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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은 만렙이다-123화 (123/200)

< 패연과 세이건. >

세이건은 마룡족의 성역에 들어왔다.

마룡족의 로드를 만나 전쟁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모두 악(惡)의 신격이 선(善)으로 돌아설 용혈을 말살(抹殺)하기 위해서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어차피 마룡족은 악(惡)을 추종하는 자들.

스스로 악(惡)의 신격에 종속되지 않고 대등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네가 여기까지 직접 오다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전신이 검은 비늘로 뒤덮인 드래곤은 기다란 뿔과 붉은 눈에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패왕(霸王)의 기운이 뿜어졌다.

“내가 죽어도 좋아. 하지만 전쟁은 있어선 안 돼.”

아래엔 인간의 형상에 푸른 비늘이 뒤덮인 용마족인 세이건이 있었다. 거친 비늘은 잔뜩 일어섰다 누웠다. 마룡족의 로드가 뿜는 살기에 자동으로 반응하는 것이었다.

“으하하하. 으하하. 그래? 너도 참 뻔뻔하구나.”

“내 죽음으로 우리 용마족에겐 용서를······.”

“입 닥쳐! 감히, 감히 네가 나한테 ‘용서’라는 걸 입에 담아?”

“······.”

마룡족의 로드 ‘패연(霸然)’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간의 형상으로 변했다. 그의 몸에도 무광의 검은 비늘이 뒤덮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그의 눈 끝에서부터 아래로 떨어지는 하얀 무늬였다. 마치 눈물을 흘리는 듯한 모습이었고 그 모습 때문에 패연(霸然 : 비가 흠뻑 내리는 모양)이 이명으로 붙기도 했다.

대부분은 그 무늬가 타고난 무늬인 줄 알고 있다.

하지만 세이건은 안다.

저것은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스스로 만든 상흔(傷痕)이라는 것을.

“네가 그랬지. 언젠가 우리가 함께할 수 있을 거라고. 너희 용마족과 마룡족의 화합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했었지.”

“······.”

세이건은 입을 열 수 없었다.

이후에 나올 말이 무엇인지 알기에, 그리고 그것을 막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날 나의 성역으로 돌아왔을 때, 붉은 화마(火魔)가······ 빌어먹을 용마족 새끼들이 내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불태워 죽인 후였지!”

“······우리가 아니었다.”

“왜, 또 악신(惡神)이라고 할 셈이냐? 그래, 그럴 수 있지. 앞으로 우리가 벌일 ‘용마족 토벌’도 마찬가지일 거다. 악신(惡神) 놈들이 벌인 일이겠지. 하하하하하.”

“정말 우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 입 닫아라. 너만 아니었다면. 아니, 너를 믿은 나의 잘못이겠지.”

“······.”

“나는 내 손으로 그 잘못을 되돌릴 거다.”

패연 눈 밑의 하얀 무늬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에 아지랑이가 올라온다. 격의 향연이었으며 마기의 파도가 세이건을 압박했다.

성역을 둘러싼 검은 돌산 곳곳에서 마룡족의 울음이 들려왔다.

쿠오오오오.

쿠오오오.

하나 둘 정도가 아니었다.

수십, 수백에 달하는 마룡족이 붉은 눈동자로 세이건을 바라봤고 하나하나 온전한 신격을 뿜어냈다. 혼돈의 경계에서도 가장 강한 세력으로 꼽히는 마룡족.

그것도 그들 ‘성역’이다.

“나는 반항할 생각이 없다.”

“아하하하. 그래? 너희 딸이 죽더라도 그럴까? 다른 용마족이 전부 하나하나 죽어 나가더라도 그럴까.”

“······전쟁을 해봤자 서로가 서로를 죽일 뿐이다. 진정한 적은 악(惡)이며 선(善)이라 불리는 신격들이야!”

“그들은 최소한 우리 가족을 건들지는 않았지.”

“너희 가족을 죽인 건 용마족을 세뇌한 악신(惡神)이다.”

