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앙의 시작. >
지평선 위로 검은 연기가 일렁인다. 회색빛 하늘에서 핏물이 줄줄 흐른다면 이런 모습일까. 두 기운의 경계는 마치 악마의 이빨을 보는 듯했다.
진훈은 눈앞에 몰려오는 수천의 마족과 수만의 마수를 바라봤다.
그리곤 황금빛 마력을 뿜었다.
화악.
어둠뿐이었던 마계의 땅에 한 줄기 빛이 피어올랐다.
드넓은 평야를 덮은 마계의 존재들과 부딪쳤다.
파사사삭.
굉음은 울리지 않았다. 무언가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만 들릴 뿐. 마수과 마족은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계속 달려들었다.
진훈은 궁금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죽을 게 뻔하고 이길 수 없을 게 뻔하면서도 말이다.
‘내가 어머니를 위해 싸우는 것과 비슷한 건가?’
이들에게도 그런 생각이 있을까.
키야아아아!
저 까만 눈동자는 무엇을 담고 있을까. 죽어가며 혀를 날름거리는 저놈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진훈이 이 마계에 도착해서 수만 마리의 마족과 수십만 마리의 마수를 죽이면서 했던 생각이었다.
도대체 이것들은 뭘까.
왜 형은. 진솔은 악마가 된 걸까.
어머니는 왜 천사에서 악마로 타락한 걸까.
투둑.
진훈은 손을 털어냈다.
마족과 마수들의 피와 살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미 평야는 죽은 그것들의 파편으로 가득 차 있었다. 회색빛 하늘은 여전히 붉었고 평야는 검었다.
진훈은 홀로 싸웠다.
45일 전, 마계로 들어왔다.
당연히 마계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투신의 탑 최종층의 주인이 되자 어려울 것도 없었다. 진훈에게 돌아오는 수많은 혜택 중 하나일 뿐이었으니까.
혼자였다.
진훈은 일부러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오직 한성에게만 일렀을 뿐이다.
“이곳인가?”
진훈은 하늘을 바라봤다.
붉은 하늘에 기다란 균열이 가 있었다. 저곳은 바로 서울의 강남과 연결된 곳. 한성의 말대로 이곳에서 일주일을 버텨야 한다.
빠르면 몇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늦는다면 일주일이다.
쿠우우웅.
저 멀리서 거센 마기의 폭풍이 몰아친다.
“또 오는 건가.”
진훈의 웃음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마계에서 45일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게 아니었다.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다. 그나마 챙겨온 식량도 절반 이상이나 먹었다.
이계의 도시에서 구한 [아공간]과 캡슐형 영양제가 있어서 이 정도나 버틸 수 있었던 거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미 난 끝났겠지.’
극지(極地)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북극이나 남극. 그보다 더한 혼돈이라는 곳까지 가봤지만, 이 마계만큼 인간이 살기 힘든 곳은 없었다. 낮과 밤이 없다. 빛이 없기에 따듯하지 않으며 기분 나쁜 마기가 피부를 뜨겁게 달군다.
한기가 도는데 피부는 탈 듯한 감각이 매우 더러웠다.
그리고 저 마족과 마물.
어찌나 많은지 45일 내내 저들과 이렇게 싸웠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이 나왔고 두려움 따위는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외롭다.”
친구가 없다는 게 이토록이나 외로운 것인지 몰랐다. 다른 전장에서도 이 정도는 힘들지 않았을까? 아무리 극지라도 훨씬 강한 적과 싸워 전신이 무너질 것 같아도 괜찮았다.
오히려 재미있다며 웃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나 힘들다.
어머니를 되찾아야한다는 것과 형을 이겨서 그의 악(惡)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부담감도 굉장히 컸지만, 옆에 친구가 없다는 외로움이 너무나 컸다.
진훈은 다시 주먹을 들었다.
황금빛 마력이 외롭게 마계의 땅을 휩쓸기 시작했다.
* * *
첫 번째 재앙이 시작되었다.
하늘에서 ‘피(血)’가 내린다.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첫 번째 재앙이자, 신들이 인간을 향해 자신이 생명체를 창조하였음을 보여주는 행위였다.
그것만이라면 크게 피해 입을 만한 게 없었다.
