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래곤 슬레이어. >
한성은 모든 게 엉망이 된 혼돈을 바라봤다.
혼돈의 곳곳은 갈라져 붉은 빛이 새어 들어왔고 멀쩡한 지반은 찾아보기 힘들었으며 혼돈의 힘, 현실의 마력, 천외천의 신의 힘 등이 합해져 원래의 혼돈보다 더한 혼돈으로 변해 있었다.
원래 있던 혼돈의 악마들이나 괴수들도 버티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다.
혼돈의 존재들은 이런 환경의 변화를 성장의 발판으로 쓸 만큼 강하니까.
다행인 건 거신이 천외천으로 올라간 것이다.
거신들은 모조리 천외천으로 들어갔고 그것을 기다리던 신들은 거신을 향해 신의 힘을 쏟아냈다. 천외천에선 거대한 신들이 벌이는 전쟁으로 하나의 재앙이 시작되었다.
‘잘 한 거야.’
한성이 패연과 세이건에게 한 말은 어느 정도‘만’ 맞는 말이었다.
그들의 전쟁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끝날 거다.
그것은 한성이 말한 2년에서 3년 정도가 맞다. 하지만 이것으로 신들은 머리끝까지 화가 날 것이고, 이 상황을 만든 인간들까지 가만 두지 않을 거다.
말 그대로 벌집을 건드렸다고나 할까.
‘뭐, 그 정도 시간이라면.’
거신을 막고 그대로 뒀으면 거신에 의해 지구 대륙 몇 개는 사라졌을 수 있다. 그것은 아무리 한성. 아니, 무황이 나서더라도 거신을 온전히 막을 순 없다.
또한, 신들의 인간 말살 프로젝트는 비슷한 시기에 시작되었겠지만, 훨씬 소극적이고 천천히 진행되었을 거다.
그런데 이젠 다르다.
한성이 천외천을 완전히 뒤집어 놨으니까.
“그래도 급한 불은 껐다.”
한성이 말한 ‘혼돈의 파편’을 찾는다고 해도 1년 정도 더 버는 것에 불과했다.
이미 한성이 신들을 자극한 이상 그들은 전 회 차처럼 느긋하게 움직이지 않을 거니까. 천외천의 입구가 아무리 단단하다고 해도 신들이 마음먹으면 금방 뚫린다.
그래도 업적은 제대로 챙겼다.
- 당신은 티탄신족의 신격을 되찾아 줬습니다! 지금부터 그들이 신좌를 찾는 것은 그들의 몫입니다.
- 신화 등급의 업적입니다!
- 업적 [티탄신족의 재건을 돕는 자]를 얻었습니다!
- 당신은 거신 사냥꾼을 부활시켰으며 그들의 존재의 이유를 각인했습니다. 당신은 거신 사냥꾼의 은인입니다.
- 전설 등급의 업적입니다!
- 업적 [거신 사냥꾼의 은인]을 얻었습니다.
- 당신은 혼돈의 평화를 지킴과 동시에 그들이 지닌 혼돈에게 커다란 과업을 내렸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혼란스러웠던 이 지옥에서 힘을 합칠 겁니다.
- 신화 등급의 업적입니다!
- 업적 [혼돈의 구원자]를 얻었습니다.
- 당신은 최고 시청자 수를 기록했습니다! 역시 관종의 신. 성공적인 하나의 ‘극’을 완성하여 수많은 사람의 관심을 온전히 이끌어냈습니다.
- 전설 등급의 업적입니다!
- 업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다!]를 얻었습니다.
업적은 한성에게 큰 힘이 된다.
하지만 잃은 것도 있었다.
- 포르투나의 의뢰를 실패하였습니다!
- 그녀의 목적은 거신을 천외천에 들이지 않는 것. 그녀가 당신에게서 [혼돈의 파편]을 회수해 갑니다.
- 당신에게 커다란 행운이 작용합니다!
- 그녀의 의뢰는 거신의 준동을 막는 것. 그것은 천외천에 들이지 않는 것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 거신은 현재 존재의 존속을 두고 커다란 전투를 진행 중입니다!
- 의뢰는 아직 끝나지 않는 것으로 판명합니다.
- 포르투나는 당신의 [혼돈의 파편]을 회수할 수 없습니다. 거신의 전쟁이 끝날 때, 당신 의뢰의 성공 여부를 판단합니다.
아니, 잃은 게 아니었다.
잃을 뻔 한 거였지.
“개이득이잖아?”
이 전쟁에서 거신은 반드시 진다.
그리고 그때 이 [혼돈의 파편]은 완전히 한성의 소유가 될 것이다.
조금 아쉽기는 했다.
완전히 갖기 위해선 몇 년을 기다려야 하니까.
하지만 [혼돈의 파편]은 이거 하나가 아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마룡족과 용마족을 화해시킨 것이며, 추후 이들과 싸웠어야 할 무황과 그의 일행이 함께 싸우면서 전우애 비슷한 게 생겼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동료가 되는 일은 없겠지만, 최소한 무의미하게 싸워 한쪽이 죽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면 됐다.
