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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은 만렙이다-198화 (198/200)

제 198화

제8편 후폭풍

진희는 계속 한성에게 눈길이 갔다.

‘분명 뭔가 있어.’

튜버 이한성. 지금은 창조신의 이한성의 팬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제자? 그것도 아니면 그의 아바타?

이론 수업을 듣고 있는 그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기 위해 앞에 앉는 척하면서 그를 앞으로 보내고 중간에 뒤로 이동했다.

‘전혀 신경 쓰지 않네?’

그건 좀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으니 잡생각을 털어 냈다.

그날, 하늘에 이상한 이계의 신격이 등장하고 마신 성시연과 창조신 이한성이 그 신격을 물리친 날. 세계는 또 한 번 떠들썩했다.

당연하게도, 현재 인류에서 그 정도의 신격을 보유한 사람은 그들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외신은 말했다.

그 둘이 마음만 먹는다면 지구를 멸망시키는 것도 어려운 게 아니라고. 하긴, 그건 판도라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존 최고의 신격을 지녔으니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사람들은 말한다.

그들을 막을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런 말들은 진희가 신경 쓸 게 아니었다.

그걸 아무리 찾는다고 해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능할 리도 없지 않은가.

그는 그다.

말 그대로 창조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마신과 천사군 사령관 진훈, 정연의 주인이자 요괴들의 왕 한별, 갤러해드이자 아서왕의 후인인 안혜림, 오딘의 자리에 앉은 얜 샤를…… 그 어떤 한 명도 마음만 먹는다면 일국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없앨 수 있는 이들인 거다.

그들을 막는다는 생각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진희는 그저 이전의 그의 영상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 이한성의 영상.

균열이 생기기 전, 이한성이 처음 [세상의 끝]을 플레이하면서부터 그의 튜브에 업로드되었던 그의 영상. 무식하게 마법을 공부하면서 메인 캐릭터와 메인 퀘스트를 피해 별의별 루트를 탔던 그.

예전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튜브를 접했고, 이한성의 튜브에 빠져들었다. 그는 재능충이었고 노력도 했으며 즐기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쓸데없는 루트를 타면서 계속 죽었지만, 끊임없이 강해졌다.

그리고 균열 이후의, 그는 판도라 안에서도 튜브를 했다.

그 영상이 풀렸을 때, 파장은 상상을 초월했다.

‘사람이 저럴 수도 있구나.’

그저 천재적인 실력만 말하는 게 아니다. 마법은 이미 마스터, 검술 실력은 끊임없이 올라가고 위기 대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다 좋다.

그런데 저렇게 사람이 관종일 수도 있구나.

그런 반응이 가장 컸다.

‘이런 상황에서 저렇게?’

‘아니, 죽을 위기를 연출까지 하면서 찍고 있다고?’

‘미친 관종이다!’

하지만 그의 영상은 아주 좋은 자료였다. 그런 재앙과 위기 속에서 영상을 녹화하는 것. 그것도 음향, 영상의 구도, 상황 설명 등등.

모든 것을 거의 교보재로 만들어 놨다.

지금 이론 수업도 그가 길이현을 공항에서 구하는 장면을 보고, 그가 왜 저렇게 대처했고 어떻게 아무도 죽지 않고 구할 수 있었는지를 분석하는 중이었다.

‘자기가 교재로 나오고 있는데 저런 표정이…….’

만약 창조신 한성이 아저씨 한성이 맞다면, 이런 상황에 당연히 잘 보지 못하거나, 아니면 부끄러운 게 맞지 않을까?

‘하긴, 이한성 정도의 관종이라면 또 모르지.’

아저씨 이한성은 그 영상을 보면서 실실 웃고 있다. 저게 자신의 모습이 좋아서 웃는 건지, 아니면 수업이 재미있고 배울 게 많아서 좋은 건지 모르겠다.

진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다.

또, 만약, 그가 이곳에 있는 거라면 왜 그런 것인지 알아볼 필요도 있었다.

왜냐고?

‘수, 순수한 팬의 마음이지!’

그러면서도 진희의 얼굴은 붉어졌다.

* * *

“피터.”

성시연은 피터가 갔다던 이계의 경계로 이동했다.