인류는 대비하고 있었고 상수도를 철저하게 보호했으며, 식수를 충분히 비축해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피 자체에서 뿜어지는 ‘마기’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한성이 만들었던 마기 정화의 포션이나 마기 저항 포션 등을 전 세계에 뿌려 상수도에 살포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건물, 자동차, 도시 기반 시설 등등.
모든 곳에 한성이 만든 마기 관련 아이템이 팔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한성도 돈을 많이 받을 생각은 없었다.
당장 돈이 없는 나라도 많았고, 그 때문에 포션을 나눠주지 않을 만큼 어리석은 사람도 아니었다. 대신, 공짜는 아니었다. 그 나라의 채권을 받아 나중을 기약했다.
문제는 이런 종류의 재앙 10가지가 계속 이어서 발생한다는 사실이었다.
곧, 두 번째 재앙이 도래하기 시작했다.
세계 곳곳에서 차원의 ‘균열’이 생겨났다.
그곳에서 하늘에서 내리는 ‘피’를 먹으며 강해지는 마계의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두 번째 재앙도 그 균열에서부터 시작했다.
“모두 준비.”
한별이 서울 강남에 생겨난 균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의 뒤로는 [정연]의 ‘특수 마법 대대’가 도열해 있었다.
쏴아아아아아.
한반도에서 가장 큰 균열이며, 가장 많은 피의 비가 내리는 곳이다. 이미 한별과 뒤에 도열한 마법 대대는 전신이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쿵.
한별은 이제 레드 오우거만의 대장이 아니었다.
적진으로 돌격하며 상대를 무자비하게 죽이는 [레드 오우거], 은밀한 잠입과 암살이 위주인 [검은 엘프], 공습이나 대단위 폭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블루 드래곤], 대형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한 레이드팀 [회색의 늑대들].
그리고 오직 신격에 오른 ‘누군가’를 잡기 위한 [신격 사냥꾼]이라는 팀.
그 모든 팀의 대대장.
정연의 가주 이하에서 가장 강한 무력 부대를 지휘하게 된 것이다. 물론, 아직은 ‘소유’가 아닌 ‘지휘자’일 뿐이다. 언제든 가주가 명령하면 언제든 대장직함을 내려놓아야만 한다.
하지만 한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자리가 아닌 재앙이었으니까.
쏴아아아.
붉은 피의 비 때문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
한별이 서서히 한쪽 손을 들었다.
수백 명의 부대원이 감각을 잔뜩 끌어 올렸다.
모두 한별의 손끝 하나, 시선 하나에 집중하고 있다.
한별은 이제 예전의 그 외인(外人)이 아니었다. 정연 내에서도 가장 신뢰받고 존경받는 ‘영웅’이다. 특히, 레드 오우거 부대원은 한별의 말이라면 목숨마저 내던질 수 있을 정도로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가 홀로 적진으로 들어가라 한다면, 그럴 것이다.
그가 목숨을 원하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가 구해준다고 한다면, 무조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죽음을 각오한다고 하면······.
“내가 지켜줄 수 없다.”
그들은 한별을 위해 초개처럼 몸을 내던질 것이다.
그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한별이 지켜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레드 오우거 부대원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내가 지켜야겠네. 우리 대장님.’
‘이런 전장에서 죽을 수 있다면 이보다 행복한 건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지금까지 즐거웠으니까요. 오늘도 즐겁겠죠?’
한별은 피식 웃었다.
부대원의 표정엔 한 점의 두려움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쿠우우우웅.
세찬 빗소리를 뚫고 균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곤 그 균열 속에서 셀 수도 없을 정도의 마물이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나같이 ‘개구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두 번째 재앙이었으며, 이 개구리 마물은 인간의 땅을 황폐하게 만들고 수많은 사람과 생명체를 죽일 것이다.
「 나, 정연의 핏줄. 한별. 」
한별은 진언을 시작했다.
그가 온전한 신격에 올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 요괴왕 어둑시니. 」
한별의 몸에 어둑시니의 영혼이 덧씌워졌다.
목소리, 기세. 그리고 마력과 요기.
쏴아아아아.
세차게 떨어지는 피의 비.
그 안에서 한별은 손을 뻗었다.
「 나는 비틀린 세계의 왕으로서. 」
우우웅.
그 순간, 세상이 멈추는 듯했다. 한별을 곁에서 봐왔던 레드 오우거는 슬쩍 웃었다. 하지만 최근에 합류하게 된 다른 부대원은 놀라 고개를 움직였다.