“성룡인 내 아내와 신화를 이륙한 내 딸을 죽인 ‘드높은 신격’에 든 ‘용마족’이 세뇌당했다고?”

세이건도 안다.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말인지.

순혈에 비해 떨어진다지만 용혈은 용혈이다. 아무리 악신이라도 ‘드높은 신격’에 든 용마족을 세뇌할 순 없다. 그걸 알기에 세이건도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분명 세뇌되어 있었다.

“그건······.”

“그만하고 이만 죽어라.”

패연은 전신의 비늘을 일으키며 달려들었다. 세이건은 신격을 뿜어내며 패연의 공격에 저항했다.

“나 하나로 끝내······.”

패연은 듣지 않았다.

세이건에게 달려들어 용혈에 섞인 마기를 뿜었다. 그의 주먹엔 검붉은 마기가 기다란 손톱 형상을 이뤘고 그것은 세이건의 신격과 공간을 찢으며 다가왔다.

콰과과과-

세이건은 마력을 폭포처럼 쏟아내어 단단한 실드를 형성했다. 동시에 꼬리를 휘둘러 패연의 하체를 노렸다.

저항하고 싶지 않았다.

세이건 목숨 하나로 패연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다면.

하지만 패연은 이곳에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세이건을 죽이고 세이건의 딸인 릴리를 찾아 죽일 것이며, 세상에 모든 용마족을 말살할 것이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그래서 패연에 맞섰다.

충돌한 신의 격이 성역을 흔들었고 혼돈의 경계를 밀어냈다. 둘의 전투는 그야말로 신의 전투, 그 자체였다.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가 지난다.

수백의 마룡은 둘의 전투를 바라보기만 했다. 패연은 본인의 손으로 복수하고 싶었고 용마족의 로드를 홀로 죽여 ‘전쟁의 서막’을 전 용족에게 알리고자 했다.

“······왜 최선을 다하지 않지?”

몸 곳곳이 다쳐 비늘이 벗겨지고 허연 뼈가 드러난 패연은 손톱을 길게 빼면서 세이건에게 물었다. 세이건의 상태도 패연과 다를 게 없었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

패연은 하얗게 돌아온 눈을 다시 붉게 물들였다.

패연은 30년 전, 그러니까 세이건을 따르던 용마족 무리 하나가 패연의 부인과 딸을 죽이기 전까지 세이건과 함께 다녔다. 같이 사냥하고 전쟁에 참여해 생사의 고비를 함께 하기도 했다.

세이건은 항상 패연보다 강했다.

패연은 세이건을 따라갈 수 없었다.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혼돈을 오가며 죽음과 삶 사이에서 위태하게 싸워왔다. 세이건을 이 손으로 죽이기 위함이었으며 모든 용마족을 멸(滅)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세이건은 날 죽이지 않고 있어.’

세이건이 패연을 죽일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세이건은 힘을 뺐다.

그렇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패연이 우세해졌다. 세이건은 치명상이 늘었고 격과 마력은 빠르게 소모되었다.

게다가 이곳은 패연의 성역.

그렇게 이주가 더 지났다.

장장 한 달을 이곳에서 싸운 것이었다.

그리고 세이건의 목전에 패연의 검붉은 손톱이 닿아있었다.

“······제발, 제발 나 하나로 끝내줘.”

세이건은 눈물을 흘렸다.

패연을 죽일 기회가 있음에도 죽이지 않고 버텼으며, 끊임없이 패연을 설득하려 했다. 이 전쟁은 한쪽이 완벽하게 승리할 수 없는 전쟁이다.

분명 두 종족은 공멸(共滅)할 것임이 틀림없었다.

세이건은 그걸 설명했다.

하지만 패연의 분노는 잠재울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넌 사랑하는 사람과 딸을 잃은 아픔을 모른다.”

“······내가 어떻게 그 마음을 알 수 있겠어.”

“그렇기에 넌 날 설득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종이 멸(滅)하는 아픔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겪는다.”

“넌 날 이해할 수 없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서로 중요한 것이 다르며.

서로는 서로의 아픔을 겪어보지 못했다.

