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행운은 만렙이다-177화 (177/200)

< 자, 가서 물어! >

저 먼 곳에서 쏟아지는 검은 물결.

수만의 마족들.

하나하나가 강력한 수준에 이른 마족이다. 아무리 격의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해도 수가 이 정도로 많으면 상대하기 힘들다.

게다가 그들에겐 열두 악마가 있었다.

하지만.

이쪽에도 물량은 그리 적지 않다.

이하얀이 지금까지 모은 소환수를 뱉어냈다.

거대한 하프 거인족, 산을 이고 수많은 바위를 뱉어내는 지반거북, 일대를 얼려버리는 프로스트 리치, 아무것도 없는 마계에 해일을 만들어내는 인어의 왕, 대인 무투의 괴물 마굴의 왕.

하얀은 게이트 오브 바빌론을 열어 그들에게 보물을 쥐여줬다.

그것으로 오른쪽의 수천은 막는다.

그뿐이 아니다.

한별이 테이밍 타투를 얻은 후에 세계 곳곳을 다니며 모았던 요괴와 귀신이 풀려나왔다.

방망이를 든 도깨비와 귀곡성으로 마족의 영력을 흩어버리는 처녀귀신, 그림자로 뭐든지 삼키는 그슨대, 두두리, 거구귀, 길달, 아기귀신, 강철이.

하나하나가 신격에 다다른 강력한 존재들이 왼편의 수천 마족을 막아선다.

정면엔 피터와 진솔이 나섰다.

이계의 소환수, 괴수 등. 수백에 이르는 괴상한 존재들이 중앙으로 향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열두 악마.

진훈, 성시연, 길성현, 이하얀, 피터까지.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피터가 데려온 신인류가 이곳으로 붙었고 문어를 얼굴에 올려놓은 것 같은 ‘이계의 신격’ 또한 이곳으로 붙었다.

숫자로 보면 아군이 유리했다.

하지만 열두 악마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일대 일로 열두 악마 중 하나와 붙어서 맞먹을 수 있는 존재는 피터가 전부였다.

진훈과 한별이 한편이 되어 하나를 막아야 했고 이하얀과 성시연이 힘을 합했다. 길성현은 자신의 동료 다섯과 같이 싸웠다.

신인류 서른이 악마 하나를 겨우 막아섰고, 이계의 신격이라는 것들 다섯이 하나를 겨우 막았다. 그리고 진솔이 하나를 막았다.

피터가 하나를 막는다.

그래도 악마는 절반이 남는다.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전투.

하지만 그들은 버텼다.

“한별 삼촌!”

이하얀이 한별을 부르며 무언가를 던졌다.

“······?”

아무것도 모르고 던진 것을 받은 한별이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힘에 몸이 잠시 경직되었다.

폭포처럼 몰려드는 신격.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그리고 가슴 깊은 곳에서 어둑시니와 강하게 반응하는 하나의 방망이.

그것은 [대왕 도깨비의 방망이(초월 신화)]였다.

하얀이는 소환수들에게 게이트를 개방하면서 [복제]를 이미 한 번 사용했다.

그리고 넘겼다.

이 방망이를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한별이었으니까.

한별은 그 방망이를 휘둘렀다.

단순히, 한 번 휘두른 게 전부였다.

쿠우우우.

주변을 감싸던 마기가 한순간에 흩어졌다.

그리고 앞에서 내내 강력한 힘을 뿜으며 진훈과 한별을 압박하던 악마가 저만치 날아갔다. 그토록 강대했던 악마가 뒤로 무른 건 처음이었다.

한별은 쉬지 않았다.

방망이를 다시 한 번 휘둘렀다.

그러자 이번엔 수십 마리의 도깨비불이 나왔다. 그것은 하나하나 강력한 힘을 담고 있었다. 닿는 마기는 태워버리고 주변을 밝게 비춘다.

하지만 악마는 강력했다.

마기를 폭풍처럼 쏟아내더니 하늘에 수백 개의 검은 칼날을 만들어 한별에게 쏘아냈다.

“내가 감당한다.”

한별이 진훈에게 말했다.

진훈은 그것을 바로 이해했다.

화악.

황금빛 마력이 한층 밝게 빛났다.

그리곤 그가 앞으로 쏘아졌다.

한별이 방망이를 휘둘렀다. 몸속에서 무언가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고 방망이 끝에서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검은 칼날과 같은 개수의 창이 생성되어 날아갔다.

드높은 신격이다.

하나하나가 한별이나 진훈보다 몇 수준은 높은 힘이다.

푸쾅!

가장 앞에 있던 칼날과 창이 부딪혀 깨졌다.

