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0레벨 플레이어-2
던전 안에서 포탈이 발생했다는 것은 뉴스로 가끔씩 화제가 되긴 했다.
거기서는 던전 등급에 비해 상당히 좋은 아이템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정보가 있었고, 그런 까닭에 플레이어들은 던전을 들어갔다 하면 구석구석까지 살펴보곤 했었다.
물론 포탈을 발견한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상황처럼.
“도련님. 이 포탈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높은 등급의 던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도련님. 신중하셔야 합니다. 일단은 그냥 돌아가셔서…….”
C급 파티원 두 명이 앞장서서 도련님을 달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역할은 도련님을 최대한 안전하게 던전을 클리어하도록 보조해 주는 것이었다.
불확실한 요소는 최대한 배제해야 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었던 한 사람이 있었다.
C급 플레이어였는데 가벼운 전투를 하는 와중에도 긴장감을 갖고 신중하게 주위까지 살펴보며 움직였다.
‘저 사람은 아까부터 되게 신중하네. 믿을 만하겠다.’
“무슨 소리야? 맨 처음 발견한 건 나다. 그런데 돌아가자고? 다른 놈들이 새치기할 텐데? 니들 쫄았냐? 나랑 가기 싫어? 아버지에게 말할까?”
도련님이란 놈은 화가 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아, 아닙니다. 가겠습니다.”
도련님을 최대한 달래 보았지만 태도는 여전히 한결같았다. 결국 파티원들은 포기하고 포탈에 들어가기로 했다.
“거기 짐꾼! 너도 따라와라. 보수는 200만 원이 아닌 1,000만 원을 주겠다.”
도련님의 거만한 말에 다른 파티원들의 시선이 일순간 진원에게로 집중되었다.
본래 같으면 바로 거절하고 욕을 박아 버리겠지만, 그 후로 3년이 지나고 돈이란 게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프로 야구 선수가 되어 집안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그 꿈은 실패했고, 가난에 허덕일수록 알 수 있었다. 돈의 소중함을.
동생도 이제 고등학생이다. 대학교까지 보낸다고 생각하면, 소처럼 일해야 한다. 언제까지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만 할 수는 없지.
“네. 그럼 저도 가겠습니다.”
그렇게 도련님과 진원을 포함한 파티원은 둥글게 열려 있는 포탈로 들어갔다.
포탈로 들어가니,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어두침침한 통로가 계속 이어졌으며 공기는 차가웠다.
분명히 틈은 없는 것 같은데 바람이 피부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파티원마다 어디서 준비해 왔는지 손전등을 꺼내, 길을 이리저리 밝혔다.
“도련님, 뭔가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이쯤 오셨으니 이제 돌아가시는 게…….”
앞장서서 걷던 C급 플레이어는 묘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돌아가자고 말했다.
“뭐야? 너 겁먹었냐? 하하하! 뭐 별거 없겠지. 전진이다!”
그 말을 듣던 도련님은 그게 뭐가 대수냐는 듯이 앞으로 가자고 했다.
뒤에서 걷던 파티원들이 작게 한숨을 내쉬는 것이 들렸다.
그렇게 똑같은 공간을 걷기 시작한 지 30분쯤 지났을까.
“도련님! 발견했습니다. 여기 문이 있습니다!”
그렇게 발견한 곳은 새빨간 철문이었다. 문 크기는 대략 2미터 남짓.
뭔가 으스스한 기운이 감도는 것만 같다.
“캬아! 거봐라! 별거 없다고 했지? 어이! 거기 짐꾼! 이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가면 추가로 500만 원을 더 주겠다!”
진원은 문에서 뭔가 수상한 낌새를 느끼고 제안을 거절하려고 했다.
C급 플레이어가 그의 생각을 읽었는지 진원에게 다가와 귓가에 대고 작게 말했다.
“괜찮을 겁니다. 문에서 아무 기운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까부터 눈에 띄게 신중하게 행동하던 C급 플레이어였다. E급 던전에서조차 혹시 모를 변수에 대비하던 남자. 확실히 믿음이 갔다.
흠……. C급이 저리 말하니 괜찮겠지. 500만 원 더 받으면 1,500만 원!
짐꾼으로 하루 만에 이 정도 돈을 버는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약간 수상한 것 같지만 속아 주기로 한다. 고작 문만 여는데, 별일 있을까 싶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네네. 그럼 제가 먼저 들어갈게요.”
진원은 문 앞에 서서 문고리에 손을 잡고, 천천히 열었다. 왠지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끼이이이-.
