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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은 만렙이다-196화 (196/200)

제 196화

제6편 이계의 신격

그 날의 수업은 사라졌다. 사망자는 없었지만, 건물 하나가 붕괴한 사건이었으니 수업이 진행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마법’이라는 게 있는 시대다.

다음 날, 같은 자리에 더 높고 단단한 건물이 들어섰다.

그 건물 앞에서 진희를 만났다.

이 정도면 정말 스토커가 아닌가 싶었다.

“이야, 기술이 많이 발전하긴 했어.”

“아재 같아…….”

“아재라니! 어제는 오빠라고 하더니.”

“생각해 보니 15살 차이는 크잖아요.”

“……너도 [세상의 끝]은 했을 거 아니야.”

“플레이한 시간을 요즘 누가 나이로 쳐요?”

“그래도 한 십 년은 했겠지?”

“한 이십 년?”

“많이도 했네, 공부는 안 했니?”

“으악! 또 아재 같아!”

“……무슨 말을 못 하겠네.”

둘은 그렇게 대화하며 강의실로 향했다.

오늘의 수업은 플레이어라고 불리며 향후 영웅으로 불리게 될 이들의 교양인 ‘테이밍’이다.

테이밍 타투.

그리고 테이밍.

그 두 가지는 그 어떤 플레이어도 아주 기본적으로 구비해야 할 능력이었다. 재능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최소한의 무력 보조를 받을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더 강한 몬스터를 잡을수록 전력을 강화할 수 있다.

이만큼 직관적인 전력 상승의 길은 또 없다.

“오빠는 뭐 잡은 거 있어요?”

“나는…… 딱히 없네.”

현재는 마굴의 왕만 가지고 있다.

나머지는 이계의 도시에 팔기 위해 잡았던 거니까.

이 상황에 마굴의 왕이 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인 거다.

“에? 한 마리도요?”

“응.”

“거짓말. 그 실력에 그게 없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없을 수도 있지. 검 휘두르기 바빠서.”

아예 없는 말을 지어낸 건 아니다. 정말 강해지는 것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으니까.

이곳에 있는 이들은 소환수 한 마리, 한 마리가 소중하다.

특히, 판도라에서 비천한 신격에 든 이들은 같은 수준의 마물이나 몬스터를 테이밍할 수 있을 거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

하지만 비천한 신격 정도의 몬스터 한 마리만 있다면, 이곳에서는 엄청난 전력이 생기는 거다.

당연히 그 몬스터도 이곳에서는 원래의 ‘비천한 신격’을 발휘할 수는 없다.

그래도 두 배다.

그게 한 마리가 아니라 다섯 마리 정도만 되어도, 하나의 파티가 되는 거고 말이다.

“와, 완전 검빠였네.”

“검빠?”

“검술 빠돌이.”

“별다줄.”

“……아재네, 그게 언제 쓰던 말입니까!”

둘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강의실에 입장했다. 그곳엔 강사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경지가 높았다.

이곳에서도 비천한 신격의 일부를 사용할 수 있는 실력자였다.

‘세상엔 참 기인이 많아.’

한성이 온리 원 축제에서 봤던 가장 강했던 이는 이한나였다.

그녀도 지금 현실에서 비천한 신격을 겨우 끌어올린다. 이제 막 온전한 신격에 턱걸이를 해서 그렇다.

‘비슷하거나…… 조금 높을 수도 있겠네.’

“안녕하세요. 저는 판도라에서 온전한 신격에 오른 ‘이다빈’ 강사라고 합니다. 테이밍에 관해선 꽤 전문가라고 할 수 있죠.”

그녀는 테이밍 과목 강사답게 팔뚝에 [중급 테이밍 타투]가 새겨져 있었고 그걸 자랑스럽게 노출하고 있었다.

한성이 가진 [최상급]에 비할 바는 안 되지만, 현 상황에 [중급]이라는 건 벌어들인 DP의 모든 걸 테이밍에 쏟아부었다는 뜻이 된다.

게다가 그곳에 새겨진 몬스터와 마물은 하나같이 희귀하지 않은 게 없었다.

다른 학생들도 그걸 봐서 그런 것인지, 침을 흘릴 것처럼 멍하니 강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거나 손짓 하나만 해도 집중하고 깜짝깜짝 놀란다.

“테이밍에서 중요한 건, 몬스터를 굴복시키는 것도 있지만, 몬스터의 마음을 빼앗는 것도 중요합니다. 힘으로 무릎 꿇려도 마음이 넘어오지 않으면 테이밍이 쉽지 않은 몬스터가 있으니까요.”

