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상점스킬-1화 (1/200)

1. 0레벨 플레이어-1

[아아! 현재 9회 말 투 스트라이크 쓰리 볼! 단 한 개의 볼로 게임이 결정되는 순간입니다!]

해설자의 말이 끝난 후, 시끌시끌한 구장에는 긴장감과 함께 고요함이 맴돌기 시작했다.

오른팔이 후들거리고,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은 시야를 방해했다. 팔을 올려 재빨리 닦아냈다.

9회 말 투 아웃 만루 상황! 이 하나의 볼로 게임이 결정 난다. 여기까지 오는 데 정말 힘들었다.

정말 약했던 우리 팀이, 이 볼 하나로 승리를 거머쥔다니. 사실 나의 공이 가장 컸지.

복잡한 생각을 지우고, 왼발을 든다.

[투수! 와인드업!]

영혼까지 짜내라!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끝나면 내가 좋아하는 라면, 감독님한테 왕창 얻어먹어야지.

[던졌습니다!]

빠악!

그날의 나는, 그 순간의 자신은 정말로 완벽했다.

그리고 내 어깨가 아작 나는 것도 완벽했다. 정말로…….

**

화르르르르.

집안에 연기가 들어오는 것을 느낀 지원은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아, 오빠! 뭐 하는 거야? 그걸 왜 태우는데?”

“이제 야구 안 할 거니까. 정말로 미련을 버릴 거야.”

진원은 진지한 표정으로 불타는 야구 서적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말 열 번도 넘게 더 들었거든? 집안 찾아보면 또 나올걸? 그것보다 이 막심이나 좀 태우지 그래?”

“그건 내 영혼이다. 건들지 마라.”

“에휴, 태우지 말고 그냥 버리라니까! 그걸 왜 태워 가지고! 켁켁! 어우, 매워!”

지원은 연기가 매운지 기침을 하며 창문을 닫았다.

야구는 망했다. 프로야구도 망했다. 야구가 주목받는 이 시대는 갔다.

아니 왜, 스포츠 신문 1면에도 축구가 항상 장식하지 않는가.

야구의 인기는 점점 떨어질 것이고, 이제부터는…….

[실시간 검색어 1위! 일쥐vs심송의 경기 날짜가 확정되다!]

제발 망했으면 좋겠다.

그날, 자신이 던진 마지막 볼로 승리를 거머쥔 것은 좋았다. 그로 인해 팀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으며, 좋은 선수들이 많이 영입되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어깨가 아작 나 버린 자신은? 지금은 어떠냐고? 평생 야구를 못 한단다.

어디 야구만 못 하는가? 오른팔이 조금밖에 안 올라간다. 일상생활도 불편한 수준이다.

유명했던 그 시절의 주목받던 투수. ‘황제 투수’라고도 불리던 김진원은 죽었다.

빠르게 유명해졌던 만큼 하락세도 엄청났다. 이미 잊힌 지 오래일 것이다.

“아니다. 야구가 망하면 그 녀석도 망하잖아. 내가 큰일 날 소리를 했구만. 어우! 매워라!”

진원은 매운 연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뭇가지를 뒤적거리며 서적을 태웠다.

**

한편, 편의점의 간이 식탁에는 야구복을 입은 남자 두 명이서 캔 커피를 홀짝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야. 영호야, 걔는 이제 잊어. 걔는 진짜 그냥 운이 없었을 뿐이야. 애초에 팀을 잘못 들어간 게 문제였다니까.”

같은 팀원으로 보이는 남자는 영호가 의욕이 없을 때마다 항상 같은 말을 해 주곤 했다.

“하아, 내가 야구를 시작한 것도 그놈 때문이었는데. 요새 의욕이 안 난다. 가끔씩 만나도 야구 얘기는 절대 안 해.”

영호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아쉬운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라도 절대 안 한다. 이제 연습이나 하러 가자.”

쿵!

순간 땅이 크게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의자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은 깜짝 놀라 움찔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었냐?”

“어. 지진 난 거 아냐?”

쿵! 쿵!

