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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은 만렙이다-199화 (199/200)

제 199화

제9편 차원 바이러스

“하얀아!”

한성은 오랜만에 집에 들렀다.

현관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하얀이가 미리 알고 달려오고 있었으며, 뒤로 누나 이지현이 보였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또 놀러 가셨나.”

“어제 출발하셨는데. 크루즈 타고 이번엔 미국으로 갔어.”

“잘도 돌아다닌다.”

한성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예전에 판도라에서 잡았던 [마굴왕]을 붙여놨기에 보랏빛 신격 정도가 직접 공격하는 게 아니라면 충분히 안전할 것이다.

만약 보랏빛 이계의 신격이 들이닥친다고 해도 한성이 갈 때까지 시간을 벌겠지.

“이한성, 너 여자랑 놀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다!”

이지현이 한성 앞에 앉으며 소리쳤다.

누나는 성시연을 굉장히 좋아한다. 여우 같은 성시연이 누나 옆에 있을 때는 어떻게 얼굴을 그렇게 싹 바꾸는지 연기자로 데뷔했으면 여우주연상 정도는 받았을 거다.

둘이 있을 땐, 오러 블레이드로 목을 자르려고 하는 것뿐만 아니라 투신과 게헨나의 힘으로 아주 죽일 듯 달려들기도 하는데 말이다.

“그냥 친구야.”

“근데 왜 하필 여자야?”

“내가 잘생겨서?”

“이런 미친놈이! 그건 친구가 아닌 거잖아!”

“어쩌다 보니 걔가 옆에 있었고, 가장 먼저 말을 텄으며, 서로 내외하는 거나 내숭 없이 잘 지내다 보니? 그리고 걔한텐 아주 어여쁜 여자 친구가 있다고 말해놨지.”

“……보여는 줬어?”

“어떻게 보여줘? 성시연인데. 요즘 바쁘기도 하고.”

“내가 봤을 땐, 보여주는 게 직빵이다.”

“근데 나 친구 만들어야 해.”

얼굴을 바꿔서 보여주는 것도 못 할 짓이다.

이상하기도 하고. 게다가 한성은 친구를 만들어야 하는데 본모습을 들키거나 무언가를 숨기고 싶지 않다.

그렇게 되면 진짜 친구가 될 수 없지 않을까.

“……널 숨기고 있는 건 괜찮은 거고?”

“…….”

그것도 생각해보니까 아닌 거 같다.

하지만 이제 와서 갑자기 밝힌다면? 사이는 멀어질 수밖에 없을 거다.

진희가 이한성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던데, 그렇게 되면 친구보다는 팬과 연예인 사이가 되지 않을까.

쿠우웅.

그때였다.

아주 먼 곳에서 진동이 퍼졌다.

하얀이는 귀를 쫑긋 세우고 날개를 펼쳤다. 위기를 감지한 거다.

“누나, 집에 가만히 있어.”

한성은 하얀이의 손을 잡고 공간을 접어 이동했다.

정체를 밝히는 거? 생각 좀 해봐야겠다.

* * *

진희는 오랜만에 할아버지와 함께 쇼핑을 하러 왔다.

학교생활에 저녁엔 던전 사냥을 가는 진희였기에 할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판도라.

그곳으로 향하는 계단.

그 거대한 탑 주변은 완전한 번화가가 되었다.

수많은 인파. 그 안의 영웅과 판도라의 존재들. 그중에는 인간도 있었고 유사 인종도 있었다.

많은 마법 명품이 존재하고 이계의 도시처럼 이능이나 업적을 담아 파는 곳도 있었다.

“할아버지! 나 이거 사줘요!”

“허허, 우리 손녀가 아주 손이 크구나. 12억짜리를 사탕 사달라는 듯해.”

“내가 하루에 그것보다 많이 벌어주거든!”

“그거야 회삿돈이고, 네 몫은 네가 다 챙겨가지 않느냐.”

“흥, 그래서 사주기 싫다는 거야?”

진희가 방금 고른 건 [삶의 끝에서 악에 맞서던 기사]라는 [희귀] 등급의 업적이었다.

짙은 오동나무 틀 안에 흐릿한 영상이 흘러간다.

출중한 재능을 지니고 게으르고 방탕하게 기사 생활을 하던 한 명의 기사.

그는 악(惡)에 맞서지도 않고, 오히려 악(惡)을 이용해 선(善)을 덮고는 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악하진 않지만, 결코 선하지는 못하는 사람.

