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앙을 삼키는 재앙. >
마굴(魔窟)이 무서운 이유는 강한 몬스터가 득실거린다는 것도 있지만, 3대 질병 재앙이 있다는 게 가장 컸다.
인간이든 몬스터든 식욕을 폭발시켜 이성을 마비시켜 모든 것을 먹어 치우게 하는 전염성 액체 몬스터 [에페티], 어둠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나타나는 가시 몬스터 [토니클], 포자로 이루어졌으며 포자로 번식하는 [스포어].
형체가 없는 몬스터.
아니, 보이지 않으며 은밀한 어둠 속에서 치명적인 공격력을 지닌 놈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으며 숙주라는 것 또한 찾을 수 없는 것들.
[에페티]는 마치 좀비 바이러스와 같고 [토니클]은 가시 바이러스라고 보면 된다. 어둠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시로 태어나 생명을 빨아먹는다.
[스포어]라는 것은 아주 작은 포자 알갱이로 이루어지는데,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수의 포자가 괴수의 모습으로 합쳐져 있다.
그것은 베도 죽지 베어지지 않고, 태워도 타지 않는다. 구멍 따위는 전혀 손상을 못 입힌다.
또한, 포자 하나만 들어갈 공간이 있다면 어디든 퍼질 수 있다.
한 마디로 재앙이다.
그것도 질병 재앙.
“빌어먹을, 이건 이길 수 없어.”
마굴의 저지를 맡은 [여명의 검] 길드원들이 뒷걸음질 쳤다. 대부분이 기사와 전사로 이루어진 [여명의 검]은 이놈들을 상대하게 최악의 상성을 지녔다.
그런 그들 앞에 보인 것은 ‘지옥’이었다.
현세의 지옥.
마굴의 입구에서부터 수백 미터는 검은 진액으로 가득 찼고 곳곳에 하늘을 찌를 듯 기다란 가시가 돋아나 꿀렁거리고 있었으며 곳곳에 포자로 이루어진 괴수들이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그 점액 근방에 있는 사람, 몬스터, 동물 등은 눈동자가 하얗게 변해 피눈물과 침을 질질 흘리며 먹이를 찾아 달려 나갔다.
[여명의 검] 길드원은 방어선을 빠르게 물렸다.
레벨 5의 S등급 영웅.
레벨 6의 SS등급 영웅.
레벨 7이자 SSS등급이었던 비천한 신격.
그리고 [여명의 검]의 길드장 레벨 8의 온전한 신격.
그조차도 3대 재앙을 막을 수가 없었다.
괴수의 공격을 막는 순간 어디선가 만들어진 가시에 척추가 끊겼고 전신을 완벽하게 밀폐하여 보호하지 않으면 [에페티]에 전염되어 옆 동료를 물어뜯기 시작한다.
가장 무서운 건 [스포어]였다.
죽여도 죽지 않는 무서운 괴수. 그들의 공격은 단순히 물리적 충격이나 마법적 능력이 아니었다. 그들의 꼬리가 실드에 닿으면 실드를 갉아먹고 검을 갉아먹으며 몸을 갉아먹는다.
모조리 태워버리려 했다.
딱 봐도 상성은 화(火)로 태우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타지도 않았다.
불이 약한 것일까?
아니었다.
[여명의 검]의 간부이자 레벨 7의 ‘황제의 수호자’인 태양의 신 [솔]의 계약자 이창현의 [태양의 검]도 스포어를 완전히 연소하지 못했다.
“후퇴하라!”
“후퇴하라!”
전선 앞에 선 이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쳤지만, 기어이 붙잡혀 가시넝쿨이 되고 포자에게 씹어 먹혔다. 몇몇은 후방에 있었음에도 몸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해 감염되어 버리고 말았다.
쿠구구구구.
멀리서 진동이 느껴졌다.
황제의 수호자, 이창현의 눈이 빛났다.
“길드장님!”
앞서 후퇴하고 있던 [여명의 검] 길드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군이다.
근처 마굴을 틀어막고 있던 [정연]의 [레드 오우거]. 하지만 그들도 이곳과 상성이 굉장히 좋지 않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들 전부터 전투 마법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앞에.
가장 여려 보이지만, 가장 강한 레드 오우거의 대장.
“요괴왕입니다!”
“회색 땅의 왕이다!”
“우린 살았어!”
레드 오우거는 여명의 검 길드원들을 지나쳤다.
가장 앞을 달려가던 중장갑의 레드 오우거 대원 10명이 그대로 멈추며 허리를 활처럼 폈다가 두 손으로 바닥을 내려쳤다.
콰아아아앙!
충격파.
그것으로 뒤따라오던 에페티, 토니클 바이러스를 모조리 부쉈다. 뒤이어 짓눌린 바닥은 파도처럼 출렁이더니 쫓아보던 스포어 괴수와 마굴의 일반 괴수까지 수백 미터나 밀어냈다.
