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까워지는 진실(1) >
피터는 화가 났다.
그동안 괴롭혔던 한성이 겨우 그 정도로 죽었단 말인가. 복수는 자신이 해야 하는데, 죽이는 건 반드시 직접 해야 하는데 말이다!
- 뭐라고? 야, 다시 말해 봐.
- 뭔 소리야. 한성이 죽다니.
- 말도 안 되는 소리.
- 그가 죽을 리 없잖아.
- 몰카인가? 한성님 제발 그런 거 하지 마세요.
- 야, 피터. 빨리 찾아봐!
- 피터야. 움직이지 않고 뭐해!
- 피터야.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움직여라.
- 피터야.
- 피터!
- 피터 이 새끼야!
“그게 사실입니까?”
“아직 모릅니다. 확실하게 추적을 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잘 죽었네, 이 새끼.”
나쁘지 않기도 했다.
절대로 직접 죽일 수 없어서가 아니다. 무서워서도 아니고 또 괴롭힘 당할까 걱정돼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그저······.
- 뭐라고 했냐, 피터야.
- 노예야. 주인이 사라졌는데 지금 뭐라고?
- 잘 죽었다고?
- 너도 한 번 죽어 볼래?
- 너 방금 말실수했다. 지금 이거 보는 사람 40억이고 팬은 50억이거든.
- 피터 죽이러 갈 사람 모집합니다. 1/50억
- 지금 찾으러 안 가면 평생 저주한다. 1/60억
- 이한성 진짜 죽었으면 피터 평생 고문한다. 1/90억.
- ㅋㅋㅋㅋㅋㅋㅋ미친, 인구 90억이 안 되는데, 뭔 소리야.
- 왜 안 되냐. 몬스터랑 동물이랑 합치면 비슷할 듯.
- 그건 맞지.
- 지금 웃을 때냐? 이한성이 죽었다잖아!
- 재수 없는 말 하지 마라, 절대 안 죽는다. 이한성은.
- 맞아. 절대 안 죽어. 피터야 빨리 가자.
“······제가 왜 갑니까.”
피터는 채팅창을 보며 말했다.
정말 억울했다.
이한성은 피터를 오래 괴롭혔다. 정말 죽이고 싶을 만큼 말이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노예처럼 사람을 부려먹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시청자만 40억이다.
그 모든 사람이 피터에게 욕을 한다. 게다가 진짜 안 가면 찾아오고 괴롭히고 고문하고 죽인다고 한다. 피터는 진심으로 시청자들이 무서웠다.
이곳에 피터를 이길 실력자는 거의 없겠지. 물론, 몇 명은 있을 거다. 하지만 그들이 직접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을 거다.
피터는 그런 것을 떠나서, 이 많은 사람의 미움을 받는다는 게 싫었다. 무서울 정도로 말이다.
- 피터 네가 날 구했었지만, 방금은 실수다.
- 당연히 가야지. 우리의 영웅 이한성인데.
- 피터야, 네가 재앙에서 우릴 구했지만, 결국 이한성이 한 거야. 넌 인류의 영웅을 구할 자격을 얻게 된 거고!
- 어서 가라.
- 빨리 찾아.
- 늦어서 이한성 진짜 위험하면 다 네 책임이야.
“아놔. 내가 왜······.”
피터는 정말 억울해하다가 결국 고개를 푹 숙였다. 더 반항했다가는 정말 찾아와 죽일 것 같았다.
말로만. 아니, 채팅으로만 사람이 죽는 일도 있다는데, 그런 일이 정말로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방금 몇 분 만에 수억 개의 욕을 먹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아쉬웠다.
이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주며 응원해 주는 것. 누군가를 구했을 때 알아주고, 능력을 알아주는 것. 그게 좋았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다고.
피터는 관심을 잃는 게 두려웠다.
“갑니다. 가요.”
피터의 말에 피터를 데리러 온 사람의 표정이 풀렸다.
그리고 이어진 칭찬 가득한 채팅에 피터의 입꼬리도 올라갔다.
* * *
- [과거의 잔상] 진행 중.
- 89%······, 90%······.
거대한 도시다. 인구만 수십만 명이 될 것 같은 이계의 도시. 곳곳엔 홀로그램 간판이 빛났고 광고가 지나갔다. 분명 중세 도시의 모습이었지만, 속은 첨단 마법으로 가득했다.
이게 1급 이계의 도시의 모습이다.
사람도 엄청 많다.
플레이어가 없는 것 같으니 모두가 이계인이겠지만, 말이다.
“진행률은 계속 올라가는데.”
한성이 이벤트를 하나씩 해결하며 보상을 받을 때마다 진행률은 올라간다. 하지만 왜 올라가는지, 이 과거가 정확히 무얼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옆에서 이상한 대화가 들렸다.
“뭐야, 여기도 별 거 없잖아.”
“누가 벌써 이벤트 털어갔어.”
“쳇, 엄청 빠르네. 축제에 들어온 플레이어는 몇 안 되는데 말이야.”
