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르투나의 의뢰. >
진훈은 80층에 진입했다.
평수로 따지면 100평이 넘어가는 최고급 호텔 같은 이곳이 진훈이 지내는 숙소다. 벽엔 수백억 상당의 명화가 걸려있고 거실 장엔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위스키와 와인이 진열되어 있다. 매일 세 끼는 유명한 쉐프가 직접 와서 풀코스로 제공하고 원하면 여자와 마약까지 모든 게 무료로 제공된다.
하지만 진훈은 먹을 것 외에는 손대지 않았다.
그의 목적은 최종 층의 우승자가 되는 것이니까.
진훈은 황금빛 마력을 몸에 둘렀다. 바다와 같이 깊고 넓은 마력을 지니고 있지만, 결코 넘치지 않는다. 잔잔하게 몸의 테두리를 감싸며 진훈을 지킨다.
이 마력은 아버지에게 타고난 마력이다.
아버지도 이 황금빛 마력으로 수많은 사람을 구하며 수많은 강자를 이겨왔다.
그리고 이 투신의 탑에서 그는 무황(武皇)이라 불렸다.
“무황의 아들인가?”
한쪽 팔이 기계로 되어 있는 남성이었다. 전신엔 흑색 마력이 흐르고 있었고 쭉 찢어진 두 눈은 그를 굉장히 얍삽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꼭 대답해야 합니까?”
이곳으로 오는 도중 많은 사람이 같은 질문을 했다.
진훈의 아버지인 진강철은 투신의 탑에서 최강이었다. 벌써 수십 년 전 일이다. 진훈이 태어나기도 전, 진강철이 젊었을 때의 일이다.
“하하하하. 대답할 필요는 없지. 그냥 궁금했다. 한때, 이 탑의 최강이었으며 절대자라고 불렸던 무황의 아들이라.”
“말이 기시네요. 빠르게 시작하죠.”
진훈의 말에 사회자가 관중을 둘러보곤 결투의 시작을 알렸다.
그는 그 자리에서 사라져 연기로 변했다. 진훈은 그를 감지할 수 없었다. 눈속임이 아니라 정말 연기로 변해버린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방에서 예기가 느껴진다.
진훈은 본능적인 감각으로 몸을 비틀며 주먹을 휘둘렀다. 황금빛 기류가 허공을 수놓으며 몇 개의 공격을 막아냈고 몇 개의 공격은 피했다.
하지만 기다라 선 하나가 진훈의 뺨에 상처를 냈다.
- 이걸 이렇게 막는다고?
“재밌네요.”
진훈은 씨익 웃었다.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
진훈이 이곳까지 올라오면서 어느 정도 강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시시했다. 한성과 함께 다니며 신격과 싸워 왔는데 그 이하의 존재들과의 전투는 아쉬울 수밖에.
그런데 이젠 달랐다.
역시 마의 80층이라고나 할까.
신격을 뿜어대진 않았지만, 그의 무력은 능히 하위 신격을 잡고도 남을 것이다.
진훈은 황금빛 마력을 뿜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그러자 상대도 흑색 마력으로 진훈의 마력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파각.
진훈은 바닥을 박차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콰아아앙!
허공을 가격한 진훈의 주먹은 경기장 전체에 충격을 선사했고 같은 공간에 있던 검은 연기와 흑색 마력은 불타올랐다.
순간, 진훈의 머릿속에 무언가 침투했다.
흑색 마력이었으며 정신을 조작하는 공격이었다.
원래의 진훈이었다면 정신 공격에 무력했겠지만, 이젠 다르다. 그 어떤 시련에서 이미 정신 공격에 대한 면역이 생겼으며 투신의 탑에서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며 이런 공격에 대항하는 방법을 깨달았다.
진훈은 양손 모두 주먹을 쥐곤 높이 올렸다가 바닥을 내려쳤다.
콰아아아아아아!
기이한 황금빛 마력의 폭류(爆流)가 경기장 전체를 휘감으며 바닥이 박살나고 경기장을 감싸고 있던 결계가 출렁거렸다.
“이렇게 불리해질 땐, 경기 전체를 쓸어버리면 되지.”
한동안 계속되던 황금빛 폭풍에 상대는 이미 모든 힘을 잃은 후였다.
사회자가 진훈의 승리를 선언했다.
진훈은 마력을 거두고 경기장을 나왔다.
왠지 모르게 한성의 뒷모습 같았다. 자연스럽게 시선을 의식하며 퍼포먼스를 하는 관종의 신 말이다.
