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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은 만렙이다-182화 (182/200)

< 가장 좋은 해결법? >

무황은 혼돈의 끝에 서 있었다.

천외천으로 향하는 입구가 흔들린다. 천외천에서 티탄족과 신들의 전쟁이 끝난 것일까.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입구가 흔들린다는 것만으로도 혼돈의 신격은 모두 이곳으로 모여야 했다.

어쩌면 더없이 좋은 타이밍일 수도 있다.

안 그래도 계획된 작전을 시작해야 할 때였으니까.

무황과 그의 동료.

마룡족의 패연, 용마족의 세이건.

그리고 뒤늦게 합류한 한 여인.

“혜정아.”

무황이 그녀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렀다.

그녀는 고고한 천사의 날개를 달고 있었다. 그러면서 인간의 모습도 잃지 않았다. 악(惡)은 깔끔하게 사라졌고 무황이 지닌 황금빛 마력의 근원인 케루빔 특유의 금색 마력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괜찮겠어?”

“괜찮아. 아직 격을 모두 되찾진 못했지만, 천외천이 열리면 힘을 찾을 거야.”

케루빔, 천사 1군단의 지휘자이며, 태초의 천사. 아담이 죄를 짓고 에덴을 떠났을 때, 불의 칼을 들고 그가 돌아오지 못하도록 막았던 수호의 천사. 지식과 지혜를 관장하며 한없이 숭고한 존재.

“천외천이 열리면 내가 전면을 막겠어.”

이혜정이 말했다.

케루빔이며 무황의 아내이자 진훈의 어머니.

“내가 그 옆을 막지.”

무황의 말이었다.

“우리도 빼놓으면 안 되지.”

“우리가 좌우를 맡도록 하지.”

패연과 세이건의 말이다.

그 뒤로 용마족 수천, 마룡족 수천이 윤기가 흐르는 비늘을 뒤집어쓰고 도열해 있었다.

한성이 있는 쪽은 한성과 그의 친구들이 있다고 해도 그 전력으로 마계와 혼돈을 동시에 막을 순 없다. 하지만 이 수천의 용혈은 천외천으로 진입하자마자 격이 한 단계 오를 거다.

그리고 그 전력은 어마어마한 힘이 되겠지.

“생각해보면 참 대단해.”

패연이 툭 던졌다.

주어가 없었지만, 다들 누굴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게, 이걸 다 예상한 건가.”

세이건이 말을 이었다.

이한성이라는 인간이 혼돈을 지켜달라고 했다. 안 그래도 지키려고 했었지만, 이 타이밍에 마계로 가서 마신의 궁전을 공략할 생각을 했다는 게 대단한 거다.

그리고 이곳으로 아스모데우스를 케루빔으로 바꿔 보냈다. 생각해보면 용마족과 마룡족 중 한쪽이 전멸할 뻔했던 전투를 막았던 것도 이한성이지 않은가.

문득 무황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성공할 수 있을까?”

마신의 궁전.

군단까지야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마신은 다르다.

괜히 마계의 신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태초의 신격이며, 창조신과 유일하게 겨룰 수 있는 존재가 마로 마신이었으니까. 천외천이 지금까지 혼돈을 통해 현계로 내려올 수 없었던 것은 아주 오래전 그들이 했던 맹세 때문이었고, 마계로 내려올 수 없는 이유는 마신 때문이다.

“······불가능해야 맞지.”

이혜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연한 소리다.

이한성이라는 영웅은 아무리 잘해봐야 위대한 신격에 불과하다. 이제 막 올라왔으며 언제든 내려갈 수 있는 위치의 위대한 신격.

그런데 상대는 태초의 신격.

게다가 보통 태초의 신격도 아니다. 이혜정도 따지고 보면 태초의 신격이다. 태초의 업적으로 이뤄진 신격이었으니까.

하지만 차원이 마신은 다르다.

마계를 관장하는 ‘신’. 그 자체였다.

그가 마계고 마계가 그라고 불릴 정도니까.

“그렇지. 그래야 하는데 왜 믿음이 가지?”

“그것도 신기해, 참.”

이혜정은 이한성에 관해 잘 모른다.

하지만 진훈이 그토록 믿는 사람이라는 것과 이곳에 있는 남편인 진강철, 마룡족의 로드 패연, 용마족의 로드 세이건이 끝없는 신뢰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안다.

자신이 믿는 이들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

그거면 충분하다.

그는 성공할 거다. 아니, 그래야 한다.

이 작전은 그가 성공할 것을 토대로 계획된 것이니까.

쿠구구궁.

다시 한 번 혼돈의 끝이 흔들린다.