한쪽은 묶인 매듭을 같이 풀어보자고 했으며, 한쪽은 묶인 매듭을 잘라 없애길 원했다. 한쪽은 그 매듭이 발목에 묶여 있었고 한쪽은 심장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매듭이지만, 서로 느끼는 고통은 다르다.

세이건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목을 내밀었다.

“날 죽이고······, 자비를······.”

“······.”

패연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30년 동안 준비했던 전쟁이다. 악신(惡神)이 부추겼다고? 그런 것과는 상관없다. 그날 이후 패연은 용마족의 멸족(滅族)만 생각하며 살아왔으니까.

그런데··· 그런데 그게 악신의 의도라고?

그럴 리 없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용마족이 겨우 그런 악신 따위에게 세뇌되었다고? 그것도 패연의 아내와 딸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지옥의 염화’를 발하던 드높은 신격의 용마족이?

무언가 이상하긴······.

화악.

패연의 두 눈이 붉게 변했다.

가슴 속에서 기이한 분노가 들끓는다.

아내와 딸을 집어삼키던 화마를 지켜보는 자신의 무력함이. 그런 모습을 보며 씨익 웃던 용마족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아른거린다.

그래, 용마족도 다 죽이고 악신도 다 죽인다.

그러면 되는 거다.

패연이 손톱이 검붉은 마기를 뿜었고 세이건은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

그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패연은 손을 멈췄다. 세이건도 고개를 들어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봤다.

그곳엔 인간 한 명이 서 있었다.

“······누구지?”

신기한 건 기척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격은커녕 실체가 아닌······.

“환상이군.”

“실시간 영상 전달 능력이라고 하지. 환상이랑은 많이 다르다고.”

패연은 이 자리에서 태연하게 대답하고 있는 인간을 향해 붉은 마기를 쏘았다. 아무리 영상의 전달이라고 해도 ‘의지’가 연결되어 있다면 영상은 사라지고 본체에게 피해를 줄 수 있었다.

팟.

패연의 예상대로 영상은 사라졌다.

“······어이가 없군.”

뭘 어떻게 했는지, 왜 이곳에 영상을 보낸 건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패연은 손톱을 다시 뻗었다.

“잠깐.”

그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

“그렇게 사람 무시하고 그러는 거 아닙니다.”

“······넌 누구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관종의 신’이라는 이명을 지닌 이한성!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려요!”

“······그냥 미친놈이었군.”

패연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마기로 영상을 없애······?

탓.

영상이 ‘검’을 휘두르더니 쏘아진 마기를 막아냈다.

“아니, 다짜고짜 사람을 그렇게 공격하면 어떡합니까.”

“환상이 아니야?”

패연은 어이가 없어 작게 중얼거렸다.

한성은 그 모습에 자기가 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환상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영상 전달. 아유 언더 스탠?”

“넌 도대체 뭐하는 놈이야.”

패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위에 있던 마룡에게 눈치를 줬다. 그러자 마룡 몇 마리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저는 인간입니다. 들어보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혼돈 안쪽은 인터넷이 돼도 경계인 이곳은 인터넷이 안 되니까요. 게다가······.”

한성은 자연스럽게 세이건과 패연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5m 정도였던 거리는 1m까지 좁혀졌다. 한성에게 위기감을 느끼지 못한 패연은 한성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직 레벨 8에 불과하고 ‘관종의 신’이라는 이명을 지니고 있지요. 당연히 ‘듣보’ 신격이니 알 수가 없겠지요. 혹시 들어는 보셨습니까?”

패연은 어이가 없어 그냥 바라봤다.

경계심이라는 게 있을 리 없다.

한성은 이제 막 비천한 신격을 벗어난 레벨 8에 불과하니까. 마룡족의 로드인 패연과 용마족의 전 로드. 아니, 지금은 현 로드인 세이건은 드높은 신격이다.

레벨이 다르다.

그 말은 수준이 다르다는 뜻이며 ‘격’이 다르다고 말한다.

