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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은 만렙이다-151화 (151/200)

< 이계의 도시. >

이계의 도시라는 건 플레이어가 15년 정도 플레이했을 때 소환되는 게 기본이다. 하지만 이미 한성의 수준은 그 정도 수준이 되어 있었다.

“그 도시를 소환하면 뭐가 좋은 건데?”

성시연이 물었다.

한성은 저 앞에서 [보물] 등급의 무기를 직접 만들고 있는 하얀이가 보였다. [보물]은 항상 찾아야 했지만, 어느 순간 하얀이의 수준이 대폭 상승했다.

“모든 걸 사고팔 수 있는 상점이 있지.”

“모든 거?”

“응, 저렇게 하얀이가 만드는 [보물] 등급의 장비. 혹은 업적이나 ‘격’까지.”

말 그대로 이계의 도시.

기본적으로 여관, 대장간, 마법 상점, 영주의 성, 치안대 등이 있고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차원 상점]이라는 곳이다.

그곳에서는 정말 무엇이든 사고팔 수 있다.

물론, 그 가치가 항상 일정하지도 않고 지구에서 가치가 높은 것이라도 그곳에서는 가치가 아주 낮을 수도 있다.

“······그게 가능해?”

“그래, 그래서 내가 그 리스크를 감당하고서라도 그걸 불러 내려는 거야.”

이계의 도시를 소환하면 커다란 리스크가 있다.

첫 번째는 이계의 도시에 이계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게 위험한가?”

“응, 상당히.”

누군가 이계의 도시와 중간에서 조율을 잘한다면 괜찮겠지만, 하나의 이계의 도시가 이곳의 지구에 원한이 생긴다면, 나라 하나쯤은 버릴 생각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계의 도시와 딸려 나오는 균열.”

이계의 도시만 딸랑 오지는 않는다.

도시가 들어온 차원의 균열을 통해 들어오는 몬스터. 지금 지구와 같은 몬스터가 대부분이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르고 강한 몬스터도 섞여 들어온다.

한성이 가장 걱정하는 것도 그것이었다.

“우리가 모든 곳을 지킬 수는 없으니까.”

“그렇지, 그래서도 안 되고.”

인류는 스스로 성장해야 한다.

한성이 직접 신경 쓰지 못하는 엑스트라. 다른 말로 한다면 재능을 지니고 있던 일반인들이 하나씩 재능을 꽃피우게 만들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에 비례하는 리스크는 있겠지만, 인류 전체가 밀리는 것보다야 훨씬 나을 거다.

“천외천. 앞으로 최소 몇 년은 괜찮을 수 있어. 그 전에······, 최대한 준비해 놔야지.”

참아 성시연 앞에서 천외천이 열리기 전에 올라간다는 소리는 하지 못했다. 더 준비가 되었을 때, 그리고 한성이 죽지 않을 자신이 있을 때, 이야기하고 싶었다.

한성은 화제를 돌렸다.

“그럼 지금 해야 할 건?”

“피터 죽이러 가자.”

아차, 깜빡했다.

얘 원래 이런 애였지.

오랜만에 섬뜩했다.

*  *  *

피터는 10여 개체의 구울을 보며 만족했다.

다들 잠재력도 괜찮고 지닌 이능도 괜찮았다. 성장을 위해선 몇 개월 제대로 된 훈련을 해야 할 것 같지만, 그 정도는 어렵지 않다.

“퍄퍄는 여기 시간과 공간 이능을 지닌 구울을 가르치면 된다.”

괴상한 이름에 괴상한 외모를 지닌 생명체였다. 네 개의 다리는 말과 같지만, 목부터 얼굴은 용의 모습. 그리고 갈퀴는 뱀으로 뒤덮여 있었다.

크툴루 신화의 전형적인 모습이랄까.

퍄퍄는 푸르르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습니다. 주인님.

“구투는 전부에게 기본적인 무투술을 가르치고, 해짓은 검을 비롯한 무기술을.”

피터는 차원의 틈에 아지트를 만들고 다른 차원에서 데려온 괴수를 길들였다. 그것은 크툴루의 힘이었고 피터가 재능있는 분야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없는 검은 공간에 대리석 바닥과 엉성하게 지어진 훈련장이 다였다.

“난 잘 곳이나 만들어야겠어.”

원래 피터는 차원의 틈에서 잘 지내지 않아야 정상이다. 빈곤했던 시절 때문에 항상 호텔에서 지내는 게 그의 캐릭터. 하지만 지금은 한성에게 당한 것 때문에 잔뜩 겁을 먹어서 차원의 틈에 아지트를 형성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한성.”

그에게 당한 이후, 그의 튜브를 찾아봤다.

그의 정보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시나.

“또라이 중에 상 또라이.”

피터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의 영상을 하나씩 다 찾아보고 있었다.

“크크큭. 크흠.”

피터는 슬쩍 눈치를 봤다.

분명 적인데, 영상만큼은 확실히 재미가 있었다. 그에 대해 아는 것도 중요했지만, 차원의 틈에 숨어있을 땐 스트레스 풀 거리도 있긴 해야 한다.

