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행운은 만렙이다-180화 (180/200)

< 자격의 증명. >

마신의 궁전에서 성시연의 군단에 대항할 군단이 나오기 시작했다. 수성(守城)보다는 공격을 선택했다. 마신의 궁전에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역시 제 계획을 아는 것 같습니다. 수성보다는 공격을 선택했군요.”

한성은 마신의 궁전과 그 주변 평야가 한눈에 보이는 높은 돌산 위에서 전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카메라 하나, 전장과 마신의 궁전을 가리키는 카메라까지 있었다.

- 와, 미쳤다. 거의 블록버스터.

- 영화도 저렇게 못 만들겠다.

- 도대체 어떻게 마족끼리 싸우게 한 거지?

- 미친, 이게 한성 클라쓰다!

- 한성의 클라스는 영원하다.

얼마 있지 않아 두 군단이 부딪쳤다.

저 군단 하나면 검은 땅은 물론이고 지구의 나라 몇 개를 밀어버릴 수도 있는 전력이다.

수도 수지만, 하나하나의 강함이 다른 마족과는 차원이 다르니까.

발록은 발록끼리, 마계 거인족은 같은 거인족끼리. 늑대 형상의 마물을 탄 마족이 창을 던지고 사슬을 푼다. 뒤에선 마법진의 향연이 펼쳐지며 한 번에 수십, 수백이 죽어 나간다.

중앙의 성시연은 상대 악마를 직접 상대하고 있었다.

그녀도 이번에 드높은 신격에 들었다.

릴리스의 신격은 온전히 받아들이고 영지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에 초월 신화를 얻게 되었고, 그 초월 신화가 하나의 무리를 이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마신의 궁전에 있는 상위 악마는 나오지 않았다.

- 미쳤네, 그런데 조금 밀리는 거 같은데?

- 저기 앞에 성시연 아니야? 붉은 투신의 형상이 딱 성시연인데.

- 진짜! 멀리 있는데도 포스가 느껴진다.

- 아름다움이 여기까지 느껴져ㄷㄷ

한성은 가만히 앉아서 타이밍을 쟀다.

아직은 아니다.

조금 더 있어야 한다.

마신의 궁전을 중심으로 왼편에서 성시연의 군단과 마신의 군단이 싸우고 있다.

그때, 보랏빛 기세를 뿜는 2위 악마 아가레스.

6위 악마 발레포르, 9위 악마 파이몬, 12위 악마 시트리가 등장했다. 마신의 군단을 돕기 위한 지원군일 거다. 이대로 계속 싸워도 마신의 군단이 유리하지만, 피해를 줄이기 위함이겠지.

“지금이다.”

한성은 누구에게 전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하늘에 생긴 작은 구멍에서 누군가 빠르게 날아가는 게 보였다.

두 개의 황금빛 줄기.

그것은 네 마리의 악마를 향해 돌진했다.

드높은 신격에 든 진훈과 위대한 신격 끝에 있는 진솔이었다. 둘은 아스모데우스의 정화를 마치고 초월 신화를 얻기 위해 마계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한성의 계획대로 이 시간에 도착한 것이고.

‘어머니는 혼돈으로 갔겠지.’

당연하게도 진훈과 진솔은 아스모데우스를 정화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것은 한성이 아는 가장 최적의 공략법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진솔을 정화해 황금빛 마력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든 후에, 그 둘과 아스모데우스를 마주하게 하는 것이다.

셋도 안 된다.

딱 둘과 아스모데우스만 있어야 가능한 공략.

둘은 완전하게 하나가 되어 아스모데우스를 인간 이혜정으로 돌렸다. 그리고 그녀는 혼돈으로 갈 거다. 무황이 있는 곳으로 가면서 예전 케루빔이었던 모습으로 돌아갈 거다.

‘그렇게 되면 혼돈은 안전해지겠지.’

그 과정에서 한층 강해진 진훈과 진솔은 위대한 신격에 있는 악마 넷을 상대로 여유롭게 버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넷을 상대로 이길 순 없다.

“이제 적의 본거지를 흔들어 보겠습니다.”

한성은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진훈과 진솔은 네 악마를 상대로 잘 버텼지만, 언제든 질 것처럼 밀렸다.

하지만 그때였다.

