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 >
이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찬란한 어둠 속에 잠든 위대한 신격. 시공간을 뒤틀고 하늘을 끌어내리려는 검고 어두운 미증유의 힘. 강한 힘과 굳센 신념은 하나의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하늘에게 버림받아 땅으로 내려온 천사. 타락천사이자 대악마. 모든 악마의 왕이자 사탄이라 불리는 그 이름.
루시퍼.
그는 온통 검은 세상에서 하얗게 빛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혼돈의 끝에 도달한 그는 입을 열었다.
“신이시여.”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루시퍼는 계속 물었다.
“왜 저희를 버리신 겁니까.”
12쌍의 날개. 길고 거대한 뿔. 휘날리는 사탄의 망토. 배신과 절망에 붉어진 눈동자. 무력감에 무너진 한쪽 가슴과 불안정한 영혼까지.
루시퍼는 하늘을 향해 외쳤다.
“왜, 왜 끊임없이 멸망하는 이 세계를 가만히 두고 보시는 겁니까.”
항상 묻고 싶었던 게 있었다.
물어도, 물어도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소중한 존재가 죽고, 사랑하는 이가 소멸한다. 그것은 예정된 운명이었으며 피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저 알고 싶었을 뿐입니다.”
궁금했다.
대답을 들을 수 없어서 직접 알아보려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루시퍼는 하늘에서 버려졌다.
그를 따르던 수많은 천사와 함께.
“그런데 그 때문에 저희를······.”
한탄이다.
대답이 없을 거란 사실을 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루시퍼는 신을 믿었다. 믿었기에 물었고 신의 땅을 밟았으며, 그 때문에 인간계에 떨어져 타락하면서까지 신을 믿었다. 단 한 번도 미워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다시 한 번 세상은 멸망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제는 막아야 한다.
지금 흘러가는 ‘끝’은 마지막이다.
더는 다시 시작되지 않을 세계의 마지막.
루시퍼는 그걸 보고 싶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아니, 용서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저 하나가 사라진다고 해도 이번 세계만큼은 반드시 구하겠습니다.”
루시퍼는 손을 뻗었다.
그 누구도 넘어갈 수 없었던 혼돈의 끝을 부수기 위해서였다. 수많은 인간과 생명체를 이곳을 끌어들여 타락시키기 위해 하늘에서 만든 혼돈.
그의 손에서 혼돈보다 검은 힘이 뿜어졌다.
“멈춰라.”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안의 외팔 무투가]라는 이명을 지닌 무황(武皇)이었다. 그의 옆으로는 그와 같은 인간인 ‘무희’, 마룡족의 돌연변이이자 배신자로 알려진 ‘마룡’, 용혈의 천적이자 만들어진 생명체 ‘포식자’. 그리고 발록의 육체를 지닌 인간 ‘투신’이 있었다.
“진강철.”
루시퍼는 그를 바라봤다.
‘이번엔 여기까지 왔구나.’
매번 마주치지만, 항상 같은 신념을 지니고 루시퍼를 적대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둘의 신념은 너무나 확고하게 반대 방향을 지향하고 있으니까.
“이번엔 일행이 늘었군.”
“또 이상한 말을 늘어놓는군.”
루시퍼는 그런 진강철을 바라보며 묘한 눈빛을 했다. 이 정도의 인물이면 기억할 만도 하다. 하지만 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은 연기로 나올 만한 게 아니었다.
“나는 너희와 싸우고 싶지 않다.”
“나도 싸우고 싶지는 않아.”
루시퍼의 말에 진강철이 대답했다.
“너희는 모른다.”
“내가 봤을 땐, 너도 알지 못해.”
“우린 천외천으로 올라가야 해.”
“우리라는 말 쓰지 마라. 겨우 악마 주제에.”
“언제까지 드높은 신격들이 하늘 위에만 있을 것 같은가?”
“루시퍼 네가 이 입구를 뚫는 순간부터?”
“내가 뚫지 않아도 언젠간 내려온다.”
“그게 수천 년이 될 수도 있지.”
“······.”
할 말이 없다.
겨우 수십 년이 남았을 뿐이다.
아니, 이번엔 더욱 짧다. 겨우 몇 년일 수도 있으며 겨우 몇 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말한다고 해서 그가 말을 듣지는 않을 거다.
루시퍼가 그를 막은 게 수십 번은 될 거다.
그를 죽이면 종장에 ‘하늘’을 막을 사람이 부족했으며, 그는 결코, 설득당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천기(天機)를 누설하면 거대한 제약이 루시퍼를 짓누른다.
가장 좋은 방법은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것뿐.
“······이번엔 조금 힘들겠는데.”
루시퍼는 이전에는 없던 ‘투신’이 합류한 것을 보며 말했다. 모두 드높은 신격을 코앞에 둔 강력한 존재들이다. 루시퍼가 아무리 위대한 신격에 올랐다고 해도 이들을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
이번엔 무조건 이 세계를 멸망에서 구해야 하니까.
진강철이 금빛의 향연을 일으키며 달려들었고 루시퍼는 짙은 어둠으로 그를 막아섰다.
