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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은 만렙이다-144화 (144/200)

< 하얀이는 내 딸이다! >

진훈은 탑에 다시 들어와서 싸우고 또 싸웠다. 그렇게 90층에 올랐을 때였다.

쿠우우우.

경기장에 오르지도 않았다.

그런데 강대한 ‘격’이 느껴졌다.

진훈은 여기까지 오면서 수많은 경험과 업적으로 신격에 오르게 되었다. 예전이었다면 SSS등급이라는 비천한 신격. 레벨로는 레벨 7이다.

그런데.

90층의 적은 더욱 강력했다.

[투신의 탑]

이 탑 100층에 오르는 ‘정점’은 [투신]이라는 이명과 ‘전설’ 등급의 업적을 얻게 된다. 또한, 어마어마한 부와 권력을 얻는다.

영웅은 상위 신분인 [노블레스]를 얻을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진훈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아버지가 밟았던 ‘투신’의 경지에 드는 것.

그리고 강해져 한성의 옆에서 싸우는 것.

단순하다.

- 자, 이번에 90층 신입입니다! 무서운 속도로 100층을 향해 올라가는 도전자 진! 훈!

진훈의 경기가 시작된다.

앞에 선 상대는 고고한 격이 느껴진다. 이미 비천한 신격을 벗어나 온전함에 들어선 신격 같았다. 하지만 반드시 질 거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언제나 이기고 또 이겨왔으니까.

그때, 알람이 울렸다.

[이한성님이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하도 구독과 알림을 하라고 해서, 친구니까 알람까지 해 줬다. 그러니 영상이 올라오거나 생방송을 시작하면 이렇게 알려준다.

하지만 경기는 시작되었고, 진훈은 앞으로 튀어 나갔다.

콰아아앙!

서로를 부수기 위한 격의 향연이 사방에서 터졌다.

*  *  *

성시연은 마계의 탑을 마주했다. 오래전부터 31번 구역에 생겨나 공략을 준비했던 곳이다. 영웅 협회가 함께 했고 우전 그룹과 마틴 기업이 선두를 맡았다.

가장 좋아하지 않는 이들을 전면에 세운 건 한성이 계획한 게 있어서겠지.

“괜찮을까요?”

세르비체가 물었다.

“괜찮······ 겠지?”

사실 전혀 괜찮을 거 같지 않았다.

성시연의 시선엔 줄리아 마틴이 있었다. 그녀는 세 명의 이상한 경호원에게 둘러싸여 있었는데, 계속 눈이 갔다. 아무런 힘도 없어 보이는 평범한 경호원.

하지만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함이 있다.

“뭐 있으세요? 뭘 그렇게 쳐다보시는지.”

“아니야. 뭐, 별일 있겠어.”

그런데 별일이 있었다.

그들이 마계의 탑에 진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마계의 탑은 검은 마기로 이루어진 수많은 마법진으로 뒤덮였다.

뒤늦게 영웅 협회의 후발대가 그 마법진을 없애기 위해 접근했지만, 아무도 뚫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마계의 탑을 등지고 무언가 등장했다.

“······발록?”

세르비체가 중얼거렸다.

본 적이 있다.

성시연과 함께 멀리서만 봤었다.

왜 마계의 탑에 발록의 형상이 생긴 것일까. 도대체 저 탑은 무엇이길래 지금까지 반응이 없다가 이제야 발동한 것일까.

“666명.”

성시연이 중얼거렸다.

한성이 알려준 명단을 그대로 꾸려 넣었을 뿐이다.

저것들은 제물이었다.

그리고.

- 어머니.

탑이 성시연을 불렀다.

이제는 사라진 릴리스의 잔재는 오로지 성시연의 몸에만 남아 있다. 그리고 저 발록은 대악마의 아내, 몽마 릴리스의 종속이었다.

성시연은 자연스럽게 그 탑을 향해 날아갔다.

그때, 세르비체의 손목에서 알람이 울렸다.

[이한성님이 생방송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식으로 알람을 받은 것은 비단 이 둘 뿐이 아니었다. 레드 오우거의 대장이 된 한별과 러시아의 세르게이, 나디아. 유럽 동부에서 오딘의 신화를 쫓던 얜 샤를과 아마존에서 아서 왕의 유물을 찾아 헤매던 안혜림까지.

모두 그 알람에 시선을 돌렸다.

*  *  *

용인(龍人)전쟁.

용과 인간의 싸움을 말한다. 아주 오래전, 이 지구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용은 인간을 다스리는 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인간은 신을 짓밟고 위로 올라가길 원했다.

스스로 지배자가 되어야만 하는 종족이 바로 인간이었으니까.

신들의 횡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인간은 신들과 거래를 했다. 신이 인간에게 가한 ‘제약’. 바로 ‘격’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 덕에 신과 인간은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되었다.

