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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은 만렙이다-172화 (172/200)

< 가까워지는 진실(2) >

한성은 그의 충격적인 발언에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한성보다 다른 이들이 더 놀란 모양이었다.

“초기 각성자라. 아직도 살아있는 게 신기하네.”

“미쳤군, 그럼 지금은 진도가 어디까지 나간 거지?”

“밖으로 나가면 엄청나겠는데?”

“아니지, 기간이 길다고 격이 높아지나. 다 어떻게 플레이하느냐가 중요한 거지.”

“야, 아무것도 모르고 여기 떨어졌는데, 지금까지 버텼다는 건······, 천재 아니면 고인물이라는 거야.”

둘 다 맞는 말이지만, 한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펍은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누군가 손을 들고 나왔다.

“균열을 알았으니까, 밖 상황에 관해서도 궁금할 텐데. 제가 답해드려도 될까요?”

흑발의 여성이었다. 장비 상태로 봐서는 이제 비천한 격에 오른 것 같은데 이 펍에서 가장 강한 축에 속했다.

이한성은 DP 수표를 하나를 줬다.

“역시, 쿨하군요. 전 이한나라고 해요.”

“전 이한성입니다.”

이한나라는 플레이어는 한성을 묘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반가워요······, 근데 혹시 튜브하지 않았었나요?”

“아니요. 그런 건 한 적이 없습니다.”

이한성은 당당하게 답했다.

지금 이한성의 매력은 70을 훌쩍 넘었다. 당연히 현실의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생겨졌다. 물론, 기존의 얼굴이 아예 사라지진 않았지만, 알아보는 게 더 이상하다.

“아, 그렇군요. 죄송해요.”

한나라는 여자는 알겠다고 답했지만, 얼굴엔 의미심장한 미소가 담겨 있었다.

“일단 균열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균열에서.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얻은 힘을 현실에서 사용할 수 있었어요. 당연히 몇 가지 이능이나 육체적 능력이 조금 강해진 게 전부였죠.”

“그게 사실입니까?”

이한성의 물음에 이한나는 다른 이들을 바라봤다.

다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게 거짓은 아닌 모양이다.

하긴, 이 상황에 거짓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또 하나.”

“······?”

“밖에서도 몬스터가 나와요.”

이건 진짜 거짓말 같았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도대체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한성이 잠시 머뭇거릴 때였다.

“또, 또 질문 있습니까? 제가 대답해드릴게요!”

“제가 더 잘 알 겁니다. 형님!”

“누가 네 형님이야!? 저분은 내 형님이다! 형님!”

“크흠. 그래도 내가 비천한 신격에 올랐고, 밖에서도 기자 생활을 하던 사람인데. 내가 낫지 않겠습니까?”

슬슬 눈치를 보던 사람들이 이한성에게 직접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런데 그 순간.

무언가 한성의 등을 훅 찔렀다.

“훗, 먼저 죽인 사람이 임자······.”

따끔하긴 했다.

미안하지만, 이한성은 드높은 격을 지닌 몸이다. 아직 신격에 들지도 못한 플레이어가 아무리 찔러 봤자 핏방울 하나 나오면 기적이다.

한성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눈이 마주친 플레이어는 욕을 내뱉으며 다시 한 번 찔렀다. 마력을 잔뜩 담은 게, 이번엔 반드시 끝내고 말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플레이어는 마법으로 한성과 다른 플레이어를 격리했다. 반쯤 죽인 후에 아이템을 강탈하겠다는 계획이었을 거다.

죽음을 담보로 협박한다면 대부분 먹힐 테니까.

하지만.

“니들 뭐하냐.”

한성은 굳이 손을 쓰지도 않았다.

이한성이 아무리 강해 봐야 이제 막 비천한 신격에 오른 정도라고 생각했을 거다. 만약 비천한 신격 초입이었다면 충분히 통할 기습이었으니까.

DP를 많이 가지고 있지만, 당연하게도 축제 기간에 얻었다고 생각했겠지.

플레이 시간 3년 6개월.

아무리 빠르고 강하더라도 온전한 신격은 절대로 이룰 수 없는 경지다.

“어······? 이럴 리가 없는데······.”

검을 찔렀던 플레이어는 당황한 듯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하지만 마법을 사용한 플레이어는 그런 동료가 답답했던 건지 격리 마법을 풀곤 한성에게 공격을 시도했다.

물론, 그 마법은 한성에게 닿기도 전에 소멸했다.

“다 했냐?”

한성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곤 정적이 흘렀다.

다른 플레이어도 찰나에 벌어진 일이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했다. 옆에 있던 이한나라는 플레이어는 한성을 지켜주려고 했던 것인지 한발 다가온 상태였지만, 어안이 벙벙한 것인지 그대로 굳어 있었다.

