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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은 만렙이다-186화 (186/200)

< 최후의 전쟁(2) >

한성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옆으로 쓰러진 친구들이 보인다. 나디아, 세르게이, 안혜림, 얜 샤를, 최이명, 제임스 딘, 이창석. 모두 정상인 곳이 없었다.

하긴, 저렇게 강한 신격 앞에서 이 정도 버틴 것만으로 대단하다.

그리고 더 걷자 무황, 케루빔, 패연, 세이건 등이 보였다.

그들이 한성을 바라봤지만, 한성은 고개만 살짝 끄덕여 인사할 뿐이었다.

한성은 가장 선두에 서게 되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걷고 계속 걸었다.

한성 앞에 선 신격들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아무리 위대한 신격에 들었다고 해도 단 한 명의 인간.

그런데 쉽사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조용한 기세가 그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계속 걸어오는데 그대로 둘 수는 없는 법이다.

몇의 신격이 한성에게 달려들었다.

“어?”

이혜정과 진강철이 이한성을 바라보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한성 혼자 저기까지 갔는데 아무도 말리거나 함께 가지 않은 것이다.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한성에게 달려든 몇의 신격은 한성에게 미처 닿지도 못했으니까.

“도대체 이게 무슨······?”

이혜정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무황은 봤다.

첫 놈은 옆으로 살짝 비켜서 명치를 때렸고, 두 번째 놈은 쓰러지는 첫 놈을 밟으며 턱을 빗겨 쳤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놈은 품에 있던 검 하나로 목을 그었다.

“허.”

헛웃음이 나왔다.

움직임이 아주 많이 변했다.

아니, 성장했다. 무황이라 불리는 그조차 따라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효율적이고 완벽하게 말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이한성은 아직 위대한 신격.

방금 셋은 위대한 신격이었으니, 압도적인 실력으로 쓰러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뒤로 더 날아오는 신격은 태초의 신격이다.

위대한 신격보다 월등하게 강하지는 않더라도 차원이 조금은 다른 격을 지녔달까.

하지만 한성은 멈추지 않았다.

번개를 뿌리는 신격이다. 무작위로, 대기와 천외천의 땅을 녹여버리는 강력한 번개.

하지만 한성은 아무렇지도 않게 신격에게 닿았다.

마치 번개가 한성을 피하는 것처럼, 모든 번개의 줄기는 한성을 피해갔다.

그리고 그 신격에 닿은 한성은 손을 슥 뻗었다.

빠르지 않고 느긋한 손길.

그것은 그 신격의 이마에 닿았다.

털썩.

“······뭐야.”

패연과 세이건이 어이없다는 감탄을 흘렸다.

이곳에서 저 움직임을 이해하는 존재는 무황이 전부였다.

무의 끝에 닿았다고 해서 무황(武皇)이라는 이명을 얻었다.

하지만 저 움직임은, 한 단계 위의 신격에게 압도적인 무위를 보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저 움직임은, 아무리 무황이라도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상대의 호흡을 빼앗는 것.

그게 보통의 인간도 아닌 신격을 대상으로.

결코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한성은 해냈다.

“도대체 어떤 일을 겪고 온 거지?”

“어떻게 된 거야?”

“나도, 나도 모르겠어.”

원래의 이한성이라는 친구는 저 정도로 강하지 않았다. 아니, 한참 낮은 수준의 무(武)를 지니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한성은.

무황조차 따라갈 수 없는 무를 지니고 있었다.

마치 수백 년은 ‘무’에 미쳐 수련한 것처럼. 그것과 더불어 수백 년은 수련한 ‘무’를 실전에서 써먹은 것처럼 움직였다.

툭. 하면 픽 하고 쓰러졌다.

그 강대했던 신격이 말이다.

마치, 늑대 무리에 뛰어든 사자 같았다.

그러자 천외천의 신격도 한 번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우리도 간다!”

무황이 먼저 합류했다. 뒤로 이혜정, 패연, 세이건, 한구본, 소이현. 강자들이 따랐다.

전황이 바뀌었다.

*  *  *

한별이 소리쳤다.

“여긴 내가 맡는다.”

저 앞에 성역을 막아선 세 개의 거신상이 보였다. 하나는 검을 들고 하나는 창을 들고 하나는 지팡이를 들었다. 신을 수호하고 성역을 지키는 문지기다.

