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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은 만렙이다-187화 (187/200)

< 상병신은 누구인가. >

한성은 급하게 날아왔다.

뒤를 봐주는 무황과 케루빔이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전력만 쓸어버리곤 바로 온 거다. 1초 1초가 소중하다. 그 찰나 때문에 소중한 사람이 죽을 수 있다.

방금도 그랬다.

성역의 문지기, 하늘의 거신상에 한별이 죽을 뻔했다.

팔이 사라지고 거의 죽기 직전이었지만, 그래. 살았으면 됐다. 그거면 된 거다. 이 세상에서는 죽지만 않으면. 그리고 돈만 많으면 몸은 원상복귀 될 수 있다.

한성은 하나의 거신상을 베었다.

나머지 둘이 달려들자, 한성은 한별에게 입을 열었다.

“살아만 있어라.”

한성은 몸을 띄워 달려드는 거신상에게 쇄도했다.

한 줄기의 빛을 남기고 거신상에게 도달하자, 거신상이 강력한 신격을 뿌리며 공격했다. 하지만 한성은 그 자리에 없었다.

스걱.

단단한 무언가가 부드럽게 베어지는 소리.

그것은 거신상이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베어지는 소리였다.

그러자 옆에 지팡이를 든 거신상이 멈칫하며 마력을 끌어 올렸다. 거신상이라도 마법을 쓰는 거신상이라 이거다.

하지만 어쩌나.

이제 한성의 마법 경지는 하늘에 다다랐는데.

한성은 그저 움직였다.

거신상이 그려대는 마법진 수십 개를 아무런 저항 없이 통과했다. 그러자 거신상이 당황하며 더 많은 마법진을 띄웠다. 하지만 그것마저 한성은 그저 걷는 것만으로 무력화했다.

이미 한성의 몸은 마력 위에 있었다.

스걱.

한성이 든 검이 거신상을 갈랐다.

한별은 그 광경을 보곤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태초로 향하는 길]을 겪은 이의 힘인 것인가.

이건 상상 이상이었다.

*  *  *

한성은 그곳을 나서서 성역으로 들어섰다.

하늘 위에서 검은 구름과 하얀 구름이 회오리치는 모습이 보였다. ‘역천의 마왕’과 ‘하늘’이 싸우고 있는 거겠지. 이곳은 그냥 지나가도 된다.

성시연은 한성이 겪었던 ‘예전의’ 성시연보다 훨씬 강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성시연은 충분히 잘 해낼 거다.

한성은 그러고 하얀이에게로 향했다.

케이플람 가드니스.

태초의 드래곤이자, 창조신 성역을 지키는 수호룡이다.

하얀이는 아직 안 된다.

한성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하얀이가 쓰러진 상태였다. 곳곳에 수백 개의 무기가 떨어져 있었고 수많은 소환수는 흔적만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완벽하게 진 거다.

하얀이가.

한성은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잘 버텨줬다.”

하얀이는 눈을 감은 상태였다. 겉으로 보이는 몸은 그나마 멀쩡한 편이었다. 큰 상처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용혈과 용혈의 싸움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 곳부터 서로를 갉아먹는다.

격을 깎아 억지로 누르고 상대방의 영혼을 찢어발긴다.

하지만.

케이플람은 한성에게 빚을 진 게 있다.

그리고 루시퍼를 따른다.

- 기다리고 있었다.

진훈과 하얀이가 케이플람을 적대한 이유는, 케이플람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고. 혼돈에서 있었던 둘의 대화를 모르기 때문이다.

케이플람은 하얀이에게 패배를 안겼지만, 다치게 하지 않았다.

“고맙다.”

이곳에서 끝까지 버텨줬기 때문이다.

사실 케이플람이 혼돈으로 와서 루시퍼의 의사를 전하러 왔을 때, 이미 성역의 수호룡이라는 자리를 버린 이후인 줄 알았다.

그래서 기대하지 않았다.

이곳에 있을 거라곤.

그런데 어떻게 한 것인지 루시퍼는 창조신과 싸우고 있고 수호룡 케이플람 가드니스는 이곳에 있다.

- 이제 어떻게 할 것이지?

“내가 모든 걸 끝낸다.”

한성은 그렇게 말하곤 케이플람을 지나쳐 갔다.

케이플람은 그런 한성을 바라보다가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그는 바닥에 쓰러진 하얀이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하얀 막이 하얀이에게 씌워지며 사라졌다.

하얀 막을 몇 개 더 보냈다.

