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7화
제7편 빛과 어둠
성시연이 먼저 올라갔다.
“내가 먼저 막아 볼게.”
“난 이 학교랑 서울부터 보조할게.”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한다.
저것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울을 포함한 한반도의 피해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판도라로 연결되는 계단은 더욱 그렇다.
저 기이한 이계의 신격이 나타난 곳은 강남 상공.
탑의 위인 거다.
활짝.
성시연의 머리에서 뿔이 돋아나고 날개가 펴졌다.
그리고 발과 손이 보랏빛으로 변했고 눈가엔 짙은 스모키가 새겨진다.
붉은 기운이 폭발한다. 하늘에 뚫린 구멍에서 촉수를 지닌 이계의 신격이 뿜는 기세를 받아친다.
화악!
그와 동시에, 한성이 늦지 않게 실드를 생성했다.
탑에 하나, 강남에 하나, 서울에 하나, 한반도에 하나. 아쉽지만 북쪽과 남쪽에 있는 다른 나라는 신경 쓸 수 없다.
결과적으로 탑에만 네 겹의 실드가 겹쳐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콰작! 콰자작!
한성이 친 실드 두 겹이 무너졌다.
한반도가 흔들렸고 서울이 흔들린다. 건물이 몇 개 무너지고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어중간하게 마력이 있는 사람들은 마력의 역류로 쓰러졌을 거다.
화륵.
성시연의 붉은 화염이 이계의 신격을 뒤덮는다.
하지만 그것으론 턱도 없을 거다.
한성은 자세를 낮추고 위로 튀어 나가려 했다.
“오빠!”
옥상 입구에서 진희가 한성을 불렀다.
“지금 큰일이에요! 여길 빠져나가야 해요!”
“진희, 당장 내려가!”
“같이 가요! 갑자기 그렇게 사라져 버리면…… 꺅!”
다시 이계의 신격이 공격을 시작했다.
성시연 홀로는 무리다.
한성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진희의 뒤쪽으로 이동한 후에, 그녀를 기절시켰다.
“미안. 조금만 그러고 있어.”
한성은 힘을 개방했다. 머리 위엔 황금빛 링이 생겼고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금빛으로 물들었다.
예전 창조신이 가졌던 힘이었고 한성이 따라가는 힘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얼굴도 원래의 이한성으로 돌아왔다.
순간 성시연에게 쇄도하던 이계의 신격의 기세가 소멸했다.
* * *
이하네스는 소름이 끼쳤다.
이런 기분이 얼마 만인가. 이다빈이라는 인간과 친구가 되고 판도라라는 세계와 이 지구라는 세계가 합쳐지는 것까지 겪으면서 더는 놀랄 게 없다고 생각했다.
이하네스는 온전한 신격 끝에 도달했으며, 이 지구에서도 비천한 신격 정도는 가볍게 이길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감히 그 끝을 알 수도 없는 신격을 봤다.
그것도 학생 중에서.
이하네스보다 위인 드높은 신격을 마주하더라도 이 정도의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무언가 익숙했다. 어디서 많이 봤던, 아니, 느꼈던 기운이었으니까.
어찌어찌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하네스가 이다빈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시연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성시연이라는 마왕이 왔다는 말을 들었을 땐, 다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인간들은 저렇게 좋아했지만, 이하네스는 그녀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좀 아닌 거 같아.’
분명 판도라보다 훨씬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지구라는 곳은 아직 비천한 신격조차 잘 보이지 않은 세계였으니까. 개나 소나 비천한 신격이고 온전한 신격까지 흔한 곳이 판도라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러다 몇 분이 지나고.
쿠르르릉.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신격이 저 높은 하늘에 등장했다.
이하네스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결코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되는 신격이었다.
이 세상 정도는 아주 쉽게 멸망시킬 정도의 존재.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바로 이 건물 옥상에서 빛과 어둠의 신격.
그러니까 태초의 [창조신]과 [마신]으로 생각되는 신격 둘이 뿜어내는 신격에 세상이 정전되었다. 깜빡 사라진 빛과 함께 환한 세상이 되었다.