이한성은 흠칫 놀랐다.
플레이어, 이벤트, 얼마 안 된다.
이런 단어를 쓰는 이계인은 없다. 이계인은 플레이어라는 단어를 쓰긴 하지만, 이벤트에 참여하지 않고 플레이어가 적건 많건 신경 쓰지 않으니까.
이한성은 뒤로 무르며 모습을 숨겼다.
마력의 유동은 한정해 바로 코앞에서 마법을 사용해도 감지할 수 없도록 하는 기술이다.
“‘온리 원’에 참여하면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우리 정도면 충분할걸.”
여성 한 명과 남자 둘로 이루어진 파티다. 셋은 서로 아는 사이인지 아주 편하게 대화하고 있었다.
“못 이길 것도 없을걸. 균열이 생기고 이 세상에 들어온 것도 벌써 3년이나 흘렀어. 현실로는 이제 겨우 6개월이야. 우리보다 빨리 들어온 사람도 없고. 게다가 이 시점에 누가 아카데미 졸업해 SSS등급이 되어 있겠냐. 비천한 신격이면 최상위지.”
“하긴, 우리 진훈이랑 한별도 압도하고 있잖아. 그 정도면 분명 1등 할 거야.”
“‘온리 원’은 가상현실 대전이라 죽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들이 한마디 할 때마다 이한성의 머리는 하얗게 비어가고 있었다.
이게 다 무슨 소리인가.
한성처럼 게임 속으로 들어온 사람이 또 있다는 것이고, 그들도 한성과 같은 시점에 게임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겨우 SSS등급이라고?’
레벨로 따지면 7이고 격으로 따지면 이제 막 신화를 이룩하고 비천함이라는 인간의 한계에 갇힌 것이지 않은가. 한성은 몇 년 전에 이룬 경지다.
그런데 진훈과 한별을 압도했다는 건······.
‘진도가 무지하게 느리네. 약하기도 하고.’
하긴, 생각해보면 한성이 말도 안 되게 진도가 빠른 거다.
한성은 전 회차에서 52년을 플레이했다. 가장 빠르게 클리어를 하더라도 10년이었고 보통 20년은 걸리는 게임. 그런데 한성은 겨우 3년 6개월 만에 ‘기승전결’에서 ‘전’의 진도까지 왔다.
한성이 쉼 없이 달린다면 앞으로 6개월이면 종장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늦어도 5년 차 이전에는 클리어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터무니없는 진도이긴 하네.’
생각해보면 지금 시기에 비천한 신격을 이룬 저들도 대단한 것이긴 했다. [세상의 끝]에서 첫 회차 3년 만에 비천한 신격을 이루는 건 어마어마하게 빠른 진도니까.
2회차라도 절대로 쉽지는 않은 진도긴 했다.
이한성은 기척을 완전히 숨긴 채, 그들을 따라다녔다.
셋은 원래 아는 사이였던 모양이다.
지금은 같지만 모두 다른 세계관에서 플레이 중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떨어지기 전에 서로 약속을 했다. 온리 원이라는 축제가 시작되면 만나기로 말이다.
‘미리 알고 있었다고?’
궁금한 게 산더미다.
그런데 저들은 더 이상 깊은 대화를 안 했다.
그저 다른 이벤트를 찾아다니며 보상에만 집중했다.
이한성은 잠시 멈춰 서서 고민했다.
‘이걸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지?’
직접 잡아서 물어볼까? 정보가 없다는 사실을 다른 플레이어가 알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온리 원, 말이 좋아서 축제지 거의 야생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보상은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저들이 어떤 목적에 의해 ‘균열’이라는 곳에 들어가 ‘게임 속 세상’으로 온 것인지 모른다. 그게 자발적인 것인지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된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
저들이 약하다고 축제에 있는 모두가 약한 것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정확히 3일 째까지 플레이어를 따라다니면서 느꼈다.
약하다.
정말 약하다.
아무리 강해도 비천한 신격에 든 플레이어가 최강이었다. 한성을 제외하고 말이다.
‘말이 안 되는데.’
들어보니 모두 한 번씩은 클리어했던 이들이다. ‘균열’에 들어오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지만 ‘온리 원’ 축제에 들어오는 것은 한 번은 클리어했던 플레이어만 가능한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결심했다.
“그냥 대놓고 활동해야겠어.”
이한성은 온리 원 축제에서 플레이어가 가장 많이 모이는 펍으로 이동했다. 이벤트 관련 정보를 들을 수 있고 퀘스트를 받을 수 있는 곳.
그러면서도 이계인 없이 오로지 플레이어만 사용할 수 있는 곳. 온리 원 축제가 시작되면 플레이어끼리 모이는 핫플레이스 [장미여관].
끼이익.
한성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저녁 7시가 살짝 넘은 시간이라 사람들이 북적였다.
그리고 대부분 플레이어였다.