“······하, 내가 뭐하는 짓이냐.”

피터는 현타(현자 타임)가 왔다.

그를 막고 부조리한 권력과 금력의 재분배를 실행해야 할 자신이 이렇게 숨어서 ‘적’의 모습을 보며 웃고 있다니.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겠어.”

피터는 튜브를 끄고 구울의 훈련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확인한 후에, 차원의 틈을 빠져나왔다.

그가 몸을 드러낸 곳은 [영국 은행]이었다. 영국의 중앙은행이다. 대격변이 시작되면서 영국의 남쪽이 무너지고 수많은 난민이 생겼을 때, 그들로 돈 장사를 한 쓰레기들이기도 하다.

하루를 겨우 버틸 식량과 잠자리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수천 유로의 빚을 씌우고 그 빚으로 ‘노동’을 시키거나 ‘인체 실험’의 재료로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쿠우우.

피터는 가슴 깊은 곳에서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힘의 원천은 그가 살아온 삶.

분노와 증오. 그리고 고통.

대기가 흔들렸다. 피터는 조심스럽게 힘을 감췄다. 마음 같아선 확실하게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이한성이라는 규격 외의 존재가 있는 한 조심하는 게 좋다.

피터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저 멀리 보이는 중앙은행의 작은 지점으로.

*  *  *

“네, 계좌 열어드렸습니다. 이자는 23.4%입니다. 이번 달부터 이자가 붙으며, 1년 이내에 갚지 못할 경우 노동 계약서의 효력이 발생하고, 신체 상태가 부합하지 못할 경우 신체 기부 계약서의 효력이 발생합니다.”

에딘은 오늘도 무감각하게 대출을 받으러 온 노모에게 기본 숙지 사항을 알렸다. 노모는 그것만이라도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노동은 못 할 거고, 500유로로 목숨을 판 거군.’

그래도 1년은 벌었으니 다행이랄까.

500유로면 원화로 70만 원 정도. 하루에 한 끼를 먹고 길거리에서 잔다면······, 그리고 정부에서 제공하는 소량의 배식을 받는다면 1년 정도는 겨우 살 것이다.

노모는 방금 1년의 삶을 사고 자신의 육체를 팔았다.

에딘은 별 감흥이 없었다.

리버풀과 맨체스터를 경계로 아래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오크며 오우거 등은 기본이고 리자드맨과 갖가지 괴물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그런데 그 틈에 사람이 또 살긴 산다.

여기가 바로 그곳이다.

사람의 땅과 괴물의 땅 사이.

죽음과 삶의 경계.

그리고 그 경계에서 돈을 버는 중앙은행.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영국의 대표 은행이 이런 짓을 벌일지.’

돈이 되면 무엇이든 하는 게 사람이라지만, 이렇게 사람 목숨으로 돈을 벌고 싶을까.

‘하긴, 나도 다를 바 없지.’

같은 사람인 거다.

하지만 이미 양심 따위는 버린 지 오래다. 에딘도 이쪽 사람이었다. 하루 먹는 걸 걱정해야 하고, 잠자리는 몬스터만 없는 곳이면 되었다.

그러다 운이 좋게 이곳에 취직하게 되었다.

대격변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대학에 다니던 사람이었으니 가능한 일이다.

“다음 손님 오세요.”

“아, 안녕하세요.”

한 소녀가 왔다. 비쩍 말라 팔다리는 극히 얇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인상이다. 그런데 아직 10대 초반이나 되었을 법한 어린아이였다.

에딘은 눈치를 봤다.

점장이 이 소녀를 보면 안 된다.

“미성년자는 대출이 안 됩니다. 돌아가세요.”

“네? 안 돼요. 된다고 들었는데, 분명 대출받은 친구가 있었어요!”

에딘은 인상을 썼다.

그도 차라리 대출을 해주고 싶었다. 이런 예쁜 소녀의 말로가 어떻게 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개 같은 법은 미성년자를 보호한답시고 노동이나 신체 관련된 계약서를 쓸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건질 수 없는 미성년자에게 누가 대출을 해 주겠는가.

그렇다고 담보가 있을까?

분명 몇 년 동안 하루에 한 끼나 먹었으면 대단하다고 박수 쳐 줄 만할 거다. 분명 몇 끼 때문에 이곳까지 찾아온 게 분명하다.

“어서 돌아가요. 여긴 아무리 있어도······.”

턱.

뒤에서 누군가 에딘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에딘.”

“아, 네, 점장님.”

“손님을 그렇게 다루면 쓰나.”

“미성년자라 돌려보내려고 했습니다. 담보도 없고······.”

“괜찮아. 우리가 돈 벌자고 이 짓을 하는 건가? 다들 돕고 살자고 그러는 것 아닌가.”

50대가 되어 배가 산처럼 불러온 돼지다. 방금 기름진 고기를 먹은 것인지 입가엔 기름이 좔좔 흐르고 손에선 돼지 냄세가 풍긴다.

그런데 소녀는 그 모습에 활짝 웃는다.

“안 됩니다. 그래도 이윤을 생각해야······.”

