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위협-2
파삭!
생각보다 리치가 짧아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곡선을 그리며 내려쳐진 바닥에는 놈의 발톱이 움푹, 파여 있었다.
꿀꺽.
보스의 강력한 파괴력을 보니 긴장감이 생겼다.
‘한 방 제대로 맞으면 불굴이 바로 빠지겠는데.’
“형, 방패가 좋은 거긴 한데, 저걸 보면 자신은 없는데요.”
보스의 강력한 파괴력에 최은식은 자신 없는 말투로 방패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래도 싸우려고는 하네.’
초짜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저런 위압감이 넘치는 보스를 눈앞에 두고 이성을 잃고 도망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어디인가.
“일단 뒤에 빠져 있어라. 힘들면 말할게.”
“형, 그래도 보슨데…….”
“괜찮으니까.”
“크워어어!”
‘왼쪽부터 온다!’
진원은 워 베어의 공격을 몸을 옆으로 틀어 피하고, 그대로 망치로 놈을 세게 후려쳤다.
‘이번엔 오른쪽에서 온다!’
몸을 크게 돌리며 피한 후, 빠르게 놈의 배후를 잡았다.
퍼억!
“그워어어!”
놈은 잔뜩 성이 났는지 양팔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퍼서석! 퍽! 퍼석!
지면의 돌조각이 요란하게 튀었고,
빠악! 빠악! 뻐억!
진원이 휘두르는 망치는 둔탁한 소리를 냈다.
최은식은 그 광경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아니, 뭐 하는 사람이야? 저게 말이 되나?”
물론 보스의 공격은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놈의 공격력.
한 번만 맞아도 치명상을 입을 듯한 공격을, 개의치 않고 여유롭게 피했다. 거기다가 대미지도 꼼꼼히 누적시킨다니.
‘저게 직업도, 등급도 없는 플레이어라고?’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싸우는 장면을 보면, 한두 번 던전을 클리어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겉으로 긴장하고 있는 듯했으나 그것도 연기일 수 있었다.
거기다 분명히 원딜러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이상한 스킬을 사용했는지 허공에서 망치를 꺼내 휘두르다니…….
만약 저 보스를 자신이 단신으로 상대하게 되면 공격은커녕 방어 몇 번 하다가 온몸이 짓이겨졌을 것이다.
보스의 파괴력에 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꿀꺽.
최은식의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서, 설마, 레드 플레이어?’
플레이어 카드를 만들지 않고, 일부러 등급이 낮은 던전에 파티원으로 참가해 살인을 즐기는 플레이어.
인터넷으로 떠도는 괴담인 줄로만 알았었는데, 실제로 눈앞에서 보게 되다니.
‘좀만 더 자세히 알아보고 와야 했어. 저 사람이 진짜로 레드 플레이어라면…… 난 죽은 목숨이다.’
당연히 던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스마트폰을 들어 찍는다? 액션 캠을 몸에 장착한다? 재빠르게 신고 문자를 넣는다? 과연 그게 될까?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살인죄 적용이 어렵기 때문에 던전이야말로 레드 플레이어들이 선호하는 장소였다.
짧은 순간에 여러 생각이 들고, 최은식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눈앞의 보스보다 진원이 더 무서워졌다.
“크워어!”
휘익! 퍼석!
그러는 동안에도 워 베어의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헉, 헉. 이제 슬슬 힘들지?”
확실히 처음보다 놈의 움직임이 느려진 것이 보였다. 물론, 그만큼 자신도 숨이 차올랐다.
뻐억! 퍽! 빠악!
“그워어어!”
놈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계속 서서 공격을 강행했다.
‘방어력이 높은 건지, 아니면 체력이 높은 건지…….’
진원은 틈을 봐서 놈의 머리를 가격하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놈이 공격을 잘 버텼다.
“흡!”
뻐억!
“크어어어!”
강력하게 망치를 휘둘러 놈의 복부에 타격을 주니, 놈이 앞다리를 내리고 쓰러지듯이 엎어졌다.
‘지금이다!’
“크워어어어!”
“형, 피하세요! 위험해요!”
망치로 놈의 머리를 내려치려던 그때, 등 뒤로 최은식이 주의를 주었다. 심상치 않음을 느껴, 일단 거리를 최대한 벌렸다.
푸쉬이이익-.