* * *
“그래서, 지금 어디라고?”
진훈은 한별과 영상 통화를 하고 있었다.
홀로그램 영상 안에는 한별이 ‘레드 오우거’의 대장과 대원들이 수백 미터가 넘어가는 자이언트 웜을 사냥하고 있었다.
- 의뢰가 들어왔어. 여긴 러시아고.
무언가 대단한 물건이 러시아에 등장했다고 한다.
앞으로 한국에서 사용되는 전기를 100년 이상 책임질 수 있으며 한국 전체를 감싸는 국가급 대단위 결계를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는 물건.
작은 하얀 금속이었는데, 이게 어디서 어떻게 나온 것인지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저 유명한 관찰의 이능을 지닌 이가 발견해 정연까지 흘러들어간 것이다.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 응, 앗. 잠깐.
멀리 있던 자이언트 웜이 레드 오우거 대장을 피해 한별에게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포위망을 뚫지 못하자 가장 만만해 보이는 곳으로 탈출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봤다.
지척까지 도달한 자이언트 웜에게 손을 뻗자 자이언트 웜은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저 도망치는 것으로 산을 부수고 지진을 일으켰던 대단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한별이 손을 비틀자 자이언트 웜의 머리가 분리되었다.
- 됐다.
“······참 간단하게 잡는구나.”
진훈은 새삼 감탄했다.
원래 강했지만, 저런 식으로 간단히 잡다니. 아마 진훈이었다면 그래도 달려 나가 주먹을 몇 번은 휘둘러야 했을 거다.
- 뭐, 내 특성 덕분이지.
“나도 더 빨리 강해져야겠다.”
문득 한성이 떠오른다.
그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진훈과 한별은 같은 생각인 것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둘을 뛰어 넘었다.
아카데미 신입생으로 들어올 때 실기 시험 때부터였을 거다. 압도적인 1등으로 시험을 마치며 어떤 수업을 하든 다른 이들을 가르치듯 따라잡을 수 없는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뿐인가.
항상 위험이 닥치면 한성이 도와줬다.
그리고 완벽하게 해결하기도 했다.
그가 없었다면 둘은 이곳에 있지도 못했을 거다. 수십 번도 더 죽을 뻔 했었고 그때마다 한성은 친구들을 위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 들었다.
“한성은 뭐하고 있으려나.”
- 그러게, 북쪽에서 프로스트 리치를 잡고 나서 연락이 없네.
쿠우우우웅.
그때 무언가 이상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것은 한별의 영상에서였다.
그리고 잠시 후.
쿠우우웅.
이번엔 진훈에게 직접적인 진동이 전해졌다.
- 뭐지?
한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진동이 느껴진 곳을 바라봤다.
“진동이 여기까지 왔어.”
아마 같은 곳에서 시작된 진동일 거다.
한별은 먼 하늘을 바라봤고, 그곳에서는 무언가 몰려오고 있었다.
검은 구름. 아니, 연기. 그리고 그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날갯짓을 하는 무언가. 문제는 그것들 하나하나가 거대한 신격을 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기괴한 비명을 내지르며 날아오고 있었다.
- 훈아.
“어.”
- 끊어야겠다.
진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영상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거대한 존재감이 투신의 탑 안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진훈은 이미 끊겨 검게 변한 화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
쿠우우우웅.
다시 한 번의 진동.
심상치 않다.
진훈은 스마트워치를 살폈다.
다른 친구들에게 온 비상 연락이나 한성에게 온 연락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 띠링.
마침 연락이 왔다.
그것은 한성이었다.
- 띠리리리링.
그리고 모든 친구들에게 비상 연락이 도착했다.
진훈은 자연스럽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성의 방송을 켰다.
역시나, 그는 생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상상 이상의 전쟁 속에서 말이다.
* * *
신족.
대부분의 존재는 신격을 얻기 위해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업적을 세우며 자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힘쓴다. 그런데도 신격에 닿지 못하는 존재가 태반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신족으로 태어난 이들이 있다.
제우스를 중심으로 한 크로노스의 자식들이 세상을 다스리기 전엔 티탄신족이라는 이들이 세상을 다스렸다. 그들은 크로노스의 자식들에게 물러났으며.
위대한 신격을 박탈당했다.
그리곤 신들의 세상에서 쫓겨나 지하로 들어가게 된다.
“그 이야기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한성은 포르투나가 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몰랐다. 분명한 것은 마지막 게임이 이와 관련된 것이라는 것 뿐.
“유명한 일화니까.”
“······.”