뒤이어 도착한 건, 망토를 착용한 한별이었다.
그는 가장 앞에 나섰다.
그리고 격을 끌어 올렸다. 그의 몸에 씌워지는 검고 투명한 오라는 소름 끼치는 어둑시니의 모습을 이뤄냈다. 그것만으로 후퇴하던 [여명의 검] 길드원은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대기가 진동한다.
말로만 들었다.
고수들이나 느낄 수 있는 ‘비유’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대기가 진동했다. 이 주변의 모든 공간이 두려움에 벌벌 떠는 것처럼 확연하게 느껴졌다.
“······이게 레드 오우거의······.”
아니, 한별이라는 [정연]을 삼켜가는 신성의 힘일 것이다.
한별은 마굴을 중심으로 그의 바로 앞까지. 직경 1km에 달하는 공간을 봉쇄했다. 괴수들이 그곳을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없었다.
한별의 힘은 [왕명].
세상을 내려다보는 왕의 명령.
그것은 하나의 법이 되어 마굴을 가뒀다.
“모두 진입한다.”
한별의 말에 레드 오우거 대원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봉쇄된 공간으로 다가갔다.
이창현은 그 모습에 경악했다.
잡아 놓는 것만 해도 충분하다. 그런데 그 안으로 들어가겠다니, 그것은 아무리 레드 오우거라도 말이 안 된다. 저것들은 죽일 수 없는 것들이니까.
처음 레드 오우거 대원이 땅을 뒤집으며 부쉈던 것들은 이미 모두 복구되어 달려드는 중이다. 아무리 레드 오우거가 강하다고 해도 저것들을 이길 방법은 없다.
하지만 한별과 레드 오우거는 전혀 머뭇거림이 없었다.
“진입!”
“진입!!”
대원 모두가 봉쇄된 공간으로 몸을 집어넣으려고 할 때였다.
“잠깐!”
하늘 위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한성이었다.
한별은 손을 들어 대원들을 막았다.
“늦었잖아!”
“야, 나 바로 왔거든!”
“나 손 떨려, 빨리 어떻게 좀 해 봐!”
한별은 이 거대한 공간을 완전히 분리하고 있는 게 벅찼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안으로 진입해 재앙들을 처리할 생각이었던 거다.
하지만 이제 한성이 왔다.
“오케이!”
한성은 하얀이와 하늘 위에서 또 이상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뭐라뭐라 말하는 것 같은데 멀어서 잘 안 들렸다.
“이 새끼가! 손 떨린다니까!”
“오케이~ 곧 간다!”
“쳇, 여유롭기는.”
한성은 한쪽 팔을 걷었다. 그러자 [최상급 테이밍 타투]가 나왔고 그 안쪽에 그려진 12개의 그림이 보였다. 대부분 검거나 파란 색이었다.
테투리는 레벨 7을 의미하는 금빛이었다.
한성은 그중 하나를 만지며 말했다.
“나와라.”
그러자 만진 문양이 빛을 뿜으며 허공에 마력 입자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빠르게 모양을 찾았다. 하나의 거대한 무언가.
그것은 고대 크라켄이었다.
이곳은 물이 없다.
하지만 크라켄이 좋아하는 건 있다.
“저거 통째로 먹을 수 있지?”
꾸우웅.
할 수 있다는 거야, 못 한다는 거야.
그래도 귀여워서 봐줬다.
한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고대 크라켄은 그대로 밑으로 떨어졌다.
한별이 봉쇄한 공간보다 작았던 크라켄은 몸을 쭉쭉 늘리며 그 공간을 뒤덮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 채운 크라켄은 꿀렁거리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꾸우우웅.
꾸우우우우우웅.
그러다니 크라켄의 몸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바닥에서 아래로 수십 미터의 크레이터가 생겨남과 동시에, 땅 위엔 크라켄만이 남아 있었다.
꺼어어억.
이건 좀 귀엽지 않았다.
- 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 근데 소환할 때 팔 걷어서 만져야 함?
- 아니, 전혀ㅋㅋㅋㅋㅋㅋㅋ 그냥 보라고 그런 듯.
- 역시 한성. 절대로 평범하게 안 하죠?
- 나오라고 말도 해야 함?
- 해야겠냐ㅋㅋㅋㅋㅋ 전혀 안 해도 됨.
- ㅋㅋㅋㅋㅋㅋㅋ크라켄 뭔데 저렇게 귀엽다.
- 본래 겁나 무서웠던 걸로 기억하는데.
- ······?
- 뭐한다고? 먹는다고?
- 뭐야 이건.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트름 미쳐버렸다.
- 트름아니고 트림이죠.
