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옥의 대왕, 베리알. >
“믿어도 되는 거 맞지?”
“······나도 이젠 모르겠다.”
세이건의 허탈한 말에 패연이 피식 웃었다. 그리곤 순간 표정을 굳혔다.
‘내가 웃어?’
얼마 만인지, 패연도 스스로도 기억하지 못한다.
혼란스러웠다.
지난 30년 동안 분노에 피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이제와서 세이건과 이렇게 세이건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이상한 또라이 인간을 보며 웃는다.
“후- 후- 이래도 말 안 들어?”
이한성은 완드를 짓밟았다.
그냥 밟은 게 아니다. 마법을 사용해 완드에 걸린 마법을 하나하나 해체하며 밟아갔다. 용혈 사냥꾼은 한성을 보고 입을 쩍 벌렸지만, 한성은 어디 감히 대드냐며 잇몸을 주먹으로 때렸다.
잇몸 맞으면 겁나 아프다.
양치질하다가 칫솔로 툭 쳐도 얼마나 아픈데.
“용혈 사냥꾼. 아니, 완드야.”
[용혈 사냥꾼이 사용자를 째려봅니다.]
[용혈 사냥꾼이 약한 사용자를 겁박하려 합니다.]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이런 놈에겐 매가 약이다.
“내가 약하긴 하다만, 너는 나보다 약해.”
원래 이런 에고 무기는 초장에 버릇을 잡아야 한다. 서열 정리를 해야 한다는 거다. 어차피 한성이 주인이기에 용혈 사냥꾼이 한성에게 큰 해는 가할 수 없다.
약간의 반항 정도.
하지만 한성에게는 그 정도도 통하지 않는다.
“너 악플이라고 아니?”
한성은 씨익 웃었다.
그리곤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이거 보십시오. 감히 주인한테 반항하는 완드라니, 이거 때문에 저 죽을 뻔했습니다! 저기 마룡족의 로드와 용마족의 로드가 눈앞에 있는데 마룡족을 또 죽이려 했단 말입니다!”
한성은 선동을 시작했다.
물론, 한성이 반쯤 연기톤이었고 시청자도 계속 상황을 보고 있었다. 그저 한성에게 맞춰주기 위해서 ‘물타기’를 시작한 것.
- 저거 나쁜 놈이네.
- 어디 감히 자신을 만들어준 주인한테! 패륜이다. 패륜.
- 우리 한성님을 위험에 빠뜨려?
- ㅋㅋㅋㅋㅋㅋㅋㅋ단합력 보소.
- 완드 나가.
- ㅇㄷ ㄴㄱ
- 나가
- ㄴㄱ
.
.
.
채팅창은 한성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용혈 사냥꾼이 고개를 숙입니다.]
[용혈 사냥꾼이 이상하게 마음이 아픈 걸 느낍니다.]
[용혈 사냥꾼이 시청자를 보며 눈물을 글썽입니다.]
[용혈 사냥꾼이 한성을 애타게 바라봅니다.]
“어때, 이런 관심도 좋냐? 하긴, 무플보다 악플이라고 평생 악플이나 받으면서 살아라!”
[용혈 사냥꾼이 악플이 싫다고 합니다!]
[용혈 사냥꾼이 한 번만 봐 달라고 합니다.]
[용혈 사냥꾼이 아까의 긍정적인 관심이 좋다고 합니다.]
역시 한성에 의해 만들어진 완드다웠다.
주인의 성향을 이어받는 에고 무기는 한성처럼 ‘관심’에 민감했다.
“안 돼. 돌아가.”
그 강대해 보였던 용혈 사냥꾼은 낑낑대며 전투 모드를 풀었다. 그리곤 한 번만 봐달라며 한성의 손에 착 달라붙어 놔주지 않았다.
한성은 그제야 씨익 웃었다.
“그래, 이 새끼야. 적당히 해야지. 어디 감히 주인님한테.”
그는 카메라로 각도를 잡고 연출을 하고 있었다.
분명 어색하다.
하지만 패연은 그것을 보며 웃음이 났다. 그의 행동은 어색했지만 이상하지 않았고 말투는 가벼웠지만 믿음이 갔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수많은 ‘시청자’들도 같은 생각인 듯했다.