무황은 손에 쥔 혼돈의 파편을 바라봤다.

저쪽에서 먼저 뚫기 전에 이곳에서 뚫어야 유리하다. 그래야 혼돈이 전장이 되지 않을 테니까. 케루빔, 무황, 용혈 등. 모두가 천외천에 먼저 들어가야 격이 상승할 거다.하지만 입구를 열기 전에 한성의 신호가 필요하다.

“빨리, 그리고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

혼돈의 끝은 초조한 긴장감이 잔뜩 흘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한성에게 신호가 왔다.

그런데 기다리던 신호와는 다른 신호였다.

“······!”

*  *  *

한성은 마신의 표정을 바라봤다.

뒤에선 마신의 궁전과 한성의 친구들이 싸우는 굉음이 들려왔다. 마신은 이곳에 있지만, 궁전은 그 자체로 강하다. 아직도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방송마저 꺼졌다.

하긴, 마신의 앞에서 방송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해서도 안 되고 말이다.

“네가 뭘 할 수 있지?”

마신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깊게 생각하더니, 무언가 답을 찾은 모양이었다.

한성은 그의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봤다. 새카만 것을 떠나서 심연처럼 깊고 반사되는 빛 하나 없는 그의 눈동자는 한성이 상상할 수 없는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한성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는 모든 걸 알고 있다.

방금 한성이 10분 회귀한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세상이 끊임없이 멸망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은······ 너무나 평온했다.

그런 것 따위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지금 고민하고 있다.’

막을 수 없는 것을 알았기에 포기했지만, 막을 수 있다면 막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아직도 막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인가.

하지만 그는 ‘네가 뭘 할 수 있지?’라고 물었다.

한성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당신을 죽여 드리겠습니다.”

이게 맞을까?

조금이라도 마신이 불쾌해한다면 이한성은 이 자리에서 죽을 거다.

“······미친놈이구나.”

말은 거칠었지만, 얼굴엔 큰 변화가 없다.

오히려 흐릿한 미소에 입가에 돌았다.

“그런 소리는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정말입니다. 종장. 모든 이야기의 끝에 다다른다면······, 당신은 완전하게 죽을 수 있습니다.”

전 회차에서.

그러니까 게임 안에서 마신은 창조신과 싸우고 싶어 했다. 그 이유는 확실하게 모른다. 모두가 마신을 공략할 때 사용하는 방법은 직접 죽이는 게 아닌 마신을 이곳에 두고 천외천으로 가는 것과 마신을 창조신과 싸우게 만들어 주는 것. 단 둘이었으니까.

간혹 미친놈이.

그러니까 이한성은 이곳에서 52년을 종장에 다가가지 않고 업적을 모아 차근차근 공략을 진행하면서 마신과 직접 싸우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때도 마신을 ‘완전하게’ 죽인 게 아니었다. 그저 잠시 육체를 부순 것뿐. 마신을 ‘완전하게’ 죽일 수 있는 존재는 창조신뿐이었다.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저 눈빛, 그리고 삶의 의미를 잃은 저 눈빛과 말투.

창조신과 싸우고 싶다는 것.

혹은 마신의 눈을 돌리고 천외천으로 가는 것.

“흐흐흐. 하하하하.”

마신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다가 한성을 바라봤다.

아까의 흐릿한 미소가 더욱 짙어져 있었다.

“만약 죽이지 못한다면?”

맞는 것인가.

마신은 한성에게 물었다.

긍정 같았지만,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

“이 윤회를 끝내면 됩니다.”

“네가? 한낱 인간에 불과한. 그저 수천, 수만 번 반복되며 바뀌는 한 명의 ‘변수’에 불과한 네가?”

역시 모든 걸 알고 있다.

마신은 마신인가.

대략 알 것 같았다.

이 기억은 격에 따라 달라진다. 지금 마신. 그러니까 태초의 신격 중에서도 최상위인 마신과 창조신은 이 모든 세계의 기억을 지니고 있는 거다.

‘그래도 10분 회귀의 기억까지 완벽한 거군.’

어떻게 보면 이 시스템과 동급. 그 이상.

아니, 혹시 이 시스템이 마신이나 창조신이 만든 것인가?

“그 수천, 수만 번 반복되는 과정에서 저만큼 빠르게 이곳에 도달한 이가 있었습니까?”

한성은 그 말을 하다가 멈칫했다.

수천, 수만 번?

아직 이 지구에서 균열이 생긴 것은······.

그렇구나. 게임이었을 때, 수많은 플레이어가 반복했던 것도 이 세계의 일부였었나. 아니면 다른 세계에서도 이런 균열이 있고 플레이어가 있었던 것일까.