하지만 그가 사랑하던 사람. 다른 사람에게만큼은 차가웠지만, 그녀에겐 한없이 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가 죽었다.

악(惡)에 의해서.

그는 악과 싸웠다.

세상의 모든 악(惡)을 없애겠다며 그간의 모든 게으름과 나태함을 버리고 생명을 소모해가며 사냥을 해갔다.

다치고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그저 눈앞에 악(惡)을 죽일 수 없다는 게, 그에게 가장 두려움을 주는 요소였다.

그는 삶의 끝에서, 누군가에 의해 영웅으로 불리며 삶을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게 싫었다.

자신은 영웅이 아니다.

그저 복수에 미친 폐인일 뿐.

분노로 물든 붉은 눈물, 회한이 담긴 텅 빈 눈동자, 극도의 괴로움과 고통으로 물든 그의 삶은 마지막까지 반전은 없었다.

그도 역시 악(惡)에 의해 죽었으니…….

“재미있는 업적이구나.”

“흔하기도 하죠. 아주.”

“흔하지만, 강한 집념을 지니고 있어. 제법 쓸 만하겠어.”

“아하! 이러면 안 되죠. 할아버지. 이거 제가 먼저 찜한 겁니다!”

이런 업적은 사두면 가치가 오른다.

하나의 미술품처럼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가 얼마나 절절하며 강한 신념을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서 등급과 상관없이 가치는 대폭 상승한다.

“내가 살 거예요!”

“허허, 나보고 사 달라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사서 조금 가지고 있다가…….”

“할아버지, 그럼 나 진짜 삐져요……?”

“……그, 그래, 우리 손녀가 사야지.”

“사 주세요!”

“……이런 양아…….”

“양아치요? 설마, 지금 저한테 양아치라고 하려고 한 거예요? 할아버지?”

“아니, 양의 기운이……, 이건 좀 개소리구나, 미안하다. 말실수였단다.”

“양아치라고 할 수도 있죠. 뭐. 근데 이게 다 할아버지한테 배운 거라는 사실은 잊으면 안 돼요!”

이런 이상한 대화의 주인공은 LGI 현 회장과 그의 손녀인 안진희였다.

“으응? 먹구름이 엄청 끼네. 비 오려나.”

“오늘 비 온다는 소식은 없었는데.”

아주 검은 먹구름이 낀다.

불길함을 몰고 오는 듯한 먹구름은 갈라지고……?

“할아버지!”

진희는 할아버지의 손목을 잡고 달렸다.

마력을 이용해 할아버지의 몸을 보호하고 그가 버틸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이동했다.

그러자 주변에 숨어있던 경호원들이 안구본 회장을 감싸며 진희를 따라왔다.

“경호 실장님!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꺄악!”

쿠웅!

검은 하늘을 가르고 튀어나온 것은 보랏빛 촉수를 지닌 이계의 신격이었다.

한국 대학교 위에 등장했던 것보다 거대하고 강한 신격을 지닌!

그것의 신격은 대한민국의 강남 하늘을 마비시켰다.

진희는 머리를 부여잡고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격의 기세는 그 존재만으로도 일정 수준 이하의 존재를 죽음으로 모니까.

특히, 마력 사용자들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이능력자는 피해를 안 받아……?’

일반인과 같다.

저 위의 신격을 느끼지 못하는 일반인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기세에 큰 피해를 입지 않는 것과 비슷했다.

그 때문에 주변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안구본 회장의 경호원은 몇을 빼놓고 모두 쓰러졌다.

안진희도 쓰러졌다.

일반인들은 쓰러지지 않고 공황에 빠지면서 강남은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젠장! 경호 실장님, 할아버지를 모시고 바로 대피하세요!”

“아, 안 된다!”

진희의 말을 막은 것은 핑 도는 머리를 부여잡은 안구본 회장이었다.

일반인이었지만, 아예 영향을 안 받지는 않는다.

“경호 실장!”

진희가 경호 실장을 불렀다.

“죄송합니다.”

경호 실장은 진희에게 고개를 깊게 숙였다. 그리곤 안구본 회장을 기절시켰다.

안구본 회장의 절망 어린 눈빛이 보였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게 최선이다.

“그리고 경호 실장님, 대피 후에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 이능력자로 이루어진 대피 팀을 결성해 돌아오세요.”

