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신의 공략법. >
10분 전으로 회귀했다.
마신은 대략 알 수 있었다.
태초의 신격 정도면 그 어떤 권능에도 기억을 잃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이 창조신의 존재력을 소모하면서 일으킨 [멸망한 세계의 잔상]이라도 말이다.
깊은 소용돌이 속에서 마신은 고민했다.
이 인간이 어떻게 이런 힘까지 사용하는 것일까.
다른 신격도 아닌 태초의 신격인 마신까지 함께 회귀한다. 그는 꺼져버린 생명을 되찾고 다시 한 번의 기회를 갖는다. 그가 정말 변수란 것일까.
수천, 수만 번 이상 멸망을 막지 못했던 세계.
그 세계를 구원할 만큼?
종천의 구도자.
그는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어떻게 이 정도까지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인가.
마신은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조금 두고 보지.’
* * *
한성은 수면 깊은 곳으로 몸이 푹 꺼지는 감각에 빠졌다가 정신이 들었다.
와아아아!
저 앞엔 역천의 마왕 성시연과 마신의 군단이 부딪치고 있었다.
처음부터 시작인 거다.
곧 마신의 궁전에서 악마 몇이 나오고 이쪽에서는 진훈과 진솔이 등장하겠지.
한성은 멀리 마신의 궁전을 바라봤다.
시선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 시선은 아까와 같은 적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옅은 궁금증에서 강한 궁금증으로 변한 느낌이랄까. 그래도 관종의 신이라고 대상의 감정을 매우 정확하게 느끼긴 한다.
‘10분의 회귀.’
단 한 번의 행운이었을까.
그것은 한성의 목숨을 구했다.
그리고 그것은 한성이 소중하게 여기는 친구와 이 세계의 멸망을 막은 것과 같다. 앞으로 더 얼마나 많은 세계가 반복될 것인가.
그 반복 속에서 이 세계는 멸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오.’다.
그런 게 가능했다면 이미 구원을 받았겠지.
게다가 지금 현실에서 수많은 인간이 이 세계로 들어오고 있다. 시스템 능력치와 이능 등을 얻기 위해서. 이 안의 신비한 귀물 등을 얻기 위해서.
하지만 그들이 한성이 이룬 수준까지 올 수 있을까?
지금 한성은 마신의 궁전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것은 종장에 다다랐다는 것을 뜻한다.
저 마신을 통과해 천외천에 닿으면 종장이다.
게다가 한성은 드높은 신격.
위대한 신격에 약간이나마 손이 닿아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가장 높은 이들이 비천한 신격에 불과하다. 온리 원 축제에서도 비천한 신격이 한계였다. 그나마 가장 강했던 이한나가 이제 막 온전한 신격에 닿았다.
그들이 이곳까지 닿기 위해선, 앞으로 최소 3년. 보통 5년에서 8년 사이의 시간이 필요할 거다.
또, 시간은 시간에 불과하다.
한 번도 죽지 않고 여기까지 오는 게 가당키나 할까.
‘절대로 불가능할 거다.’
3년? 앞으로 10년, 100년이 지나도 그런 사람이 등장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성처럼 재능을 타고난 천재에 완벽한 공략법을 수없이 알고 있으며 운까지 만렙에 달한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런 사람이 앞으로 또 나올 수 있을까?
결단코 없다.
‘있다고 해도 그땐 이미 이 세계가 없지 않을까.’
한성이 걱정하는 것은 현실이다.
이미 현실에도 이 세계와 같은 던전과 몬스터가 등장하고 있었으니까. 지금이야 자원해서 균열로 들어오고 아무나 균열로 들어올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현실이 안전해야 가능한 일이다.
“내가 끝내야 한다.”
[유일한 세계의 영웅]
이라는 이명.
아마 끝에 가장 가깝기에 붙여진 이름이겠지.
혹은 두 세계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한성은 감았던 두 눈을 떴다.
그리고 방송에 대고 말했다.
“모두 한 번에 친다.”
그것은 신호였다.
원래의 계획.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철저한 상성 공략에 나서려 했다. 전력을 아끼는 방법이고 승리 확률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마신이 나와 한성이 죽으면 모든 게 끝난다.