“흐흐. 이놈아. 그러니까 말 잘 들어야지. 용혈한테만 강한 놈이 주인한테 어디 땡깡이야! 나 없으면 혼자 아무것도 못 하는 놈이.”
저렇게 카메라를 보고 말하는 것도 신기하다.
“참, 이상하지 않아?”
세이건이 물었다.
“뭐가.”
원래라면 되묻지도 않았을 터.
패연은 스스로도 이상함을 알고 있었지만, 왠지 대답하고 싶어졌다. 분노는 사그라들었고 기분은 나른해지고 웃음이 난다.
그것도 억지로 참는 중이다.
가슴 깊이 솟는 분노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가고 의지가 되는 인간이야.”
“겨우 인간 따위한테?”
“그러게.”
패연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세이건의 말에 동의했다.
참 신기한 인간이다.
“자, 많이 기다렸습니다.”
한성은 세이건과 패연에게 당당하게 다가왔다.
패연이 이 자리에서 기습하면 죽는다. 세이건이 바로 앞에 있어도 막을 수도 없다. 그런데도 한성은 패연에게 더욱 다가갔다.
“······미치긴 미친 인간이군. 아니면 바보던가.”
“당신은 절 죽이지 않을 겁니다.”
“왜지?”
“당신은 복수를 원하니까. 당신의 가족을 해하고 가장 친한 친구를 잃게 만든 놈을 죽여야 하니까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그게 중요합니까? 당신의 지난 30년을 나락에 빠뜨려 농락한 놈을 찾을 수 있는데.”
“내가 널 어떻게 믿지? 그걸 확인할 방법은?”
패연은 마기로 기다란 손톱을 만들며 물었다. 제대로 답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뜻이다. 괜히 말장난이나 속이려는 거면 각오하라는 뜻.
“본인에게 물어보면 되죠.”
“······베리알?”
“네.”
한성은 씨익 웃었다.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악마의 거짓말은 신도 속인다.
게다가 그가 대답은 할까?
“제가 직접 확인시켜드리죠.”
한성은 다시 공간을 열었다.
세이건과 패연은 너무나 당당한 한성의 태도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아까부터 계속 말리는 기분이었지만, 한성이 하는 걸 본 후에 무엇이든 결정하면 된다.
그냥 그렇게 따라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참 이상한 놈이다.
* * *
아무것도 없는 공간.
심연 속의 혼돈.
천외천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불리는 ‘혼돈’이다. 하지만 그것은 천외천의 신격이 현세의 존재를 혼돈으로 유혹하기 위한 함정에 지나지 않는다.
베리알은 안다.
드높은 신격에 맞먹는 힘은 얻었지만, 자격을 얻지 못해 천외천에 올라갈 수 없는 베리알은 이 혼돈 속에 잠긴 인간의 영혼을 수집하기 위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너의 삶은 여기까지다.”
아름다운 소년의 얼굴을 한 베리알은 눈앞에 처참히 짓이겨진 인간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방엔 혼돈에 젖은 괴수가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베리알의 강대한 신격 때문이었다.
“······끄륵. 나, 난······.”
“난 뭐. 고맙다고? 그래, 고마우면 조용히 나를 따라오면 돼.”
베리알이 손을 뻗어 다 죽어가는 육체에서 영혼을 뽑아냈다.
“아주 탐스러워. 인간의 몸으로 비천한 신격을 이루고 그 탈을 벗어 던지며 온전한 신격에 도전한 인간. 결국, 그 고비를 넘지 못하고 나와 계약해 온전한 신격을 이뤘지.”
하지만 드높은 신격엔 도달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래서 이 손에 있는 거겠지.
“아주 잘 익었어.”
이런 놈들이 잔뜩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능도 있고 노력도 하기에 비천한 신격에 도달할 수 있었지만, 그 벽에 좌절하고 악(惡)에 영혼을 바치면서까지 힘을 원하는 자들.
‘종속된 자들’의 최후가 그러했고.
‘영혼 계약’을 한 이들이 그러했다.
종속이야 현계의 아주 미계한 인간들에게 아주 작은 힘을 뿌려 기다리는 ‘보험’이나 ‘로또’ 같은 것들이고 영혼 계약은 확실한 놈들한테 적당히 큰 힘을 나눠주는 ‘투자’ 같은 개념이다.