“어허. 에딘. 여기서 계속 일하고 싶으면 이윤보다는 남을 도울 생각이 먼저여야 할 거야.”

구역질이 나온다.

저 돼지 점장이 그런 말을? 분명 아까 그 노모에게 대출해 준 것을 알았다면 에딘을 무지막지하게 갈궜을 양반이다. 죽은 신체를 가져다줘도 늙은 몸은 얼마 안 된다면서 말이다.

그런데 도움?

미친놈. 분명 저 소녀의 몸을······.

“일단 이쪽으로 올래? 미성년자를 돕는 건 좋은데, 우리도 걸리면 좋을 게 없거든. 법이라는 게 그래.”

점장은 소녀의 손을 이끌고 점장실로 들어가려 했다.

에딘은 주먹을 꽉 쥐었다.

무엇이 정의인지는 모른다.

에딘도 몸을 팔고 삶을 파는 사람에게 대출을 해주며 그들에게 책임을 달아줬다. 분명 에딘도 악(惡)이다. 그걸로 벌어먹고 살고 있으니까.

그리고 방조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좀 아닌 거 같습니다.”

한번은 말하고 싶었다.

점장실로 들어간 소녀들이 은행 뒷골목에 쓰러진 채 발견되고, 어기적거리며 걸어나가는 것을 보면 토악질이 나왔다. 흙탕물에 젖어 눈물을 뚝뚝 흘리는 소녀를 보며 예전에 잃어버린 동생이 생각난다.

“뭐라고?”

“그, 그게······.”

“에딘. 누가 널 거뒀지?”

“점장님이십니다.”

“그런데 방금 뭐라고?”

참을까? 아니면 지를까.

참고 싶었다. 에딘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았는가. 에딘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들면서 앞뒤를 살피게 되었다. 항상 이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걸 계속 지켜보고 싶지도 않았다.

‘난 어차피 부양가족도 없다.’

“······중앙은행에서 개인적인 대출은 불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새끼가?”

“그것도 미성년자의 몸을 사서 말입니다.”

에딘은 일부러 크게 말했다.

어차피 개인적으로 가서 말한다고 들을 사람도 아니다. 차라리 공개적으로 말하는 게 다른 이들의 의견까지······!

퍽!

점장의 주먹이 에딘의 얼굴에 박혔다.

에딘은 뒤로 넘어져 책상 위에 모니터까지 함께 무너졌다. 점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퍽! 퍽! 퍽!

점장의 묵직한 발길질이 에딘의 머리와 복부를 향해 사정없이 날아왔다. 점장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에딘은 막기 바빴고 전신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을 내뱉을 뿐이었다.

다른 직원들이 도와줄 줄 알았다.

‘······쳐다보지도 않잖아.’

퍽! 퍽! 퍽!

에딘은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고통 속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냥 시키는 일만 하면 되지, 무슨 영광을 찾겠다고 나서서 이 모양인가.

이제 이 세상은 이런 곳인 거다.

어쩔 수 없이······.

우웅.

쾅!

순간 무언가 위를 지나가는 듯하더니 고통이 사라졌다.

에딘이 뻐근한 목을 부여잡고 고개를 올리자 놀라 눈물을 흘리는 소녀가 보였고, 점장은 저 멀리 책상 몇 개를 부수고 쓰러져 있었다.

‘뭐지?’

에딘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검은 정장을 입은 차가운 인상의 누군가 에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곳에 쓸만한 놈은 너뿐이군.”

그 말이 전부였다.

그는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소녀와 에딘을 제외한 손님은 모조리 밖으로 밀려났고 안에 있던 직원은 포박된 채 천장에 거꾸로 매달렸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지.”

아주 유명한 말이다.

그는 차분하게 금고로 움직이며 말했다.

“삶을 사고, 육체를 산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소녀의 몸까지 탐해?”

화악.

은행 전체가 날카로운 살기로 가득 차올랐다. 점장은 바지에 오줌과 대변을 지렸고 다른 직원은 부르르 떨면서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피터의 살기가 직원들을 향한 것이다.

소녀와 에딘만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 구석에서 피터와 두려움에 떠는 직원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콰직.

금고에 닿은 손을 가볍게 쥐자, 금고의 잠금장치가 부서졌다. 몇 개의 마법진이 올라왔지만,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졌다.

텅.

금고의 문이 뜯겨 나갔다.

안에는 수많은 현금과 마력석이 잠자고 있었다.

일반인은 상상도 하지 못할 금액.

모두 몬스터에게 집과 삶을 잃은 이들에게서 갈취한 돈이다. 정당하게? 그래 좋다. 수완이 있고 돈이 있었으니까 이렇게 벌 수 있었던 거겠지.

이해한다.

자본주의의 세상 아닌가.

그래서 피터도 똑같은 마음이다.

“이제 나도 힘이 있지.”

이 힘으로 돈을 벌면 되는 것 아닌가.

법을 만들어 합법으로 만드는 이놈들이나.

불법을 정당화 시키는 강력한 힘이나.

똑같은 거다.

피터는 이 더러운 놈들과 똑같은 놈이 될 수 있었다.

< 이계의 도시.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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