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신 사냥꾼. >
한성이 가장 먼저 한 것은 마계의 잠들어 있는 거신 사냥꾼을 깨우는 것이었다.
칙칙한 마기로 가득한 회색의 하늘. 그리고 죽어버린 땅과 꿈틀거리는 마수들이 눈에 보였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뜨거운 온도에 습도까지 높아서 움직이는 것 자체가 답답하다.
“확실히 파편이 있으면 움직이기 편하단 말이야.”
이 [혼돈의 파편]은 사용할 줄 모르는 이들이 본다면 그저 거대한 에너지를 품은 금속으로 생각할 거다.
하지만 제대로 사용한다면 모든 이능을 대폭 상승시켜 사용할 수 있으며, 신격을 한 단계 높이거나 공간과 시간에 관련된 저항성 등 말 그대로 이 세계의 기본적인 규칙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된다.
“으흠, 여기가 파블로 공작가의 땅이었나.”
전 회 차에서.
그것도 아주 오래 전에 마계에서 5년 정도 생활했었다.
그때는 막 신격을 얻었을 때라, 이런 공작의 직위를 가진 귀족 마족의 땅에 오면 좀 강한 경비병에게도 잡히고 그랬다.
지구에 올라온 마족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격’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키잉.
무언가 이곳에 시선이 닿았다.
아주 먼 곳에서 도달한 시선이었으며 그 시선엔 경계과 살기가 담겨 있었다. 그렇지만 공작가 방향은 아니었다.
‘누구지?’
찰나의 순간. 본능적으로 위험이 감지되며 머리를 뒤로 꺾었다. 이번 포르투나와의 게임에서 ‘감각’ 수치를 급격히 올렸기에 가능한 회피였다.
‘뭐야?’
당황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먼 곳에서 이런 속도로 공격을 한다고?
게다가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떤 투사체가 날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날카로운 무언가 날아와 한성을 공격한다. 집요하게 머리를 노렸고 한성은 계속 피했다.
한성은 [관종은 어디에나]를 발동하며 대상이 있을 법한 위치에 환영을 만들어 시야를 공유했다.
“에필리아.”
한성은 헛웃음이 나왔다.
운이 좋아도 이렇게 좋을 줄이야.
이곳에서 거신 사냥꾼을 깨우기 위해서 한참을 고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못해도 삼일은 마계 곳곳을 찾아 헤매야했겠지. 루시퍼와 무황의 결투가 일주일 이상 지속될 것이니 그 정도는 괜찮았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그녀를 만나버렸다.
에필리아, 마족 사이에 숨어 사는 거신 사냥꾼의 후예를.
한성은 공간에 구멍을 뚫었다.
[초끈]으로 변한 한성의 이능은 그가 지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거의 희미하게 만들어 버렸다.
팟.
그 자리에서 사라진 한성은 에필리아의 위로 이동했다. 하지만 그녀는 빠른 반응 속도로 한성에게 활을 겨눴다.
“잠깐. 에필리아.”
한성의 말에 에필리아가 움찔했다.
“······네가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넌 왜 다짜고짜 공격한 거야?”
“이유가 있나? 인간이 마계에 있으니까.”
한성은 반박할 말이 없었다.
서울 근교에 몬스터가 나타나면 인간도 몬스터를 죽이고 볼 테니까.
“그래서, 인간이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그녀는 수상하다는 듯 한성을 유심히 바라봤다. 보라색 머리칼과 하얀 피부는 그녀를 인간처럼 보이게 했지만, 머리에 돋아난 뿔과 등에 솟은 날개는 그녀가 마족처럼 보이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인간도 아니고 마족도 아닌 거신 사냥꾼이라는 종족이다.
오로지 태초의 신이 티탄족을 사냥하기 위해 만든 생명체. 마기를 사용하지만, 육체는 마족과 완전히 다른 종족. 그렇지만 마족과 똑같이 생겼기에 마족 사이에 숨어 살 수 있는 종족.
‘한 명에서 두 명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잠에 든 상태.’
존재 자체가 소멸되어가는 중인 종족이다.
하지만 그 무력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 특히, 거신족에게 있어선 재앙과도 같은 상성을 지녔다.
“난 ‘너희’를 찾아온 거니까.”
순간, 에필리아가 마기를 끌어올리며 한성을 경계했다.
“도움이 필요하다.”
“······넌 누구지? 누군데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빨리도 물어본다.”
“대답이나 해.”
“나 인간이면서 [관종의 신]이라는 이명을 지닌 신격이다.”
“관종? 그건 뭐야.”
“간단하게 말하면 ‘관심’의 신이라는 거야.”
“뭐, 그런 또라이 같은 신격이 다 있는 거야?”
“······하여튼, 구독과 좋아요······, 아니, 그게 아니지. 너희 종족이 할 일이 생겼다.”
“이런 미친놈.”
에필리아는 이제 진짜 한성이 미친놈이라고 확고하게 믿는 듯 보였다.
“티탄족. 즉, 거신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내뱉은 말.
“그럴 리 없다.”
“너희들은 거신족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했겠지. 티탄의 거울을 통해서 말이야.”
“······.”