드넓은 마신의 궁전 전체에 마법진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길성현과 그의 동료들이었다.

한성이 열두 악마를 죽인 후, 5개월 동안 길성현과 그의 동료는 이 하나의 마법진을 위해 마계 전역과 이계의 도시를 오가며 재료를 준비했다.

마신의 신전을 감싸는 마신의 결계를 부수기 위한 마법진.

당연히 길성현의 신격과 수준으로는 마신의 결계를 부술 수 없다. 하지만 그게 한성이 설계한 마법진이라면 또 다르다.

한성은 마신의 궁전에 들어가기 위해 서른 번은 죽었다.

가장 걸리적거렸던 것은 이 결계.

악(惡)이 아닌 이들에게 죽음을 선사하고 악(惡)이어도 마신이 원한다면 전신이 지옥의 화염에 타버리는 극한의 결계였다.

보통 다른 플레이어는 이 결계를 부수기 위해 몇 년을 더 소비한다. 초월 신화를 수집하고 초월 신화의 장비를 얻어 위대한 신격을 넘어 태초의 신격에 다다른다.

그래야 힘으로 부술 수 있는 결계다.

하지만 한성은 그렇게 깨지 않았다.

몇 년에 걸쳐 마법진을 설계하고 완성했고, 준비만 철저하다면 드높은 신격도 마신의 결계를 무력화할 수 있는 마법진을 완성했다.

아마 이 마법진을 완성했을 때, 구독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관련 커뮤니티를 들썩이게 했을 거다.

그때는 거의 혁명이라고 불렸을 정도였으니까.

마신의 궁전 전체를 집어삼키는 화려한 마법진은 길성현의 마법 복제로 인해 두 개, 네 개, 여덟 개로 늘어났다. 그 광경에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 무슨 마법이 저래.

- 저게 사람 마법임?

- 길성현의 마법이라는데 진짜임?

- 설계는 이한성이 했다네요. 미쳤다.

- 저기가 마신의 궁전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 무슨, 신이야? 이게 사람이냐?

마신의 궁전에서 미증유의 힘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마신도 무언가를 느낀 것이겠지. 저 마법진은 마신의 마법과 권능을 철저하게 파헤치며 약점을 완벽하게 파고들도록 설계된 마법진이다.

스스로 결계가 깨질 것을 아는 거다.

“이 정도면 다급함을 깨달은 마신은 모든 악마와 마족 군단을 꺼낼 겁니다.”

그러라고 결계를 건든 거다.

하지만 성시연의 군단이 밀리고 있었고 진훈과 진솔도 밀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마신의 지원군이 나오면 저쪽은 바로 무너진다.

게다가 이대로 두면 길성현이 완성 중인 마법진이 깨질 수도 있다. 아니, 가만히 두면 무조건 깨진다.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죠.”

그게 한성의 신호였다.

하지만······.

쿠우우우웅.

마신의 궁전에서 단 한 명만이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가볍게 길성현이 구성한 마법진을 깨버렸다.

쏴아아아.

한성의 살갗에 닭살이 돋았다. 따가울 정도로 심하게.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고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손발이 굳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마치 천적의 기세에 얽매인 피식자처럼.

‘마신!’

예정과 달랐다.

왜, 어떻게 달라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나를 예측해보자면······, 그저 게임이었던 전 회차와는 다르게 이곳이 하나의 실존하는 세상이라는 것. 그리고 루시퍼처럼 마신도 한성을 눈여겨보고 있다는 것.

그 정도일 거다.

‘간과하고 있었군.’

마신이다.

평범하게 생긴 미중년. 거기에 ‘나는 마신이다.’라고 외칠 듯한 화려한 옷차림. 하늘을 뚫어버릴 듯 거대하지만, 호수처럼 잔잔한 그의 기세.

마신은 한성을 바라봤다.

그리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흡.”

한성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공간의 틈으로 도망치기 위해서였다.

한성은 겨우 한 걸음이다. 마신은 이곳까지 수 킬로미터를 움직여야 하고.

그런데.

덥석.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느냐.”

마신은 한성의 뒷목을 움켜쥔 상태였다.

한성은 마신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틀었다. 마력으로 육체를 강화하고 시간 가속과 공간의 왜곡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어른이 말했으면 대답을 해야지.”