귀가 찢어질 듯한 굉음이 지구를 강타했고, 무엇인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쩌적. 쩌저적!

그렇게 갈라진 것은 화창한 하늘이었다. 곧이어 갈라진 하늘에서 기계음이 새어 나왔다.

[환영합니다. 행성 “338번” 의 플레이어 여러분. 지금부터 오픈베타를 시작합니다.]

한순간이었다. 그로부터 세상이 바뀌게 된 건, 단 한순간.

[플레이어 여러분께 능력을 선사합니다. 건투를 빕니다.]

그 음성은 야구 관련 서적을 태우고 있던 진원에게도 당연히 들렸다.

[플레이어 여러분께 능력을 선사합니다. 건투를 빕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는 달리 추가적으로 음성이 더 새어 나왔다.

[당신은 유일하게 “상점”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축하합니다!]

“……뭐?”

[지금부터 튜토리얼을 시작합니다.]

기괴한 음성과 함께 단 한순간에 바뀌어 버린 지구. 현실은 게임처럼 변하게 되었다.

갈라진 하늘에서 괴물들이 나왔고, 괴물들은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존 본능이 발휘됐고, 부여된 능력과 함께 군대까지 가담해 어찌어찌 괴물들의 공격을 막아 내는 데 성공했다.

그 후로 한동안은 모든 나라가 패닉에 빠졌다. 막대한 손실과 함께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뒤집어 버렸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게다가 모든 사람들이 능력을 부여받은 것은 아니었다.

추정 통계 약 50퍼센트. 플레이어로 각성한 사람들의 수치였다.

그 후로 긴 시간 동안 뉴스나 다양한 채널에서는 항상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런가 하면 전문가나 각 분야의 교수들은 이 괴현상이 종말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도 인간은 결국 적응의 동물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저마다 부여된 능력으로 나타난 괴물들을 처치한 사람들은, 성장했다.

또한 나타난 괴물들을 처치하고 얻은 아이템으로 경제의 발전과 함께 과학의 발전까지.

세상은, 그렇게 급변했다.

**

3년 후.

“아니. 나는 유일하게 상점이 이용 가능하다면서, 잠겨 있는 건 뭔데?”

진원은 방 안에서 상태창을 열어 보며 투덜댔다.

<플레이어>

이름 : 김진원

레벨 : 0

직업 : 미정

등급 : 미정

업적 : 없음

칭호 : 없음

[스텟]

근력 : 2 민첩 : 10 체력 : 20 마력 : 0 ?? : 0

미분배 포인트 : 0

# 어깨의 심각한 부상으로 근력 스텟이 내려갑니다.

# 플레이어 중 유일하게 상점 기능이 개방됩니다.

[스킬]

없음

미분배 포인트 : 0

[상점]

잠겨 있음

“아오! 레벨이 0인 것도 빡치는데, 되는 게 없냐!”

괜한 분풀이를 하려 눈앞에 떠 있는 상태 창에 발길질을 해 보았다. 당연히 아무런 효과는 없었다.

자괴감이 들어, 금방 멈추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플레이어가 되고, 세상은 변했다. 하지만 자신은 변한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안 좋았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레벨이 1부터 시작인데, 자신은 0이었으니까.

거기다가 유일하게 자신만 이용 가능하다던 상점은 잠겨 있었다.

“후우…….”

한숨을 내뱉고, 침대에 걸터앉아 스마트폰으로 플레이어 구인 구직란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플레이어 모집합니다! 짐꾼 담당. 페이 당일 지급!]

E급 던전을 공략하실 플레이어 한 분 모십니다. 체력 스텟 20 이상인 분만 지원해 주세요. 짐꾼 담당이며,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당일로 200만 원 지급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눌러서 들어간 구인란. 고작 짐꾼인데 당일 페이가 200만 원이다.

E급 던전의 짐꾼은 당일 페이가 많아 봐야 20만 원인 것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흐음…….”