- 하여튼 그게 중요하냐? 마굴 삼켜 버렸는데.
- 저게 가능하다고?
- 근데, 끝이 아닌데? 밑에서 뭐 올라온다!
“한별! 전투 준비해!”
“뭐야, 끝낸 거 아니었어?”
“아니야. 그래도 저건 질병 같은 게 아니라 그냥 몬스터니까 싸울 만 할 거야.”
검은 피부에 매끈한 얼굴. 아무것도 없는 하나의 마네킹 같은 것들이 바닥에서 기어 나왔다.
마굴은 깊다.
위를 파먹는다고 마굴을 통째로 없앨 순 없는 거다.
다행인 것은 3대 질병 재앙이 가장 먼저 올라왔다는 것이며 고대 크라켄은 뭐든지 집어 삼켜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걸 생각하고 크라켄을 잡은 건 아니지만, 운이 좋았다.
아니, 한성이 한성했다고 해야 할까.
“이제 까다로운 건 다 처리했으니까, 제대로 싸울 수 있을 겁니다.”
와아아아아!
뒤로 무르던 검의 여명. 그리고 마굴을 둘러싸던 레드 오우거까지 앞으로 달려들었다.
비상식적인 재앙 같은 것만 아니면 싸워볼 만하다. 특히 이곳엔 레벨 8의 영웅과 레벨 7의 영웅이 잔뜩 있다. 적도 그 정도의 수준이지만, 지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두 진영이 부딪히며 강한 마력의 파장이 터져나갔다.
전투는 이제 시작이었다.
* * *
한성은 아래를 보다가 따로 움직였다.
그런데 하얀이도 그 모습을 보다가 슬슬 따라왔다.
“왜 따라와? 저기 가서 싸우고 싶다는 거 아니었어?”
“흐으음.”
하얀이가 뭔가 수상하다는 표정으로 한성을 훑어봤다.
“왜?”
“뭐 하려고요. 또 혼자서.”
“내가 혼자 뭘!?”
“이번에도 절 놓고 가더니 이상한 거 잡아다 오고!”
“이상한 거라니, 크라켄이 얼마나 쓸모가 많은데.”
“그러니까요!”
“······.”
“아빠 따라갈래요.”
“그, 그러고 싶으면 오던지. 후회하지 말고?”
“후회는 안 합니다! 저도 제 팀을 만들어야겠어요.”
“무슨 팀?”
“제 게이트 오브 바빌론에 알맞은 몬스터 팀!”
“······.”
“게이트를 딱! 쓰면서 테이밍한 몬스터를 쫘! 풀어 놓으면, 히히. 이참에 레어도 하나 만들어야 하는데 가디언으로 쓰면 딱이겠어요.”
하얀이는 한성의 옆을 따라오면서 자신의 계획을 하나씩 말해주고 있었다.
역시 용혈의 욕심은 인간 못지않다.
특히, 무구와 가디언에 사용할 몬스터에는 더더욱.
한성은 시선을 옮겼다.
전장은 인간측이 밀어붙이고 있다.
마굴에서 가장 까다롭고 강한 3대 질병 재앙이 없는 덕분이다.
“어차피 그놈들은 길들이는 것도 불가능하고.”
뭔가 형체가 있고 본체가 있어야 길들이거나 할 수 있는데, 그런 게 없으니 가능할 리 없다. 하지만 마굴의 다른 몬스터는 다르다.
특이한 것도 많고 쓸 만한 것도 많다.
게다가 비싸기도 하다.
그때, 마굴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마굴의 왕’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레벨 8의 신격을 지녔으며, 모든 마굴 몬스터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보스.
매끈하게 검은 피부. 3m가 넘어가는 키에 단단한 근육. 완전히 육탄전에 특화되어 있을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마굴의 왕]은 온전한 신격으로, 한성만 지니고 있었던 [마력 지배]를 지닌 존재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의 한성은 [초끈]으로 업그레이드된 상태였지만, [마력 지배]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마굴의 왕이 한성을 바라봤다.
주변으로 그것과 비슷한 개체가 나왔다.
“하얀아.”
“응, 아빠.”
“내가 저 중앙에 있는 놈 맡을 테니까. 네가 주변 어때.”
“아빠만 좋은 거 잡으려고!?”
“부하들도 레벨은 7이야. 수도 더 많으니까 팀 만들기에 좋지 않겠어?”
“흐으음. 뭔가 손해 보는 기분인데.”
“하얀아, 우리 이번 달 용돈이 조금 많이 나갔거든? 다음 달에는······.”
“좋아요! 제가 할게요! 많으면 좋죠! 으차!”
하얀이는 그렇게 말하곤 앞으로 나갔다.
이게 단순한 건지, 영악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 재앙을 삼키는 재앙.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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