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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은 만렙이다-125화 (125/200)

< 결자해지(結者解之) >

빌어먹을 한성은 그냥 힘으로 찍어 누르라고 했지만, 그것은 잘 통하지 않았다. 불을 쓰는 놈과 강철을 뽑아내는 두 놈의 상성이 굉장히 잘 맞았기 때문이다.

특히, 그 화기를 머금은 강철의 비(Rain)는 마력 지체로도 버티기 힘들었으니까. 몸이 몇 번이나 타오르고 찢어져 죽을 뻔했다.

그저 격 때문이 아니라도 둘은 강했다.

나디아는 작전을 바꿔야 했다.

한 번에 성공할 수 없다고 했던 한성의 ‘격’의 사용법을 그 자리에서 익히기로 했다.

그게 쉽냐고?

당연히 어렵다.

하지만 나디아가 한성이나 진훈 같은 괴물들 사이에 있어서 그렇지, 그녀도 천재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재능러’이며 ‘창신’의 피를 물려받은 유전자 ‘다이아 수저’란 말이다.

그녀는 한성이 보내준 [신인류 공략 방법]

-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격의 저항’이라는 게 있다. 초월종이나 지배종은 ‘격’에 대한 ‘저항’이 아주 적은 것이고 인간과 일반적인 생명체는 ‘격’에 대한 ‘저항’이 아주 큰 것이다.

- 신인류는 그런 ‘저항’이 태생적으로 작게 태어났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 이해는 어렵지 않다.

원래 초월종이라는 게 있었고 초월종처럼 진화한 지배종도 있었으니까. 이것들도 지배종이 된 거라고 생각하면 쉬운 거다.

원래 지배종도 평범한 몬스터였으니까.

- 우리가 쓰는 ‘격’이라는 것은 ‘기세’와 비슷한 성질을 지녔으며 ‘마력’처럼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쏟아지는 격을 빗겨낼 수 있는 ‘신인류’에게는 무식하게 뱉어내는 ‘격’으로는 피해를 입히기 힘들다.

“마력처럼······.”

정말 다른 애들에게 가려져서 그렇지, 마력 자체에 관한 재능이라면 한성을 제외하곤 나디아가 제일이라고 봐야 한다.

그녀는 ‘발록’과 같은 [마력 지체]니까.

몸이 마력이고, 마력이 몸인 ‘특성’. 육체와 마력의 특성이 모두 ‘최상위’로 들어가는 사기 이능인 것이다.

- 하지만 아무리 저항이 낮다고 해도 아예 없지는 않다. 그 자체만으로 태워버릴 수 있도록 커다란 격으로 찍어 누르거나 격을 한 점으로 모으면 된다.

- ‘격’을 마력처럼 이용해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 최상. 하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하다. 이 세상의 축복을 받은 재능러이면서 머리까지 똑똑한 이한성님은 어쩌면 가능할지 모른다.

- 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육체에 가둬 사용하는 것 정도가 보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와는 다르게.

“정말 볼 때마다 새로워 아주.”

나디아는 한성의 얼굴을 상상하며 자리에 주저앉아 숨을 크게 들이켰다. 헤일렌이 쓴 줄 알았는데 한성이 써서 헤일렌에게 남겨뒀던 것 같다.

나디아는 그렇게 성공했다.

결국, 다 죽였다.

두 놈을 찢어 죽이고 격을 몸에 가둬 한껏 압축해 사용하는 것을 깨달았다.

나디아는 뒤의 내용이 궁금했다.

- 아주 높은 경지의 고수(高手)가 ‘기세를 완벽하게 갈무리한다.’라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격’을 육체 안으로 응축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 그 수준이 더욱 높아진다면 ‘격’은 한 줄기의 검이 되기도 하고 마법이 되기도 한다.

상상 이상의 이론이었다.

이게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말이 안 되는 이론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걸 적은 사람이 이한성이라면 믿을 수밖에 없긴 하다.