이곳에 인기척 없이 들어온 것은 칭찬해 줄 만하다. 아무리 패연과 세이건이 죽기 직전까지 지친 상태라고는 하지만 레벨 8 따위가 이곳에 들어오는 것은 다른 마룡 때문이라도 쉽지 않으니까.

한성은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가면서 패연의 경계심을 흐트러뜨리고 뒤에서 다가오던 마룡 두 마리도 패연과 대화하는 듯한 모습에 잠시 멈칫했다.

“잠시만요. 이 말만 하고 나가겠습니다.”

한성은 아주 자연스럽고 뻔뻔하게 발을 움직여 바닥에 흩어진 세이건의 머리칼을 밟았다.

그리고 외쳤다.

“뿅.”

한성과 세이건은 작은 한 점으로 사라졌다.

패연은 눈앞에서 일어난 일에 어이가 없어 입만 턱 벌리고 있었다.

“이거 상상을 초월하는 새끼였네.”

앞에 있던 두 마리가 그들이 뚫었던 공간의 점에 손을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러자 그들도 작게 뚫린 구멍으로 사라졌다. 패연도 다른 마룡이 가져다준 엘릭서를 들이키곤 구멍으로 따라 들어갔다.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  *  *

[신인류 공략 방법]

내용 : ‘격’을 어느 정도 무시할 수 있도록 태어난 이들을 신인류라 칭한다. 그들을 일반인으로 만났을 때는 무조건 회유해 한국 영웅 아카데미로 보내는 것을 첫 번째로 둔다.

만약 그들을 적으로 만났을 경우, 살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그들의 눈동자에 ‘감정’이 있는지. 없어 보인다면 누군가에게 세뇌당한 ‘복제 인간’일 확률이 높다.

* 복제 인간은 ‘사살’을 일 순위로 둔다.

나디아는 내용을 밑으로 내렸다.

저것들을 죽여야 하는 건 알겠다.

죽이는 방법이 필요했다.

방금의 일격으로 저게 말 그대로 ‘격’을 완전히 무시한다는 게 아닌 것은 알았다. 하지만 더 정확한 방법이······.

‘여기 있다.’

- ‘격’이라는 것은 하나의 ‘금제’와 같다. 태초의 신은 인간을 만들었으며, 그때는 모든 인간이 ‘신격’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신에게 대항하게 되고······.

- 마력처럼 하나의 에너지로 이루어진 업적이 모여 ‘격’이 되는데, 이럴 때······.

“이런 개 같은······!”

설명충도 이런 설명충이 없었다.

미친, 언제까지 사전 설명만 하고 있을 것인가.

나디아가 숨어 있던 빙산으로 두 아이가 달려들었다. 아까보다 강렬한 투기를 뿜으며 한 놈은 손에서 강철을 뽑아냈고 한 놈은 거대한 ‘화기(火氣)’를 퍼뜨렸다.

- ‘복제품’은 ‘격의 무시’가 확실히 떨어진다.

콰아아아!

작은 아이의 ‘화기’가 나디아를 덮고 있던 빙산을 날려버렸으며 그 틈으로 덩치 큰 아이가 두 손에서 뽑아낸 기다란 강철 검을 휘둘렀다.

“결론! 결론을 달라고!”

- 격을 방사(放射)하는 게 아닌 마력처럼 몸에 담는다고 생각하면 확실히 쉽다. 하지만 바로 할 수 있는 건 아니기에 더 좋은 방법은······.

“이런 미친 새끼. 제바아아알!”

- 좋다. 이제 급할 때 신인류를 공략하는 방법을 기재하겠다. 신인류. 특히, 복제품은 격을 무시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 모든 격을 한 번에 방출하고 힘으로 찍어 누른다면 분명 효과가 있을 것이다.

“에라이.”

나디아는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따라 해 보기로 했다.

아까 첫 일격을 받았을 때 어느 정도 이상함을 느끼긴 했다. 분명 무시하는 것 같긴 했는데, 완전히 깨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죽어라.”

나디아는 모든 격을 터뜨리며 창을 휘둘렀다.

< 패연과 세이건.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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