몇 개는 그렇게 막았다. 하지만 절반 이상의 창은 칼날에 힘없이 깨져 한별에게 쇄도했다. 창으로 막았기에 위력은 약해져 있었지만, 한별이 맨몸으로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진훈은 이미 저 앞에 있는 악마와 격돌하고 있었다.

콰아앙!

둘의 격돌에서 삐져나온 파장은 한별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나서야 마기의 칼날이 한별의 목전에 닿았다.

하나, 쳐냈다.

둘, 허벅지가 뚫렸다.

셋, 가슴을 빗겨나가며 갈빗대가 부러졌다.

넷, 왕명을 사용해 칼날 대부분을 빗겨냈다.

다섯, 두 개의 칼날이 한별이 막을 수 없는 머리로 향했다.

하나는 머리를 흔들며 왕명으로 빗겨냈다.

하지만 하나는, 한별의 미간에 정확히 꽂혔다.

‘안 돼.’

죽을 수 없다.

하지만 피할 수도 없다.

콰아앙!

한별은 눈을 감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칼날은 한별의 미간 앞에서 터져나갔다.

무언가 검고 투명한 손이 칼날을 잡아 터뜨린 것이다.

- 나약해 빠져서는.

어둑시니의 힘이다.

아니, 원래 그의 힘은 한별을 감싸고 있었다.

세 번째 계약이며 한별의 영혼을 담보로 받은 힘을 사용했었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는 어둑시니의 모습은 항상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무언가 이상했다.

진하고 선명한.

그저 유형화된 힘과는 달랐다.

“내가 그러지 않았느냐. 끝까지 살아남으라고.”

그것은 어둑시니의 ‘힘’이 아니라.

어둑시니의 ‘본체’였다.

그가 한별을 구하기 위해 강림한 상태였다. 그것을 위해 격의 소모를 감당한 것인지, 어둑시니의 팔 한쪽은 사라져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 봤던 그 모습 그대로.

어둑시니는 한별 앞에 섰다.

*  *  *

이하얀은 용혈을 빠르게 돌렸다.

용혈은 강한 힘이다. 태어날 때부터 신의 축복을 받은 초월종이었으며, 마력에 99% 지배력을 보이는 마법의 종주였다. 거기에 시간만 지나면 차근차근 되찾는 신격은, 하얀이를 온전한 신격 끝에 닿게 해줬다.

하지만 여기선 그것도 부족하다.

지금까지 모은 소환수가 마족을 상대하고 바빌론의 보물들이 소환수를 강하게 만들어줬다.

하얀이가 마력의 파도로 악마의 마기를 몰아냈다.

그러자 성시연이 붉게 물든 거대한 발톱을 휘둘렀다.

투쾅!

하지만 악마는 팔을 들어 가볍게 막았다.

붉은 게헨나의 염화를 지녔으며 발록왕 투신의 혼을 간직한 성시연은 이미 최상급 마왕이 되었다. 하지만 격이 낮다. 아직 온전한 신격에 불과한 성시연은 72 악마에게 대항할 수 없다.

같은 악(惡)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곳엔 6마리의 악마가 있다.

나머지 악마는 아래 마족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있는 하얀이의 소환수, 피터의 소환수 등을 빠르게 줄여나간다. 저것들을 먼저 죽이고 이곳을 한 번에 쓸어버리겠다는 뜻이다.

“하얀아, 빠르게 끝내야 해!”

“알겠어요.”

안다. 아는데 방법이 마땅치 않다.

“용혈을 개방할게요.”

용혈.

그것은 단순히 용의 피를 이었다는 게 아니다. 신의 축복을 받은 초월종. 그 피엔 신의 힘이 담겨 있다. 인세의 중재를 위해서만 사용할 수 있는 힘.

드래고니안과의 혼혈인 하얀이는 쓸 수 없는 힘.

하지만 잠시 개방할 수 있다.

막대한 후폭풍을 감당해야만 하지만.

“젠장.”

성시연이 그 말을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하얀이는 용혈을 개방하면서 초월종의 기준 ‘격’인 드높은 신격까지 올라갈 거다. 하지만 혼혈이기에 개방 시간이 끝나면 격이 확 내려간다.

그게 용혈 개방의 후폭풍이다.

“나도······.”

“언니는 안 돼요!”

“······알아. 그래도 안 돼요. 아빠가 돌아오면······, 언니는 멀쩡한 상태로 있어야 해요.”

“······그래, 짐을 늘릴 순 없지.”

성시연은 마왕이다.

마왕의 몸을 지녔고 릴리스의 신격을 계승했다. 그러면서 지옥의 대공 게헨나의 염화와 발록왕의 신격을 합해 사용하고 있다.

외줄 타기다.

인간과 마왕 사이에서.

