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이 인류애? >
크툴루 신화의 ‘이능’을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격’ 자체를 이용하는 힘이다. 이 ‘격’으로 자연에 영향을 끼치고 마법과 물리적 힘을 구사하며 때로는 ‘창조’와 ‘소멸’을 흉내 내기도 한다.
한성은 전 회차에서 이 사실을 알면서 ‘격’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신인류’의 공략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 한성도 이번에 깨달은 사실이 있다.
‘초끈의 힘이야.’
한성이 지닌 [초끈]이라는 힘은 우주를 구성하는 5대 힘인 마력, 강력, 약력, 중력, 전자기력. 모든 힘을 하나로 잇는 최소 단위의 힘이다.
그 말은 ‘초끈’이라는 것 하나로 마력, 강력, 약력, 중력, 전자기력을 모두 조종할 수 있다는 뜻이며 그것은 ‘우주의 구성’을 흉내 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한성은 그 힘을 지니게 되면서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이 세계관에서 업적을 쌓아 격을 얻는 것은 이 ‘초끈’에 관한 저항을 줄이는 것이라고, 신에 가까워질수록 초끈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이라고.
특히, 저 앞 백악관을 철저하게 부수고 있는 ‘피터’는 그레이트 올드 원이라는 신격의 힘을 이어받았다. [크툴루 신화]라는 이름의 주인공 ‘크툴루’.
당연히 그의 힘은 초월적이었다.
하지만.
“저걸 잡을 수 있는 건 드높은 신격. 혹은 나뿐이라는 거지.”
한성은 그 말과 동시에 공간을 뛰어넘어 피터의 뒤로 나타나 머리를 가격했다.
콰아아아앙!
그를 보호하고 있던 ‘격’의 막이 터져나가며 굉음과 섬광이 주변을 휩쓸었다. 백악관에 설치된 실드 수십 개가 깨져나갔으며 바닥이 크게 진동했다.
훅.
하지만 피터는 아주 멀쩡한 모습으로 한성에게 달려들었다.
단순한 정권(正拳)이 시공간을 찢어발기며 한성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크윽.”
두 발자국. 한성은 뒤로 물러나며 검을 꺼내 그의 두 번째 공격을 받아냈다.
콰아아아아!
이번엔 ‘격’의 폭류(暴流)가 하늘로 솟았다. 두 힘의 격돌은 구름을 뚫었고 섬광은 워싱턴 전체를 밝혔다.
피터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렇게 강할 줄이야.’
사실 이한성이라는 영웅을 알긴 알았지만,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다. 지금 피터가 막 신격의 계약을 하며 특별한 힘을 얻었다지만, 그 신격이 ‘크툴루’다.
그레이트 올드 원.
그들의 대표 격 캐릭터.
옛 신화의 지배자이며 신격 자체가 여러 차원에 걸쳐져 있기에 그의 원래 모습 또한 볼 수 없는 존재. 또한, 다른 차원으로 가기 위한 열쇠이기도 한 초월적인 존재.
이 세계관에서 창조신으로 분류되는 ‘가이아’와 ‘우라노스’에 맞먹는 몇 안 되는, 실상 이 세계관 최강의 신격 중 하나가 바로 크툴루다.
‘그런데 이런 나를 계약한 신격 하나 없는 인간이?’
한낱 인간이 스스로 신격에 올랐다.
그것은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무력’엔 한계가 있다. 수만, 수십만 년 전부터 업적을 쌓아오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신화를 이룩하는 그들에 비하면 당연히 손색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아니, 손색이 무엇인가.
이렇게 대적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게다가 ‘피터’ 자신은 크툴루와 최적의 상성을 지니고 있었고, 그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가슴 속에 품었던 ‘고통’은 그만의 업적이 되어 크툴루의 힘을 한계까지 받아들였다.
아직 익숙해질 필요는 있지만, ‘힘’만으로 보면 더 성장할 것도 없는 상황이라는 거다.
하지만 이한성이라는 남자는 그런 신격의 힘을 이어받은 피터와 맞먹는 전투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콰아아앙!
주먹이 날아들면 공간이 찢기고 검이 지나가면 둘의 격이 깨진다. 발차기가 허공을 뚫으면 시간이 비틀리고 둘이 격돌하면 격의 폭발이 사방을 휩쓴다.
마치, 신들의 전쟁을 보는 듯했다.
- 미친······, 둘이 뭐야. 거의 신들의 전쟁 아님?
- 이것도 방송하는 한성, 당신은 대체······!
- 이게 레벨 8의 수준인가.
- 아님, 이건 레벨 8을 넘어섰음. 내가 레벨 8이었을 땐 말이야.
- 응, 다음 라떼.
- 근데 백악관은 무슨 죄?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백악관 괜히 옆에 있다가 계속 처 맞고 있음.