관종에 또라이긴 하지만 허황된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 레벨과 격. 그것은 무력 수준을 완벽하게 정리하는 기준이 아니다. 같은 격을 가져도 그것을 어떻게 쓰냐에 따라서 강자와 패자가 확실하게 갈리게 되니까.

“후우.”

나디아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이 안에 격이 갈무리되어 있다. 재능도 있었지만, 운이 좋았다. 아주 좋은 교보재와 싸우는 중이었으니까. 격의 저항이 0에 가까운 신인류가 말이다.

어떻게 보면 작은 기술이었지만, 나디아는 한층 성장한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먼 곳에서 무언가 번쩍였다.

하늘을 가르는 장대한 기세가 나디아의 척추를 훑었다.

“······이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

나디아는 전신의 모든 힘과 모든 격을 몸속으로 갈무리했다. 거북이가 등껍질로 머리를 숨기는 것처럼, 동물이 위험을 감지했을 때,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리는 것처럼.

“하-”

숨이 터져 나온다.

방금 격의 사용법을 알지 못했다면 이 먼 거리에서조차 버틸 수 없었을 거다.

콰아아앙-

빛보다 한참 늦은 소리는 뒤늦게 도착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이번엔 정말 하늘이 갈라졌다.

수십 마리의 악마. 아니, ‘신’들이 싸우는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  *  *

세이건은 패연을 마주했다.

“그렇게 자기를 희생하고 싶다면서 도망을 가?”

“내 희생으로 너의 생각이 바뀌었을 때였지. 만약 그렇다면 아직도 난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

“또 그렇게 말하곤 뒤통수를 치겠지.”

패연은 다시 한 번 마기를 뿜었다.

검붉은 마기는 마계의 검은 기운과 마룡족의 용혈의 기운이 합해져 마룡족 특유의 기운으로 가공된 힘이었다. 일반적인 마기와 마력과는 다르게 패도적이고 강렬하다.

세이건은 힘을 끌어올리지 않았다.

“훗, 이젠 가증스럽다. 약한 척, 싸울 의지가 없는 척. 모든 연기는 다 하다가 결국 싸우고 도망치고.”

“만약.”

세이건은 머뭇거렸다.

그게 맞는 말일까.

이 사실을 아는 인간과 더 이야기할 필요성이 있었다. 베리알이라는 악마가······.

“어디, 또 수작질이야!”

패연이 달려들었다.

콰과과과-!

그의 분노에 바닥이 갈라지며 대기가 찢어졌으며 신격과 신격의 충돌은 하늘을 비틀었다.

“베리알이야!”

패연은 이젠 더 듣고 싶지도 않다는 듯 타오르는 마기를 뿜을 뿐이었다. 세이건의 신격이 그의 타격을 막고 빗나간 공격은 바닥에 구멍을 낸다.

한쪽은 공격. 한쪽은 방어.

정적인 전투여야 할 이들의 움직임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두 신격. 그것도 용혈이 섞인 강대한 종족 로드의 싸움이다.

깊숙한 곳까지 박혀 더는 보이지 않는 매듭을 풀기 위함이다.

“그가 우리를 이간질 한 거라고.”

“······.”

패연은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설득은 들을 만큼 들었다. 뭐가 진실인지, 뭐가 가짜인지 알 길이 없다.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고통 속에서 복수만을 위해 살아온 패연이 그 몇 마디로 달라질 수 있을까?

패연은 그저 정말 세이건의 말이 맞는다면 세이건을 죽이고 모든 악마까지 다 죽이면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둘의 전투는 점점 격렬해졌다.

세이건도 더는 방어만으로 끝낼 수 없기에 공격을 시작했다.

“그럴 줄 알았지.”

“정신 차려!”

“난 30년 전 이후, 한 번도 정신을 놔 본 적이 없다.”

“지금 너의 눈을 봐! 그건 단순히 복수를 위한 눈빛이 아니야.”

“30년을 복수만 위해 살았다. 매일 밤 아내와 딸을 위해 피눈물을 흘렸어. 내 눈이 멀쩡할 수 있을까?”

