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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은 만렙이다-152화 (152/200)

< 돈 쓰는 방법. >

평소 방송보다 떨어지는 화질에 어떤 은행 안의 모습이 나왔다. 그곳엔 평소처럼 고객과 직원이 대화하고 길게 줄이 서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대화였다.

“네, 계좌 열어드렸습니다. 이자는 23.4%입니다. 이번 달부터 이자가 붙으며, 1년 이내에 갚지 못할 경우 노동 계약서의 효력이 발생하고, 신체 상태가 부합하지 못할 경우 신체 기부 계약서의 효력이 발생합니다.”

작지만 확연하게 들리는 소리.

- 뭐야, 저런 곳이 어딨어.

- 저게 나라야? 어디야 도대체. 이거 연출임?

- 미친, 무슨 노동 계약서에 신체 기부 계약서?

- 말이 되는 소리임?

하지만 그런 채팅은 한국에서 올라오는 게 대부분이었다. 대격변 이후에도 아주 안정적인 도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

- 저기 영국인데.

- 리버풀 지점임. 저기 나오는 사람 모두 몬스터 바로 옆에 사는 사람들임.

- 근데 살려면 어쩔 수 없음. 저 돈을 빌려야 굶어 죽지 않을 수 있거든.

-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저게 현실임.

- 은행이 자선 사업가냐? 갚지도 못할 돈 빌려주는 게 어디임.

아주 일부. 특히 한국에서 보는 이들의 채팅만이 저게 가능한 거냐고 물을 뿐, 대부분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그 분위기가 반전된 것은 어떤 소녀가 왔을 때였다.

“일단 이쪽으로 올래? 미성년자를 돕는 건 좋은데, 우리도 걸리면 좋을 게 없거든. 법이라는 게 그래.”

- 이거 뭔가 찝찝한데.

- 미성년자는 원래 안 됨. 저 점장이 못생겨서 그런 건가? 굉장히 때리고 싶네.

- 에이, 설마.

- 설마? 설마가 사람 잡음.

- 미친, 저거 진짜 그런 거면 바로 찾아가 죽인다.

- 저 새끼 이름 뭐야. 아니, 저기 은행 어디야.

“이건 좀 아닌 거 같습니다.”

에딘이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그는 무언가 안다는 듯한 표정이었고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표정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예상할 수 있었다.

바보가 아니라면.

- 맞나봐.

- 개새끼.

- 아직 확실하게 나온 게 없음. 일단은 좀 더 지켜보자.

- 뻔한데 뭘 지켜봐?

- 저놈 죽이러 갈 사람 구합니다. 1/100000

- 나요.

- 나, 간다. 진짜로. 레벨 7 영웅인데 바로 출발함.

“그것도 미성년자의 몸을 사서 말입니다.”

에딘의 그 말이 시작이었다.

- 미친놈 진짜 저럴 줄 알았음.

- 이 X발, 저기 어디야.

- 나 워프 탄다. 개새끼 딸보다도 어린 것 같은데, 저걸?

- 저렇게 말한다는 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거 아니야?

- 어? 좌표 떴다. 영국 중앙은행 리버풀 경계점?

- 나 바로 출발함.

퍽!

점장의 주먹이 에딘의 얼굴에 박혔다.

에딘은 뒤로 넘어져 책상 위에 모니터까지 함께 무너졌다.

퍽! 퍽! 퍽!

점장의 묵직한 발길질이 에딘의 머리와 복부를 향해 사정없이 날아왔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손님은 고개를 숙였고 직원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누군가는 신고하지 못하게 CCTV를 끄는 철저함까지 보여줬다.

- 하. 개새끼.

- 나 진짜 영국 왔음. 어디로 가야 빠르냐? 빨리 답 좀 ㄱㄱ

- CCTV 껐는데 이건 왜 살아있음?

- 연출 아니야? 저게 실존하는 장면이겠냐.

- 주작이여 날아오르라!

- 저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있을 리가 없잖아.

- 이거 누구 방송인지 모름?

- 미친놈들, 이거 이한성님 방송임. 그런데 주작?

- 어어? 저거 뭐야.

그때, 검은 정장의 누군가 들어와 에딘이라는 직원을 구하고 손님을 내보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직원을 천장에 매달며 말했다.

“삶을 사고, 육체를 산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소녀의 몸까지 탐해?”

- 누구지, 많이 봤는데.

- 음. 누구였더라. 겁나 쎈 놈으로 알고 있는데.

- 아, 미친 백악관 테러범!

- 이한성님이랑 떴다가 발린 놈 아님?

- 쟤가 왜 여기 있어.

- 은행 털러 온 건가?

