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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은 만렙이다-150화 (150/200)

< 새로운 에피소드. >

혼돈에서의 작은 전쟁은 끝났다.

사망자를 수습하고 부상자를 정리하는 것은 한별과 안혜림의 몫이었다. 그들은 함께 온 이들과 함께 부상자를 치료하고 사망자를 수습했다. 쓰러진 진훈은 무황이 데려갔으며 세르게이와 나디아는 큰 부상 때문에 바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성시연은 하얀이를 안고 있던 한성에게 다가왔다.

“한성.”

그녀의 눈빛은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멸망하는 세계의 진실을 엿봤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성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와줘서 고마워.”

한성은 성시연의 이명이 보였다.

[역천의 마왕]

하늘을 뒤집을 마왕이라는 뜻이다.

한성은 [종천의 구도자]

하늘을 끝낼 구도자라는 뜻이다.

둘은 앞으로 함께 할 거다.

“아니야. 당연히 왔어야지.”

성시연은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한성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하얀이 좀.”

성시연에게 하얀이를 넘겼다. 성시연은 조심스럽게 하얀이를 받고 한성을 바라봤다.

한성은 그녀를 지나쳐 혼돈의 끝으로 향했다.

이 [혼돈의 파편]으로 이곳을 닫아야 한다.

그래야 지금 이 전쟁이 끝나겠지.

[혼돈의 파편]을 직접 사용하며 드높은 신격의 최상위로 올라가는 게 나을까? 운이 좋다면 그 위도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위는 천외천으로 다시 올라가야만 가능하다.

그럴 바엔 이곳을 닫겠다.

아직 이 소중한 곳을 전장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화악.

한성의 손에 들린 파편이 환하게 빛났다.

‘어차피 곧 내 것이 될 파편은 하나 있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쿠우우우우.

혼돈이 크게 흔들렸다.

거대할 정도로 늘어난 혼돈의 끝이 서서히 닫힌다. 그곳에서 뿜어지던 강력한 신격의 흐름이 점점 적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혼돈의 끝은 예전처럼 단단하게 닫혀 있었다.

그리고 한성의 손에 있던 파편도 사라진 후였다.

- 태초의 드래곤 [케이플람 가드니스]를 패퇴시켰습니다!

- 업적을 이뤘습니다!

- 등급 : [전설]

- 상위 등급의 [용살자]에게 흡수됩니다!

- 종천의 구도자로서 [초월 신화]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 혼돈의 끝을 닫았습니다.

- 파편을 하나 온전히 소모하였으며, 천외천을 고립시켰습니다.

- 당신의 [초월 신화]가 [종천의 구도자]라는 이명에게 힘을 더합니다.

아직 이름뿐인 업적들과 이명뿐이다.

한성이 이 이명을 달고 업적을 쌓고 신화를 시작하면서 그 이름뿐인 것들은 하나하나 힘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게 종국에는 완전히 한성에게 흡수될 것이다.

- [과거의 잔상]이 87% 완료되었습니다!

- 나머지 과거는 아직 복구할 수 없습니다.

- ■■■ ■■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쪽엔 이 글귀만 떠올라 있을 뿐이었다.

*  *  *

인드라는 악을 질렀다.

마루트는 돌아오지 않았고 재앙은 인도 신화의 성역을 절반이나 삼켰다. 앞에서는 티탄족이 뒤에서는 재앙이 몰아닥치고 있다.

가장 깊은 곳에서 지켜보던 3대 주신이 나왔음에도 재앙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인도의 창조신, 범천(梵天) 브라흐마.

질서와 평화의 신, 나라연천(那羅延天) 비슈누.

파괴의 신, 마하데바 시바.

세 주신은 각자의 권능을 사용했다.

“이 멸(滅)의 재앙(災殃)은 도대체 어느 신의 장난질인 것인가!”

파괴의 권능을 지닌 시바가 외쳤다.

단순히 무언가를 파괴하는 재앙이 아니다. 멸(滅)하는 것. 한 마디로 완전히 ‘삭제’해 버리는 힘과 비슷하다. 그것은 파괴의 신인 시바조차도 불가능한 일.

시바는 트리슈라라는 삼지창 성물을 들고 재앙을 파괴했다. 하지만, 그것은 더욱 거대한 파괴의 힘으로 트리슈라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세계의 질서조차 망가뜨리는구나.”

질서와 평화의 신 비슈누가 말했다.