마신이 대답해 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있었지. 그것도 꽤 많이.”

“······!”

한성은 마신의 그 말에 표정 관리를 할 수 없었다.

“왜, 몰랐던 이야기인 모양이지?”

“······.”

“이 세계가 전부가 아니었어. 그리고 그 모든 세계는 이 세계의 종말과 함께 끝이 났지. 수천, 수만. 그 이상은 세지 않았어.”

“······.”

“그중에 너만큼 다가온 존재도 있었지. 하지만 그게 한계였어. 이 윤회를 시작할 세계를 찾기 전에 ‘게임’ 혹은 ‘꿈’. 어쩔 땐 마법의 한 종류로 미래를 알려줬는데도 말이지.”

마신은 피식 웃었다.

이 앞에 있는 인간은 자신을 과신한다.

웃긴다.

하긴, 인간은 원래 이렇다.

이 정도의 존재? 인간 중에서는 찾기 힘들긴 했다. 하지만 있긴 있었다. 다른 종(種)은 꽤 있었다. 그들이 지닌 특수한 능력이 도움이 되기도 했었으니까.

그런데 모두가 망했다.

이 세계의 멸망과 함께 그 세계도 함께 종말을 맞이했다.

어떤 세계든 이 윤회와 맞물리면 끊임없이 동화되어 버리니까. 그들에게 힘을 주는 대신, 멸망을 막지 못했을 때의 책임을 주는 것이다.

마신은 피식 웃었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나.

악(惡)의 신이라는 마신은 이렇게 가만히 있는데, 창조신이자 선(善)의 ‘정점’이라 불리는 창조신이 이렇게까지 악할 줄이야.

자신이 만든 세계를 살리고자 다른 수많은 세상을 없앤다.

“더럽지?”

마신은 충격에 빠진 이한성에게 조소했다.

“아주 역하고 끔찍하지.”

자신이 살던 마신의 궁전이 무너지는 걸 보면서 무감각하게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할까? 난 죽고 싶지는 않아. 그렇다고 이 윤회의 삶을 살고 싶진 않지. 그러려면? 누군가 이 세계의 멸망을 막아야 하지. 그래, 말은 쉬워. 그런데 그 이야기의 끝이 뭔 줄이나 알아?”

한성이 아는 이 세계를 클리어하는 법.

그것은 단 한 가지다.

천외천을 무너뜨리는 것.

그러려면 창조신을 찾아 죽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다른 신격을 다 죽이지 않아도, ‘창조신을 죽인 플레이어’가 신격 혹은 인간,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힘을 지니게 된다. 그렇기에 마신을 죽이지 않아도 창조신을 죽이면 마신과 맞설 힘을 지니게 되고, 다른 신격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그래서 최종 클리어의 목표는 창조신이다.

그렇게 되면 클리어가 된다.

사실, 그 클리어 조건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것은 가장 강한 인간이, 같은 스스로가 사는 현계를 망가뜨리지 않을 거란 확신이 가정되어야 하니까.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인간이 지닌 강한 힘은, 언젠가 인간을 멸망시킬 거다.

염세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세계에서 52년 하고도 4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낸 이한성은 충분히 그런 생각을 가질 만했다.

“그놈을 죽이는 것. 그리고 나, 마신의 힘을 뛰어넘는 것. 모든 존재 중 가장 강해지는 것······, 그렇게 알고 있겠지.”

“······그게 아닌가요?”

마신은 한성의 물음에 미소를 지었다.

참, 표정이 다채롭다.

어떻게 보면 딱딱하고 무감각한데, 그 안에서 상당히 많은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원래 알고 있던 마신은 이런 캐릭터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흠. 아니다. 여기까지.”

마신의 손끝에서 무언가 파지직 거리며 손가락 끝이 희미하게 변한다.

마신과 동격. 그러면서 제약을 주는 최상위 격, 시스템과 동일한 힘, 마신의 힘은 아니다. 그렇다면, 창조신이 이 시스템을 구성했고 마신의 간섭은 제약을 받는다······, 라고 추측할 수 있다.

한성은 지금까지 정리한 정보를 토대로 내뱉을 말을 결정했다.

“클리어.”

원래 알고 있던 게 끝이 아니었다.

이 이야기는 지금 이 세계뿐만 아니라, 한성이 살았던 세계에도 퍼져 있다.

이 이야기를 것을 끝내기 위해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안에서만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렇게 어려운 답은 아니었다.

“이 세상을 없애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모든 일의 근원을 없애면 되는 일이다.

쿠우우웅.

마신의 궁전이 무너졌다.

그리고 마신의 표정에도 변화가 있었다.

< 가장 좋은 해결법?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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