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이야기의 결말. >
모두 살린다.
살려야 한다.
그것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셀 수도 없는 시간을 반복되는 허상 속에 살았을 때, 몇 번을 포기할 뻔하다가 즐기기로 마음을 바꿨을 때, 그런 생각으로 버텼다.
모두 살려야 한다.
허상일 뿐이라고 했지만, 이제는 친구가 되어 버렸다.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그게 허상일지라도 말이다.
그것만을 좇았다. 강해지는 것. 마신을 이기고 창조신을 이기는 것. 그런 것들은 진즉에 달성했다. 언제든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이 세계를 구할 수 없었다.
한성은.
이 세계의 유일한 변수이자 실제하는 유일한 존재인 한성은.
언제나 그랬듯 자기의 목숨을 담보로 모험했다.
그렇게 방법을 찾았다.
* * *
한성의 말을 들은 루시퍼와 진훈. 그리고 창조신까지 무슨 말을 하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이해할 수 없을 거다. 한성도 그랬으니까.
그 방법을 찾으면서도 매번 의아했다.
과연 그런 방법이 있을까?
“그게 무슨 말인가.”
루시퍼의 물음이었다.
그게 가능할 리 없으니까.
쿠우웅.
밖에서 둔중한 충격이 전해졌다.
케이플람 가드니스가 밀린다는 뜻일 거다.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
“루시퍼.”
“······?”
“당신이 이 성역의 주인이 되어 주어야겠어.”
“······.”
“난 이 세상을 허상이 아닌, 실제하는 세상으로 만들 거야.”
그러려면 마신과 창조신. 빛과 어둠이 필요하고 이 세계를 지배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 지배자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는 루시퍼 정도가 전부다.
루시퍼는 한성을 뚫어지라 바라봤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기꺼이 나서겠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무조건 막을 것이다.
그런 표정이었다.
“내 모든 것을 걸고, 분명히 그렇게 만들어 준다.”
“······.”
“이 세상, 내가 반드시 지켜줄게.”
진훈, 한별, 성시연, 세르게이, 이하얀, 안혜림, 얜 샤를. 이 세상 모든 이들이 한마음으로 막을 거다. 거기에 루시퍼까지 이 성역의 주인이 된다면 안심할 수 있겠지.
물론, 불안한 건 있다.
이 세상의 멸망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
끊임없이 재앙이 내려올 거다.
이곳은 그런 세상이니까.
게다가 이 세상에 오는 원래 한성의 세계 사람들. 이능을 얻고 강한 힘을 얻기 위해 이곳에 오는 이들은, 이제 허상이 아닌 세계가 되면 목숨을 걸어야 할 거다.
하지만 이게 실현된다면.
이 하나의 실제하는 세상에 수많은 이들이 들어올 거다. 마치 온라인 게임처럼 함께 재앙을 막아내며 이 세상을 지키겠지.
한성은 그런 것들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게 진짜 가능한 것인가?”
“진짜. 진짜 그게 가능하단 말이야?”
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이 세계의 사람들도 한성의 세계로 올 수 있을 거다. 물론, 누구나 쉽게 되는 건 아니다. 아마 격이 높을수록 어려울 거다.
그에 맞는 대가를 치러야 하며, 제약으로 격이 눌리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것은 현계, 마계, 천외천 등. 모든 차원의 이동에선 당연한 대가인 거다.
또 많은 게 변한다.
하지만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그럼 이제 시작하지.”
* * *
케이플람 가드니스는 천사들을 막아내다가 문득 하늘을 바라봤다.
무언가 변하고 있다.
‘성공인가, 실패인가.’
신의 종으로서 살다가 끊임없는 세계의 멸망에 환멸을 느껴, 이곳에 섰다. 자신의 신을 등지고 말이다.
육체엔 수많은 상처가 생겼고 영혼은 짓눌렸으며 격은 찢겼다. 죽음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곳에서 한성이라는 인간과 루시퍼가 창조신과 대면하는 시간만 벌면 된다.
그것으로 태초에서부터 계속되었던 삶을 끝낸다.
더는 원하지도 않았다.