오래된 철문에서 나는 쇳소리가 진원의 귀를 울린다.
그렇게 해서 파티원이 들어간 장소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 저기 뭔가가 적혀있긴 하네요. 비석인가?”
다행히 예상한 대로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넓기만 했다. 30평은 가뿐히 넘을 듯하다.
영화에서나 보던 지하실, 정확히는 고문실 같은 느낌이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 보니, 바닥이나 벽면에는 축축한 물이 고여 있었다.
천정에서는 물이 몇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앞쪽에 비석 같은 것이 있는 것 빼고는 수상한 게 없다.
“에이, 뭐야. 포탈이라길래 들어와 봤는데 아무것도 없는 게 말이 되냐?”
도련님이 툴툴대며 불만이 섞인 듯한 목소리로 말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그 와중 C급 플레이어가 빠르게 진원을 지나쳐 글자가 적혀 있는 장소로 향했다.
“뭐라고 적혀 있냐? 아이템 같은 거 준대?”
그 행동을 본 도련님은 은근히 기대감을 가지며 앞의 플레이어에게 묻는다.
“그게…… 좀 섬뜩합니다.”
C급 플레이어의 말에 긴장감이 묻어 나왔다.
“뭔데 그래?”
“survive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 외에 다른 건, 없습니다.”
“살아남으라고? 지금 이렇게 잘 살아 있는데?”
도련님은 파티원의 말이 우스운지 피식하며 대답했다.
그 순간, 비석 위에 창이 떠올랐다.
[10:00]
타이머같이 숫자가 초 단위로 1씩 계속해서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쩌적. 쩌저적.
비석 앞의 공간을 찢어발기고 괴물이 튀어나왔다.
“크아아아아!”
그리고 괴물은 플레이어들을 1명씩 죽이기 시작했다.
괴물은 늑대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인간처럼 곧게 서 있었다. 마치 늑대인간처럼 생겼다.
덩치는 어찌나 큰지 3미터는 가뿐히 넘어 보였다.
놈은 붉은 털을 휘날리며 붉은 안광을 빛냈다.
상체에는 옛날 일본 무사들이 입는 갑옷 같은 것을 걸치고 있었다.
휘릭! 푸확!
“커허헉!”
놈은 팔로 땅을 박차며 눈앞에 보이는 플레이어에게 접근해, 몸을 꿰뚫고, 던졌다.
그리고 팔을 들어 올려 날카로운 손톱을 세우고 위협했다.
“크아아!”
그 광경을 본 파티원들은 빠르게 문으로 향했다.
눈앞에 있던 C급 플레이어가 아무런 대처도 못하고 당해 버렸는데, 자신들이라고 무슨 수가 있겠는가.
먼저 문 쪽으로 향한 도련님이 문고리를 잡으려고 했지만 있어야 할 문이, 사라져 있었다.
진원은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냥 전부 다 벽이었다.
문은 없었다.
“문이! 문이 없어졌습니다!”
파티원은 당황해 소리를 지르고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야야! 어떻게든 막아 봐! 니들 C급에 D급들이잖아! 우린 겨우 E급 던전에서 넘어왔다고! 아버지한테 혼나고 싶어?”
윽박지르는 듯한 도련님의 말에 파티원들은 정신을 차렸다. 진열을 천천히 가다듬고, 다가오는 놈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침착해라! 마법사! 뒤로 빠져서 스킬 준비해! 우리가 앞을 막겠다.”
C급 플레이어의 지시에 파티원들은 괴물의 시선을 끌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다다닥.
“하압!”
티잉!
“크륵!”
파티원의 선제공격에 놈은 팔을 들어 막으며 울음을 토해 냈다.
“방패 들어! 막아라! 시간 끌어!”
“플레임 애로우!”
검으로 놈에게 타격을 입히고, 놈의 공격은 방어 담당인 탱커가 집중적으로 주의를 끌어 막는다.
그리고 뒤에 마법사가 그동안 스킬을 캐스팅해서 괴물에게 날린다. 꽤나 괜찮은 연계였다. 적어도 자신이 보기에는…….
[4:58]
비석 위에 떠 있는 타이머는 그 후로 5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겨우 5분 말이다.
진영을 짜 괴물에게 대항하던 플레이어 8명은 순식간에 죽어 나갔다.
“크아아아!”
놈은 날카로운 이빨로 방패를 잘근잘근 씹고, 플레이어들의 목을 물어뜯었다.