“그건 깨진지 오래다. 오래 전, 히페리온의 후손인 헬리오스가 눈을 바쳐 티탄의 거울에 환영을 심어 놓은 거지.”
“······!”
“그들은 언제든 움직일 수 있다. 너희가 알아채기 전에 그들은 천외천에 닿아 있겠지.”
“······그걸 어떻게······.”
당황할 만 할 거다.
이런 정보를 아는 자는 거신 사냥꾼과 몇의 신뿐이었으니까.
‘거신 사냥꾼’은 티탄족을 지하 깊은 곳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의무가 있다. 만약 그들이 천외천에 닿게 된다면 거신 사냥꾼도 티탄족을 이길 수 없게 되지만,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그들을 막아서며 죽어야 한다.
그것은 그들 존재의 이유이니까.
‘불쌍한 종족.’
그런 종족이지만 거신이 지하에 갇히게 되자, 신들에게 잊혀서 그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삶을 살았고, 이제는 종족의 존속 자체가 위험해지고 있었다.
그들은 오로지 거신 사냥을 위해 태어난 이들이기 때문이다.
“루시퍼가 혼돈의 끝을 뚫으려 한다.”
“······?”
“이미 혼돈의 끝에 닿아서 파편을 얻으려 하고 있지. 너희가 받아야 할 숭고한 희생의 보상을.”
“너 이 자식!”
화악.
에필리아의 동공에 검은 마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거신 사냥꾼의 특성 중 하나인 검은 사슬이 하늘 위로 떠오른다. 역시 거신마저 가둘 수 있다는 거신의 사슬답게 강대한 위용을 자랑했다.
하지만 한성은 당당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가 한성을 공격할 리 없다.
그들은 신에게 잊혔지만, 거신을 사냥해야 한다는 의무는 하나의 신념과도 같았고 존재의 이유와도 같았다.
“너희의 도움이 필요하다.”
신들은 ‘명령’을 했을 거다.
들을 리가 없지, 그 신들의 할아버지 격이 오로지 거신을 사냥하기 위해 만든 게 이들이었으니까. 아무리 신이라고 ‘명령’으로 이들을 부릴 수 없다.
“······.”
에필리아는 말없이 사슬을 거뒀다.
그리곤 혼란스러움이 얼굴에 가득했다
한성은 그녀가 왜 고민하는 지 안다.
그녀는 족장의 딸이자 단 한 번도 거신을 잡아본 적 없는 거신 사냥꾼이다. 당연히 거신을 잡아보지 못한 거신 사냥꾼은 그들의 족장이 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는 신에게 버림받아 인간도 아니며 마족도 아닌 애매한 위치가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신은 너희를 잊었지만, 우리는 너희를 잊지 않겠다.”
거신 사냥꾼의 마계에서의 위치는 절대 좋지 않다.
깨어있는 몇 명은 스스로의 정체를 숨기고 살아간다. 마족들은 거신 사냥꾼을 무서워하면서도 신에게 잊힌 종족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게 천신이든 마신이든 창조신이든.
신에게 잊힌 이상, 이 세계에서 사라지는 건 시간 문제인 것이다.
“모든 존재는 누군가에게 기억되어야 하지.”
아주 기본적인 문제다.
동물, 몬스터, 인간, 다른 종족. 심지어 식물까지도.
누군가에게 기억되어야 존재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거다.
그게 업적이고, 그것들이 모여 격을 이루며.
그 격이 쌓이다보면 신격에 닿게 된다.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되뇌어지는 것으로 이 세계에 확고한 자리를 잡는 것이다.
반대로,
“잊히면 사라지게 된다.”
어떤 만화에서 유명한 대사가 있다.
사람이 죽을 때는, 숨을 거뒀을 때가 아닌 잊힐 때라고.
그 말이 맞는 거다.
거신 사냥꾼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을 창조한 신에게조차 말이다.
“반드시 신에게 기억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다른 신격들이 그렇다.
천사와 마족은 자신의 신에게 기억되어야 하는 존재이며, 다른 신격은 인간이나 다른 생명체에게 기억되어야 하는 존재다.
“우리와 함께하자.”
에필리아는 떨리는 눈동자로 한성을 바라봤다.
세상 어디에도 사라지고 싶은 존재는 없다.
* * *
무황의 황금빛 마력과 루시퍼의 검은 마기가 혼돈 전체를 밝혔다. 광휘(光輝)의 폭류(暴流)는 혼돈 전체를 흔들었다. 곳곳의 혼돈의 괴수가 죽어나갔고 군주의 성역(聖域)이 깨지기도 했다.
혼돈의 끝을 두고 이뤄지는 싸움이다.
루시퍼는 악마왕 사탄답게 이곳의 그 누구보다 강했다. 하지만 그를 막는 무황과 그의 일행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거기에 세이건과 패연까지 합류했으니 루시퍼가 밀릴 만도 했다.
하지만 루시퍼는 홀로 모두를 막아냈다.
상상도 하지 못할 무력(武力)이었다.
“허억. 허억. 역시 강하군.”
금안의 외팔 무투가, 무황의 말이었다.