세이건은 이를 악물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이해는 한다. 세이건 같아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딸을 죽이고 사랑하는 이를 죽이고 30년 넘는 세월 동안 풀지 못한 매듭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뒤로 미룰 수 없었다.

“내 말을 한 번만 들어줘.”

세이건은 뒤로 물러나 자신의 한쪽 팔을 뽑았다.

패연은 그 모습을 보고도 손톱을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세이건은 이번엔 정말 포기한 것인지, 모든 힘을 거두고 무릎을 꿇었다.

“내 팔, 1분은 줄 수 있잖아. 연아.”

“······어디 그 이름을!”

“연아.”

“······넌, 넌 그 이름을 부를 자격이 없어.”

세이건은 자신의 마력으로 나머지 한쪽 팔을 잡아당겼다.

투둑.

푸슛.

나머지 한쪽 팔도 뽑은 것이다.

“이제 난 못 싸워.”

“······다시 붙일 수 있다.”

“뭐, 며칠은 걸리겠지. 그 사이에 난 죽지 않을까?”

패연은 가만히 있었다.

세이건은 그것을 허락의 의미로 받아들였기에 이야기를 시작했다. 패연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언제든 이상한 행동을 하면 죽인다는 듯 타오르는 마기를 손에 두르고.

“검증해 볼 이유는 있어. 베리알은 강하고 마룡족 전체가 달려들어도 그의 군대를 이길 수 있다는 가능성은······ 극히 적으니까.”

패연은 아직도 말이 없다.

“차라리 베리알을 죽이고, 그리고 날 죽여.”

“그 말을 증명할 수 있나?”

“저 인간.”

“······.”

“보다시피 조금······ 아니, 많이 이상하긴 하지만, 우리의 모든 사건을 알고 있었어. 베리알을 언급한 것도 저 사람이고.”

화륵.

그 말을 들은 패연은 붉게 타오르는 손톱을 더욱 길게 뽑았다.

“그 말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너와 저 인간을 이 세상에서 반드시 지우겠다.”

“······.”

이번엔 세이건이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된다.

저 인간의 말을 왜 믿었지? 증거도 없고 검증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냥 믿고 싶었다.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신뢰 깊은 사람과 대화한 것 같은 느낌.

‘난 그거 때문에 팔을 뽑았고.’

“하.”

세이건은 코웃음이 나왔다.

뭔가 이상한 놈이다.

행동도 이상하고 말투도 이상하다. 그런데 믿음이 간다. 왜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난 저 인간을 믿어보겠다.”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거다.”

“물론.”

패연도 뭔가 이상했다.

아까부터 가슴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분노가 한결 가라앉았다. 저 인간이 시야에 들어오고 난 뒤부터인 것 같다.

패연은 이 알 수 없는 끌림에 한 번 걸어보기로 했다. 세이건을 이렇게 설득시켜 스스로 팔을 뽑게 만들었을 정도면 한 번 믿어볼 만할 것 같았다.

게다가······.

“저 인간이 어떻게 [포식자]를 지니고 있는 거지?”

패연이 물은 게 아니었다. 같이 도망쳤던 세이건이 그렇게 말하니 황당한 것은 패연이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그건 맞지.”

“혹시 후회하는 건 아니겠지?”

저 인간을 믿겠다고. 목숨을 걸겠다고 한 것을 말하는 거다.

세이건은 잠시 머뭇거렸다.

아무리 봐도 하는 행동은 또라이다.

진짜 저놈을 믿어도 될까?

*  *  *

[용혈 사냥꾼이 씨익 웃습니다.]

이미 하늘을 뒤덮은 용혈 사냥꾼은 입을 쩌억 벌렸다.

마룡들이 반항을 시작했다. 피어의 압박에서 벗어나 검붉은 마기를 뿜어댔다. 마치 세이건의 ‘용무’처럼 비늘을 타고 흐르는 마기는 ‘신격’을 품고 있었다.