한성은 가벼운 마음으로 혼돈을 빠져나왔다.
* * *
와아아아!
경기장 전체에 함성이 울려 퍼졌다.
구울 월드 리그에 새롭게 합류한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팀. ‘제현 그룹’이 후원하고 ‘구울의 왕’이 제작하였으며 31번 구역에서 생산된 ‘관종의 신’ 이한성의 팀이다.
총 7개체와 후보 3개체가 한 팀을 이뤄 싸우는 정규 리그.
[드래곤 슬레이어]는 특별한 구울이 열 개의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첫 번째 리더를 맡고 있는 ‘리아’는 인간형 여성 개체이다. 순혈인 ‘해룡’의 피가 메인이며 ‘염력’이라는 이능을 지녀 뒤에서 모든 오더를 맡고 있는 구울이다.
두 번째 메인 탱커를 맡고 있는 ‘후아’라는 직립보행 몬스터형 구울이었다. 발록의 DNA로만 만들어진 순혈에 모든 마법에 강한 저항을 가지고 뛰어난 육체 능력을 보유했다.
그 뒤로도 용혈, 발록, 히드라, 삼오족, 가루다, 마왕, 요괴 등등의 DNA와 사체를 이용해 만들어진 [드래곤 슬레이어]는 등장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 자, 드래곤 슬레이어가 등장합니다!
- 한국에서 시작된 그들의 전설은 벌서 아메리카의 중심! LA까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 보십시오. 단 1년 만에 월드 리그에 진출하며 올해의 우승 후보로 지목되고 있는 최강의 팀!
와아아아아!
해설자의 말과 동시에 경기장으로 진입하고 있는 드래곤 슬레이어 멤버들은 손을 흔들었다. 완전 몬스터형 구울은 꼬리를 들거나 포효를 한 번 질러주기도 했다.
- 자, 오늘 드래곤 슬레이어의 연승 행진을 막을 팀은 어떤 팀인가요!
- 최근 미국 전역을 쓸어 담고 있는 [스타 케인즈]입니다!
와아아아!
- 스타 케인즈가 어떤 팀인지 설명해주시겠어요?
- 네, 스타 케인즈. 유명한 스타 크래프트라는 게임에 나오는 유닛을 모티브로 만든 구울입니다. ‘스톰 브레이커’라는 번개의 폭풍을 사용하는 인간형 구울을 시작으로 거대한 몸집으로 전선의 정면을 맡은 ‘울트라’. 그리고 공중에서 장거리 저격을 하는 ‘가디언’까지. 완벽한 그들의 파티 플레이는 그 어떤 강력한 팀이든 끝내 무너뜨렸습니다!
- 아, 오늘 해설이 처음이시죠?
- 네? 맞습니다만.
- 굉장한 설명충이시네요.
와하하하!
해설자들의 농담에 관객들은 웃으며 박수를 쳤다. 그러는 사이 스타 케인즈가 경기장에 입장하기 시작했다.
- 좋습니다. 오늘 두 팀이 처음 붙죠?
- 올해 월드 리그의 우승 후보 두 팀의 대결입니다!
- 기대됩니다! 과연 어떤 경기를 보여줄 것인가!
그때였다.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함성이 경기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 무슨 일인가요! 싸움이라도 벌어진 걸까요?
- 아닙니다. 드래곤 슬레이어의 구단주. 관종의 신 이한성이 온 것 같습니다!
경기장 양 벽에 떠오른 거대한 홀로그램에 이한성의 얼굴이 떠 있었다. 그는 화면을 보곤 씨익 웃더니 검지를 뻗어 카메라를 가리켰다.
그리곤 검지를 그대로 미간으로 끌고 오며 윙크했다.
와아아아아!
이한성! 이한성!
관종! 관종!
- 관종의 신 이한성 영웅께서 경기장에 방문해 주셨습니다!
- 지금까지 단 한 번의 경기도 참관하지 않기로 유명했죠. 이제야 직접 보러 올 정도가 되었다는 것일까요?
- 크으, 그렇군요. 월드 리그의 우승 후보와 붙을 정도는 되어야······, 아, 저게 뭐죠?
홀로그램에 등장한 한성이 무언가를 종이에 적기 시작했다.
경기장은 조용했다. 아까의 열광을 어디로 간 것인지, 모두 한성에게 집중하고 있는 중이었다.
역시 관종의 신다웠다.
그 어떤 관심도 놓치질 않는다.
모두가 그에게 집중하는 건 하나의 권능이었다.
프로 해설자는 그 모습에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해 먼저 입을 열었다.
- 무슨 일인가요. 이번에 이한성 영웅은 혼돈의 입구라는 곳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했죠?
- 맞습니다. 지하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티탄신족이 깨어나 지상으로 나오려는 것을 막았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 거신 사냥꾼이 이름을 알리게 되었죠.
