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계의 도시 사용법. >
한성은 피터를 괴롭히러 다니면서 한 가지 작업을 진행했다.
“길이현씨, 작업은 잘 돼가고 있나요?”
“네, 말씀하신 대로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길이현은 오랜만에 한성을 완전히 신뢰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그마치 조 단위의 자금이 투입되는 일이면서도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궁금하십니까?”
“네? 아, 사실 조금 그렇습니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곳.
그곳에 땅을 사라고 지시했다.
조건은 간단했다.
사람이 살지 않으며며, 일대의 몬스터도 모조리 청소할 수 있는 곳. 그러면서 떨어지지 않고 가장 넓은 땅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찾아낸 게 관악산과 청계산 일대.
서울랜드와 서울대공원은 이미 몬스터의 땅이 되었고 중간에 과천 시청도 던전이 깔려서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땅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가능했다.
84킬로미터 제곱.
2천5백만 평.
8천4백 헥타르.
그 거대한 땅을 구매하고 몬스터를 정리하며 인간이 단 한 명도 살지 않는 땅으로 만들었다. 주변으로 장벽을 쌓고 그 뒤로도 수백 미터를 벌려 공간을 만들었다.
“완공이 언제죠?”
“이번 주면 끝납니다.”
한성의 [피터 괴롭히기 프로젝트]도 이번 주면 마무리다.
모든 게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 주, 때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한성은 씨익 웃었다.
전 회차에서는 시도도 못 해봤던 일이다. 미처 준비할 생각도 못 했고 시공간 관련 이능이 없으면 피터를 따라가는 것도 힘들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
아니, 원래 운은 만렙이구나.
“그래도 운이 좋았던 거지.”
* * *
한성은 눈앞에 길이현과 함께 만든 공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며칠 내내 피터를 따라다니면서 작업을 한 결과가 나올 때가 되었다. 옆에 있던 성시연은 잔뜩 긴장했는지 마기가 흘러나왔고 하얀이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 건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한쪽엔 길이현도 긴장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이계의 도시는 하나가 아니야.”
한성은 성시연과 하얀이에게 말했다.
[이계의 도시]는 각 도시 근처에 ‘마을’처럼 자잘하게 생긴다. 하지만 그것들은 ‘도시’로 볼 수는 없고 [도시급]의 [이계의 도시]는 각 나라의 수도 근처에 하나씩 생긴다고 보면 된다.
최소 기준이 1천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중요한 것은 생기는 ‘장소’와 ‘규모’.
각 나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곳 근처에 생기는데, 웃기는 건 사람과 몬스터가 가장 없으면서 가장 넓은 공간에 생긴다는 거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
특이하게도 [이계의 도시]는 굉장히 양심적이라는 거다. 도시가 생긴 땅의 원래 주인에게 땅을 팔 생각 없냐며 묻는다.
“팔면 엄청난 물건을 받게 돼. 그 땅 가치에 비할 수 없는 대단한 물건이나 능력들.”
“팔지 않는다면요?”
길이현이 물었다.
사업적 계산이 먼저인 그녀다.
“월세를 주지. 세금이랄까. 그 도시에서 생기는 매출의 일정 퍼센트를 주는데 파는 게 더 이득일 정도로 가치는 떨어지죠.”
“그것도 싫다고, 나가라고 하면요?”
배짱을 부려 더 큰 거를 받을 수 있냐는 물음일 거다.
“첫 번째, 땅의 주인을 죽인다. 아무도 알 수 없게 모조리 죽어버리면 소유권이 사라진다는 걸 잘 아는 놈들이거든.”
“······무섭네요.”
“두 번째, 아는 사람이 많고 서류로 남아있는 게 많다고 생각되면, 다른 곳으로 이사하지. 서울 근처에 남아있을 수도 있고 아예 다른 나라로 갈 수 있지.”
“그건······, 엄청난 손해네요.”
“그렇지.”
그게 중요한 거다.
한성은 이곳 말고도 다른 나라의 땅을 일부 매입하라고 지시했다. 물론, 팔지 않고 이사하게 할 정도로 악랄한 생각은 아니었다.
어쨌든 인류를 다 같이 수호해야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으니까.
조금 이득을 보려는 것뿐이다.
쿠우웅.
쿠우우우웅.
강렬한 진동. 그리고 마력의 향연. 무언가 알 수 없는 공간의 흔들림과 기이한 기운. 순간,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안개가 생성되었다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와······.”
누군가 감탄을 흘렸다.
“제가 말했죠.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규모’라고.”
알맞은 땅과 인구. 그리고 주변 영웅의 수준 등을 결정해서 소환되는 [이계의 도시] ‘규모’가 결정된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작은 ‘마을’ 정도에서 하나의 ‘도시’까지 규모의 등급이 있다고 보면 된다.