한성은 다른 이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곤 몸을 돌려 한성을 공격했던 플레이어 두 명에게 다가갔다.

“자, 잠깐. 그, 그게 오해야! 오해!”

“우리는 그냥······.”

이런 상황인데도 오해라고 하다니.

뻔뻔함의 극치다.

이곳은 [장미여관]이라는 여관 겸 술집.

이계의 도시 안이지만, PK가 허용되는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했다. 물론, 다른 곳에서도 PK를 할 수 있지만, 범죄자가 되면서 불이익을 받는다.

한성은 허공에 손을 휘적, 저었다.

픽.

작은 소음과 함께 둘의 목이 베어졌다.

툭. 도르르.

둘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고 시체는 곧 하얀 빛으로 사라졌다.

“자, 다음 질문에 대답해주실 분?”

다시 정적이 흘렀지만, 곧 손을 번쩍 들기 시작했다.

이한나라는 플레이어는 한성 옆에 찰싹 달라붙어 손을 번쩍들며 외쳤다.

“또 대답할 수 있습니다! 아니, 아는 거 싹 털어놓겠습니다. 10만 DP도 안 받을게요! 저랑 친해져요!”

“아니, 그런 상도덕도 없이! 한 번 받았으면 그만 저리 가!”

“제발, 선은 지킵시다! 그러다 뒤에서 칼침 맞는 수가 있소!”

“제가 다른 이들이 모르는 정보도 알고 있습니다. 10만 DP라면 최근 해외 뉴스까지 달달 외워드릴 수 있어요!”

“방금 죽인 두 놈의 배후도 알고 있어요!”

“야, 그건 나도 안다! 재훈 그룹이라는 소속이라는 걸 누가 모르냐.”

“그걸 말하면 어떻게 해!”

“그런 싸구려 정보로 뭘 얻겠다고! 밖에서 가장 강한 플레이어는 ‘비천한 신격’이요. 그것도 한 3개월 전에 들어온 친구한테 들은 거니 확실할 거요!”

“아니, 그런 거 막 말하지 말라고! DP 받고 얘기 해야지.”

“그거 말하고 DP 받으려고 했소? 양심이 없네. 형님, 저에게 오시죠.”

이젠 DP를 주지 않더라도 자기들끼리 정보를 뱉어내고 있었다.

한성은 천천히 한 명 골라서 싹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  *

대략적인 정보는 다 얻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이 세계는 진짜인지. 아니면 현실과 게임 사이에 있는 ‘가상’인지는 알 수 없었다. 모두가 그곳에서 힘을 얻어오니 현실 같지만, 모든 플레이어가 같은 세계를 경험하니, 가상이라는 추측도 있다.

중요한 것은 아직 이 세상을 클리어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것. 그래서 클리어 이후에 이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 무엇이 어떻게 변하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저 균열로 들어가면 이 세계로 온다는 것만 아는 수준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아직 3년 6개월이 전부였으니까.

그리고 현실로 나온 플레이어 중 가장 강한 인간은 [비천한 신격]이었으며, 온리 원에서 목격된 가장 강한 플레이어도 [비천한 신격]이었다.

당연한 사실이다.

최대가 3년 6개월인데 온전한 신격에 도달하는 건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물론,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한성은 훨씬 뛰어넘었지만.

“온리 원에서 우승하는 건 어려울 게 없겠네.”

하지만 중점은 그게 아니다.

언제든 이 세계를 나갈 수 있다는 것.

그게 중요했다.

한성이 죽으면 된다. 아주 쉽다. 당장이라도 죽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밖으로 나갈 때 가져가는 힘?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제는 지금까지 같이 재앙에서 살아남으며 지내온 친구들. 그들과 함께 하는 게 더 좋았다. 가족과 친구. 현실에도 있다. 하지만 이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한성이 포기하고 밖으로 나온다면.

이 세상에 있는 친구들은 모두 어떻게 될까.

아무것도 없던 무(無)로 돌아가는 것일까?

루시퍼가 그랬다.

끝없이 멸망하는 세상을 구하겠다고.

그것 때문에 창조신을 만나러 가는 것이라고.

‘그 말은 이것도 실존하는 세상 중 하나라는 걸까.’

한성이 없으면 이 세계는 사라진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 거다. 그리고 루시퍼와 몇의 신격 정도만 다른 세계와 의식을 공유하는 걸까.

가상과 현실.

그 기준은 무엇일까.

모두가 현실은 아닐까?

순간, 무서워졌다.

이 일을 일으킨 ‘신’은, 도대체 무엇을 원해 이러고 있는 것일까. 게임 클리어하듯 이 세계의 끝에 도달하면 모든 게 끝나는 것이긴 할까.