압도적이었다. 전사든 마법사든 탱커든 놈이 손톱을 세운 팔을 휘두를 때마다, C급과 D급으로 구성된 파티가 이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이제 남은 건, 진원과 다른 플레이어 3명, 그리고 자신의 옆에서 몸을 덜덜 떨면서 토하고 있는,
“우웨에엑!”
쓸모없는 도련님 하나. 진원은 그놈을 발로 차 벽 모서리까지 밀어냈다.
“모두! 벽 모서리 쪽으로 최대한 붙어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오래 살아요!”
“크르르르.”
자신의 외침에 파티원은 저마다 최대한 거리를 두고 떨어졌다. 하지만 불안한 것은 여전했는지 다리를 벌벌 떨고 있었다.
[4:32]
혹시라도 살아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헛된 희망이었을까…….
푸확!
“아아악! 살려 줘! 끄윽!”
[4:01]
“이 X발 새끼! 너 때문에 다 죽는 거라고! 알아? 커헉!”
[3:22]
시간은 이럴 때만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다.
“살려 줘……. 난 여기서 죽기 싫다고! 딸내미 대학교 보내야 한단 말이야……. 아악!”
“크아아아!”
마침내 남은 것은 나와, 옆의 쓸모없는 놈 하나.
진원은 괴물이 다른 플레이어들을 죽일 때 눈치를 보며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놈이 누구에게 먼저 달려드느냐에 따라 생존율이 달라진다.
50퍼센트의 확률. 지금도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다.
“으허엉! 아빠! 나 죽기 싫어! 어어엉!”
도련님은 눈물콧물 질질 짜면서 땅에 털썩 주저앉은 채로 뒤로 물러났다.
그래. 그대로 질질 짜라. 더 크게 울어라. 그래야 너한테 달려들지.
고개를 돌린 늑대인간은 진원과 옆의 질질 짜는 놈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는 팔에 흘러내리는 피를 핥으면서, 천천히 다가왔다.
“크르르르.”
[2:42]
1명이 살아남기에도 벅찬 시간이다. 뭔가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
휘익! 팅!
“어엉! 아악!”
도련님에게 가까이 다가간 늑대인간이 팔을 휘둘렀다. 놈의 손톱이 황금빛의 갑옷을 뚫고 찢어발기는가 했지만, 오히려 튕겨져 나왔다.
“크릉!”
팅! 팅!
“으아악! 살려 줘!”
놈은 그것이 화가 났는지, 팔을 반복적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2:11]
‘살아 나갈 수 있겠다. 가능하다.’
도련님이라 불리는 놈이 던전에 들어가기 전부터 고가의 장비를 두른 것은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성능이 좋은지, 플레이어들을 찢어발기던 늑대인간의 손톱이 고가의 장비에 힘을 못 쓰고 있었다.
‘그대로 조금만 더 버텨라. 조금만 더!’
그런데 그 희망은, 30초도 채 지나지 않아 부서졌다.
[1:49]
쩌적.
갑옷이 조금씩 갈라지는 것을 본 진원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칼을 들어서 막아!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막으라고!”
“살려 줘어!”
하지만 녀석은 패닉에 빠졌는지 진원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했다.
여전히 두 팔로 얼굴을 감싼 채 소리만 질러 대고 있다.
진원은 이렇게 생각했다.
저 쓸모없는 놈이 검을 들고 방어라도 제대로 할 수 있었으면, 30초는 더 버티지 않았을까, 라고.
쩌저적!
마침내 금빛으로 빛나는 갑옷이 깨졌다.
크릉! 푸확!
“커억! 살려 주세요……. 죽기 싫어요……. 끄흑!”
[1:32]
현재 남은 시간은 1분 32초. 플레이어는 어느새 자신만 남았다.
바닥에는 플레이어들의 시체가 뒹굴고 있었다.
어두웠던 공간은 정신을 차려 보니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우욱!”
순간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이내 삼킨다.
‘하……. 1분 32초라.’
32초가 남아도 힘들 판에, 남은 시간은 무려 1분 32초.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다리에 힘을 실었다.
“크르릉!”
타다다닥!
놈이 자신에게 다가오면, 재빠르게 뛰어 거리를 벌린다.
놈의 리치가 길어 거리를 많이 벌려 놓아야 한다.
“헉……. 헉…….”
진원의 얼굴에 땀이 비 오듯 맺혀 있었다. 최대한 괴물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상당한 체력을 사용했다.
[0:59]
이 정도면 살아 나갈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할 만하다. 이렇게 생각을 가진 게 1분쯤.
그리고 59초가 되었을 때, 두 다리로 서 있던 놈은 갑자기 늑대처럼 자세를 낮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