허공에 수십 개의 마법진이 동시에 떠오른다.

용혈은 용혈이다.

마기를 사용해 직접 싸우는 것도 즐기지만, 마법의 수준은 더욱 뛰어났다.

하지만 그것은 실수였다.

“디스펠.”

한성의 작은 한 마디엔 수백 개의 마력의 바늘이 담겨 있었다. ‘역행 마법’과 ‘디스펠’을 응용했다. 적의 마법진의 구조를 파악하고 마법진의 발동을 막는 것.

다시 말하지만 한성은 전 회차에서 마법으로 종장에 다다라 클리어를 마친 사람이다.

특히, 지금 용혈 사냥꾼의 힘을 등에 업은 지금은 그 강대한 마룡 앞에서도 무서울 게 없었다.

파사사삭.

마법이 실패한 마룡들은 용혈 사냥꾼에게 직접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건 더 큰 실수였다.

용혈 사냥꾼은 가장 앞에 오던 마룡 한 마리를 통째로 삼켜버렸다. 나머지 마룡이 용혈 사냥꾼의 머리와 입을 마기를 잔뜩 담아 가격했지만, 아무런 상처도 남지 않았다.

“아아. 이게 포식자.”

“······이길 수 없어.”

이게 포식자와 피식자의 위치다.

“꿇어라. 이게 너와 나의 위치다.”

한성은 오만한 눈으로 마룡들을 내려다보며 읊조렸다.

100% 카메라를 의식해 하는 말이었다.

- 미친ㅋㅋㅋㅋㅋ이걸 아직도 쓴다고?

- 사골 끓이다 죽이 되고도 남은 수준.

- 고인물을 넘어 썩은 물이라고 했는데, 그냥 썩은 드립인데.

- 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웃김.

- ······이게 웃긴 건가? 나만 안 웃겨?

- 겁나 심각한 상황인데.

- 지금 이제 신입 영웅이 마룡족을 죽이는데, 이게 말이 되는 건가.

한성은 자신의 연출이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런데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패연의 목소리.

이후엔, 세이건의 목소리였다.

“그만 싸우셔도 됩니다.”

한성은 둘의 표정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설득이 끝난 모양이다. 그렇다면 둘이 더 싸울 필요가 없다.

[용혈 사냥꾼이 아직 배가 고프다고 합니다.]

[용혈 사냥꾼이 약한 주인의 말은 듣지 않는다고 합니다.]

쿠으으으-

한성이 쥔 용혈 사냥꾼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한성이 사냥꾼에 맡긴 힘을 회수하려는데 그것을 거부하고 마룡을 향해 계속 이를 드러낸다. 눈앞에 있는 용혈을 전부 삼키고 싶은 거다.

그래선 안 된다.

이 마룡은 어렵지 않게 삼킬 수 있지만, 패연과 세이건은 그게 아니다. 아무리 포식자라고 해도 이제 막 태어난 놈이 수천 년 동안 로드 자리에 있던 신격을 이길 순 없다.

“말 들어.”

[용혈 사냥꾼이 엿이나 먹으라고 합니다.]

“아니, 이 미친 새끼가?”

[용혈 사냥꾼이 어디서 욕을 하냐고 합니다. 배가 고프니 조용히 처박혀 있으라고······.]

“너 이 새끼, 이번에 정신 교육 좀 하자.”

필요한 곳이 있어서 오냐오냐해 줬더니 이제는 머리끝까지 기어오른다. 그냥 힘을 다 몰아주고 혼자 처리하니까 자기가 대단한 줄 아는 거다.

이러나저러나 용혈의 천적이고 한성의 ‘완드’일 뿐이다.

“자, 오늘 서브 컨텐츠는 ‘말 안 듣는 에고 완드 참교육’가겠습니다!”

한성은 세이건과 패연에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한 다음, 완드를 양손으로 쥐고 발로 밟기 시작했다.

< 결자해지(結者解之)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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