그런데 그마저도 레벨이 0에 어깨도 부서진 진원에게는 부담일 것 같았기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나 하며 지냈다. 현재 눈앞에 보이는 공고는 능력치가 너무 낮아 파티에 잘 들어갈 수 없었던 진원에게는 꿀 같은 광고였다.

거기다가 체력 스텟 20 이상인 사람만 모집이라니. 마침 돈도 다 떨어졌겠다,

“야구해서 좋은 점이 있기는 했네. 그래도 한 번에 200만 원 이라니. 한번 도전해 보자.”

바로 전화를 걸어, 짐꾼 신청을 한다.

**

“E급 던전 짐꾼 지원자 김진원 씨, 맞으십니까?”

“네. 맞습니다.”

“그럼 할 일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드릴게요.”

고작 E급 던전을 공략하는 데 이 무슨 인원인가. 대충 봐도 10명은 넘어 보인다.

거기다가 장비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자신들은 대부분 D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C급 플레이어가 2명 있으니 안전은 보장된다고 설명해 주었다. 단지 들어야 할 짐이 많아 체력이 높은 플레이어를 뽑은 것이란다.

보통 E급 던전 같은 가장 낮은 수준의 던전은 “초보 사냥터”라는 인식이 박혀 있었다.

E급이라면 같은 E급 4명 정도로 파티를 꾸려도 무난한 수준.

“도련님. 이쪽으로 가시죠. 짐은 저분에게 맡기시면 됩니다.”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부잣집 아들내미구만. 딱 봐도 엄청난 금액을 쏟아부었다는 게 느껴진다. 장비가 휘황찬란하다.

“거기. 잘 따라와라. 뒤처지지만 말고. 넌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도련님이란 놈은 거만한 태도로 말한 뒤 진원에게 짐을 휙 던지고 지나쳐 갔다. 다른 파티원이 포탈 앞을 지키고 있는 사람에게 표를 건네주었다.

‘건방진 새끼.’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파티원들을 뒤따라 자신도 E급 던전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200만 원이 어디인가. 참자, 참아.

“도련님. 여기 한 대 치시죠!”

“도련님! 저희가 먼저 가겠습니다!”

던전에 들어간 파티원들은 E급 몬스터들에게도 각별한 주의를 해 가며 강약을 조절했다. 그리고 도련님이란 놈은 파티원들의 신호에, 다 죽어 가는 몬스터를 삐까번쩍한 검으로 한 대 내려쳤다.

“꾸엑!”

덩치 큰 애벌레는 작은 울음소리와 함께 가볍게 내려친 검에 죽었다.

짝짝짝짝.

“역시! 도련님이십니다! 단 한 방에 잡으시다니!”

“역시 도련님은 A급 플레이어가 되실 분입니다. 하하!”

고작 그것을 본 다른 플레이어들은 녀석을 비행기 태워 주기에 정신없었다.

“흠. 내가 좀 강하긴 하지. 하핫!”

‘……200만 원의 대가가 이건가.’

뒤에서 파티원들의 짐을 짊어지고 빠져 있던 진원은 그 광경을 보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거기! 짐꾼! 빠릿빠릿하게 뒤따라 붙도록!”

검을 들고 웃던 놈은 어느새 자신을 손가락질하며 빨리 오라고 지시했다.

‘망할 놈이.’

참자. 참아. 그래도 몸은 편하다. 끝나면 200만 원이다. 진원은 그렇게 속으로 되뇌며 발걸음을 옮겼다.

“어? 얘들아! 이리로 와 봐라! 내가 뭔가를 발견했다!”

도련님의 들뜬 듯한 외침에 파티원들은 우르르 몰려갔다.

“역시 도련님! 발견한 게…… 어?”

파티원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것은 포탈이었다. 검붉은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도련님. 이것은…….”

“그래! 이게 그 포탈인가 뭔가 그거라며! 잘 나오지도 않는다며! 뭐 하냐, 다들! 어서 준비하자!”

도련님은 들뜬 마음에 파티원들을 빨리 부추겼다.

철없는 목소리에 은은한 포탈의 색이 한순간 새까맣게 물들었다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드는 것은 기분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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