- 직접 때리는 것도 아닌데, 충격파만으로 실드 하나씩 벗겨지는 거 실화냐.
당연히 이 모든 장면도 송출되고 있었다.
한성은 꾸준히 인지도 포인트와 업적이 생겼다는 시스템 음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에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피터가 전 회차에 비해 훨씬 강했기 때문이다.
왜일까.
피터는 스스로 쌓아온 고통과 괴로움이 그의 힘으로 작용한다······.
“아.”
어쩌면 당연했는지 모른다.
한성이 서울의 상흔을 만들면서 대격변이 빠르게 왔고, 피터는 예정보다 훨씬 어렸을 때부터 부모를 잃고 고통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만들었구나.’
피터는 사상 최악의 악역이다.
아니, 사상 최강이라고 해야 할까. 원래는 지금쯤 악역의 길로 가고 있어야 할 길성현에 비견되는 악역이라고 해야 할 수 있다.
‘길성현은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지만.’
한성이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악에 빠지지 않게 막고 있기 때문이다.
‘피터는 살아온 삶이 악(惡)이 될 수밖에 없었지.’
피터라는 악역은 이 세상에 필요한 악역이다.
플레이어들이 피터를 만나면 수십 번 정도 죽는 건 보통이다. 그만큼 강한 악역인 거다. 그러면서 그가 행하는 일들은 이 세계의 지배계층을 죽이고 그들의 권력과 금력을 재분배하는 일을 한다.
그러니 오랜 시간 플레이해서 지배계층에 가까워진 플레이어와는 맞설 수밖에 없는 포지션이다.
‘하지만 꼭 필요하지.’
피터는 한성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거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만들어져가는 세상을 잃고 싶지 않아 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는 악역이지만, 스스로의 신념으로 세상을 구하려 하는 어둠 속의 영웅이니까.
‘아주 나중에야 알려졌지.’
플레이어는 대부분 힘을 얻으면 이놈부터 죽이려 했고, 몇 번이나 죽으면서 해내고 만다. 그것을 얻는 퀘스트 보상도 꽤 짭짤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혼돈이 파편]을 두고 싸우는 지금.
플레이어는 피터를 죽이지 않고 제압할 정도의 힘이 없다.
그런 식으로 모든 플레이어는 피터를 종장(終章)까지 데려가지 못했다.
아주 나중에야 그게 밝혀졌다.
그는 반드시 살려서 데려가야 하는 캐릭터라는 것을.
“이곳의 파편은 양보할 수 없다.”
한성이 피터에게 말했다.
피터는 놀란 눈을 해 보였다.
“그게 파편이라는 것은 어떻게······, 그것보다 내가 그것을 원한다는 건 어떻게 안 거지?”
“그게 중요한가. 서로 그걸 노리고 있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피터는 격을 더욱 끌어올렸다.
그 격은 하나의 마법이 되고 주먹이 되어 한성에게 날아왔다. 한성은 어렵지 않게 피했다. 문제는 그 주먹이 향한 곳이 백악관의 외곽이었다는 것이다.
콰과과과과!
거대한 주먹이 지나간 자리는 휑하니 부서진 백악관의 외곽만 남아 있을 뿐이다.
“어쩌나, 백악관도 이제 무너지고 있군.”
“흠. 그런가?”
한성은 백악관이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었다. 그저 완전히 무너지지만 않으면 파편을 소유에 문제는 없을 것 같았으니까.
사실 미합중국 대통령에게 파편이 있어야 그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지금의 한성은 아직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피터 정도는 쉽게 제압할 수 있다.
팟.
한성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피터는 한성을 완전히 놓쳤다.
“······!”
피터는 섬뜩한 감각이 왼편에서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다른 이들이라면 못 느꼈을 아주 미세하고 은밀한 살기.
팔을 급하게 위로 쳐올려 방어했다.
하지만 한성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찌릿.
오른편에서 한성의 마법이 발현되었다.
콰과과과광!
널찍한 마법진이 생성됨과 동시에 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피터는 크툴루의 계약자. 이 공격을 맞받아칠 여유는 없었지만, 차원의 틈으로 몸을 구겨 넣어 도망칠 순 있었다.
피터는 몸을 숨기며 한성을 바라봤다.
‘어때,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또 보자.”
한성은 미소를 지으며 피터에게 말했다.
그는 애초에 자신을 죽일 생각이 없었던 거다.
‘당했다.’
* * *
한성은 피터를 보낸 다음, 급하게 백악관을 찾았다.
경비실장이 마중 나와 있었다. 그는 피터와 한성의 싸움으로 인한 파장을 막기 위해서 몸을 던진 것인지 굉장히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이한성 영웅님.”
“급합니다. 빨리 신의 금속을 주십시오!”