“같이······.”

“시간 없어, 나 혼자 어떻게 될 것 같고.”

이곳의 넷은 많은 성장을 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온전한 신격에 겨우 들었었다. 하지만 마계를 경험하고 마신의 궁전을 부수면서 드높은 신격에 들었고 천외천에 들면서 과거의 기억을 찾았다.

이하얀은 과거의 기억이 거의 없다.

하지만 나머지 셋은 과거의 기억이 선명하다.

몇 번이고 이곳에 도착했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격은 위대한 신격에 올랐으며 무엇을 어떻게 상대해야하며, 이곳에 한별이 남아야 하는 이유까지 모두 알 수 있었다.

콰아아앙!

저 위에선 아직도 강력한 파장이 퍼지고 있다.

루시퍼와 창조신의 싸움이겠지.

투둑.

한별의 뿔이 더 길게 자랐고 날개가 활짝 펴졌다. 그리고 어둑시니의 형상이 한별의 몸 위로 덧씌워졌다.

“꼭 살아있어.”

진훈이 입술을 짓씹듯 말했다.

“당연하지. 예전의 내가 아니야.”

‘예전’. 단순히 몇 개월 전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실패하고 죽었던 잃어버린 과거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 우리에겐 한성이 있으니까.”

진훈의 말을 끝으로 한별이 앞으로 날아갔다.

거대한 힘이 거신상의 검 끝에, 창끝에, 지팡이에 스며들며 한별에게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한별의 왕명은 그것들을 부수며 거신상에 부딪쳤다.

콰아아앙!

강력한 충돌에 거신상 하나가 뒤로 밀렸다. 하지만 나머지 둘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별에게 공격을 가했다. 누가 봐도 위험할 상황이었지만, 진훈과 성시연은 앞을 향해 나아갔다.

이 정도는 버틸 수 있다.

한별이라면 말이다.

“다음은 나야.”

성시연이 말했다.

마음 같아선 끝까지 가고 싶다.

하지만 안 된다는 것을 잘 안다.

[역천의 마왕]

하늘을 거스르는 마왕이며, 성역을 지키고 창조신을 보좌하는 [하늘]이 앞을 막아섰다. 푸른 머릿결과 하냘 피부를 지닌 신격, 그녀는 아주 여유로운 자세로 이들을 맞이했다.

“인간들, 여기까지 오다니. 거기에 악마까지?”

“기억하고 있겠군. 하늘.”

“훗, 너희는 이번에도 여기서 실패할 거다.”

성시연은 더 말이 필요 없다는 듯, 검붉은 마기를 끌어올려 달려들었다.

“아직 이르다.”

“보면 알겠지.”

하늘은 태초의 신격.

창조신이 가장 먼저 창조한 [하늘]과 [땅] 중에 ‘하늘’인 거다.

그러니 당연히 멸망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창조신의 충실한 개. 몇 번이고 설득했지만, 절대로 설득되지 않는 이들이다.

그래서 성시연은 아무런 고민 없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어차피 적이다.

그녀가 앉은 성역 위의 탑이 순간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 성시연의 시야가 망가진 것일까. 아니면 이곳의 공간 자체가 이상한 것일까.

하늘은 이 공간을 지배한다.

아니, 하늘은 이 천외천 그 자체다.

성시연은 이런 하늘과 싸워야 한다.

“들어가.”

성시연은 그렇게 소리치며 하늘과 위로 솟아올랐다.

남은 건 진훈과 이하얀.

“하얀아.”

“네.”

“조심해야 해.”

“알겠어요.”

“나도 널 지켜주지 못해. 지금부터는 말이야.”

“저 혼자서도 잘해요.”

“그게 아니라······, 음. 아니야.”

진훈은 모든 걸 말하지 않는다.

곧 알게 될 거다.

아닐 수도 있고.

이번 회차에선 어떤 게 어떻게 변했는지 자세하게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혼돈에서의 일을 기반으로 이 세상의 운명이라는 것을 상정했을 때······.

“케이플람 가드니스?”

이하얀이 소리쳤다.

놀랐다는 모습으로.

하지만 진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네가 맡아줘야 할 것 같다.”

이하얀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보면 피를 나눈 가족이다. 하지만 이미 혼돈에서 그 연은 끊었다. 지금 하얀이의 유일한 가족은 이한성뿐이다.