언제나 침착하고 무표정한 그의 얼굴은 당황과 다급함이 담겨 있었다. 이런 재앙은 듣도 보도 못했다. 수천 년 전 인간 세계가 멸망하면서 생겼던 재앙보다도 강했다.

무엇이 이런 재앙을 만들었을까.

왜 이런 재앙이 이곳에 생긴 걸까.

“······창조마저 삼켜내다니.”

창조의 신인 브라흐마가 중얼거렸다.

인도의 주신 셋이 막고 있음에도 이렇게까지 파괴적으로 움직이는 재앙은 처음이다. 밑에서 인드라를 중심으로 팔 방위 신인 로카팔라가 티탄신족을 상대로 밀리기 시작했다.

성역의 힘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신들의 힘도 줄었다.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다.

콰과과광!

검은 재앙 덩어리는 점점 영역을 넓혀갔다.

이대로라면 이 성역뿐만 아니라, 천외천 전체로 커질 것이다. 누군가 언젠가는 막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싸워 봐야 알 것 같았다.

그들의 전쟁은 이제 시작이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기나긴 전쟁 말이다.

*  *  *

검은 정장을 입은 피터는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몸을 드러냈다. 이한성이라는 영웅 때문에 일을 마치지 못했다. [혼돈의 파편], 그것을 얻어야만 크툴루의 힘을 완전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래야 이 세계의 잘못된 권력과 부를 재분배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당장 이룰 순 없다.

[혼돈의 파편]은 찾고 싶다고 해도 찾을 수 없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건 아니다. 꼭 그 힘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은 많으니까.

“누구냐!”

누군가 피터를 보고 외쳤다.

이곳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세계 순위에 드는 기술력과 자금을 지닌 기업이 새롭게 만든 ‘격’을 무시하는 [구울] 시제품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터벅. 터벅.

피터는 세 명에서 수십 명까지 늘어난 경비를 보고도 자연스럽게 걸었다. 몇은 용병이었으며 한 명은 레벨 6의 영웅이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피터는 백악관도 털다시피 한 능력을 지녔다.

그들로 피터를 막을 순 없었다.

피터의 손짓 하나에 수십 명의 경비는 그대로 날아가 쓰러졌다. 천장에서, 바닥에서 최첨단 무기가 올라와 피터를 공격했지만, 그가 생성한 작은 막 하나를 뚫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때.

마틴 기업의 시제품 구울이 피터를 막기 위해 나왔다.

“성능 좀 볼까?”

피터는 구울에게 손짓을 했다.

오라고.

작은 구울은 피터에게 달려들었다. 역시 구울이라 그런지 기본 성능은 좋다. 파공음이 들릴 정도의 속도로 피터에게 다가와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피터에겐 아주 느린 움직일 뿐이다.

그런데.

파삭.

피터가 생성한 ‘격’의 막을 깨뜨렸다.

피터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막을 몇 개 더 만들었다.

파삭. 파삭. 파삭.

세 개까지 뚫렸다.

텅!

그리고 네 번째에 막혔다.

“나쁘지 않은데.”

피터는 이것들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이 구울을 가져다 사용할 생각도 있었다.

피터는 구울을 간단히 제압해 차원의 틈으로 넣었다.

아무리 대단한 구울이라도 이 공간의 왜곡을 뚫을 순 없을······.

푸욱.

어디선가 나온 검이 피터의 복부를 뚫었다. 그리곤 쉬지도 않고 검을 뽑아 피터의 미간에 박으려 했다.

“오호.”

아까 그 구울이었다. 차원의 틈으로 보내놨는데, 그것을 뚫고 나온 것이다. 운이 좋게도 공간을 다루는 구울이었나? 그거면 더욱 좋다.

피터는 구울의 목을 움켜쥐고 차원의 틈에서 꺼냈다. 검이 뽑힌 피터의 복부는 이미 치료된 상태였다. 이런 철 조각 따위로는 피터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다.

오히려 더 쓸만한 구울이라 피터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방해하면 혼난다.”

피터는 구울의 몸을 더 깊은 차원으로 넣어 버렸다.

“······더는 못 나오나.”

피터는 조금 기다리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 정도의 깊이는 나올 수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이것까지 나오면 식겁할 뻔했다.

이 정도의 능력이라면 레벨 6의 영웅은 물론이고 비천한 신격에 든 레벨 7의 영웅 또한 대등하게 겨룰 수 있을 듯하다.

게다가 구울이 이게 전부는 아니다.

더 강한 구울도 있겠지.

이 정도면 만족이다.