마계에서 천외천으로 가는 길목, 차원의 격류(激流) 중앙의 작은 틈새다.

그곳에 머물 수 있는 존재는 몇 없지만, 마신의 길을 걷고 있는 성시연은 어려울 게 없었다.

성시연이 피터를 몇 번 불렀다.

경계 저편에 있을 테니, 조금 걸리겠지.

그렇게 10분 정도가 지나가 누군가 멀리서 오는 감각이 잡혔다.

“피터?”

섬뜩.

성시연은 급하게 몸을 틀며 마기를 뿌렸다. 피터가 아니다. 보랏빛 촉수가 성시연이 있던 자리를 꿰뚫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었다.

투두두두둑!

그 누구도 쉽게 존재할 수 없는 차원의 격류 속에서 성시연은 피했고 보랏빛 촉수는 끊임없이 공격했다.

‘젠장!’

성시연은 이곳에서 오래 버틸 수가 없었다.

저게 이곳으로 넘어오게 해선 안 된다. 보통 존재라면 이 격류에서 살아남을 수 없겠지만, 저건 상상 이상으로 멀쩡하다.

오히려 이 회색빛 격류를 조금씩 보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

저게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피터가 위험하거나…… 이미 죽었다는 것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보랏빛 이계의 신격이 판도라와 지구 곳곳을 침범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확실했다.

특히, 천외천과 마계 사이를 파고들었다는 것은 굉장히 큰일이다.

성시연은 계속 쫓아오는 촉수를 피해 마계로 향했다.

이 사실을 알리고 마계와 천외천은 대비해야 할 거다.

아마 지구와 판도라, 그 사이에 끼인 차원의 운명이 비틀어진 후폭풍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한성이 바로잡아야 할 거다.

그게 그의 운명이니까.

* * *

“쉽지 않다.”

한성이 중얼거렸다.

힘없이 터벅터벅 걸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주 쉽지 않아.”

“뭘 그렇게 쫑알쫑알대요!?”

“쉽지 않아서.”

“그니까 뭐가요!”

“인생이. 인생무상이야.”

“어휴, 아재. 그러니까 공부 좀 하라니까요.”

진희는 정말 한숨만 나온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누가 이렇게 갑작스러운 쪽지 시험을 볼 줄 알았을까?”

“그게 평소 실력이라는 겁니다!”

“누가 시험을 실력으로 보냐! 다 벼락치기지.”

“그건 아저씨나 그런 거고요. 아니, 20점 만점인데 3점이 말이나 돼요?”

“……내가 할 말이 없다.”

“아니, 마력도 F급이고 이론도 빵점이고.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뭡니까?”

“검술? 그거 하나는 기가 막히지.”

“……그건 맞는 말이네……. 할 말 없게.”

“쯧쯧, 영웅 후보생이 검술만 할 줄 알면 됐지. 왜 쓸데없이 일본어로 우동을 시키고 있고, 비상 상황에 호출하는 걸 영어로 하느냐는 말이야. 통역 마법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혼자 있을 때가 있잖아요. 근처에 마법사가 없으면 어떻게 해요.”

“장비도 많지. 통역은 특히!”

“장비가 고장 날 상황도 많고 마력 동결이나 마력이 불안정할 경우에도 쓸 수 없으니까요!”

“……꼭 그렇게까지 따박따박 말해야겠니?”

“그러니까 꼰대 소리를 듣는 거예요.”

“그런 소리는 너밖에 안 하거든!?”

“친구가 나뿐이겠지 뭐.”

“……뼈아프다.”

각 나라별 영웅의 사회 관계 상황과 가벼운 언어를 익히는 교양이었다. 당연하게도 모두 한국말만 하는 판도라에서 다른 언어를 쓸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외국에서는 그 나라의 말을 사용하는 판도라 세상이 있었다. 한국은 한국어, 일본은 일본어, 미국은 영어.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세계였다.

그런데 한성이 살던 세계가 진짜가 되었다.

오직 하나뿐인 진짜.

그게 큰 영향을 끼치긴 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각국의 관계가 변했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통역’이 그렇게 어려운 분야의 마법은 아니란 것이다.

하여튼,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이 시험 중요한 거였나……?”

“아저씨는 이미 A는 물건너갔어요.”