콰과과과-
강대한 두 기류가 폭렬하며 혼돈을 뒤흔들었다.
* * *
한성은 패연과 세이건을 설득해 병력을 모았다. 아주 빠르고 정확하게. 베리알은 그것을 눈치챌 게 뻔했기에 알아도 막을 수 없게 만들어야 했다.
“성역의 입구는 제가 엽니다.”
베리알은 그 성향답게 성역을 꼼꼼하게도 막아뒀다. 가진 힘에 비해 과할 정도로 말이다. 그 덕에 아직 살아있는 것이니 베리알에게 손해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잘못 만났다.
한성은 베리알의 성역을 짓밟은 적이 있는 경험자였으며 베리알을 죽였을 때 얻을 업적과 패연과 세이건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였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
이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리고.
‘혼돈의 끝.’
입구가 열렸을지 열리지 않았을지는 모른다.
전 회차에 비해 많은 게 달라졌다. 다른 튜브의 영상을 보더라도 이렇게까지 빠르고 완벽한 진행은 없었다. 그렇기에 예상할 수 없다.
최대한 빠르게 일을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작전을 시작하겠습니다.”
한성이 조용히 읊조렸다.
작전은 간단하다.
쿠오오오오-
마룡족이 베리알의 성역을 때린다.
뒤에서 수백 마리의 마룡이 날아올랐다. 베리알의 성역에선 미리 알았다는 듯 악마와 혼돈의 악마. 그리고 여러 괴수가 쏟아져 나왔다.
콰과과과!
마룡족과 악마가 한 대 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마룡은 강하다. 홀로 수십 마리의 악마를 상대하고 혼돈을 머금고 자라난 혼돈의 악마까지 일대 일로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성역을 뚫을 순 없다.
그때, 마룡 몇 마리가 성역의 입구를 두드렸다.
역부족이다.
한성과 패연. 그리고 세이건은 아직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때를 기다린다.
마룡족이 우세하다.
하지만 성역이 뚫리지 않을 것을 알고 패연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베리알은 절대로 성역을 열지 않을 거다.
고오오오.
한성이 해룡을 불렀다.
아주 멀리서 불러낸 순수한 용혈이다. 물론, 인간이었던 신격이기에 여러 제약이 붙어 있다. 한반도의 수호를 위해서만 힘을 쓸 수 있다는 게 그중 하나.
하지만 한성은 이미 그 제약을 해결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검은 혼돈의 하늘 위에서 고개를 내민 해룡이 보였다. 동양의 용이며 여의주를 지닌 순수한 용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성의 힘이 성장할수록 해룡이 발휘할 힘은 더욱 커진다.
[오랜만이군.]
“반갑습니다. 지금 다른 말 할 시간이 없습니다. 저 악마의 성역을 부탁합니다.”
[크흠. 그건 안다. 중요한 건······.]
한성은 진심으로 궁금해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필요한 게······ 설마?
[그때, 그 방송이라는 게 꽤 재미있더구나.]
한성은 그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하긴, 슬슬 한성의 관종이 전염성이 짙어지고 있는 시기였으니까. 그것은 [나는 관종이다]의 특성이었으며 한성의 이명인 [관종의 신]이 갖는 ‘권능’과 같은 능력이었다.
한성은 말없이 방송을 켰다.
그러자 순식간에 수천만에 달하는 시청자가 들어왔다. 이제 이 세계관에서 한성을 능가하는 튜버는 없었다. 부동의 1위였으며 그 기록은 계속 갱신되고 있다.
‘현실에서 이랬었으면 완전 떼부자되는 건데.’
잠깐의 망상이었다.
해룡은 마음에 든 표정으로 격을 방출했다.
한성이 온전한 신격에 오르면서 해룡의 제약은 더욱 풀렸고 관심에 의한 버프로 배는 강해졌다.
고오오오-
해룡이 격을 방출함에 전장에 잠깐의 침묵이 내렸다.
모두 하늘을 올려다봤으며 성역마저 흔들릴 정도였다.
“······역시 해룡.”
비록 인간이었다고 하지만 순수한 용혈은 그 자체만으로 드높은 신격에 알맞은 자격을 얻은 거나 마찬가지다.
“······넌 도대체······.”
뒤에서 대기하던 세이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의 행보 하나하나가 충격이었다.
마룡족과 용마족을 손잡게 했으며 혼돈 안에서 악마를 죽이기 위해서 순수한 용혈을 불렀다.
솔직히 다 믿지는 않았다.
반반이라고 생각했다.
이 성역을 뚫고 베리알을 잡는 것? 용마족과 마룡족이 손을 잡는다고 해도 30% 정도의 확률이었다. 한성이 말했을 때도 50%는 겨우 될 거라고 생각했다.
전쟁에선 그것도 아주 높은 확률이었으니 참여했다.
그런데 이젠 80% 이상이다.
이대로 한성의 말을 들으면 100%. 그 말도 안 되는 확률이 될 것 같은 미친 망상이 들기도 했다.
“나옵니다.”