푸쉬-

그가 들어간 곳은 구울을 제작하는 곳이었다. 깊은 밤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는 이곳엔 수십 기의 구울이 건조되지 않은 상태로 대기하고 있었다.

경보가 울리고 곧 지원 영웅들이 오겠지만, 피터는 느긋했다.

어차피 이곳에 오래 있을 생각은 없다.

피터는 이곳에 있는 모든 구울을 차원의 틈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피터 자신도 공간의 틈을 열어 빠져나갔다.

이후, 수십 명의 영웅이 도착했지만, 그곳은 텅 빈 상태였다.

*  *  *

한성은 정신을 잃은 하얀이를 데리고 서울로 돌아왔다. 하얀이가 쉴 곳이 필요했고, 지금 가장 안전한 곳은 서울이었다.

뒤로 성시연도 따라왔는데, 그녀는 한성 옆에 붙어 있었다.

“이제 같이 다니자.”

“앞으론 더 위험할 거야.”

“알아. 그래도 같이 다녀야겠어.”

“······.”

“내가 더 해야 할 일이 있어?”

한성은 항상 성시연에게 할 일을 줬다. 그녀가 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성시연은 아무런 불만 없이 한성의 말을 따랐고 지금은 이렇게 강해졌다.

그러면서 검은 땅에서 많은 마계족을 몰아냈다.

성시연은 충분히 했다.

“없지. 충분해. 그리고 고마워.”

“응, 앞으론 더 고마워해야 할 거야.”

한성은 피식 웃었다.

“그래, 당연히 고맙지.”

앞으론 더욱 위험할 거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말이다.

위험이 없이는 성장하기 힘들다. 특히, 업적이라는 게 있는 이 세계관에서는 더욱 그렇다. 3년 전 신격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인간들은 강해졌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한성은 이 세계에 재앙을 불러들일 작정이었다.

이곳의 사람들이 극복할 수 있을 정도의 재앙.

하지만 누군가는, 꽤 많은 사람은 극복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재앙.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튀어나올 재앙이었지만, 한성은 그것을 조금 더 빠르게 꺼낼 작정이었다.

피해가 더 커질지도 모른다.

‘지금’과 ‘몇 년 후’는 상당히 큰 차이니까.

하지만······.

“이제 더는 시간을 끌 수 없겠지.”

한성은 성시연과 하얀이에게는 앞으로의 계획을 모두 말할 작정이었다. 이 세상이 게임이라는 것. 아니, 게임이었다는 것까지는 말할 수 없다.

언젠간 밝혀지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그 외에 모든 것은 말해야 했다.

“아빠······.”

잠에서 깨어난 하얀이가 한성을 불렀다.

어떻게 된 건지, 한성이 어디가 다친 건 아닌지 걱정했다. 그리고 한성이 케이플람을 이기고 천외천으로 내쫓았다는 것을 들었을 때는 안도했다.

같은 핏줄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한성은 그런 하얀이의 반응에 안도했다.

“고마워.”

“뭐래, 고마울 게 뭐가 있다고!”

오늘따라 고맙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한성은 그렇게 깨어난 하얀이와 성시연을 데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계의 도시]를 소환하는 것.

크툴루와 그의 계약자가 등장하면서 시작되는 에피소드의 일부다. 그가 영웅 협회를 무너뜨리고 미국과 몇 개의 나라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소환한 도시다.

“중요한 것은, 피터를 계속 죽음으로 몰아야 한다는 거지.”

피터가 위험해져야 크툴루가 그 도시를 소환하게 도와줄 테니까. 아쉬운 것은 악역인 그를 선(善)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적(敵)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같은 편에서 싸울 텐데, 그래도 될까 싶었다.

하지만 그것만 소환된다면 많은 게 달라질 것이다.

“아빠, 그럼 피터라는 사람을 괴롭혀야 하는 거예요?”

“그렇지.”

“아빠······, 왜 그렇게 웃어요?”

“응? 내가?”

“네······, 무서워요.”

한성은 피터를 괴롭힐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크흠. 그런 거 아니야.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잖아. 어쩔 수 없이!”

“아닌 거 같은데!”

“내가 봐도 절대 아니야.”

가만히 있던 성시연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누가 봐도 재미있겠다는 얼굴이었다.

[이계의 도시]에서는 일반 사람도 영웅이 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거면 많은 게 바뀔 거다. 신격의 등장 이후로 가장 많은 강자가 생겨나겠지.

물론, [이계의 도시]는 기회만 주지는 않는다.

그에 비례하는 재앙(災殃)이 닥칠 거다.

< 새로운 에피소드.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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