성시연은 완전한 마왕이 되면서 드높은 신격에 들 수 있다. 단순히 타락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말이다. 천사가 괜히 타락해 악마가 되는 게 아니다.

간절한 힘.

하나의 격.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걸 포기하고 타락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 아니야.’

하얀이에게 용혈 개방을 강요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게 더 낫다는 걸 알기에 마음이 아팠다. 아직 어리고 여린 하얀에게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한 번 타락하면 다시는 정화되기 힘들다.

그것은 한성에게 짐이었으니까.

“반드시 이기자, 하얀아.”

“꼭 성공합니다.”

하얀이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하얗고 파란 마력만 사용하던 하얀이의 몸에서 말이다.

용혈.

그게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용혈은 타오른다.

하얀이가 쌓아 올린 신격을 연료 삼아서.

악마의 기다란 검은 손톱을 성시연이 막아섰다. 겨우 한 번 막는 게 한계일 정도로 큰 격의 차이가 있었지만, 성시연은 온 힘을 다해서 막았다.

하얀이가 완전하게 개방할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

성시연이 희생하는 하얀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  *  *

전장은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극도로 불리할 수밖에 없었던 전장이다. 하지만 하나하나가 생명을 태우며 버틴 덕분에 겨우 반반을 지키고 있는 거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하얀이의 용혈 개방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한별 곁의 어둑시니는 악마 하나를 죽이고 하나를 잡아두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소환수를 정리한 악마가 하나씩 이 전장으로 참여하고 있다.

수평을 유지하던 기세는 급작스럽게 기울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왈왈!

크르릉.

컹컹!

개가 짖는 소리였다.

너무나 어이가 없어 진훈과 친구들은 물론이고 악마들마저 전투를 멈출 정도였다.

여기가 어딘데 강아지 소리가 나느냔 말이다.

하지만 곧이어 악마들은 멀리서 느껴지는 말도 안 되는 두려움에 뒷걸음을 쳐야 했다. 뭔진 모르겠다. 이 압도적인 힘의 차이는 무엇일까.

아니, 겨우 그 정도가 아니다.

DNA 가장 깊은 곳에서 도망쳐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악마다.

마계의 72 악마.

그런데 여기서 도망치라고?

“뭐야······.”

한별이 저 먼 곳에서 달려오는 열 마리의 개를 보고 중얼거렸다. 평범한 강아지 같다. 등 뒤에 작은 날개를 단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리고 개들 뒤로 보이는 익숙한 누군가.

“젠장할. 뭐야.”

“이한성.”

“한성! 야, 이 새끼야!”

“아빠!?”

모두가 한 마디씩 내뱉었다.

마치 펫시터처럼 열 마리의 개를 몰고 오는 한성의 모습은 마치 현실 같지가 않았다. 왜 일주일이나 지난 지금 시점에, 그것도 이런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개들을 끌고 오느냔 말이다.

그때, 한성이 소리쳤다.

“악마들 도망 못 치게 잡아!”

그 소리에 진훈과 한별은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말도 안 되게 강했던 악마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성시연이 그렇게 외치며 악마에게 달려들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성의 말은 따라야 할 것 같았다. 그것은 성시연만이 아니었다.

모두 본능적으로 한성의 말대로 악마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의 기세가 확 꺾였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악마는 반항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도망치기 위해 발버둥 칠 뿐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냐고!”

답답했던 길성현이 소리쳤다.

하지만 거의 도착한 한성은 딴소리만 할 뿐이었다.

“자, 가서 물어!”

왈왈!

다들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벌리고 한성을 바라봤다.

저게 헬하운드나 지옥의 케르베로스라면 모른다. 그런데 어떤 건 시바견이고 어떤 건 치와와다. 그나마 큰 것도 골든 리트리버인데, 악마를 물라니.

그런데 말도 안 되게 악마는 개. 아니, 강아지들을 보고 기겁하며 벌벌 떨었다.

컹컹!

큼지막한 골든 리트리버가 악마의 종아리를 물었다.

그러자 악마는 얼마나 아픈 것인지 경기를 일으키더니 축 처졌다. 그리곤 검은 입자로 변하더니 골든 리트리버와 함께 사라졌다.

“X발,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모두가 그 말에 동의하는 것인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혼란, 당황, 황당.

그리고 뒤이어, 누군가는 7일 동안 그렇게 고생했는데, 이런 식으로 등장하며 혼자 깔깔 웃고 있는 한성에게 느끼는 극한의 분노까지.

악마는 개들한테 이미 다 죽었다.

그런데 진짜로 죽을 사람은 따로 있었다.

“이한성.”

“넌 오늘 진짜 죽는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발언이었다.

< 자, 가서 물어! > 끝

ⓒ [동주]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