보통의 몬스터는 그런 게 없다.

하지만 희귀한 놈이라면 당연히 다르다.

그녀가 팔뚝 어느 곳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팟.

그러자 팔뚝의 타투가 마력 입자로 퍼져 사라지며 그녀의 옆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등급 자체는 높지 않다. 노란색을 보아하니 비천한 신격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등장한 몬스터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공중에 떠 있는 푸른빛의 여인. 그녀의 얼굴엔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테이밍 당한 몬스터라고 보기엔 너무나 인간적이고 따듯한 미소였다.

“제 친구를 소개하겠습니다. 얼음의 정령으로 분류되는 몬스터, 하지만 사람과 같은 생각과 말을 하는 ‘정령’이죠.”

- 안녕하세요. 여러분, 이하네스라고 해요.

“오오!”

이하네스라는 정령이 말을 하자 학생들은 모두 놀라 감탄을 질렀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 인간에게 호의적이고 아름다운 ‘몬스터’를 보기가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

세계관 때문에 더욱 그렇다.

모든 게 재앙으로 연결되는 무서운 곳이었으니까.

멈칫.

이하네스의 시선이 학생을 훑고 한성에게 멈췄을 때였다.

이하네스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갔다. 천적을 만났을 때의 두려움일까. 아니면 감히 넘보지 못할 경지의 존재를 만났을 때의 경의일까.

한성은 눈을 피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이하네스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모습을 본 이다빈 강사는 이하네스의 시선이 멈춘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때는 이미 한성이 눈을 돌린 상태였고 이하네스는 억지로 이다빈 강사의 시선을 돌렸다.

-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그저 밖에 뭐가 지나간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하자 이다빈 강사도 다시 수업을 진행했다.

‘어떻게 알아본 거지?’

한성은 그게 궁금했다.

정령의 형태를 한 몬스터. 얼음 속성에 마법력까지 출중하다. 게다가 이렇게 선(善) 성향이라고?

한성은 신격을 살짝 끌어올려 이하네스를 살폈다.

움찔.

이하네스는 그 기운을 느끼고 몸을 떨었지만, 그 외엔 아무도 느끼지 못했다.

이하네스가 손끝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아하, 천외천에 있던 놈이구나.’

천외천에 있는 모두가 드높은 신격에 드는 건 아니다. 작은 생물도 있고, 그중에는 정령과 같은 이들도 있다. 어쩌다 밖으로 나와서 이렇게 테이밍 당하기도 하고 말이다.

현세에선 흔히 ‘전설의 소환수’라고 불리기도 한다.

극히 찾기 힘들고 또 강하니까.

한성은 관심을 껐다.

“저는 테이밍을 하기 위해 몬스터를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이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크게 리스크가 있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더 효율적일 수도 있죠.”

다들 이다빈 강사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하는 것인지 궁금하겠지.

하지만 한성은 딱히 궁금하지 않았다. 몬스터의 성향에 따라 테이밍 방법을 바꾸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한성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오늘 수업은 딱히 배울 수 있는 게 없었다.

하긴, 무언가 배우러 학교를 온 게 아니니까.

“응?”

바로 고개를 떨구면 보이는 곳에서 잘 빠진 스포츠카 한 대가 멈췄다. 그리고 내린 사람은…….

“성시연?”

한성의 중얼거림에 옆에 있던 진희가 한성을 보곤 창밖을 내려다봤다.

“꺄악!”

“뭐, 뭐야?”

“성시연이다! 성시연이야! 역천의 마왕! 이한성의 여인! 이제는 마신이 된다는 그 성시연!”

“와, 진짜 존예다.”

“개예뻐. 그 한성이라는 놈은 좋겠다.”

한성이 말릴 틈도 없었다.

성시연이 저렇게 대놓고 왔으니 말려 봤자 소용도 없었겠지만.

학생들이 모두 창가에 붙어 성시연을 부르고 손을 흔들기 바빴다.

성시연도 문득 들리는 소리에. 아니, 사실 한성이 이곳에 있는 걸 느끼고 온 걸 테지만, 학생들에게 손을 흔들어 줬다.

“와아아! 나한테! 나한테 인사해 줬어!”

“나한테 윙크한 거거든!”

“나야! 이 바보들아.”

“진짜,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지?”

한성은 뒤로 살짝 빠졌다.