이하얀은 조금도 머뭇거림 없이 맞설 수 있다.

진훈은 케이플람과 이하얀의 전투를 보지 않았다.

이하얀은 순혈이었지만, 천외천에 들어오면서 많이 변했다. 아직 어린아이 같았지만, 그녀는 강했다. 그게 아무리 태초의 용혈인 케이플람 가드니스라도 쉽게 이길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진훈은 위로 올라갔다.

몇의 신격이 진훈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진훈이 시간을 버려야 할 정도로 강한 신격은 없었다.

쿠우우웅.

쿠우웅.

한참을 그렇게 올라가자 하늘 위의 하늘.

천외천의 성역.

창조신의 영역에서 전달되는 묵직한 파장이 선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진훈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버틴다.

한성이 올 때까지 버티면 된다.

진훈은 그들의 전장으로 들어섰다.

*  *  *

한별은 위태로웠다.

창조신 성역의 문지기가 쉬울 리 없다. 게다가 한별은 아직 업적을 충분히 쌓지 못한, 운이 좋아 억지로 위대한 신격에 발을 들여놓은 게 전부였으니까.

그나마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은 어둑시니 덕이 컸다.

천외천에 올라오면서 어둑시니는 거의 모든 힘을 쏟아낼 수 있는 상황이 되었으니까. 한별과 따로 계약을 맺지 않더라도 말이다.

위대한 신격.

이것도 절반은 어둑시니의 힘이다.

아무리 천외천에 올라왔다고 하더라도 드높은 신격이 이토록 빠르게 위대한 신격에 닿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진훈이나 성시연도 마찬가지다.

모두 계약한 신격의 힘이었다.

이하얀이야 용혈이니 원래 상정 외고 말이다.

하여튼, 그래서 버티기 힘들었다.

이 셋의 거신상을 상대로 한별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저 버티는 게 전부인 거다. 저 하늘 위에서 싸우는 성시연도, 성역 안에서 느껴지는 용혈의 싸움도 마찬가지.

그저 버틴다는 다짐으로 맞선다.

“후욱. 후욱.”

그런데 이제 그것도 끝이다.

겨우 5분을 버텼을 뿐인데, 한쪽 팔은 이미 사라졌고 하체는 말을 듣지 않는다. 신격이라도 멀쩡하면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이젠 가벼운 왕명조차 사용할 수가 없다.

격이 난자당한 거다.

“당연한 거지. 쿨럭.”

어떻게 이제 막. 그것도 계약으로 오른 위대한 신격으로 창조신의 성역 문지기를 이긴단 말인가.

한별은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저 앞에 서서 서서히 다가오는 문지기 거신상 셋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한성······.’

이번에도 실패인 건가.

한성은 [태초로 향하는 길]을 시작했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성시연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태초로 향하는 길]을 시작한 존재는 지금까지 손에 꼽을 만큼 없었다.

그 수많은 기억 속에서도 말이다.

그래, 그 기억만 시작했다면. 그리고 그것만 버텨준다면 멸망을 막을 가능성은 대폭 늘어난다.

하지만 그걸 이겨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한성은 이겨낼 거라 믿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면······, 실패했다고 보는 게 맞다.

“후.”

한별은 바위에 등을 바치고 앉아 있었다.

앞에선 거신상이 다가온다.

꽤 멀리 튕겨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빠르다.

“이번 생은 여기까지인가.”

뭐랄까.

죽음이 아쉽지는 않다.

천외천까지 올라와야 기억의 일부가 돌아온다. 아카데미 생활. 그리고 현계에서의 생활은 즐거웠다. 조금은 힘들었지만, 이런 끔찍한 세상이 있다는 것 자체를 알 수 없던 시절.

그건 나쁘지 않았다.

지금은?

괴롭다.

다시 시작해야 하고. 또 죽어야 한다는 게.

뭐, 죽는 것 자체야. 익숙하다.

그런데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 것.

그것만큼은 너무나 괴로웠다.

특히, 앞으로 다시 볼 수 없는 이한성이라는 ‘변수’는 더욱 그렇다.

쿠웅.

코앞까지 다가온 거신상을 보곤 한별이 눈을 감았다.

부웅.

묵직한 거신상의 검이 대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끝이군.’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분명 느껴졌어야 할 고통과 죽음은 없었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잘 버텨줬다.”

한별은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 최후의 전쟁(2)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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