“전력을 다 한다.”
한성의 말이 끝났을 때.
길성현이 마법진을 형성했고 진훈과 진솔이 황금빛 마력을 뿜으며 등장했다. 그리고 이하얀이 위용 넘치는 화이트 드래곤의 모습으로 등장해 ‘게이트 오브 바빌론’을 개방했고 수많은 소환수를 뿌렸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 모든 전력의 공격은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
마신이 한성에게 집중할 수 없도록 몰아치기 위해서다.
“한별, 빨리!”
한성의 말에 마신의 궁전을 감싸고 있던 마법진 안에, 그러니까 마신의 궁전 안에 검은 그림자가 생기며 한별의 요괴와 귀신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신의 궁전의 결계.
그것이 온전한 상태에서 마신의 궁전 안에서 제대로 힘을 낼 수 있는 것은 한별의 요괴와 귀신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마신의 궁전도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신의 군단 하나가 마신의 궁전 안에서 교전을 시작했고 72 악마 중 서른의 악마마 진훈, 진솔, 이하얀, 한별 등을 막아서기 시작했다.
하나의 전쟁이었다.
그 다음 마신의 패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기다리는 게 확률이 좋다.
그런데 다음 패가, 마신이 직접 움직여 한성을 죽이는 것이라면 모든 게 끝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내 행운은 만렙이다.’
철저한 공략이 아닌 도박으로 끌고 가면 한성이 유리하다.
“몰아쳐.”
공략은 무슨, 운으로 끌고 간다.
그때, 회색빛 마계의 하늘에서 구멍이 생겼다.
그리고 그 구멍에서 한구본이 정연의 본대를 이끌고 날아왔다. 이미 드높은 신격에 턱걸이한 덕에 그의 신격은 마신의 군단에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마신의 궁전에서 다음 패로 꺼낸 것은, 완성된 ‘타이탄’. 티탄족이 아닌 마계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거대한 기계였다.
콰아아아앙!
마신의 타이탄은 바닥을 박찼다.
그것만으로 대지는 움푹 파이고 거대한 굉음이 마계 전체를 울렸다.
하지만 그것의 앞을 막은 것은 레드 오우거였다.
정연의 특수 대대, 강한 신력(神力). 신에게 받은 무한한 근력과 온전한 신격에 오른 수십의 정예들. 그들이 타이탄의 주먹을 받아냈다.
푸확.
콰아아아아!
하늘에 커다란 파장이 마신의 궁전과 한성의 얼굴을 몇 번이나 쓸고 갔다.
그러자,
마신의 궁전에서 수많은 ‘악귀’가 쏟아져 나왔다.
하나의 귀신, 하지만 마족이었으며 악마에게 영혼을 저당잡힌 이들. 근본까지 악(惡)으로 물든 악귀는 레드 오우거와 정연의 특수대대에게 향했다.
그게 상성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그런 구멍이 하나, 둘, 열, 계속 생기기 시작했다.
흑연의 소이현은 수천의 정예와 함께 흑색 유령마를 타고 쏟아져 나왔다. 검게 타오르는 그들의 흑(黑)은 악귀를 둘러싸 태워버렸다.
악으로 악을 태우는 것.
악귀와 악령에 강한 흑연의 특성 때문이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피터가 차원과 차원을 연결해 뚫은 구멍에선 끊임없이 지원군이 내려왔다.
언더월드의 수많은 구울을 이끌고 내려오는 언더월드의 왕 심우주. 그의 용병술과 그를 따르는 수많은 용병. 그리고 이미 정상에 다다른 구울은 마신의 궁전 벽 한쪽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타이탄 제압을 거의 성공한 한구본은 길성현을 도왔다.
수백의 온전한 신격급 마법사들.
전 세계에서 가장 알아주는 마법 명문가 정연.
그들은 오래 전부터 철저하게 연구한 마신의 궁전의 결계를 깨는 마법진을 만들고 또 만들었다. 그것은 몇 개의 선이 면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 했다.
생성되고 또 생성되는 마법진은 마신의 궁전을 완전히 감싸 버렸다.