“야, 이번에 던전에 갔는데 [심판의 검]이 나왔어! 전설 등급이라고! 미쳤다. 이거 DP 써서 플러스 5까지만 강화하면 다음 재앙도 어렵지 않게 막겠어.”
“젠장할. 난 카지노 갔다가 DP 털렸어. 젠장! 우리 세계관에도 이계의 도시가 생겨야 하는데.”
“한참 멀었다. 피터가 등장해야 하는데, 올드 원 잡을 정도는 돼야 한다는 거잖아. 말도 마라. 몇 년은 더 해야겠네.”
“그니까! 7일 동안 DP 최대한 모아서 타투 하나는 그리고 가야 하는데.”
“마굴이나 가라. 그게 DP 모으기엔 최고다.”
“역시 노가다가 답인가.”
모두 플레이어가 맞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서른 명이 좀 넘어 보였다.
한성은 많이 참았다.
직접 물어보고 싶었고 궁금한 게 너무 많았지만, 혹시나 하는 위협 때문에 신중했다. 그래서 이 펍 근처로는 접근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와보니 알겠다.
이곳에 모인 플레이어 중에 한성보다 강한 자는 없다.
그리고 한성보다 많은 DP를 가진 자도 없었다.
“자, 10만 DP 팝니다.”
이한성은 DP 수표를 하나 꺼냈다. 플레이어끼리 거래를 할 때 사용하는 실물 DP.
그것을 들고 흔들었다.
“오, 씨! 뭐야!”
“나, 나 살래요! 형씨!”
“저기요. 님. 얼마에 파실래요. 어떻게 하면 되나요!”
전부는 아니지만 10명이 넘는 사람이 한성에게 달려들었다.
원래는 한 명이나 두 명 정도 붙잡고 DP를 놓고 거래를 하려 했다. 정보를 알려달라고 하고 DP를 넘기는 거다. 그럴 경우 장점은 한성이 정보를 모른다는 약점이 새어 나가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그 정보가 정확하다는 확신이 없다.
그래서 그냥 대놓고 움직이기로 했다.
“자자, 다들 앉으세요.”
이한성이 펍 중앙에서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품에서 10만 DP 수표를 10장 정도 꺼내 흔들었다.
“DP는 많으니까, 천천히 해도 됩니다.”
그 말엔 정적이 흘렀다.
온리 원 축제가 시작된 지 겨우 4일이 지났을 뿐인데 100만 DP를 챙겼다고? 그거면 몇 개 없는 전설 업적을 팔았거나 아주 희귀한 이능을 판 거다.
몇몇 플레이어가 탐욕 어린 눈빛을 억지로 숨겼다.
“질문에 대답해주는 분께 이걸 한 장씩 드리겠습니다.”
한성의 말에 플레이어들이 수근거렸다.
“뭐야. 질문?”
“겨우 그거에 DP를 저만큼이나 준다고?”
“미친 거 아니야?”
“아니, 도대체 무슨 질문을 하려고.”
이한성은 옆 테이블에 10만 DP 수표를 한 장 올려놨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플레이어가 움찔거렸다. 멀리 있던 플레이어는 슬슬 옆으로 오기까지 했다.
지금 이 시점에 10만 DP는 무지하게 크다.
보통의 플레이에선 앞으로 5년은 있어야 이계의 도시가 소환될 수 있을 테니까. 지금 당장 10만 DP로 할 수 있는 건 셀 수도 없이 많고, 그 이득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다고 이제 막 [비천한 신격]에 오른 이들이 [전설] 등급 업적을 팔기엔 손해가 너무 크겠지. 잘못하면 격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말이다.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전 왜 이곳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균열은 무엇이고 왜 게임 속에 빠진 것인지, 알려주세요.”
한성의 말에 펍은 정적에 빠졌다.
그리고 누군가 입을 열었다.
“······초기 각성자군요. 우리보다 6개월 일찍 들어간 사람 중 하나.”
6개월 일찍이라니.
아, 그러고 보니 3일 전에 플레이어를 찾았을 때, 3년이 지났다는 말을 들었다. 그게 3년 6개월인데 그냥 3년이라고 말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니.
“그게 뭡니까?”
한성은 가장 먼저 입을 연 플레이어에게 물었다.
그는 테이블 위의 DP에 턱짓했고 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테이블 위에 DP를 챙기며 입을 열었다.
“지구에, 아니, 현실에 ‘균열’이라는 생기면서 수천 명의 사람이 실종됐어요. 그리고 며칠 후에 실종된 사람이 살아 돌아왔죠.”
“······?”
“그래요. 실종된 사람은 이 게임인 줄 알았던, 아니, 어떻게 보면 이것도 게임이긴 하네요. 수없이 많은 ‘하나의 세상’ 중 하나이고, 이 세상에서 죽더라도 현실로 돌아올 수 있으니까요.”
“······!”
“아니, 현실로 쫓겨나는 거죠. 한 번 죽으면 다시 이곳으로 들어올 수 없으니까.”
< 가까워지는 진실(1)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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