아주 작은 시골 마을 근처에 등장하는 ‘캠프’ 정도의 규모는 [9등급]이라고 하고 면이나 리 정도의 마을에서 나타나는 건 [8등급]의 이계의 도시.
그리고 이 앞에 나타난 것은 [3등급]의 [도시] 급의 [이계의 도시]였다.
아마 현 시점에서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최고 등급의 도시일 거다.
“다른 요소도 중요하지만, 넓은 땅이 더 중요하지.”
한성이 조 단위의 돈을 써 가면서 이곳을 통째로 비운 이유가 있었다. 이것은 땅이 많은 미국이나 중국. 그리고 러시아와 맞먹을 정도로 가장 큰 공간이다.
“네? 그래도 그쪽은 땅 자체가 어마어마하지 않아요?”
“인구 밀집도도 중요한 요소이고······, 더 중요한 건 몬스터도 없어야 한다는 거지.”
요즘 시대에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몬스터가 없는 경우는 없다. 정말 운이 좋은 곳이나 3등급 도시가 생긴다. 원래 서울에는 5등급 이하의 작은 도시가 생길 예정이었으니 한성이 바꾼 것이다.
한성은 방송을 시작했다.
이제 도시가 생겼으니, 도시를 이용하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실수해서 멸(滅) 당하지 않게 말이다.
“안녕하세요. 한성입니다. 종천의 구도자라는 이명을 얻은 신격이기도 하죠!”
보통은 설정(?)된 장면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오늘은 직접 나왔다. 설명할 것도 많고 한성에 대한 의혹도 없애야 할 게 있기 때문이다.
- 와! 한성이다.
- 얼굴 나왔다. 어쩜 이렇게 잘생겨지냐.
- 볼 때마다 쩌는 듯.
- 기록갱신.
- 하아, 성시연 누님하고 있으니까 그냥 그림이네.
- 이 정도면 거의 명화 아니냐.
- 나 캡쳐해서 벽에 걸어뒀음. 보기만 해도 마음 편해짐.
- 하얀이까지 사이에 끼니까 완전 사기네.
한성은 옆에 있는 성시연을 바라봤다.
그녀는 이런 댓글을 볼 때마다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 건지 말을 잘 못 한다.
“오늘 방송을 켠 이유는, 여러분들에게 설명할 게 있기 때문입니다.”
한성은 정면에 생긴 도시를 가리켰다.
마치 판타지 세상의 도시가 이렇게 생겼을까. 고딕풍의 건물과 오가는 ‘이종족’의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게다가 이곳은 3등급의 대도시다.
다른 도시와는 다르게 마법이 잔뜩 가미된 도시라 구름을 뚫을 듯 높은 마천루와 허공을 떠다니는 마차, 마을 곳곳을 향하는 워프 게이트, 광고를 위한 홀로그램 마법이 있었다.
중세 시대의 건물에 최첨단 기술력이 가미된 모습.
그 모습에 시청자는 경악을 내뱉었다.
- 미친. 이거 뭐야.
- 방금 뉴스 봤음? 전 세계에 이런 도시가 생겼데.
- 그런데 이런 도시는 여기밖에 없는 거 같은데?
- 우리 집 앞은 그냥 텐트 몇 개랑 말 하나 생겼음.
- 여긴 뉴욕 근천데 저것보다는 작은 도시임!
- 미쳤네, 근데 여기 뭐 하는 곳이지?
한성은 채팅창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길이현이 수십 개의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각 정부가 [이계의 도시]의 등장에 당황하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예상하는 뉴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한성이 손짓을 하자, 길이현이 블랙 카드를 이용해 단체 영상 통화를 연결했다.
하지만 신호는 길게 가지 않아 끊겼다.
“한성님. 한성님 카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한성은 자신의 카드를 던져줬다.
길이현은 다시 그 카드를 받아 통신을 연결했다.
그러자 길이현 앞쪽으로 홀로그램이 투영되었다. 첫 번째 얼굴은 영웅 협회의 협회장. 그리고 UN 사무총장, 미국 대통령, 일본과 중국 대통령, 한국의 대통령 등.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그중에는 정연의 한구본과 흑연의 소이현도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한성은 그들에게 인사했다.
총 15명이나 되는 인원이었지만, 모두 한성에게 집중했다. 이게 [오리지널 노블레스] 신분이 가진 영향력이었다. 이들 모두 한성의 호출을 받고 [이계의 도시]를 해결할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이곳으로 모인 거다.
“모든 나라 및 단체의 장들은 이계의 도시를 적대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반쯤은 명령이었다.
몇몇은 좋지 않은 표정이었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나와서 무슨 신분 하나 가지고 있다고 세계 정상들을 모아놓고 훈수를 두고 있으니 좋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세 명 정도가 전부였다.