“······!?”
한성은 아무것도 없던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감각에 고개를 숙이며 공간을 찢어 회피했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했는지 등가죽이 쭉 갈라지는 게 느껴졌다.
“대단해. 참 대단해.”
마신이었다.
그는 느긋하게 한성을 지켜봤다.
한손엔 검은 검신을 지닌 마신의 검이 보였다. 그가 이 검을 든 것은 한성도 많이 보지 못했다. 한성이 마신의 궁전에서 수십 번 죽을 때도 마신은 이 검을 꺼내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종장으로 넘어가기 위해 마신을 뚫었을 때.
그때 한 번 봤었다.
“겨우 10분의 회귀로, 이 정도의 판단을 내릴 수 있다니. 신기한 인간이야.”
마신은 한성 뒤쪽으로 하나씩 점령당하는 마신의 궁전을 바라봤다.
언더월드의 심우주가 마지막이 아니다.
피터가 키운 이계의 괴수, 이계의 신격.
한도석과 이정현이 데려온 한국 영웅 아카데미의 신인류.
최이명과 이창석, 제임스 딘이 끌고 온 미국 서부의 영웅과 용병 수천 명. 그리고 세르게이와 검성. 나디아와 창신. 아서 왕의 검, 엑스 칼리버를 들고 원탁의 기사를 이끄는 안혜림.
완벽한 한 명의 오딘이 되어 아스가르드의 신격을 이어받은 영웅을 이끌고 마계의 하늘을 빛내는 얜 샤를.
그리고 길이현과 라엘 카네기가 이끄는 미국의 최강의 함대. 하늘을 나는 항공모함이자 한때 세계의 치안을 담당했던 [언터쳐블]의 최종 권한인 [인류 최후의 보루].
영어로는 [Last Stand for People].
말 그대로 인류가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는 대비하기 위해 몇 세기 동안 만들고 발전시켰던 무기. 인류 간의 전쟁에서는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최후의 무기.
만들고 개조하고 발전하면서도, 사용하지 않고 기술이 발전하면 해체하고 다시 만들고 보조하고, 1년에 수조 달러를 들이면서 끊임없이 만들도 또 만들었던 인류의 최종 무기.
그게 하늘 위에서 강렬한 빛을 뿜으며 마신의 궁전을 태우고 있었다.
“대단한 족속들이긴 해. 그래서 그랬던 건가.”
마신은 그 광경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무엇에 대해 고민하는 것인지. 미간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그러면서도 중간에 슬쩍 웃는 게 소름끼칠 정도였다.
한성은 뒤로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잘못 움직이면 눈도 깜빡하지 못할 시간에 목에 달아날 것을. 그리고 또 안다. 마신이 원한다면 ‘인류 최우의 보루’든지, 정연, 흑연, 한별, 진훈. 모든 전력은 한순간에 사라진다는 것을.
그래서 한성은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좋은 징조다.’
한성이 겨우 이 전력으로 마신을 만나려고 했던 이유가 이거다.
마신은 강하다.
지금. 아니, 앞으로 3,4년은 죽어라 격을 올려도 겨우 손에 닿을까 말까 한 존재. 지금 상태론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존재다.
그렇지만, 설득이 가능하다.
게임일 때는 왜 그런지 몰랐다.
그저 천외천을 증오했고 창조신과 제대로 싸울 수 있게만 만들어줬으면 됐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같이 천외천으로 가시죠.”
한성은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마신이 한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정말 눈빛 하나면 한성이 여기서 죽을 수 있다. 그런 상황에 마신의 시선은 한없이 차가웠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순 없다.
“이 세계를, 구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마신의 눈이 커졌다.
이제야 조금 놀라는 눈치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조용하던 마신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하면서 검에 검은 마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젠장할.
이게 아닌가?
한성은 잠깐의 시간 속에서 수많은 루트를 고민했다. 어떻게 공략해야 할까. 어떤 말을 해야 마신을 설득할 수 있을까. 도대체 이 마신의 생각은 무엇일까.
오랜만에 한성을 끔찍한 긴장 속에 몰아넣었다.
< 마신의 공략법.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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