루시퍼는 도도하게 서서 무황을 시작으로 무희, 포식자, 마룡, 투신. 그리고 뒤늦게 합류한 세이건과 패연을 바라봤다.
“어째서 이렇게 날 막는 것인가.”
“말 했잖아. 지금 이곳이 뚫리면 위에 신들이 내려올 거라고. 밑에 숨어있던 거신들은 지상에서 신들과 싸울 거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파편은 네가 가지고 천외천으로 올라가겠지.”
다 맞는 말이라 루시퍼는 입을 열 수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그 뒤를 모른다.
“그럼 질문 하나 하지.”
루시퍼는 오랜 전투에도 전혀 지치지 않은 모습이었다. 오히려 성스럽게 보이는 그의 마기와 신격의 향연은 더욱 강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내가 지금 이곳을 통과하지 않는다면, 누가 이곳을 통과하여 파편을 얻겠는가. 너와 같은 인간? 아니면 천사? 그것도 아니면 용마족이나 마룡족?”
“······그건.”
“그 누가 됐건, 이곳을 뚫을 것 아닌가?”
“그건 내가 막을 거다.”
무황이 그렇게 말했다.
“그럼 네가 죽는다면? 평생 이곳에 있을 것인가?”
“······내 힘이 닿는다면.”
“천외천에서 이곳을 통해 내려올 거란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가? 이 파편은 다시 신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고, 더 이상 신을 막은 존재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겠지.”
“인간은 강하다. 수십 년, 아니. 어쩌면 수백 년이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신이 내려오기 전에 우리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하하하하, 그럼 신은 천외천에서 가만히 있을 것 같은가?”
“중요한 건, 당장은 신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지.”
“내가! 그래서 내가 그 역할을 하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루시퍼의 외침과 동시에 혼돈이 다시 한 번 흔들렸다.
혼돈의 끝은 이들의 전투에 의해 약해지고 있었다. 루시퍼는 끊임없이 끝을 자극했고 다른 이들을 루시퍼를 밀어낼 수 없었다.
“루시퍼, 당신 혼자는 불가능하다.”
세이건이 입을 열었다.
용혈인 용마족과 마룡족은 안다. 신이 얼마나 강한지. 아무리 파편을 지닌다고 해도 오랜 세월동안 신의 좌에 앉아있던 존재를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신이 한둘인가?
수백 수천 개체의 신이 존재한다.
하나같이 모두 천외천의 보호를 받으며 위대한 신격 이상의 격을 지닌 이들인 거다. 루시퍼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지만, 그들 모두를 상대할 순 없다.
서로의 의견은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내가 모두를 지킬 순 없겠지. 하지만 멸망은 막을 수 있다.”
“모두를 지켜야 한다. 아니, 소수라지만 희생을 감내해선 아 안 된다.”
“그건 불가능하다.”
“해 보지도 않고 왜 불가능하다는 거지?”
루시퍼는 웃음이 났다.
해 봤다. 그것도 수백 번, 수천 번. 그리고 수만 번 이상. 항상 이 세계는 멸망했고 모두를 지킬 수 없었다. 이들이 그런 사실을 알까?
루시퍼는 이들을 이해한다.
그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젠 아니다.
“너희들은 모른다.”
이럴 때마다 말하고 싶었다.
이미 해봤다고, 그래서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이런 고비가 있을 때마다 사실을 말했다면 루시퍼는 이미 소멸했을 것이다.
이러니 서로 싸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더 말이 필요 없겠군.”
무황이 황금빛 기류를 만들어 루시퍼의 신격을 밀어냈다.
하지만 루시퍼는 이제는 더 시간을 끌 수 없었다.
화악.
루시퍼는 악마왕 사탄이다.
그는 72 악마를 소환할 수 있었으며, 그들은 언제나 루시퍼에게 복종한다. 루시퍼가 그들에게 희생을 부탁하고 강요하는 군주일지라도.
검은 기류가 혼돈 전체를 삼키기 시작했고 사방에서 거대한 신격이 느껴졌다. 그것의 몇은 마계에서, 몇은 지상 깊은 곳에서, 몇은 천외천에서 이곳으로 향했다.
본체는 아니다.
하지만 루시퍼의 아래서 그들의 격은 대폭 상승한다.
“이젠 끝내자.”
두 무리가 격돌했다.
콰아아아아앙!
신들의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 * *
그 시각, 지하 깊은 곳.
티탄의 감옥. 거신의 무덤이라 불리는 무저갱(無低坑)에서 눈을 뜨고 있었다. 그들을 누르던 혼돈은 흔들렸고 희미하게 느껴지는 ‘신’의 기운이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티탄 히페리온의 자식인 헬리오스는 텅 빈 눈동자를 꿈틀거렸다.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자신의 눈을 바쳐 거신 사냥꾼을 속였으며 아무것도 없는 이 무저갱 속에서 옛 티탄의 힘을 회복하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신들조차 감지할 수 없는 속도로 말이다.
번뜩.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무저갱.
그곳에 하얀 두 눈이 떠졌다.
번뜩!
그 눈동자는 수십 개에서 수백 개로 늘어났다.
< 거신 사냥꾼.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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