품 안에 있는 핏줄. 이하얀이라는 이름을 지닌 딸의 성장을 더 보지 못하는 게 슬펐고. 윤회가 끝나는 것을 두 눈으로 보지 못한다는 게 아쉬웠을 뿐이다.
쿠우우웅!
케이플람의 육중한 몸이 성역에 부딪혀 떨어졌다.
천사들은 강하다. ‘땅’, ‘물’, ‘생명’이라는 태초의 신들도 강하다. 케이플람 홀로는 저들을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금까지야 성역의 버프로 겨우 버텼지만, 이제 끝이다.
“미안했다. 딸아.”
케이플람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딸이 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꼭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우르르. 콰과과광!
그때, 하늘에 먹구름이 몰리며 굵은 번개 다발이 떨어져 내렸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저 먼 곳에서 하늘을 가르는 검이 떨어져 내렸고 수많은 마법진이 천사들을 집어삼켰으며 거대한 창이 바닥을 갈랐다. 그뿐이 아니다. 이계의 괴상한 괴물들까지 천사 진영 곳곳에 떨어져 내렸다.
“······인간들.”
케이플람의 눈에 보인 것은, 저 먼 곳에서 다른 신격과 싸우던 인간들이었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케이플람의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더 살 수 있다는 게 기뻤던 적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기뻤다.
케이플람의 중재자로서의 모든 힘을 쏟아냈다.
그리고 품에 있던 이하얀, 한별, 성시연까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처음엔 혼란스러워하더니, 곧 정신을 차리고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케이플람의 품에서 벗어났다.
케이플람은 그 모습을 보며, 또 뿌듯하기도 했다.
이상했다.
케이플람은 고개를 저었다. 마치 복잡한 감정을 털어버리려는 듯 말이다.
쏴아아아.
다시 무언가 변했다.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무언가 계속 변한다.
그것은 성역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무엇일까.
성공일까. 실패일까.
창조신을 이긴 걸까? 그렇다면 이 세계는 끝나는 것일까. 아니면 다시 시작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아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케이플람은 마력을 쏟아냈다.
지금은 눈앞의 전투에 집중할 때다.
* * *
서울 한복판에 이상한 게 들어섰다.
원래 균열이 있던 곳이었다.
시민들은 그것을 보며 고개를 한껏 올려 보며 감탄을 흘렸다.
웅장하다.
끝은 구름에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는다. 지름은 대충 보기에도 500m는 되어 보였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지도 않는다. 게다가 겉에 새겨진 조각과 문양은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했다.
화려했고 아름다웠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 알 수 없는 탑이 솟아났습니다. 원래 균열이 있던 자리로, 군과 플레이어가 출동해 주변을 철저하게······.]
한 명의 시민은 높게 솟은 탑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옆, 상가에서 나오는 뉴스에 고개를 돌렸다.
[속보입니다. 전 세계에 솟아났던 5개의 균열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영상 속에 보이는 곳은 모두 균열이 있던 곳입니다.]
시민은 퍼뜩 놀랐다.
균열 다섯 개가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그 말은 앞으로 플레이어가 생기지 않을 거라는 뜻이고, 지금 들어간 플레이어들도 나올 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 그리고······, 저건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다섯 개의 균열이 강남에 등장한 탑과 큰 연관이 있을 거라 확신했으며, 현재 균열 안으로 들어간 플레이어들도 살아있을 거란 추측이······.]
시민은 고개를 저었다.
전문가라는 놈들이 하는 말이 저따위라니. 저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인 거다.
갑자기 걱정됐다.
경기도로 몰아넣은 몬스터는 어떻게 해결할까. 지금까지 그 세계를 다녀온 플레이어의 수엔 한계가 있다. 지금처럼 서울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6개월 전 실종되었던 동생.
동생이 살아는 있을까.
어느 정도 포기했다.
저 세상에서 6개월이면 아주 유명한 플레이어보다 오래 있었다는 뜻이 된다. 게다가 초기 플레이어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 세상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당연히 지금까지 버텼을 리가 없다.
하지만 버티지 못했다고 죽는 건 아니다. 밖으로 나왔어야 맞지.
그래서 더 걱정이다.