부패된 워 베어의 몸 주위로 보라색 연기가 분출되었다.
다행히 주위로 퍼지지는 않았다. 연기는 놈의 몸 주위를 잠깐 동안 감싸 돌다가, 사라졌다.
“그워어어!”
보스는 그 뒤 괴성을 지르며 밖으로 달려 나갔다.
‘후우……. 망할 놈, 쓰러진 척을 한 건가.’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이대로 계속했으면 오히려 위험한 것을 자신일 수도 있었다.
“형, 괜찮으세요?”
최은식은 진원에게 다가가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됐어, 인마. 그것보다 아까 놈들, 우리한테 어그로 끌고 간 거 봤지?”
진원은 최은식의 손수건을 보고 팔로 땀을 닦아냈다.
“네, 형.”
“그놈들 찾으러 갈 거야. 안 그래도 보스를 못 죽였는데 그놈들한테도 휘둘리면 곤란해. 그것보다 HP 포션 하나만 줘 봐.”
“네! 그럼 중급 HP 포션을…….”
최은식은 그 말에 배낭을 내려놓고 빠른 동작으로 포션을 찾기 시작했다.
“됐어. 하급이면 충분해.”
진원은 포션을 받아 마시면서, 남은 HP를 확인했다.
HP: 230/300
‘스치는 공격을 몇 번 맞았을 뿐인데, HP가 확확 깎여 나가네.’
역시 C급부터는 난이도가 확실히 달랐다. 분명히 주요 공격은 다 피했다고 생각했지만, 보스의 사소한 공격조차 HP를 위협적으로 깎아 냈다.
“이제 나가서 놈들을 찾자. 보스가 강동석 파티를 발견했으면 좋은데.”
진원이 앞장서서 밖으로 나갔고, 그 뒤를 최은식이 따라왔다.
“형, 혹시나 놈들이 이상한 트랩이라도 설치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앞장설게요.”
최은식은 딱히 시키지도 않았는데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펴보며 전진했다.
그렇게 천천히 주위를 탐색하며 움직이던 중, 파티원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미친놈들. 던전이 클리어되지도 않았는데 뭐 하는 짓이지?’
소리의 근원지로 가까이 다가가 보니 강동석과 파티원들이 앉아서 얘기를 하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보스가 그대로 놈들이 있는 곳으로 도망쳤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웠다.
그대로 걸음을 옮기니 앉아 있던 파티원들은 진원과 최은식을 발견하고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 형님? 저놈들 멀쩡하게 살아있네요?”
“뭐야? 보스를 잡은 건가?”
“야야. 내가 트랩 던져서 어그로 끌어 놓고 갔잖아. 트랩 대미지가 크게 들어갔을 수도 있지.”
파티원 1명이 일어나서 자랑하듯이 말했다.
“아오, 덩치 큰 곰이길래 한 따까리 할 줄 알았는데 별거 없었나 봐?”
“블랙 워 울프들 씨만 말려 놓고, 하여간 도움이 안 되는 보스네.”
“흠. 역시 그 장비들은 진품이었나 보네.”
파티원들이 비아냥대던 중, 자리에서 일어난 강동석은 스마트폰을 만지더니 들어서 진원에게 보여 주었다. 타이머 어플이다.
“넉넉잡아 30분으로 설정해 놨는데 30분도 안 지났잖아? 운이 좋네?”
강동석은 여기서 싸움을 하게 된다면 당연히 이길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파티원들은 생각보다 약했기에 피해가 생길 것이 뻔했다.
‘보스가 죽지 않고 놈들이 살아서 우리를 찾았다는 것이 걸리긴 하지만, 어차피 다시 어그로를 놈들에게로 돌리면 그만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최은식의 장비가 진짜라는 가정 하에 굳이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잘만하면 돈줄로 꽉 잡을 수 있겠구만, 흐흐.’
“어이, 최은식! 네가 가진 그 장비들. 한두 푼 하는 것들이 아니지? 우리가 시간이 남아돌아서 조사를 좀 해 봤는데…….”
최은식의 표정에 긴장감이 가득했는지 옆에서 땀이 몇 방울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조사? 그게 무슨…….”
“너 말이야. 그 주식 천재 최은식 맞지? 부자라고 인터넷에 뉴스 엄청 나돌던.”
“그래서 그게 어, 어쨌다는 거지?”
강동석의 말에 최은식은 말까지 더듬기 시작했다.