밖에 쓰러져 있던 한별을 감싸 치료를 시작했고 ‘하늘’과 싸워 이긴 성시연이 정신을 잃은 채로 떨어지는 것을 받았다.

이제 이 창조신의 성역 안엔 아무도 없다.

그리고.

쿠우우웅.

성역의 변화를 알아차린 ‘땅’. ‘물’, ‘생명’이 움직였다.

‘빛’은 창조신이었고. ‘어둠’은 마신이다.

이것 때문에 케이플람은 뿔 하나를 내주면서 창조신의 신의를 얻었고, 루시퍼가 창조신을 대면하는 것을 돕기 위해 나머지 뿔 하나를 잘랐다.

그리고 이곳에서 모든 것을 바친다.

수많은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성역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

케이플람은 성역 위로 날았다.

- 이제 이곳은 내가 지킨다.

저 수많은 천사 군단으로부터 창조신의 성역 안으로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다.

예전에는 이들과 함께 외부의 적과 싸웠다.

하지만 이제는 이들을 막는다.

성역의 수호룡 케이플람 가드니스의 존재의 이유가 되었다.

*  *  *

한쪽 뿔이 무너진 타락한 천사 루시퍼.

사탄이라 불렸고 모든 악마의 왕이라 불렸다.

오래전, 천사였던 루시엘은 창조신에게 버림을 받았다.

이 세계의 끊임없는 멸망.

창조신이 ‘희망’이라 불리던 [윤회]를 멈추기 위해 움직였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세계를 살리겠다고, 이 세계의 모든 영혼을 끊임없이 죽게 하고, 태초의 신격을 지녔기에 모든 기억을 간직한 채, 끊임없이 소중한 이를 잃어야 한다.

그것뿐인가.

다른 세계를 하나씩 집어삼킨다.

그게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한 ‘기회’를 얻기 위함이었다.

창조신은 스스로를 희생했다.

모든 기억을 잃고 이 세계를 정해진 운명으로 이끄는 역할을 맡았다.

이 모든 상황에서 멸망하는 세계를 구한다면, 그렇게 된다면 이 세계가 멸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창조신의 신념이었다.

그래, 이해한다.

창조신에게 이 세계는 창조신의 모든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수천 번, 수만 번.

끝도 없이 실패했다면.

그것 때문에 괴로워 죽어가는 이들이 있다면.

다른 수많은 세상이 사라졌다면.

이제는 멈춰야 한다.

“제발, 이제는 멈춰줘.”

그는 울부짖었다.

매번, 이곳에 와서 창조신을 설득했다.

루시퍼는 창조신을 이길 수, 아니, 죽일 수 없다.

창조신이 루시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루시퍼는 가장 강한 존재였다. 창조신과 마신 다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랬기에 창조신은 루시퍼에게 제약을 걸었다.

루시퍼보다 먼저 만들어진 인간이 신을 배신했던 경험 때문이었다.

푸쾅.

아주 오랜 세월, 무감각해진 창조신의 새하얀 얼굴.

창조신은 손을 뻗어 알 수 없는 힘의 광선을 뿜었다.

루시퍼는 수십 겹의 신격으로 막아봤지만, 허무하게 흩어질 뿐이었다. 그저 찰나의 시간을 벌어 피할 틈을 버는 것이 전부였다.

루시퍼는 창조신에게 달려들었다.

결코, 닿을 수 없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다.

하지만 도전한다.

화악!

콰아아아앙!

창조신은 말이 없다.

루시퍼의 말. 그리고 세계의 이상한 움직임. 모든 걸 보고 있었기에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짓을 했다고?’

날아오는 루시퍼를 쳐내면서 계속 생각했다.

루시퍼가 울부짖는다.

저런 놈이 아니라는 건 창조신 본인이 잘 안다.

‘내가······, 내가······?’

수만 번 이상. 이 세계가 반복되고 있고, 결국은 멸망한다. 이 세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유는 많다.

신격이 인간을 죽인다.

모든 신격을 막으면 인간이 신격이 되어 역사는 반복된다.

그런데 이 멸망을 막는 방법 중 하나가 ‘창조신’인 본인을 죽이는 거란다.

코웃음을 쳤다.

겨우 그것으로 세계의 멸망을 막을 수 있다고?

만약, 그것으로 세계의 멸망을 막았다면, 창조신이 굳이 ‘윤회’를 할 필요도 없었겠지. 스스로의 기억을 지우고 수많은 존재를 끊임없는 죽음으로 몰아넣고, 다른 세계까지 같이 집어삼키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거다.

안다.

‘나는 왜······.’

왜 그랬을까.

멸망을 막기 위해 그런 희생을 치르는 것?