인간은 그저 이 세계에 신들이 없길 바랐고 신들은 인간이 성역을 침범하거나 신의 자리를 탐내지만 않으면 되었다.

하지만 용들은 아니었다.

전쟁이라는 게 그렇듯,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인간은 용이 자신들을 지배하는 게 싫었고 용은 그런 인간들의 반응이 달갑지 않았다. 감히 인간 따위가? 위대한 드래곤을 쫓아내려고 하다니!

그래서 일어난 게 [용인 전쟁]이다.

세계 하나를 멸망시키고.

모든 신과 인간의 ‘격’이라는 것을 만들어낸 전쟁이.

별거 아닌 일로 시작된 것을 누가 알까.

.

.

.

한성은 이 세계관의 이야기를 완전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용 중 하나가 하얀이의 아버지인 케이플람 가드니스였다.

케이플람은 하얀이를 비롯한 몇 개의 알을 낳곤 천외천 구석으로 몰려 봉인되었다. 그렇게 하찮게 여기던 인간에게 쫓겨서 말이다.

- 네가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는 것이냐.

인간의 일은 크게 궁금하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옆에 있는 하얀이를 보고서도 궁금하지 않을 순 없겠지. 아무리 봐도 익숙한 향이 풍길 테니까.

한성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옆에 있던 하얀이를 품에 안을 뿐.

“아빠?”

하얀이가 한성을 바라봤다. 하얀이도 느낀 것이다. 이 거대한 존재감 안에서 풍기는 익숙한 향을.

케이플람은 한성과 하얀이를 바라보고, 하얀이는 한성과 케이플람을 바라본다. 한성은 하얀이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케이플람을 노려본다.

한성은 피투성이가 된 케이플람을 보자마자 계산을 마쳤다.

원래는 싸우지 않아도 되는 상대다.

케이플람은 루시퍼의 전령으로 왔을 테니까.

루시퍼는 천외천으로 들어가 바로 ‘신’에게로 가려고 했을 거다. 루시퍼 정도면 다른 이들을 만나지 않고 신의 성역으로 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거신이 들어오면서 천외천 전체가 전투태세에 돌입했고 루시퍼는 천외천의 신격들과 부딪쳤겠지.

그래서 결국 도움이 필요한 거다.

“루시퍼가 도움이 필요한 거겠지.”

한성은 말을 돌렸다.

케이플람과 하얀이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한성은 그걸 그냥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이곳에서 그나마 당당하게 기세를 피워 올리는 게 바로 한성과 무황이었다. 한성은 용혈 사냥꾼이 있었고 무황의 곁엔 포식자가 있었다.

“나는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다.”

-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지.

과거형이다.

그 말은 지금은 싸울 수도 있다는 뜻.

“루시퍼가 원하는 걸 줄 수도 있다.”

한성은 품에서 [혼돈의 파편]을 꺼냈다.

그러면서 카메라를 멀리 보내 생방송을 시작했다. 언제든 바로 싸울 수 있게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이것 또한 컨텐츠······ 가 아닌 업적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성은 송출과 동시에 존재감과 격이 대폭 상승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주면 고맙게 받지. 하지만 답은 알아야겠다.

“답을 알게 된다면 그냥 받고 갈 것인가?”

당연히 가지 않을 게 뻔하다.

드래곤은 자신의 핏줄을 끔찍하게 아낀다. 워낙 수가 없는 종족이며 알고 많이 낳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얀이가 드래고니안과 혼혈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80% 이상의 용혈을 지니고 있다.

케이플람은 자식 하나를 빼앗긴 기분일 거다.

- 아니.

그 대답과 동시에 혼돈은 케이플람의 존재감으로 가득 찼다. 기어이 버티고 있던 한성과 무황도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한성은 본능적으로 용혈 사냥꾼을 꺼냈고 포식자는 본 모습을 드러냈다.

뚱뚱하고 기괴하게 생긴 파충류. 수십 개의 눈과 거대한 입. 붉은 피가 흐르는 듯한 외관. 그리고 모든 마력과 마법을 무력화하는 기묘한 파장.

그리고 가느다란 끝은 무황의 손에 잡혀 있다.

- 각성한 용혈 사냥꾼과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용혈 사냥꾼이라니. 특이하군.

케이플람은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용인 전쟁의 잔상을 기억해 냈다. 인간은 수천 마리의 용혈 사냥꾼을 키우며 용을 사냥했다.

한낱 나약한 인간에 불과한 그들은 스스로 업적을 쌓아 강해졌고 기어이 신격이라는 신들만의 고고한 격에 올라 용혈 사냥꾼을 마구 휘둘러댔다.

다른 신들은 천외천으로 도망갔고.