저 세계로 들어간 게 아니라, 초기 균열이 발생했을 때 나타난 몬스터에게 죽은 것은 아닌지. 실종이 아니라 사망이지는 아닐지 말이다.
이현지.
그녀는 그래서 저 탑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쓸데없는 말만 짓거리는 저 전문가라는 놈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쁜 놈.”
게다가 그가 키워놓은 튜브 계정에서 돈은 어마어마하게 들어온다. 안 그래도 커다란 규모의 구독자를 지닌 채널이었는데, 균열이 생기면서 더욱 인기가 많아졌다.
새로운 업로드가 하나도 없지만, 구독자와 조회수는 폭발할 지경이다.
그가 거의 반평생을 했던 게임이 실제 세상이 되어 나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게다가 그곳에서 오래 살아남을수록 큰 힘을 지니고 나올 수 있으니까.
운만 좋다면 기적과 같은 물건 하나만 들고 와도 평생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
그러니, 관심이 클 수밖에.
그런데 이지현은 동생이 만들어 놓은 돈은 관심 없었다. 그까짓 돈 없어도 잘 산다. 그저 살아만 돌아왔으면 좋겠다. 어머니가 앓아누워 동생만 찾고 아버지는 매일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동생의 흔적을 찾고 있다.
“하······.”
그나마 집안의 기둥인 이지현은 그 모든 것을 감당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동생 때문에 이 지경이 된 건데, 동생이 만들어 놓은 것 덕분에 버티고 있다.
[두 번째 속보입니다! 탑에서 수십 명의 사람이 나오고 있습니다. 가장 처음으로 우리나라 소속 플레이어들이 나왔고, 뒤로 미국에 있던 균열로 들어갔던 플레이어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오.”
이건 좀 신기했다.
다행인 건가.
혹시나 동생이 저 안에 있더라도 살아있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거니까. 이지현은 TV 앞에 서서 움직일 수 없었다.
[인터뷰를 들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삼송 소속 플레이어 이현성이라고 합니다. 균열 속 세상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수많은 복제 세상이었던 게 하나로 합쳐졌다는 겁니다. 어떤 게 기준이 된 건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클리어. 끝에 다다른 수준의 세상이라는 겁니다.]
그것은 충격적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TV에서 대기하고 있던 전문가가 빠르게 의견을 쏟았다. 아니, 생각해보면 균열이 생긴 지 6개월뿐인데 누가 전문가란 말인가.
[제 의견으로는 누군가 클리어에 닿은 것 같습니다. 모든 균열이 사라지고 하나의 세상으로 통합되었다는 것의 유일한 가능성은······.]
[엄청난 일입니다. 만약, 저 탑의 세상이 유지된다고 하면, 대한민국은 지금부터 어마어마한 강국이 될 겁니다. 미국, 중국, 유럽, 인도에 있던 균열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 서울 강남의 탑이 유일한 입구라고 한다면······.]
좋다.
다 좋다.
저 탑을, 아니 이제 서울과 강남을 지키는 게 중요해질 거다. 나름 공부 좀 했다는 이지현은 힘을 가질 기회와 그에 비례하는 위기가 항상 함께 온다는 것을 안다.
“하긴, 그게 중요한가.”
동생만, 동생만 살아있으면 좋겠다.
그거면 충분하단 말이다.
부모님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더 이상 이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 즐겁게 웃으며 지냈으면 했다.
[두 번째 큰 변화는 이제 이 세계에서 죽으면 그저 세계에서 퇴장당하는 게 아니라, 진짜 죽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누구든지 이 세계를 쉽게 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가 연결된 거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지현은 슬슬 관심이 꺼졌다.
별 이야기는 없어 보였다.
화가 나고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기쁘진 않았다.
그녀가 등을 돌렸다.
[아, 맞다. 더 중요한 게 있었네요.]
이지현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이제 저쪽 세상에서의 ‘클리어’는 사라졌습니다. ‘종천의 구도자’, 이한성이라는 영웅이 이미 클리어를 했다고 합니다. ]
그 발언은 세상에 큰 파장을 남겼다.
이지현에게는 그게 더욱 크게 느껴졌다.
< 이 이야기의 결말.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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