“그런 전쟁은 아직도, 지금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지.”
포르투나는 말없이 듣고 있는 한성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는 석상의 눈이지만, 한성의 속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루시퍼는 그 전쟁을 끝내고 싶어 하고, 신들은 이 전쟁이 지속되길 원하지. 그리고 지하의 티탄족은 루시퍼가 혼돈의 끝을 뚫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한성은 멈칫했다.
그런 에피소드가 없지는 않았다.
크로노스의 자식들과 티탄의 전쟁은 종장에 다다라서야 일어났으며, 루시퍼가 그 중간에서 신들을 때려잡은 것은 종장조차 끝나갈 때였다.
그런데 지금 그게 일어난다고?
전 회차에선 루시퍼가 혼돈을 뚫었어도 티탄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혼돈에 천외천의 신격이 내려오고, 몇몇 존재는 위로 올라가며 더욱 혼란스러운 혼돈이 만들어지는 것뿐이었다.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군.”
“······그렇게 되면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막아야겠지. 인간의 땅이 신들의 전장이 되지 않도록.”
포르투나는 한성의 생각을 읽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이 상황이 재미있는 것인지 미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 그럼 마지막 게임을 시작해 볼까?”
- 마지막 게임이 시작됩니다.
- 당신은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의 ‘의뢰’로 티탄족의 침공을 막아야 합니다.
- 포르투나가 당신에게 [혼돈의 파편]을 제공합니다.
- 이 의뢰가 성공할 시에 [혼돈의 파편]을 완전하게 소유할 수 있습니다.
“······?”
한성은 당황했다.
처음 있는 전개였으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상황을 본 적도 없었다. 예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라는 거다.
화악.
포르투나의 손에 강한 빛을 뿜는 [혼돈의 파편]이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한성에게 내밀었다.
“나의 의뢰를 받아드리겠나?”
처음엔 당황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보다 좋을 순 없는 상황이다.
“못 먹어도 고죠.”
“······?”
“당연히 받아들이겠다는 말입니다.”
한성은 씨익 웃으며 [혼돈의 파편]을 받았다.
그러자 포르투나가 당황했다.
이렇게 쉽게 받을지 몰랐던 거겠지.
사실 한성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다른 신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직접 해결하지 못하고 한성에게 의뢰한 걸 거다.
아니, 한성을 포함에 수십 명에게 의뢰했을 수도 있다.
“가장 간단한 건 루시퍼를 막는 건데.”
다들 생각하는 쉬운 방법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 지금 루시퍼와 무황의 전투에 껴서 루시퍼를 막는 것. 당연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한성은 그 전장 근처에 가는 것도 힘들다.
그들의 전쟁은 정말 신들의 전쟁이었으니까.
두 번째, 이 [혼돈의 파편]을 소모해 루시퍼가 혼돈을 뚫고 넘어갈 때, 다시 혼돈을 닫는 것이다.
티탄족이 기다리는 것은 혼돈에 구멍이 뚫리는 것이니까.
당연히 이건 안 된다. 이 파편이 아직 한성의 소유도 아니었으며, 파편을 이런 곳에 소모하는 것은 낭비다.
마지막 방법.
“티탄의 전력을 줄이는 것.”
쉽지는 않다.
그 와중에 많은 희생이 생길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그거뿐이다. 전력이 줄어든 티탄은 감히 신들에게 대항하지 못할 것이며,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 때까지 깊은 곳에서 잠에 빠져들 거다.
‘사냥꾼을 불러야겠는데.’
아주 오래전, 티탄족에게 멸망당한 종족이며 마계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는 거신 사냥꾼이라 불리던 이들이 있다. 너무나 오래전이었기에 그들을 기억하는 존재는 거의 없다.
신들도 그들에게 접촉해 봤을 거다.
눈엣가시처럼 언제든 자신들을 끌어 내리고 위대한 신격에 올라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존재가 바로 티탄족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을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신들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52년 동안 이 세계의 모든 것을 경험하고 봐 왔던 한성은 다르다.
한성은 파편을 손에 들고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리고 지하에 숨어있는 티탄이 반으로 줄어들······ 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없다. 무슨 타노스도 아니고 말이다.
“아, 마계는 오랜만인데.”
아무리 공간 관련 이능이 있어도 마계는 가기 힘들다. 굉장히 역한 곳이라 가고 싶지도 않고 말이다. 하지만 이 파편이 있다면 마계 정도는 쉽게 오갈 수 있다.
한성은 마계로 향했다.
< 포르투나의 의뢰.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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