- 그 아름다운 에필리아 거신 사냥꾼님이 용병 등록을 하고 검은 땅으로 가신 게 모두 이한성님 덕분이라는 거죠?
- 하하. 맞습니다. 최근 마계에서 올라온 티탄의 피를 이은 마계 흑거신을 퇴치하는데 힘을 쓰고 있습니다. 덕분에 영웅 협회나 31번 구역은 한숨 돌렸다고 하네요.
그때, 한성이 종이에 쓴 걸 들어 올렸다.
- 아, 이게 뭐죠······?
- 좋아요와 구독······?
아하하하하!
관객들은 한성이 종이에 적은 글자를 보고 웃음이 터졌다. 역시 이한성이라며 관종은 관종이라며 좋아했다. 일반 사람이 그랬으면 욕을 먹을 만한 짓이었는데도 한성이 하면 오히려 좋아하는 정도까지 온 것이다.
그러다 시합이 시작되었다.
-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아함, 졸려.”
이한성은 게임이 시작되자 재미있는 게 끝났다고 졸려했다. 옆에 있던 길이현이 그러지 말라고 타박했다. 그래도 한 번 게임을 뛸 때마다 수백억의 수익을 내는 팀이다.
게다가 올해의 우승 후보지 않은가.
“그래도 자주 보러 오면 좋아할 겁니다. 그래도 소유주는 이한성님이라서요.”
“내가 좀 바빠서.”
“그래도요.”
“그래야지, 그래도 생각보다 빠르게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한성은 졸려하는 것 같으면서도 구울들의 정보를 모두 열람했다. 몇몇은 지닌 모든 이능을 개화한 상태였으며 잠재능력도 빠르게 채워가고 있었다.
그런데 몇 개체가 스스로 지닌 능력의 반도 꺼내지 못하는 걸 발견했다.
“쟤는 누구죠 가장 뒤에서 염력하고 마법 쓰는 애.”
“리아라고 해요. 지능이 굉장히 좋고 판단력과 전황 인지 능력이 좋아서 리더를 맡고 있죠.”
“음, 조금 아쉽긴 하네요.”
“······잠재력이 900대 초반에 이능도 저 정도면 출중한 편입니다. 물론, 드래곤 슬레이어 전투 멤버에 비하면 조금 떨어질 수밖에 없죠. 대신······.”
“아니요. 잠재력을 다 개화하지 못해서 하는 말이에요. 아, 그리고 저기 가장 앞엔?”
“발록의 DNA로 만든 구울인데 메인 탱커입니다. 마법 저항 능력이 뛰어나고 육체 능력도 상당하죠. 월드 리그에서도 최상급에 속합니다.”
“쟤도 뭔가 부족한데.”
“약간 멍청하긴 해도 전투에 있어선······.”
“전투에 있어선 아주 완벽하죠. 본능적으로 모든 위기를 돌파하고 상대의 틈을 절대 놓치지 않으니까요.”
“그럼······?”
“더 잘할 수 있어요. 다른 팀원하고 교류가 필요할 거 같네요. 끝나고 한 번 만나봐야겠어요.”
“좋죠. 한 번쯤 만나서 기 살려주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둘이 그렇게 대화하는 사이, 두 팀의 전황은 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스타 케인즈가 강하다곤 하나, 용혈과 발록의 DNA를 감당하긴 힘들죠. 거기에 저희 구울의 왕이 직접 만든 구울이니까요.”
후아라는 발록 구울은 상대의 울트라를 완전히 제압하고 있었다. 뒤에서 마법과 이능이 후아에게 닿았지만, 마법은 무시했으며 이능은 뒤에 리아에게 막혔다.
가장 앞의 탱커가 단단하니 뒤에 있는 딜러와 보조들은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이기고 있다.
하지만 한성의 눈엔 부족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능을 추가하거나 마법 능력이 부족한 구울은 마법을 알려주고 장비가 부족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대로도 우승은 가능할 지도······.
“아, 이번 우승 상품이 [역병 걸린 순교자의 심장]이었나? 참 특이하죠? 말로는 어마어마한 마력이 내장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런 걸 어떻게 쓰는지······?”
“네? 순교자의 심장이요?”
“네, 정확히는 역병 걸린 순교자의 심장.”
“하아.”
한성은 잊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 시점에 월드 리그를 우승하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역병 걸린 순교자의 심장]은 크툴루 신화가 내려오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잡힌 레벨 8의 신격. 그러니까 비천함을 벗어난 온전한 신격의 보스급 몬스터 [역병 걸리 순교자]를 사냥하고 나온 부산물이다.
당연히 대단한 물건이다.
레벨 8이라는 어마어마한 강자의 심장이니까. 아마 그 온전한 시체보다 값진 물건이겠지.
하지만 이건 그냥 값지다고 말할 수준의 물건이 아니었다.
이게 다음 [혼돈의 파편]을 찾기 위한 중요한 단서였다.
“이번에 반드시 우승해야겠네요.”
한성은 대충 하려던 마음을 다잡았다.
< 드래곤 슬레이어.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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