“……그 정도야?”

“네, 당연하죠!”

“쩝, 하긴. 내가 점수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래도 좀 쪽팔리지 않아요?”

“…….”

한성은 할 말이 없었다.

둘은 강의실을 나와 다른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식당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잔뜩 모여 있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이지?”

“뭐야, 또 유명한 사람이 왔나?”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둘은 조금 더 다가갔고, 그제야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미쳤어. 저 나른한 미소 보여? 개 멋있어! 완전 섹시하잖아!”

“한별? 난 그보단 진훈이 더 좋아. 저 단단하고 깔끔한 인상을 봐. 거기에 순한 눈동자. 좋다 좋아! 키는 또 얼마나 큰지.”

“근데 여긴 왜 온 거지? 꺄악! 나한테 방금 눈빛 보냈어!”

“아니야, 나다 이년아!”

“뭐라고? 이년? 이년이!?”

난리가 났다.

누가 왔기에 저런가 했더니, 진훈과 한별이었다. 진희는 그 소리를 듣고 또 신나서 달려갔다.

“좋을 때지…….”

한성은 또 걱정이 됐다. 저놈들은 무슨 일이 있길래 이곳으로 온 것일까.

천외천이나 판도라에 무슨 사고가 생겼을까? 요즘 판도라에서도 보랏빛 신격이 등장하고 있다는 소리는 전에 들었었다.

그리 심한 상황은 아니지만, 진훈이나 한별이 여기에 커피나 한 잔 하려고 온 것은 아닐 거다.

그때, 불쑥 진훈이 한성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아, 아니 저 멍청이가!’

“어……? 어? 어어?”

진희가 이상한 신음을 내며 한성과 진훈을 번갈아 봤다.

이게 아닌데, 이게 맞나? 그거다! 이런 의미를 담은 소리였다.

한성도 엄청나게 당황했다.

아무리 멍청해도 진훈이 이런 곳에서 저런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하지는 않는다.

그때였다.

진훈이 가볍게 마력을 이용한 고속 이동. 그러니까 발을 살짝 내딛는 것만으로 한성의 앞으로 왔다.

한성은 피할까 말까 하다가 가만히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한성 학생님, 잠시 나눌 말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무례를 끼쳐 죄송합니다.”

“……네, 반갑네요. 무례라는 단어가 왜 있는지는 알죠?”

“하하하, 그렇죠. 죄송하지만, 잠시만.”

진훈은 진희에게 눈치를 보내며 한성을 끌고 한쪽으로 이동했다. 뒤로 학생들이 쫓아왔지만, 진훈이나 한성이 마음먹고 따돌리는 것을 잡을 순 없었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비상 상황이 터졌어.”

“무슨……?”

진훈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이럴 거면 호출로 했어도 됐다.

그럼 누구에게 들킬 염려 없이 판도라의 계단, 그러니까 탑으로 갔을 거다.

“사실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하기도 했고.”

진훈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뭐, 그럴 수 있지. 그건 그렇고 진짜 무슨 일이야?”

“보랏빛 촉수. 그게 천외천하고 마계 경계를 삼키기 시작했어. 그뿐이 아니야. 이미 중국과 미국의 절반이 또 먹혔어. 한국은 어찌어찌 막고 있는데, 쉽지 않아.”

“심각하네.”

“피터의 생사도 확인되지 않고 있어. 크툴루와도 연락이 안 되고. 그것도 심각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 지구도 방심할 수 없다는 거지.”

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

보랏빛 촉수. 이계의 신격은 강하다. 이번에도 한성과 성시연이 힘을 합해야 물리칠 수 있었으니까. 물론, 둘의 힘이 완전하지 못한 지구라지만, 상대도 더 강한 신격이 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판도라는 막을 수 있다.

성시연, 진훈, 한별. 그 외에도 수많은 영웅이 존재했으니까.

이제 그들은 한성이 없더라도 잘해낼 거다.

문제는 그들도 모든 힘을 낼 수 없는 이곳이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군.”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피터가 살아 있어서 그와 대화를 해 봐야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없어질 세계를 살려 놓았기에 생긴 자연스러운 운명의 후폭풍일 거다.

이겨 내야 한다.

“친구 하나 만들기 참 힘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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