최근에 임명된 UN사무총장과 영웅 협회 협회장. 그리고 일본의 총리.
한성은 그들을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다른 나라의 정상과 정연의 한구본이 그들에게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표정을 고쳐야 했기 때문이다.
“일단 제 방송을 끝까지 봐 주십시오.”
한성은 도시의 입구로 가면서 간략한 설명을 했다.
[이계의 도시]라고 불리는 것이며 이 도시를 소환한 사람은 [피터]라는 백악관을 습격했던 자라고.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 사람이 나왔다.
“제가 지난 몇 주간 피터를 잡기 위해 전 세계를 헤집으면서 얻은 정보입니다.”
그리고 당장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계의 도시라는 것 때문에 전 세계에 새로운 괴수가 들끓고 도시 근처에 마굴(魔窟)이 생성된다는 것도 전달했다. 그러자 미국의 대통령과 러시아의 대통령이 [이계의 도시]를 파괴하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다.
“할 수 있으면 하셔도 됩니다. 그런데 아마 지금쯤 알 수 있을 겁니다. 저희 힘으로는 적대적인 마음으로 도시 안으로 진입할 수도 없으며, 핵을 터뜨려도 도시는 꼼짝하지 않는다는 것도.”
한성은 헤일렌이 보내준 에너지 총량 그래프와 마법 방어력, 물리 방어력 등을 조사한 보고서를 한쪽에 띄웠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계의 도시가 우리에게 주는 혜택입니다.”
그들은 장사하는 것뿐이겠지만, 한 차원에 머무는 한성의 지구엔 엄청난 혜택이 된다.
한성은 도시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과 똑같이 생겼지만, 미묘하게 이목구비와 분위기가 다른 이계인들이 한성을 맞이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극직함을 보였다.
이들은 한성이 이 땅의 주인. 주님인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태생부터 차원의 상인인 그들의 패시브 능력이라고 보면 된다.
“안녕하십니까. 3등급 이계의 땅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한성은 일단 고개를 끄덕이곤 일행과 안으로 들어갔다. 카메라와 여러 홀로그램이 따라들어왔지만, 아무도 제지 하지 않았다.
이 도시에 해를 끼치는 게 아니라면 그 무엇도 허용되는 게 이곳이다.
땅 관련된 이야기는 나중에 방송을 끄고 하는 게 좋다.
한성은 이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곳으로 이동했다.
길목에 이계인이 한성과 일행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아이들은 슬쩍 보고 도망가기도 했고 어른들은 옆으로 와서 뚫어지게 바라보기도 했다.
“이들은 여러 차원을 돌면서 ‘무엇이든’ 사고 파는 종족입니다. 이 도시 자체가 이동하기도 하며, 이런 식으로 어떤 땅에 정착하면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은 움직이지 않죠. 그러면 어떻게 물건을 조달하냐고요? 직접 다녀옵니다.”
이들은 차원 이동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한성은 홀로그램에 시선을 돌려 말했다.
“절대로 그 차원 이동 기술을 탐내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계인을 적대하지 마세요. 왜 그런 것인지 궁금하다면 한 번 해 보세요. 그 나라가 어떻게 되든 전 간섭하지 않을 거니까요.”
이 정도 경고하면 다 알아들어야 맞다.
“특히, 이곳에선 한국 정부의 영향력도 없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긴 제 사유지니까요.”
하지만 꼭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은 등장한다.
속이면 되겠지, 아무도 모르면 되겠지, 힘을 완전히 제압하면 되겠지!
그때 뉴스 하나가 떠올랐다.
- 속보입니다! 지금 러시아의 야쿠츠크에 거대한 폭발이 감지되었습니다! 바로 연결하겠습니다.
바뀐 영상에 등장한 것은 핵폭발과도 같은 말도 안 되는 폭발이었다. 그곳엔 빨간 불빛밖에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몇몇 영웅이 살아남아 무언가를 공격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 영웅마저 알 수 없는 폭발에 사라졌다.
“······꼭 건들지 말라고 해도 건드는 곳이 이렇게 나온다니까.”
그 폭발 위로 떠오른 것은 작은 마을 정도의 [이계의 도시]였다. 그 도시는 허공을 잠시 떠다니다가 사라졌다.
“전 말 했습니다. 절대로 적대하지 말라고요. 저건 저도 못 막습니다.”
한성의 말에 세계 각국의 정상들은 마른 침을 삼켰다. 누군가는 자리를 비우기까지 했다. 진행하던 여러 프로젝트를 중지시키기 위해서겠지.
“이제 우리가 이 도시에서 뭘 얻을 수 있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 이계의 도시 사용법.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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