서울 전체의 비가 허공에 멈췄다.
바닥에서부터 하늘 끝까지. 하늘 위에서 쌓이지도 않는다. 그저 비 자체가 멈춘 것처럼, 중력의 방향이 반대로 바뀐 것처럼 허공에 멈춰있을 뿐이었다.
우우우웅.
공간이 떨려왔다.
한별이 뻗었던 손을 뒤집었다.
그러자 허공에 떠 있는 핏방울이 날카롭게 변했다. 하나의 창이 되어 균열을 바라봤다.
끼야아아아아!
균열에선 아직도 수많은 개구리 마물이 달려 나오고 있었다.
가장 앞에서 막아서고 있는 한별의 코앞에 도착했을 때.
「 세상을 집어삼키려는 재앙(災殃)을 멸하노라. 」
쐐에에에엑!
하늘에 떠 있던 수만, 수십만 이상의 피의 창이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몇몇 개구리 마물은 피를 흡수하려 했지만, 창은 그것을 뚫고 또 뚫어냈다.
바닥을 뒤덮은 마물이 모조리 죽고 죽었다.
수천 마리?
아니, 수만 마리에 이르는 마물들.
그렇게 모든 핏방울이 떨어져 내렸을 때.
쿵. 쿵. 쿵.
가장 앞으로 레드 오우거 부대원이 달려 나갔다.
균열에선 다시 수만에 이르는 마물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그들은 그대로 몸으로 부딪쳤다.
마물은 터져나갔고 레드 오우거는 계속 달렸다.
수십 마리가 몸으로 막아서도 뚫는다. 하지만 수백 마리, 수천 마리가 쌓여 지독한 독을 뿜으며 바닥마저 녹여버리는 지독한 ‘마기’에는 레드 오우거라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전장엔 그들만 있는 게 아니다.
[블루 드래곤]
아무리 공습과 폭파에 특화된 이들이지만, 모두 [정연]의 정예들이다. 힘의 근원이 마법이며 마법으로 강해진 이들.
그들이 손을 뻗어 마법진을 그렸다.
수십 명은 수백 개의 마법진을 만들어냈고, 그것은 레드 오우거 대원을 구했으며 수많은 마물을 밀어냈다. 그 뒤로 검은 엘프가 그림자 속에서 마물을 죽이기 시작했으며 회색의 늑대들이 밀려난 마물을 터트려 죽였다.
그들의 전투를 처절했다.
하지만 정교했으며 빨랐다.
수많은 마물로 가득 차 있던 서울의 강남이었지만, 지금은 그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전장이다.
“신격 사냥꾼.”
그 우스운 이름.
하지만 그에 걸맞은 최소한의 힘을 보유한 정연의 최정예.
“나를 따라라.”
한별은 걸었다.
투명하고 검은 요괴왕의 힘을 뿜으며 어느새 길게 갈라진 중앙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 뒤로 신격 사냥꾼이라는 이름의 최정예가 따라왔다.
레드 오우거, 검은 엘프, 블루 드래곤, 회색 늑대 모두는 한별과 신격 사냥꾼을 균열로 들여보내기 위한 전투를 벌였던 거다.
마치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가르고 있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재앙을 끝내는 것은 한별과 신격 사냥꾼이라는 마법 대대다. 그것은 한성이 제안한 가장 효율적이며 완벽한 계획이었고 한별은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끼야아아아!
파삭.
몇의 마물이 전장을 빠져나와 한별에게 달려들었지만, 닿기도 전에 어둑시니의 힘에 한 줌의 먼지로 사라졌다.
그렇게 한별은 균열에 닿았다.
‘이곳을 무너뜨리면······.’
첫 번째와 두 번째 재앙이 끝난다.
그리고 한별과 신격 사냥꾼은 마계의 어떤 곳으로 빠지게 된다고 했다. 그곳에서 살아남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
하지만 한별은 해야 했다.
웃겼다.
뒤에 선 신격 사냥꾼 30명은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그저 명령하면 이행한다.
레드 오우거처럼 한별을 향한 무조건적인 충성과 존경이 아니었다. 그저 [정연]의 일이었으며 ‘인류’를 위한 일이었기에 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표정엔 아무런 두려움도 없었다.
이곳이 마계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 재앙의 시작.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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