“흐흐. 너는 죽이기 아까워서 말이지. 우리 자금원이 된다면 살려 주지. 물론 그냥은 안 되고 두 가지 조건이 있다.”
강동석은 손가락을 두 개를 펴고 나서 말을 이어 나갔다.
“하나. 네 뒤에 서 있는 김진원을 죽인다. 둘. 비밀 유지를 위해 네 몸에 폭탄을 심어 넣는다.”
강동석의 그런 발언에도 진원은 딱히 내색하지 않는 듯했다.
‘어차피 죽게 될 놈들인데 재미라도 보게 일단은 가만히 있어 주지.’
최은식은 그런 강동석이 내세운 조건을 듣고 움찔했지만 딱히 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아, 물론 너 혼자 죽이라는 건 아니야. 나이가 어리기도 하고.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우리랑 공범이 되자는 거야. 어때?”
지금까지 이런 짓을 해 왔지만 번번이 위험 부담과 철저한 사전 계획을 했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파티원들과 나눠 가지면 크게 번다는 느낌은 없었다.
‘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진 않을 거다. 대신 그 안에 작은 폭탄은 집어넣겠지만. 흐흐…….’
그 말에 최은식은 고개를 뒤로 돌려 서있는 진원을 쳐다보았다.
진원은 그런 최은식을 가만히 쳐다볼 뿐이었다.
최은식은 칼을 든 채로 한 발자국, 앞으로 걸었다. 발에 힘을 실어서.
“뭐야, 우리랑 한판 뜨겠다는 거야? 장비를 너무 믿으면 안 될 텐데.”
강동석은 재밌겠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운 좋게 보스를 잡은 것 가지고 지가 센 줄 아나 보는군.’
그의 옆에 다른 파티원 몇 명이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형님, 어떻게 할까요? 아무래도 최은식을 죽이는 것은 너무 아깝지 않을까요?”
“그래. 당연히 아깝지. 저놈은 최대한 죽이지 말자고. 우리의 소중한 자금원님이시다.”
“네. 알겠습니다, 형님!”
원딜러들이 마법과 화살 따위를 장전해 진원을 향해 공격을 준비했다.
‘흐음. 일단 얼마나 센지 볼까.’
진원은 같은 파티원이였던 플레이어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상황이지만, 딱히 긴장되거나 위급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스텟을 투자하기 위해 상태 창을 열었다.
‘마력에 10포인트, 근력에 10포인트를 쓰자.’
[스텟]
근력: 30 민첩: 20 체력: 30 마력: 50 ??: 0
미분배 포인트: 0
그리고 바로 인벤토리를 열고 토르의 망치를 꺼내려 할 때, 놈들의 공격이 들어왔다.
그것을 본 최은식이 앞서 나와 방패로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비처럼 쏟아지는 공격을 막을 순 없었다.
그 때문에 하나의 마법이 진원의 몸통을 가격했다. 스킬의 폭발 때문인지 진원은 크게 뒤로 밀려났다.
퍼엉!
“크윽! 형, 괜찮아요?”
최은식은 뒤를 돌아보며 진원을 찾아보았지만, 꽤 크게 밀려났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야야, 이 정도 했으면 알아들어야지. 지금이라도 우리한테 넘어오면 몸에 폭탄 심는 것은 없는 걸로 해 줄게.”
파티원 한 명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최은식을 유혹했다.
“후우……. 내가 너희들 중 하나는 반드시 죽일 거다! 반드시!”
최은식은 비아냥대는 강동석 파티원들에게 분노하며 언성을 높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파티원에게 스킬을 날리고, 배신한다.
오히려 그것이 재밌는지 실실 웃고 있는 모습을 도저히 봐줄 수가 없었다. 레드 플레이어는 저놈들이다.
그들이 최은식을 유혹하고 있을 때, 어느새 진원은 벽 한쪽에 서서 포션을 꺼내고 있었다.
HP : 230/300
‘뭐야. 이놈들 왜 이렇게 약해?
분명히 마법을 정통으로 맞았는데, 대미지 감소 효과가 적용되었다고 해도 미미했다.
D급 플레이어 수준이 이 정도인 걸까. 피식 웃은 후, 인벤토리를 열어 하급 HP 포션 1개와 토르의 망치를 꺼냈다.
포션을 마시면서, 강동석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