그럴 수 있다.

다시 그런 선택의 기로에 선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거다.

눈앞에 처절한 루시퍼는 똑같이 행동할 것이고.

창조신.

‘빛’이 궁금한 건, 왜 이렇게 했느냐다.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선 무엇이든 할 거다.

그런데 굳이 이런 방법을 선택해야 했나?

세계의 멸망을 막는 것은, 그저 누군가를 죽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천외천의 신격? 창조신? 마신? 그 모두를 죽인다고 해도 멸망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막을 수 있으면 진즉에 막았겠지.

‘내가 왜 그랬을까.’

창조신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 난입했다.

진훈이라는 인간이다. 인간 주제에 치천사나 가질 법은 정화의 황금빛 마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태초의 제약을 받지 않은 인간이나 지닐 법한 어마어마한 재능의 소년이었다.

하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루시퍼? 아무리 강하더라도 이곳에 닿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인간 한 명? 대단하긴 하다. 루시퍼보다 약하지만 ‘인간’이기에 더 깊이 들어온다.

하지만 그게 한계다.

이들은 절대로 창조신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놔두는 거냐고?

“내가 전 회차에선 어떻게 행동했지?”

궁금했다.

아마 지금 하는 생각과 같았겠지만 말이다.

루시퍼는 대답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 옆에 있던 진훈이라는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무엇인지 아는 표정. 그러니까 대답하지 않았겠지.

“아무래도 다시 시작하는 게 좋겠지.”

이번에도 실패다.

둘 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해결 방법을 찾은 것도 아니고, 이 둘이 창조신을 쓰러뜨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냥 죽어줘? 그러면 뭔가 변할까?

아닌 거다.

‘이것들로는 가망이 없다.’

창조신. 즉, ‘빛’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누군가 뒤로 날아왔다.

하지만, 이곳은 창조신의 영역이다. 그 어떤 놈이 와도 털끝 하나 건들 수 없는······?

퍽.

‘이게······?’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강한 통증이 안면을 가격했다. 그리고 힘없이 날아가 한쪽에 처박혔다.

이럴 수 없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다.

“일어나.”

익숙한 목소리는 아니다.

이럴 수 있는 존재는 ‘어둠’. 즉, 마신뿐인데. 그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고개를 돌린 곳엔 평범하게 생긴 인간 한 명이 서 있었다. 그래, 이제야 기억난다. 언젠가 어떤 천사가 ‘변수’라고 불렀던 인간이다.

“이명이······, 관종의 신?”

“······아니거든.”

“······분명 맞는데?”

“종천의 구도자다.”

한성은 부끄러웠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관종의 신은 너무 이상했다. 이명이 바뀌어서 다행이다.

“늦지 않게 왔네.”

“어떻게 한 거지?”

“뭘.”

“나의 격을 뚫고 들어온 것. 아무리 제약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유일한 종족이 인간이라지만, 이후의 씌워진 제약도······.”

“너 설명충이구나?”

“뭐?”

“말이 ‘투 머치’하게 많다고. 병신아.”

“······?”

창조신의 두 눈이 커졌다.

방금 뭐라고 한 거지?

아니, 저 인간이 지금 이 상황이 뭔지 모르는 건가?

저 초라한 위대한 신격 정도로, 창조신에게 덤비면서. 겨우 한 대 때렸다고 저렇게 자신감이 상승한 것인가? 도대체 뭘 믿고 이러는 것인가.

“내가 많은 ‘너’를 경험했지. 뭐, 수십 명씩 그런 건 아니고. 몇 번. 그런데 항상 같았어.”

“······?”

“넘기자.”

“······.”

“이번 생은 안 된다. 다음 회차로 넘기자.”

“······!”

“네가 모쏠 병신이야? 이번 생은 안 되니까. 후생을 기약해? 아니, 빌어먹을 놈아. 능력이 안 되니까, 넘겨서 딴 놈이 와서 해결해 줄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거잖아.”

“······세상엔 불가능한 일이 있는 법이다.”

잘도 짖는다.

한성은 어이가 없었다.

셀 수도 없을 만큼, 이 세계의 끝을 경험했다.

그러다 창조신도 만났다.

이놈은 똑같았다.

난 안 된다. 얘도 안 되겠지. 그럼 이 생은 아닌가 보다.

그렇게 넘긴다.

병신도 이런 상병신이 따로 없다.

“내가 지금 너를 패는 건, 불가능한 일이겠지?”

“······?”

“불가능할 것 같지?”

한성은 씨익 웃었다.

< 상병신은 누구인가.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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