- 이건 도대체 무슨 방송임. 왜 한성은 안 나오고 저런 장면만 나오는 거야.

- 근데 저거 테러범, 왜 멋있어 보이냐.

- 왠지 좋은 놈 같은 착각이 든다.

그때, 화면이 바뀌었다.

어떤 화려한 사무실에 앉아있는 어떤 백발의 노신사와 이한성의 모습.

이한성은 백발의 노신사에게 말했다.

“보셨습니까?”

“······네, 봤습니다.”

그는 한성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하다는 의미였고, 봐 달라는 의미였다.

“책임을 지셔야죠.”

“제가 어떻게······.”

“중앙은행을 넘기면 쉽습니다.”

- 이한성이다!

- 이한성 여기서 이거 보여주고 있었음?

- 이건 무슨 콘텐츠임?

- 미친, 패기보소. 은행 통째로 넘기라고?

- 그건 불가능하지 않나, 영국 은행이면 영국의 국영 은행인데.

- 아님, 한 3년 전부터 많이 분리됐음. 80%는 개인들 소유임.

- 아, 그래? 몰랐네.

- 근데 이한성 여기서 뭐함. 빨리 저거 구하러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이상한 테러범 왔는데.

“지금 14억 명이 보고 있습니다. 아까 그 장면과 이 상황.”

한성은 홀로그램으로 영국으로 향하는 워프 게이트의 이용률 현황을 올렸다. 헤일렌이 직접 조사해 올려주는 자료였다.

“전 세계에서 힘 좀 쓴다는 영웅들은 모조리 달려들고 있어요. 이미 5천 명이 넘어왔고 대기자만 4만 명이 넘어가요. 저들이 경계의 은행을 그대로 둘 것 같나요?”

노신사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한성은 편하게 웃고 있다.

전혀 급할 것 없다는 듯이.

“전혀 아니겠죠.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은행이라는 게 자격이 있어야 하고, 일정 지분을 확보하는 것도 굉장히······.”

“괜찮습니다.”

한성은 품에서 [오리지널 노블레스]를 상징하는 검은 배경에 흰 줄이 하나 그어진 카드를 꺼냈다.

“······!”

“그리고 이미 대주주니까요.”

한성의 스마트 워치 홀로그램에 [영국 중앙은행]의 지분 13%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증명서가 올라왔다. 원래 팔리지 않는 지분이지만, 대격변과 영국의 몰락은 그들의 견고했던 자본시장마저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걸 파고든 게 한성이고 말이다.

“······.”

“지금부터 당신의 중앙은행 대표 직위를 해제하고, 대주주의 권리로 나 이한성을 중앙은행의 대표로 임명합니다.”

[오리지널 노블레스]가 지닌 권한이다.

적합한 명분. 적당한 자격.

그것만 된다면 다른 이의 사법적 권한 없이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행정처리를 즉석에서 이룰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초국가적인 권리이며 같은 [오리지널 노블레스]만 저지할 수 있다.

한성은 대주주의 자격과 대표의 자질문제.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본 장면에 대해 책임을 물음으로 기존의 대표를 해고했다.

그리고 한성은 스스로 대표가 되었다.

또한.

“······아니, 어떻게······.”

한성이 띄우고 있던 영국 중앙은행의 소유 지분율이 치솟기 시작했다. [노블레스 오리지널]이지만, 외국인이기에 제한되어 있었던 소유 지분 상한이 ‘대표’라는 직위 덕분에 풀렸고 헤일렌이 곧바로 사들인 것이다.

“자, 이제 51%로 중앙은행은 제 겁니다.”

한성은 그 말을 끝으로 공간을 접어 리버풀점으로 이동했다.

- 미친 패기보소.

- 방금 은행 산 거 봤음?

- 중앙은행이 언제부터 동네 구멍가게가 됐냐.

- 아니, 국영 은행 아님? 어떻게 사는 게 가능함?

- 3년 전에 풀렸다니까! 나라가 망해가는데 은행 하나 끝까지 붙잡고 있을까?

- 근데, 그래도 수십조 원은 하는 거 아니야? 도대체 어떻게 산 거야.

- ㅋㅋㅋㅋㅋㅋㅋㅋ개멋있다. 이게 한성이지.

- 한성 패왕색.

- 이게 돈의 힘이다.

- 아니, 근데 저 카드는 뭐임? 뭔데 지가 대표를 무르고 지가 대표로 오름?

- 저게 뭔지 모르겠는데, 검색해도 안 나옴.

- 알려지면 안 되는 건가? 왜 아무것도 없지.

- 신용카든가.