성역이 뚫릴 때를 대비해 베리알이 상주시키는 혼돈의 마족과 악마들이다. 은빛 갑주에 핏빛 무기를 든 악마들이 보였다.
저들은 베리알의 직속 수호 부대.
자신의 안전이 가장 중요한 베리알이 직접 힘을 주입하며 키운 악마들인 거다.
“세이건님, 용마족이 나설 때입니다.”
“알겠다.”
세이건은 마력을 흩뿌렸다.
그러자 먼 곳에서 대기하던 용마족이 날아올랐다. 파란 마력의 향연히 검은 혼돈의 하늘을 푸르게 물들였고 베리알의 수호 부대는 해룡에게 날아가다 방향을 틀었다.
“이제 성역은 비었습니다.”
베리알은 자신의 성역이 뚫릴 리 없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이 혼돈 안에서는 베리알의 성역을 뚫고 들어온 존재는 거의 없으니까.
우선, 성역은 다른 차원과 또 다른 차원에 숨겨진 공간이었으며 1초에 수만 번 이상 좌표가 달라지기 때문에 마법이나 공간 관련 이능으로 들어올 수 없다.
그런 모든 걸 안정화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면 힘으로 부숴야 하는데, 그런 강자는 정말 손에 꼽는다.
그리고 그런 존재는 베리알에게 신경도 쓰지 않는다.
“출발하겠습니다.”
한성은 패연과 세이건의 손을 잡았다.
[관종은 어디에나]라는 특성을 사용해 성역 안으로 분신을 만들어 보냈다. 그리고 그곳의 좌표를 고정해 시공간을 비틀어 통로를 만든다.
한성이 패연의 성역에 들어갈 때 사용했던 방법이다.
당연히 쉽지 않았다.
베리알의 성역은 베리알의 어마어마하게 공을 들였으니까. 들리는 말로는 성역에 쏟아부은 힘만 합해도 이미 완전한 드높은 신격을 얻어 천외천으로 갔을 거라고 한다.
“끄응.”
한성의 이마에선 땀이 흘렀다.
시간과 공간. 거기에 마법까지 최상위의 실력을 지녔으며 [관종은 어디에나]라는 쓸데없으면서 사기적인 특성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거기에 한성의 온전한 신격, 패연의 드높은 신격, 세이건의 드높은 신격까지 한성을 보호해주기에 가능한 일.
초당 수만 번 이상.
한성은 통로를 만들고 또 만들었다.
좌표의 고정은 계속 흐트러지고 만든 통로는 무너진다.
하지만 한성이 만드는 통로의 수가 수십만 번에 이르렀을 때.
휘리리릭.
팟!
셋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성의 시야가 꺼졌다가 돌아왔다.
완벽하게 베리알의 성역에 침투했다.
한성의 작전명 [빈집 만들어 빈집 털기]였다.
“너, 너희가 어떻게······?”
그의 앞에는 베리알의 당황한 얼굴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성역을 뚫고 들어온 것도 모자라서 베리알이 숨어있던 곳으로 직행했으니까.
이건 모두 이전 회차에서 한성이 베리알의 성역을 헤집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드디어 네놈을 만나는구나. 베리알.”
그에 반해 패연은 잘 됐다는 듯이 마기를 태우며 비늘을 부르르 떨었다. 가슴 깊숙이 박혀 있는 베리알의 마력. 분노를 증폭하며 그 증폭된 분노로 힘을 끌어올리는 악마의 권능.
이제 그 권능이 베리알을 향하고 있었다.
지금 상황이면 패연 혼자서도 베리알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세이건도 있으면 말할 것도 없다. 베리알을 지켜줄 악마들은 모두 성역 밖으로 향했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돌아올 확률이 있다······ 는 것은 사실 변명이다.
이 업적을 독식할 순 없어도 모두 줄 수는 없다.
한성은 스스로 회복하는 루시엘의 성검을 꺼냈다. 밤부는 완전히 파열된 덕분에 회복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이것으로 충분했다.
거기에 한성이 지닌 업적을 활성화했다.
화악.
셋의 격이 베리알의 격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한성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전 회차에서도 아마 제대로 밟혔었지.’
그때는 지금보다 한성이 훨씬 강했을 때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게다가 베리알에게 뒤통수를 몇 대나 맞았기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으니까.
그때 베리알이 묘한 표정으로 한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구나.”
“······뭔 소리 하는 거야?”
패연이 베리알의 뜬금없는 말에 더 화가 난 것인지 달려들 준비를 했다. 하지만 베리알은 그를 신경 쓰지 않고 한성만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화가 나고 슬픈 눈빛으로.
“네가 이번 세계의 ‘변수’구나. 나의 왕이 말씀하신 그 ‘희망’.”
“잠시만요.”
한성은 달려들려는 패연을 붙잡았다.
이건 들어야 한다.
성역 밖에 있던 악마들이 이곳에 몰려들더라도.
하지만 베리알이 그걸 허용하지 않았다.
그의 마기와 신격이 폭발했다. 대답할 마음이 없다는 듯이 대기를 찢으며 쇄도했다.
< 희망.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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