만약, 한성이 클이어에 성공했을 때.

이 세계 안에서 만난 진훈, 한별, 성시연, 이하얀 등등. 모든 친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무조건 헤어져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건가.

복잡했다.

한성은 그날 하루를 상념에 빠져 지냈다.

다음 날, 온리 원이라는 토너먼트 대회가 열릴 때까지.

*  *  *

“대표님, 오늘 정말 ‘그’를 잡을 생각이십니까?”

[보물] 이상의 장비를 걸쳤으며 이제 비천한 신격에 막 오른 플레이어 한 명이 누군가를 대표라 불렀다.

균열이 일어나고 게임인 줄 알았던 ‘세상’에서 실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세상에 알려지고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중 하나가 기업형 플레이어와 정부 소속 플레이어의 탄생이다. 재능있는 사람을 구해 기본적인 훈련과 교육을 한 후에 균열에 넣어 힘을 얻어오게 한다.

기업이나 정부의 목적은 하나.

강한 플레이어.

지금 현실엔 이 게임 속 세상처럼 ‘균열’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곳에 들어가면 이 세상에 접속할 수 있지만, 균열을 통해 몬스터가 나온다.

몬스터는 끔찍한 재앙이기도 하지만, 이 게임 세상처럼 돈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일개 기업이 합법적으로 무력을 보유할 방법이기도 했다.

“당연하지. 그런 초기 플레이어는 절대로 가만두면 안 돼.”

스카웃 제의는 당연히 했다.

연봉 10억에 계약금 50억.

지난 단서를 조합하면 이한성이라는 플레이어는 [비천한 신격] 끝에 올랐을 거다. 그 이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초기 플레이어라 아무것도 모르고 게임을 시작했다는 리스크를 지고도 이 정도에 도달했다는 것은 재능이 있다는 뜻.

그 어떤 기업에서도 쉽게 주지 못할 계약금이다.

하지만 그는 거절했다.

아니,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초기 플레이어로 3년 6개월이야. 현실성이 무너질 만도 하지.”

균열에 들어와 [온리 원] 축제에 들어왔다는 것은 [세상의 끝]이라는 게임을 온전히 클리어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이 세계에서 엄청난 돈을 벌었겠지. 굳이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아도 [비천한 신격]이라면 같은 신격의 몬스터 하나 잡는 것만으로도 수백억은 우습게 벌 거다.

“우리가 선점하지 못할 바엔 빠르게 떨어뜨리는 게 낫다. 밖으로 나가는 순간, 우리가 스카웃 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까. 그렇지 않은가 이실장.”

세계에 수많은 대기업과 정부가 있다.

대한민국의 일개 기업은 손대기 힘들 거다.

그럴 바에 차라리 더 강해지지 못하게 막는 게 낫다.

“알겠습니다. 그럼 계획대로 진행하겠습니다.”

“확실히 해. 절대로 실수는 있어선 안 돼.”

그의 휘하엔 [비천한 신격]이 다섯 명이나 있다. 모두 직접 키워냈으며 현실로 나간 후에도 계약을 유지하겠다는 조건으로 10억 이상을 미리 받았다.

그들에게 투자된 돈만 수십억이 넘고 말이다.

“아무리 강하다 한들, 같은 비천한 신격. 다섯을 동시에 이길 순 없겠지.”

“당연합니다.”

이실장의 목구멍까지 나온 ‘온전한 신격이 아니라면요.’라는 말을 억지로 삼켰다. 그럴 리가 없다. 온전한 신격은 아직 단 한 명도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니까.

“완벽하게 해결하겠습니다.”

아주 만약에 [온전한 신격]에 올랐다고 해도 비천한 신격 다섯 명이다. 온전한 신격 끝에 오른 게 아니라면, 이제 막 온전한 신격에 도달한 것이라면 어떻게든 죽일 수는 있을 거다.

‘비천한 신격이라, 죽음을 담보로 DP와 아이템을 강탈하는 게 좋겠지만.’

그것까지는 힘들 것이다.

이 실장이라 불린 사람은 ‘이종현’ 대표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돌아섰다.

‘들킬 수밖에 없어.’

현실에서 LGI라는 대기업의 삼남이다. 세계에선 순위에도 없는 기업이지만, 대한민국에선 그래도 30위 안에 드는 거대 기업.

그런 기업에서 직접 키운 플레이어가 벌이는 짓이다.

더럽고 추악하다.

하지만 비천한 신격 정도는 아무도 모르게 묻을 수 있다.

이 게임 속 세상이 아닌, 현실에선 영웅 하나의 힘은 그리 크지 않다.

라고, 이실장은 착각하고 있었다.

< 가까워지는 진실(2)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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