베리알은 부족한 자격을 채우기 위해 이 혼돈에 자리 잡았다.
드높은 신격에 오르고 싶은 인간들.
하지만 혼돈의 벽에 좌절하는 인간들.
베리알은 그때 손을 내민다.
힘을 주겠다.
강한 힘으로 ‘탈각’에 도움을 주겠다.
그러면서 신격에 오른 영혼을 하나하나 모은다.
만약 드높은 신격에 들면 어떡하냐고?
그럴 일은 없다.
이 혼돈에서 천외천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후, 마룡족하고 용마족만 아니었으면 혼돈도 살만한데.”
베리알은 자신의 성역으로 돌아가며 중얼거렸다.
마중 나온 마녀(魔女)가 베리알의 뒤로 서서 따라온다.
“마룡족하고 용마족 동태는 어때.”
“용마족의 로드 세이건이 마룡족의 성역에 들어갔습니다. 전투 중입니다.”
“흐음. 그래?”
베리알은 웃었다.
그들을 이간질하고 ‘멸종’으로 몰고 가기 위해 수십 년을 공들였다.
그리고 지금 그 결과물이 눈앞에 있었다.
빌어먹을 마룡족과 용마족은 베리알의 것이어야 하는 혼돈에서 영역을 너무 넓혀가고 있었다. 천외천에서 쫓겨난 신격이었으며 불순한 용혈 주제에 말이다.
두 로드는 강하다.
그 아래의 용혈이 모이면 더욱 강해진다.
“더러운 종자들.”
베리알은 마녀가 건네주는 구슬을 받아 방금 수집한 인간의 영혼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링거로 만들어 팔에 꽂았다.
그들의 ‘신격’을 흡수한다.
베리알은 이렇게 드높은 신격에 올랐다.
배신, 모략, 거짓말, 악덕으로 가득 찬 베리알이라는 악마는 순수한 무력에 관한 재능과 지독한 노력을 감내할 만한 성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불완전한 드높은 신격인 것이고.
천외천에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문제다.
“조금만 더 하면 돼. 마룡족과 용마족을 상잔시키고 이후에 두 로드를 쓸어버리면 끝이야.”
“파이몬님과 마몬님이 참여하고 싶다고 전해왔습니다.”
“그놈들이? 크크. 비겁한 새끼들. 이제 용혈이 상잔하려 하니 고개를 디미는 게 보기 안쓰럽구나.”
“파이몬님은 휘하 상급 악마 300과 혼돈의 악마 10을 지원하겠다고 합니다.”
“마몬은?”
“······그게 홀로 오신다고.”
“오호, 직접?”
베리알은 많은 군대보다 그게 나았다.
마몬이 누구인가, 천사에서 악마로 떨어진 악마의 수장이자 사탄인 대악마 ‘루시퍼’의 자식이며 [혼돈]에서 ‘혼돈’의 힘으로 ‘만마전(萬魔殿: Pandaemonium)’을 구축하고 있는 [악마왕]이다.
근데 문제는 베리알이 그것들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군사가 아니라 공물을 바쳐야지.”
서로 상잔한다면 군사는 필요 없다. 베리알 혼자도 충분하니까. 괜히 뒤늦게 와서 숟가락 하나 얹어보려는 것이다.
“파이몬과 마몬의 요청을 받아주는 대신에 내게 바칠 것을 가져오라 전해라.”
“알겠습니다. 지옥의 대왕이시여.”
베리알은 신나게 떠들었다.
지금 이 대화가 앞으로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모르고 말이다.
* * *
한성은 좌 패연, 우 세이건을 데리고 혼돈으로 들어와 베리알의 성역을 찾았다.
“지금 베리알의 성역으로 갈 겁니다.”
“······어떻게?”
세이건이 물었다.
베리알의 성역은 세이건도, 패연도 모르는 곳에 있다.
세이건이야 혼돈에서 나온 지 굉장히 오래됐기에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하지만, 패연은 이곳에서 경계에서만 수백 년, 혼돈 안에서는 30년을 있었다.
그런데도 경계와 혼돈에서 베리알의 종속들만 간간이 볼 정도였다.