물론, 그 신분증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알아도 아는 사람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  *  *

피터는 금고를 부수고 그곳의 모든 현물을 하늘 위로 띄웠다. 이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이곳 모두의 것이었으며 이 돈으로 인해 삶이 사라진 이들의 것이다.

피터는 이제 제대로 시작된 복수와 구원에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퍽.

작은 소리. 하지만 충격은 결코 작지 않았다. 강한 무언가 피터의 뒤통수를 가격했고, 그 파괴력에 피터는 바닥에 처박혔다.

콰아앙!

흙먼지가 풍기며 작은 크레이터가 생겼다.

피터는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다시 한 번의 가격이 오는 것을 느끼고 몸을 날렸다. 시공간을 역류해 틈을 벌고 반격을 하는데······?

퍽!

다시 한 번 커다란 충격이 그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야, 피터야.”

“······이한성?”

피터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리곤 빠르게 차원의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한성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피터야.”

“미친 새끼!”

“구원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란다.”

“네가 뭘 알아!”

피터는 그렇게 외치며 두려움 속에서 한성을 공격했다. 차원의 틈에서 크툴루의 힘을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고민했다. 강해지고 또 강해졌다.

그가 지닌 힘은 무한에 가까운 세계 외(外)의 힘.

피터는 자신이 받은 힘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노력했다.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한 단계 성장했다고 느꼈다.

그렇기에 두렵지만 이렇게 한성에게 달려들 수 있는······.

퍼어어억!

이번엔 뺨이다.

짝도 아니고 퍼억.

피터는 골이 울리는 충격에 비틀거렸다. 그 틈에 다시 한 번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콰아앙!

“이 X발. 너 뭐야.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데?”

피터는 한성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한성은 피터보다 배는 강해졌다. 피터가 한 단계 성장했다면 한성은 두 단계 정도.

한성은 피터 앞으로 걸어와 말했다.

“네가 내 돈을 훔쳤잖아.”

“네 돈?”

“그래, 저기 위에 떠 있는 금고.”

“······뭔 소리야. 설마 네가 중앙은행의······?”

피터는 이놈이 생각보다 대단한 놈이었나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분노가 올라왔다. 강한 상대였기에 일말의 존경은 있었다. 그런데 그런 강함이 이런 더러운 돈에서 나온 것인가?

구으으응.

피터가 힘을 끌어올리자 바닥이 진동한다.

“내 은행이 된 지, 딱 2분 됐거든?”

“······뭐?”

“사람을 돕는다는 건 어떻게 하는지 보여줄게.”

한성은 피터의 가슴을 밟고 섰다.

드높은 신격의 압력과 한성의 당당함에 피터는 움직일 수 없었다. 아니, 않았다.

한성은 홀로그램을 띄워 헤일렌을 불렀다.

“헤일렌.”

- 네, 한성님.

“오랜만이네.”

- 자주 연락 좀 주십시오.

헤일렌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한성도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앞으로 이 경계에서 돈을 빌리는 것에 노동과 신체 계약서는 빼고 연 이자률 3%로 내린다.”

한성의 말에 피터가 소리쳤다.

“훗, 그런 자선사업으로 얼마나 갈 것 같으······.”

“그리고 돈을 갚을 때까지 계속 빌려준다. 뭐, 언젠가는 갚겠지.”

“그게 말이······!”

피터가 다시 한 번 반박하려 했지만, 한성은 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한성은 그의 호흡을 끊으며 말을 이었다.

“대출 서비스로 숙소와 직업까지 알아봐 주면 되지. 못 갚고 도망갈 바에야 일해서라도 갚으라는 거야.”

“훗, 결국 노동? 이전과 다를 바가······.”

“그건 무임금 노예였고. 난 임금을 주면서 부려먹을 생각이거든.”

“이상향일 뿐이다. 그걸 실현하기 위해서는······.”

“난 돈 많아.”

“말도 안······.”

“개부자야. 아마 나라 몇 개는 살 수 있을 걸?”

“야! 말 좀 하자! 말 좀!”

피터가 씩씩대며 일어났다. 동시에 크툴루의 힘을 끌어올렸다.

한성에게 기습하려는 심보였다.

하지만 이미 드높은 신격에 들었고 과거를 찾은 한성에게 ‘뉴비 피터’는 비빌 수준이 아니었다.

한성은 다시 한 번 피터의 머리를 밟았다.

콰아아앙!

그는 머리부터 땅속에 깊숙하게 박혔다.

피터는 복수를 꿈꾸며, 한성이 따라올 수 없는 차원의 틈으로 도망쳤다. 물론, 한성은 따라가지 ‘않은’ 것이었다.

< 돈 쓰는 방법.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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