‘역시 지구는 위험한 곳이었어!’
이하네스와 이다빈. 그리고 다른 학생들도 모두 창가에 붙어 하늘을 바라봤다.
보랏빛 이계의 신격이 하늘을 뒤덮었고, 그것에 맞서는 어둠과 빛.
“이한성이야!”
“옆엔 성시연이겠지!?”
“이한성이다! 이한성이야!”
“창조신과 마신의 후예가, 한 자리에 있다니! 이 정도면 거의 역사적인 자리 아니야?”
“맞아, 근데 저 둘과 싸우는 저건 뭐지?”
“막상막하…… 아니, 오히려 밀리는 거 같은데?”
“……역사적인 자리긴 하겠네, 멸망하거나 살아남거나.”
그 말이 맞았다.
처음의 그 설렘과 흥분은 사라졌고 두려움만이 이 강의실 안에 자리 잡았다.
이다빈이 이하네스에게 물었다.
“우리가 도움 될 건 없겠지?”
- ……없지.
번쩍.
하늘이 다시 정전되었다.
커다란 태양이 자리 잡고 있던 하늘은 사라졌고 보랏빛과 빛과 어둠이 휘몰아치는 신격의 폭풍만이 머리 위를 뒤덮고 있었다.
이하네스는 이곳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하지만 저들의 아름다운 전투에서 눈을 뗄 수도 없었다.
와장창!
그때, 세상이 쪼개지듯, 하늘에 있던 실드가 박살났다. 한성이 만든 것이라 예상되는 실드.
이윽고, 거대한 파장에 주변 건물의 모든 유리창이 박살났다.
“윽!”
학생들은 알아서 실드를 생성하고 육체를 강화하며 스스로를 보호했다.
이다빈이 그 모습을 보다 외쳤다.
“모두 주목해 주세요!”
이대로는 안 된다. 이한성과 성시연이 하늘에 나타난 이계의 신격을 상대하는 것에 도움을 줄 수는 없지만, 이 대학 안의 일반인을 구하는 것은 할 수 있다.
쿠우웅.
저 멀리서 다시 빛이 터졌다.
수초 안의 파장이 이곳까지 도달한다는 뜻.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이곳을 보호해요!”
이다빈이 창밖으로 뛰어나가며 이하네스와 함께 거대한 얼음의 막을 생성했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마법을 사용하는 이들은 마법을 썼고, 육체 특화 플레이어는 소수의 인원을 직접 구했고, 이능도 이능 특성을 살려 주변을 보호했다.
콰지직.
쿠우웅.
다행히 버텼다.
하지만 방금 그 충격으로 몇몇 플레이어가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거대한 신격에 반발한 반발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저런 전투에 이 정도 피해는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제발…….”
이다빈이 하늘을 보며 기도했다.
부디 이 전투가 승리하길.
* * *
한성은 오랜만에 전력을 끌어올렸다.
“역시 친구 만드는 게 쉬운 게 아니지?”
성시연은 그 한성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렇지, 어디 친구 만드는 게 쉬운가.
판도라에서도 그랬고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인 거다.
한성이 처음 성시연과 친구가 될 때도 벤토라는 놈을 만나 죽을 뻔했고, 진훈과 친해지려니 한별이 한성의 목숨을 노렸다.
또, 한별과 친해지려니 이제 한별의 아버지인 [현세마왕]이 한성을 죽이려 했다.
한성이 어렸을 때, 괜히 친구가 없었던 게 아니다.
“당연한 거였어…….”
뭔가 핀트가 엇나간 말이었지만, 이 상황에서 그 말을 반박할 수가 없었다.
이게 과연 원래 일어날 일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한성을 따라다니는 재앙?
그것도 아니면, 한성이 친구를 만들려고 해서?
뭐가 되었든, 이곳을 지켜야 하고 저것을 쫓아내거나 없애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시 가자!”
한성이 ‘빛’의 힘을 뿜으며 위로 솟았다. 성시연이 옆으로 붙으며 ‘어둠’을 뿜었고, 그 둘은 서로를 밀어내며 강력한 반발력을 만들어 냈다.