“잘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베리알 그놈이 얼마나 음흉하고 철저한 놈인데. 주변에 사는 다른 악마들도 모를 겁니다.”
“그런데 넌 어떻게 아냐고.”
“저야 천재지 않습니까. 이 정도는 쉽죠.”
한성은 베리알의 성역을 찾는 법을 알고 있다.
이놈은 박쥐 같은 놈이라 초장에 제거하지 않으면 종장에 가서 속을 알 수 없는 놈이 되어 그냥 죽이지도 못하게 되기에 가장 위험하다.
선(善)과 악(惡)은 물론 중립까지 박쥐처럼 붙어 다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는 마몬의 성역을 찾는 겁니다.”
“······아니, 그건 또 어떻게?”
패연이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한성은 가만히 업적 몇 개를 발현할 뿐이다.
마몬은 루시퍼의 자식. 한성이 지닌 업적이면 마몬의 종속으로 들어가 있는 ‘괴수’가 반응하고 ‘성역’으로 도망갈 거다.
한성은 그렇게 혼돈을 날아다니며 업적을 발현했고 몇 마리의 괴수가 멀리 도망치는 게 보였다.
“루시퍼의 업적이었군.”
패연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봤다. 이걸 또 어떻게 얻었을까. 루시퍼는 드높은 신격 또한 탈피한 최상위 신격이다. 그의 업적을 얻는 것은 지금의 패연도 힘들다.
게다가 이걸 응용할 생각을 했다니.
참 또라이기도 하면서 대단하기도 하다.
다음부터는 묻지도 않았다.
어떻게 하는지 보겠다는 것처럼.
그래, 성역을 찾는 것은 어찌어찌 한다고 치자. 물론, 말도 안 될 정도로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이 인간의 특성일 수도 있으니까.
이런 이상한 특성을 가진 존재는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발견했다고 그 일이 끝나는 것이냐.
절대 아니다.
성역은 성역.
게다가 보통 악마도 아니고 베리알이다. 불완전하지만 드높은 신격에 든 지옥의 대왕이다.
“찾았다.”
“어? 벌써?”
세이건이 이제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물었다.
“그럼요. 사실 베리알이 스스로 천재인 척하지만, 은근히 바보거든요.”
약간 엑스트라 라인이기도 하다. 최상위 신격이 될 능력은 없으면서 계략과 배신으로 이곳저곳에 붙는데 그것마저 종장에 가서 큰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
“여깁니다.”
한성이 가리킨 곳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혼돈의 끝이었다. 땅도 없고 하늘도 없다. 그저 심연의 혼돈만이 가득 채운 곳이다.
이곳에 혼돈의 지옥이 존재한다.
베리알의 성역 말이다.
“그런데 직접 갈 수는 없죠.”
“······그걸 모르진 않았을 거고.”
패연은 한성의 말에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물었다.
“하지만 안에서 하는 말과 영상을 들을 수 있죠.”
“어떻······, 아 설마.”
아까 패연의 성역에 들어왔을 때의 이상한 기술. 그것을 이용할 생각인 듯했다.
“대단하긴 했지, 하지만 그걸 어떻게?”
“잠시 기다려 보시죠.”
한성은 [나는 관종이다]의 특성으로 패연의 무의식 깊이 숨어있던 베리알의 ‘마력’을 상쇄했다.
천천히 조금씩.
배신, 분노, 이간질, 의심 등을 무의식 깊은 곳에 심는 게 베리알의 권능이고 웬만한 신격도 피해갈 수 없는 강력한 힘이긴 했다.
하지만 한성은 [관종의 신]이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신뢰받고 사랑받으며 신뢰를 준다.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도 그랬고 말과 행동에서 나오는 신뢰는 이미 권능이었다.
‘조금만 더 하면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관종은 어디에나]와 ‘시스템 카메라’를 응용하기로 했다. 절대로 부서지지 않으며 헤일렌의 본체인 카메라.
지금까지 신격과 신격의 전투 등의 무지막지한 영상을 찍을 때 사용했다. 게임 시스템 자체에 설치된 현실 튜브 방송용 카메라.
이 게임 내에서 한성만 가지고 있는 능력이기도 했다.
< 지옥의 대왕, 베리알.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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