왜 여기까지 온 거지?

마신의 길을 위해 수행하던 것은 다 한 걸까?

한성은 공간의 틈으로 숨었다.

휘릭.

그는 한 점으로 사라졌다.

성시연도 그걸 느낀 모양인지, 한성을 따라갔다.

당연히 아무도 그녀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없었다.

* * *

“수업 그렇게 빠져도 돼?”

“네가 왔는데, 수업 진행이 되겠어?”

“내가 그 정도야? 후훗.”

살짝 웃는 것만으로 웬만한 남자는 심장을 부여잡을 거다. 그 정도로 아름다우니까. 하지만 한성은 코웃음을 쳤다.

“자기가 예쁜 거 아는 사람은 재수 없다는데.”

“잘생긴 거 알아도 마찬가진 거 알지?”

“나야 뭐, 원래 못생겼었으니까 용서받을 수 있는 거야. 그것보다 무슨 일이야.”

성시연은 고개를 돌려 서울의 풍경을 바라봤다.

지금은 완벽한 인간의 모습이다. 일정 경지에 오르면서 마왕의 모습을 완전히 숨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힘을 잃지 않는다.

“나 없이 딴 여자랑 노닥거릴 거 같은 감 때문에?”

“……내가 그럴 리가 있나.”

“방금 0.56초 머뭇거렸네!”

“마침 들숨이 그때였을 뿐.”

“네 들숨은 0.43초야.”

“……그래서 왜 왔는데.”

한성의 말에 성시연이 진지해졌다.

“이상한 보랏빛 수증기. 이능 면역. 이계의 경계에서 새어 나온 놈들 같아. 마계에도 보이고 천외천에서도 보여……. 그리고.”

“그리고?”

“첩보가 있어.”

성시연의 목소리가 더 진중해졌다.

한성도 침을 꿀꺽 삼키며 귀를 기울였다.

“네가 맨날 여자랑 다닌다는 첩보다! 이 자식아!”

“악! 머리는 때리지 말자!”

“내가 투신으로 안 변한 걸 다행으로 생각해! 아니, 여기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여자랑 놀고 있어!”

중간중간 오러 블레이드가 튀어나왔지만, 둘 사이에 이 정도는 그저 애교 아니겠는가.

몇 번 살기가 한성의 등줄기에 식은땀을 흘리게 했지만, 그것까지도 그냥 장난인 거다.

성시연은 옆에서 한참을 대화하다가 돌아갔다.

아직은 큰일이 아니다. 곳곳에서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지만, 피터를 만나면 어느 정도 답을 볼 수 있을 거다.

심심했을 거다.

홀로 마계에서 수많은 이계의 신격을 물리치고 곳곳에서 생겨나는 바이러스를 제거해야 했으니까.

마계가 안정화되고 천외천과 균형이 맞춰졌을 때가 되어야 한시름 놓겠지.

한번 변장하고 온다고 한다.

이렇게 예쁜 여자친구가 있는 걸 알려 줘야 한다면서 말이다.

그때였다.

“한성.”

가려던 성시연이 돌아왔다.

한성은 그녀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바라볼 뿐.

“온다.”

“애들 불러야 할까?”

“부르는 게 좋긴 하지만, 못 올 거야.”

둘이서 가능할까?

성시연은 위대한 신격에 올라 태초의 길을 천천히 걷는 중이고, 한성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무력은 한성이 위긴 하다.

하지만 두 세계를 연결하면서 손실된 신격을 생각해 보면 성시연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둘이면, 사실상 이 세계와 판도라를 모두 합해도 1위와 2위라고 볼 수 있는 수준.

판도라를 포함한 이 세계에서 둘이 못 막을 건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둘은 현실에 있으면서 판도라에서의 모든 신격을 끌어올리지 못한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법칙이지만, 신격이 높을수록 제한되는 신격이 커진다.

쿠르르릉.

하늘 높은 곳, 공간을 비집고 무언가 빠져나온다.

보랏빛 수증기.

그리고 어마어마한 신격.

“이계의 신격.”

성시연이 중얼거렸다.

어떤 이계의, 어떤 신격인지는 모른다.

분명한 건 저것은 이곳에서 본래의 신격을 모조리 끌어올려 사용할 수 있다는 거다. 본체는 자신의 세계에 있고 이곳엔 머리를 내민 것뿐이니까.

쿠르릉.

다시 한 번 신격의 파장이 대한민국의 상공을 휩쓸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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