만들어 주지.’
오히려 길드의 그 태도가 자신을 더욱 열 받게 했다.
-문자로 보낼게. 그리고 우리 길드도 이 이상은 못 도와줘. 그리고 너 위험할 수도 있어. 다시 한번 생각을…….
“나 혼자서 충분해. 도와줘서 고맙다.”
짧은 통화를 끝내고 정확한 위치 정보를 받은 진원은, 바로 해당 장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