“……알겠습니다.”

그는 주변을 살짝 둘러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가세요!”

“……최대한 빠르게 돌아오겠습니다.”

안구본 회장을 둘러업은 경호 실장은 몇 남지 않은 이능력자 경호원과 함께 그 자리를 벗어났다.

“……됐다.”

진희는 하늘을 바라봤다.

할아버지를 살렸으면 됐다.

그거면 된 거다.

저 하늘 위에 보랏빛 신격. 저게 왜 여기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저놈이 한국 대학교에 등장했던 것보다 강하고 거대하다는 것이다.

창조신 이한성과 마신 성시연이 힘을 합해 쫓아냈었다.

그런데 이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될까.”

강남은 지키지 못할 게 분명하다. 저것의 촉수는 점점 길어지더니 판도라로 향하는 계단을 잡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 여파만으로 강남 전체가 혼란에 빠진 것이고 말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하늘에서 작은 무언가가 우수수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촉수에서부터 떨어져 내리는 것은…….

“이제 끝났군.”

그 괴물이었다. 한국 대학교 신입생들을 집어삼키려 했던 보랏빛 괴수였다.

그게…… 그게…… 하늘 전체를 덮고 있었다.

셀 수도 없는 괴수들.

하나하나가 비천한 신격에 달하는 것들.

‘이대로 죽을 순 없어.’

진희는 눈을 감았다.

이한성 아저씨가 보여준 걸 떠올렸다.

그는 검을 휘둘렀을 뿐이다.

하지만 그 경로는 대기에 퍼져있는 마력의 흐름을 바꿨다.

신기(神技)였다.

사람이 그런 게 가능할 거라고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알고 나니까 꼭 못할 건 아니었다.

특히 [마력 조종]이라는 재능을 지닌 진희에게는 희미하지만 영향을 끼칠 순 있었다.

이능력자에겐 통용되지 않고.

마력을 지닌 자들에게만 통하는 신격.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

‘저건……, 이 강남 전체의 마력을 느끼고 있다.’

마력은 모든 곳에 연결되어 있다.

‘마력의 연결을 끊는다.’

진희 몸과 대기의 마력을 끊는다.

그거면 될 거다.

그렇다면 마력을 통해 전해지는 영향을 끊을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게 말이 될 리 없다.

이한성 아저씨의 그 검격을 보지 못했다면.

그리고 창조신 이한성을 보지 못했다면.

말이 될 리 없다고 철저히 믿었을 거다.

하지만 이제 다르다.

그의 검격(劍擊)은.

모든 대기의 마력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 모든 마력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는 마력이었고 마력은 그였다.

저 보랏빛 신격조차 그에게 지배되는 마력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걸 따라갈 순 없다.

하지만 흉내는 가능하다.

바닥에 손을 짚고 일어났다.

하늘에서 짓누르는 강렬한 신격은 한없이 약해졌다.

진희의 몸과 연결된 대기의 마력을 희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진희는 검을 쥐었다.

검이 천근만근이다. 들리지 않는다.

식은땀이 흐르고 전신의 근육은 끊어질 것 같다.

혈액은 어디에서부터 막힌 것인지 머리가 핑 돈다.

하지만 멈춰선 안 된다.

투두두둑.

콰아앙!

떨어져 내린 보랏빛 괴수들이 보였다.

그것은 사방에 모든 것을 씹었다.

사람이건 이종족이건 건물이건 자동차건. 그냥 다 물어 없앴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파괴’인 것처럼.

크르릉.

그런 괴수 중 하나가 진희 앞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이 생물은 무엇인가 고개를 갸웃하며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래, 마력이 희미하게 전달되기에 무언가 있는 거 같긴 한데 확실하지 않다.

궁금한 거다.

주륵.

얼굴에 흐른 그녀의 땀은 마지막까지 연결되어 있던 마력의 흐름을 끊어냈다.

그러자 괴수가 고개를 번쩍 들어 등을 돌렸다.

“……후.”

진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력을 끊는 건 쉬운 게 아니다.

호흡마저 멈춰야 했고 세상과 육체의 모든 감각을 끊어내야 했다.

이것도 진희가 검을 수련하고 마력적 재능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지…….

크릉.

하지만 그것은 실수였다.

괴수는 진희의 존재를 확신했고.

달려들었다.

진희는 하늘에서 짓누르는 거대한 신격에 검을 휘두를 수 없었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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