“시, 신의 금속 말입니까? 하지만 지금 이미 침입자는······.”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언제 다시 올지 모릅니다! 빨리 추적해 처리해야 백악관. 그리고 모든 세계 정부가 안전할 겁니다.”
경비실장은 침을 꿀떡 삼켰다.
이미 연락은 받았다. 이한성 영웅에게 신의 금속을 넘기기로, 하지만 그것은 침입자를 막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그는 왜 오자마자 금속을 받지 않고 피터를 먼저 상대했을까.
경비실장은 그것을 물었다.
이곳을 지켜준 영웅에게 할 말은 아니었지만, 신의 금속이라 불리는 이 ‘신기’는 그럴 가치가 충분했다.
“당연히 제가 조금만 더 늦었다면 백악관이 위험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격’을 소모해 그를 막았습니다. 저는 이 일의 끝을 보고싶습니다.”
경비실장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전투는 그저 마력과 이능의 격돌이 아니었다. 거대한 두 신격이 ‘격’을 소모하며 싸웠던 거다.
타국을 위해 이런 ‘격’을 소모하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다니.
경비실장은 감동했다.
“감사합니다. 그대의 애국. 아니, 인류애를 믿습니다.”
턱.
경비실장은 신의 금속이라 불리는 파편을 한성에게 넘겼다.
그라면 이 ‘신기’를 온전히 인류를 위해 사용할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저는 바로 그를 추적하겠습니다.”
한성은 그 말만 남기고 공간의 틈으로 빨려 들어갔다.
경비실장은 그런 영웅의 듬직한 뒷모습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 자신은 백악관을 지키기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을 머뭇거렸다.
그런데 이한성이라는 영웅은 결코 머뭇거림이 없었다.
그와 싸우다 죽더라도 괜찮다는 것일까?
자신의 나라도 아니고, 다른 경쟁국을 생대로?
경비실장은 순간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물론, 한성은 피터를 쫓을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 * *
그렇게 한성이 어렵지 않게 피터를 내쫓고 파편을 얻었을 때, 하얀이는 세이건 카르비옌의 딸인 릴리 카르비옌과 ‘무기’를 구하러 다니고 있었다.
이번에 도착한 곳은 나폴레옹의 무덤이었다.
“자, 이것 봐! 대박이야. 나폴레옹이 썼던 총이라는데. 무기에 달라붙은 업적만 ‘전설’이야!”
“우웅? 와! 진짜네.”
가장 앞에 하얀이는 오랜만에 뿔과 꼬리가 있는 반 인간형 모습으로 있었고 뒤로 릴리가 용마족의 특유의 비늘 덥힌 인간의 모습이었다.
둘 다 5살에서 7살 정도 소녀의 모습이었기에 굉장히 귀여워 보였지만, 실상은 도시 하나 정도를 쉽게 쓸어버릴 수 있는 무력의 정점에 도달한 이들이었다.
하얀이는 고풍스러운 나폴레옹의 권총을 꺼내 쥐었다. 그러자 ‘녹’과 먼지가 떨어지며 ‘품격’을 되찾기 시작했다.
“좋아, 이걸로 332개째.”
보물만 찾아다녔다.
무기 등급으로 [보물] 최상급이며 [전설] 중급까지. 하얀이와 릴리가 마음먹고 무기만 찾아다닌 결과다. 물론, 이 무기의 절반 정도는 한성의 돈으로 샀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찾는 재미가 있긴 해.”
“맞아, 맞아.”
하얀이는 떠들고 릴리는 대답한다.
처음에 만났을 때 하얀이가 워낙 무서웠기에 지금도 어색하다. 게다가 하얀이는 용혈이 80%에 달하는 거의 ‘순혈’이었고 릴리는 해봐야 40%나 될 법한 혼혈 용마족이었으니까.
쿠우웅.
쿠우우웅.
아주 먼 곳에서 묵직한 진동이 퍼졌다.
하얀이는 기감을 넓게 펼쳤다. 무한한 마력의 보고인 드래곤 하트에서 뿜어지는 마력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이 진동에서 느껴지는 ‘격’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뭐, 뭐야.”
하얀이는 당황했다.
많이 익숙한 ‘격’의 파동. 이미 옆에 있던 릴리는 벌써 벌벌 떨고 있었고 하얀이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지금까지 이 정도로 거대하며 두려운 파동은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래, 맞다.
이것은 순혈(純血)의 용(龍)의 힘이었다.
그저 인간이었다가 한반도의 용이 되었던 ‘해룡’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무기였다가 ‘신격’을 세운 동양의 용과도 달랐다.
태어났을 때부터 신화를 세우며 아주 오랜 시간 세계의 지배자로 있었던 이들.
바로 드래곤이다.
“도, 도대체 어떻게?”
저들은 이곳에 있어선 안 된다.
< 이것이 인류애?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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