쿠구구궁.
하늘을 울리는 굉음이 터지며 둘에게 달려드는 거대한 보랏빛 촉수가 터져 나갔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이었다.
보랏빛 신격의 촉수는 끊임없이 나왔고, 한성과 성시연은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이걸론 부족해.”
저건 최소한 태초의 신격 급이다.
한성과 성시연 모두 그 정도의 신격이지만, 그것은 판도라에서. 그것도 천외천에서의 신격인 거다. 이곳에서는 그보다 최소 몇 단계 낮은 힘만 발휘할 수 있다.
“그거 해 보자.”
“그거?”
성시연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언젠가 연습했던 게 있었다. 빛과 어둠은 서로를 잡아먹는 상성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서로의 힘을 부딪쳐 강력한 폭발력을 끌어올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힘이 제대로 섞인다면?
지금의 한성과 성시연의 힘을 합해서, 2가 아닌 2.5는 만들었다.
처음엔 1.5 정도였다는 걸 생각하면 그것도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빛과 어둠.
그 태초의 두 힘을 섞는다면 3 이상. 운이 좋으면 4나 5까지 발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 보자!”
저런 확신에 찬 한성의 말에 성시연이 머뭇거리는 것은, 그 기술의 실패가 주는 후유증 때문이다.
“젠장, 겁나 아픈데!”
“이번엔 성공한다.”
“우리 서른 번 하고 딱 한 번, 그것도 절반 성공한 게 전부거든!?”
“내가 좀 실전파잖아.”
“젠장! 이래서 천재들이란!”
한성은 정말 그런 천재 중 하나였기에 성시연은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상당히 재수가 없었을 뿐.
쿵.
한성이 허공을 박차며 위로 솟았다.
그 뒤를 성시연이 따르며 한성이 뿌리는 빛 사이로 어둠을 뿌리기 시작했다.
하늘에 빛과 어둠이 조화롭게 섞이기 시작한 것이다.
* * *
진희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강의실에 있었던 이한성이 사라져 그를 찾으러 나왔다.
그러자 하늘에서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고 그 찰나에 이한성을 발견했다.
그래서 빨리 강의실로 데려가려고 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이한성이 사라졌고…… 정신을 잃었다.
“저게…… 뭐야.”
하늘에서 휘몰아치는 신격의 향연.
그 무엇보다 거대해 보이는 보랏빛 신격을 막아서는 하얗고 검은 기운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감히 위로 바라볼 수조차 없는 강력한 신격.
그때, 빛과 어둠이 섞이며 빈 공간…… 아니, 투명하게 변했다.
그리고 그 안엔 한 사람이 검을 머리 위로 치켜든 후에 아래로 내려긋는 게 보였다.
콰아아아아!
이후의 상황은 비단 하늘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한반도의 모든 대기를 빨아들이듯, 저곳에서 마치 ‘빅뱅’이라도 일어나는 것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충돌이 일어났다.
화악.
“이한성…….”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저 어둠은 성시연의 힘이었고 빛은 창조신의 길을 걷는다는 이한성의 힘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한성이 이곳에…….
“이한성.”
다시 한 번 그의 이름이 입안에 맴돌았다.
하지만 처음에 생각했던 그 이한성이 아니었다.
왜인지, 저 하늘에 떠 있는 이한성이 휘두른 검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아까까지만 해도 옆에 있었던 그 이한성의 검과 아주 유사했다.
당연히 형(形)은 다르다.
하지만 그 분위기와 느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은 창조신 이한성과 아저씨 이한성이 동일 인물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에이, 아니겠지.”
절대 아닐 거다.
이한성은 분명 이곳에 있어선 안 된다. 창조신의 길을 걸어야 하며, 천외천이나 다른 세상에서 하늘의 존재들과 싸우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그런 이한성이 이런 학교에 들어와 신입생 코스프레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당연히.
그게 맞다.
하지만 진희의 머릿속엔 계속 아저씨 이한성이 떠올랐다.
화악!
하늘이 하얗게 변했다.
다시 시야가 돌아왔을 땐, 이전의 맑은 하늘로 변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