아, 이제 생각난 건데, 마신은 상상 이상으로 꼰대였다. 그게 자신만의 개그 포인트라고 생각하는 것까지 꼰대였다.

한성은 대답하지 않고 신격을 끝까지 끌어올렸다.

쿠우우우.

팟.

“······어?”

하늘을 찔러야 하는 한성의 격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한성은 체념했다.

무력은 안 된다.

원래 하려던 설득을······.

“건방지군.”

마신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콰득.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한성의 목이 완전히 꺾였다.

- 뭐야.

- ??

- 저건 뭐야.

- ?? 미친.

- 한성?

- 이한성!

- 죽었어? 아니,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 이거 설정이다.

- 그래, 말이 안 되잖아.

- 주작이 타오른다!

당연히 그 광경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다들 믿지 않았다.

하지만 마신이라는 자가 한성의 머리를 밟아 터뜨리고 손을 뻗어 평야에 있는 성시연의 군단과 진훈, 진솔. 그리고 길성현까지 한 번에 쓸어버리면서 시청자들은 심각성을 알았다.

마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카메라를 들여다보다가 다시 손을 뻗어 카메라까지 부쉈다.

그리곤 등을 돌렸다.

아무것도 없는, 오로지 화려한 마신의 궁전만 남아 있는 평야를 보며, 마신은 중얼거렸다.

“조금은 가능성이 있어 보였건만.”

아쉬웠다.

루시퍼가 세계의 진실을 아는 만큼, 마신도 그것을 안다. 그래서 몇 번 움직일까 생각도 해 봤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세계의 역사는 정해진 것이고, 창조신의 존재를 태워가며 그 멸망을 반복한다고 해도 바뀌는 건 없다. 그리고 그 존재력마저 얼마 남지 않았다.

“무엇을 바꾸려 그리 노력 중인 건가.”

그것 모두 자초한 것이면서 말이다.

끊임없이 멸망해야 하면서 그것을 기억하는 태초의 신격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게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운지 알면서도 말이다.

이제 몇 번이나 남았을까.

이렇게 세상을 되돌리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창조신이라 하더라도, 모든 이들의 어머니라 하더라도 이제는 힘들다. 한 번, 어쩌면 두 번.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

이한성이라는 인간.

이 세계의 변수이며, 가장 큰 영향력을 지녔다고 했다.

마신은 그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뭘 준비하는지 지켜봤다. 일부러 죽이지 않고 말이다. 그리고 마신의 궁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꽤 괜찮았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마신은 이한성을 죽여보기로 했다.

만약, 모두가 입을 모았던 것처럼 그가 진정한 ‘변수’이고 ‘유일한 세계의 영웅’이라면, 이 정도의 위기는 넘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겨우 자신의 손에 죽을 거라면, 천외천에서는 절대로 버티지 못할 테니까.

그런데 쉽게 죽었다.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허무하게 말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마신은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마치 무언가 되돌아가는 느낌.

“이런.”

막아서고 싶었지만, 너무 늦었다.

마신은 눈을 감고 세상의 순리를 받아들였다.

그의 얼굴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한성은 똑똑히 봤다.

자신의 목이 꺾이며 세상이 뒤집히는 것을.

그때, 시스템 문구가 올라왔다.

- 당신은 사망했습니다.

- 구사일생(九死一生)의 [운]이 발동합니다!

- 인류 전체가 당신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 관종의 신. 그리고 종천의 신. 두 이명과 수많은 신화가 당신에게 반응합니다.

- 다시 없을 [운]이 발동합니다.

- 당신은 [유일한 세계의 영웅]입니다.

- 이 세계를 포기하고 돌아가시겠습니까?

한성은 기다렸다.

만약 운이 발동한 것이라 하면, 그냥 돌아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그냥 돌아가선 안 된다.

실수다.

아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성은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

돌아가더라도 어떻게든 다시 돌아올 거다.

제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빌었다.

- 당신의 간절함에 세계가 반응합니다.

- 당신은 10분 전으로 회귀하시겠습니까?

좋아.

이거다.

한성은 머뭇거림 없이 회귀를 선택했다.

세상이 핑 돌았다.

이번엔 절대 실수하지 않는다.

무조건 성공한다.

< 자격의 증명. > 끝

ⓒ [동주]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