용들은 인간과 싸웠다.

하지만 결국 용들은 인간에 밀려 천외천에 갇혔다.

그러는 도중, 인간 세상은 폐허가 되어 ‘멸망’을 향해 나아갔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신들은 천외천에 갇혔지만, 인간들마저 멸(滅)했다.

그 세상은 그렇게 사라졌다.

- 어리석은 인간들.

그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인간은 그런 존재니까.

화악.

한성의 용혈 사냥꾼이 몸집을 거대하게 부풀렸다. 그것은 옆에 있는 무황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용혈 사냥꾼이 훨씬 크고 거대하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용을 상대하기 위해선 용혈 사냥꾼이 필수다.

“이한성이지?”

“네, 반갑습니다. 무황님.”

서로, 서로를 기억한다.

무황은 한성을 예전부터 지켜봤다. 한성은 더 오랫동안 그럴 보고 겪어왔다. 서로를 모를 리 없다.

- 결국, 싸우겠다는 것이냐.

“내가 봤을 땐, 네가 싸우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 대답해라! 옆에 그 아이는 누구인가!

한성은 고민할 필요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내 딸이다.”

진훈이 옆에 있었다면, ‘내가 그랬지! 엄마가 드래곤이 맞다니까!’라고 소리쳤을 것 같다. 저 드래곤이 남성이고 한성도 남성이라도 말이다.

피식.

한성은 하얀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빠······.”

하얀이가 촉촉해진 눈동자로 한성을 올려다봤다.

“하얀아, 뒤에 가 있어.”

한성은 격을 개방했다.

- 감히! 그 아이는 나의 핏줄이다.

그 말과 동시에 하얀 비늘에 핏물이 줄줄 흐르던 거대한 드래곤, 케이플람이 내뿜는 격이 혼돈 전체를 물들였다. 미친 듯이 강하고 거대한 격이다.

가히 ‘신’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 만한 존재감이었다.

세이건과 패연은 하얀이와 릴리를 감싸며 뒤로 물렀다. 그들은 순수한 용혈에 대항할 수 없다. 그들은 반쪽짜리 용혈이기 때문이다.

가장 앞은 용혈 사냥꾼을 든 한성과 무황.

그 뒤로 투신, 무희. 그리고 돌연변이 마룡족인 마룡까지 섰다.

마룡도 용혈은 용혈이지만, 반(反) 용혈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스스로 몸속의 용혈을 거부하는 불치병이었지만, 혼돈에 들어오면서. 그리고 용혈과 싸우면서 그는 대폭 강해졌다.

그도 용혈 사냥꾼과 비슷한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무황과 한성을 비롯한 5인은 드래곤 케이플람의 폭발적인 기세를 맞받아칠 수 있었다.

“이 아이는 나의 딸이다!”

한성이 먼저 달려들었다.

루시퍼에게 도움? 도움 받고 싶으면 숙이고 들어와야지.

어디서 감히!

만약 하얀이를 포기하고 평화롭게 요청했다면 적당한 대가를 받고 파편을 넘겨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나온다면 파편은 물론이고 케이플람도 살려 보내지 않을 것이다.

콰아아아아앙!

둘 사이엔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그 폭발에 튕겨 나가는 것은 당연하게도 한성이었다.

아무리 용혈 사냥꾼이 있다고 하지만, 케이플람은 위대한 신격이다. 드높은 신격 수십 명이 있다고 해도 위대한 신격을 이길 순 없다.

하지만 한성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순간, 드래곤은 날갯짓을 시작했다.

마력의 폭풍이 그들에게 닥쳤다. 그 마력엔 ‘죽음’이 담겨 있었다. [용언]을 뛰어넘은 심언(心言)이었다. 그것은 혼돈의 마력까지 케이플람이 원하는 형태. 즉, ‘죽음’이 되어 한성과 무황에게 닥쳤다.

하지만 이래서 용혈 사냥꾼이 필요한 것이다.

콰과과과과!

용혈 사냥꾼은 용의 마법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용혈의 마력은 용혈 사냥꾼에게 먹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도 격이 맞아야 가능한 것이다.

꾸에에에엑.

한성의 용혈 사냥꾼과 무황의 용혈 사냥꾼은 케이플람의 마력을 집어삼킨 후, 토해내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용혈 사냥꾼의 비늘이 타오른다.

아직 벅찬 거다.

“후.”

한성인 숨을 뱉어냈다.

“후.”

옆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무황은 한성을 바라봤다. 한성도 무황을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압도적인 격이다.

둘이 발버둥을 쳐 봐야 이기지 못할 적.

하지만 둘은 웃고 있었다.

“오랜만에 짜릿한데?”

한성의 말이었다.

무황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제대로 케이플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 하얀이는 내 딸이다!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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