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안의 외팔 무투가. >
한성은 모든 힘을 쏟았다.
어떤 영화처럼 3시간을 20년처럼 늘어나는 정도는 불가능하다. 그 정도의 공간의 왜곡이라면 작은 블랙홀이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아니, 정말 안 될까?
그 여파를 주변으로 퍼뜨리지만 않으면 된다.
한성은 ‘끈’에 집중했다.
시간은 쭉쭉 늘어났다.
1초가 10초.
1초가 1,000초.
1초가 100,000초.
그에 비례해 한성을 짓누르는 중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제약’과 한성이 뿜는 격은 서로를 밀어내며 이 공간을 혼돈으로 몰고 갔다.
가히 ‘재앙’이라고 할 정도의 광경이었다.
마력의 폭풍이 일어나고 중력이 휘몰아치며 격이 곳곳에서 터져나간다. 둘과 같은 [신격]이 아니라면 잠시도 살아 있을 수 없는 지옥으로 변했다.
하지만 한성의 표정은 평온했다.
제약의 눈동자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서로를 바라봤다.
찰나.
제약의 촉수가 뽑혀 나왔고 한성은 손을 뻗어 약력으로 촉수를 소멸시켰다. 동시에 수십, 수백 개의 촉수가 한성에게 도달했다.
전투는 단순했다.
공격하고 막고. 막고 공격했다.
하루. 이틀. 일주일.
그때 깨달았다.
먹고 배설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다는 것을. 전 회차에선 [신격]을 얻었어도 습관처럼 했던 행동들이었다.
그래서 알 수가 없었지.
이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났을 때.
마력이 고갈되고 정신력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인간은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을 것 같아도 버티면 살 수 있다는 것. 혼자만의 목숨이 아니라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면 그 강함은 배가 된다는 것.
한성은 끊임없이 검을 휘둘렀다.
마법도 사용하고 공간과 시간 능력도 사용한다. 그 사이에 ‘끈’이라는 힘에도 어느 정도 적응했다. 뻑뻑하긴 하지만 확실히 사용하기 편해졌다.
한 달은 두 달이 되고.
두 달이 세 달이 되었을 때.
굳이 시간을 늘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이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한성과 드높은 신격은 1초를 무한에 가까운 시간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봤다면 사라져서 보이지 않다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둘은 길고 긴 시간 속에 돌입했다.
이제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둘은 끊임없이 싸웠다.
서로, 서로의 ‘끈’을 밀어내고 차지하기 위해 싸웠고.
서로의 심장에 검을 꽂고, 촉수를 꽂기 위해 싸웠다.
그런데.
한성은 한계를 직감했다.
더 이상 ‘사고’가 진행되지 않는다.
정신력은 진작에 한계에 다다랐고 마력은 차오르지 않는다. 육체는 무너지기 직전이었으며, 동공은 회색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더는 버틸 수 없었다.
그래, 여기가 끝이구나.
그렇게 단단했던 루시엘의 성검이 부러졌고 해룡의 밤부가 소멸했다.
그래서 성배를 들었다.
젠장할, 이걸 무기로 쓰는 놈이 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해봤을까. 그래도 부서지지 않아 굉장히 쓸만했다.
그러면서도 헛웃음이 나왔다.
어차피 한성이 죽으면 이 세계도 끝나는 것 아니었나? 이곳은 게임이다. 한성에게는 ‘현실’ 못지않은 ‘세계’가 되어버렸지만, 어찌 되었든 게임 속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을 거다.
만약, 이게 게임이 아닌 현실이라면?
어떤 이유에서 한성이 없어도 이 세계가 지속된다면?
‘의미는 없다.’
당연히 한성이 죽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성은 이 세계를. 그리고 친구들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한성이 죽더라도 이곳은 유지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가능할지. 불가능할지는 모르겠다.
‘만약 내가 죽더라도······.’
성배에 있는 소원권으로 이 ‘세계’를 유지할 거다.
많은 생각을 했었다. ‘현실’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할까. 아니면 ‘종장’에 다다를 때 가장 필요한 걸 얻을까. 될지 안 될지 모르기에 신중했다.
그런데 이젠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성이 없더라도 이 세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그게 아무리 의미가 없는 일이라도 말이다.
지금 이 상황이라 그럴 수도 있었다. 죽음에 가까워져 가니 앞뒤 길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지.’
한성은 더 이상 생각을 이어가지 못했다.
한 개의 촉수가 한성의 팔을 뜯어냈고.
두 번째 촉수가 한성의 복부 한쪽을 뚫었다.
드높은 신격······에 가까운 제약은 강했다. 아직은 인간 출신의 비천한 신격으로는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운도 여기까지인가.’
운에 의지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죽기 전에 되니까 생각이 많아졌다.
거대한 하나의 촉수가 한성의 얼굴로 쏟아졌다. 막아보려 팔을 올렸지만, 손목은 사라져 있었고 검도 부러진 상태였다. 한성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한성은 눈을 감았다.
쐐애애액.
콰아아앙!
무언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한성은 예상했던 고통이 없어 슬쩍 눈을 떴다.
그곳엔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서 있었다.
* * *
길이현은 긴 한숨을 토했다.
당장 마력 핵은 막았다. 한성의 공격이 드높은 신격에게 통한다는 것을 직접 봤으니 어쩔 수 없었겠지. 하지만 10분 정도의 여유만 받았을 뿐이다.
그게 제현 그룹에서 길이현이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의 한계였다.
“응······?”
하늘에 떠 있는 한성과 드높은 신격을 감싸는 희미한 무언가가 보였다. 그것은 일부 공간을 일그러뜨리며 점점 둘을 삼켜 나갔다.
길이현은 붉어진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가 겪고 있는 감정의 요동은 무력감이었다.
한성은 언제나 앞에 서 있었다.
어떤 위험이 있고, 어떤 재앙이 있어도 가장 위험한 곳에서 목숨을 바쳐 싸웠다. 항상 이겨냈지만,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지금도 저렇게 홀로 맞선다.
길이현은 스스로가 해낸 일이 없다는 것에 격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길이현 뿐만이 아니었다.
지상에 떨어진 괴수가 어쩐 일인지, 처음의 ‘고름’ 상태로 변해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한성이 드높은 신격에게 다가가 검을 그었을 때부터였다.
진훈과 일행은 그 모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희미한 막이 생성되며 한성과 드높은 격을 감싸고 있을 때, 진훈은 이를 악물었고 성시연은 자기도 올라가겠다며 날개를 펼쳤다. 하지만 한도석이 그녀를 막았다.
누가 모를까.
성시연이 가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방해만 될 뿐.
두두두두.
수십 대의 헬기와 드론이 이 장면을 찍고 있었다.
위험이 적어졌기에 그들의 접근은 가까워졌다. 몇몇의 카메라는 무너진 건물과 죽은 영웅을 화면에 담았으며, 몇몇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영웅을 담았다.
그리고 가장 많은 카메라는 드높은 신격과 마주한 한성을 담았다.
몇 분이 지났을까.
희미한 장막 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둘은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보였다.
1분, 2분, 3분.
그리고 10분.
아주 짧은 시간이라 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한성을 지켜보는 이들은 영겁과 같았다. 이대로 죽으면 어쩌지? 이길 수 있을까? 한성은. 한성을······ 더는 볼 수 없는 건가?
성시연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진훈과 한별은 똑같은 자세로 힘을 잔뜩 끌어올리고 있었다. 한도석도 검을 내려놓지 않았다. 검붉은 검강이 줄기줄기 뿜어지고 있다.
언제든 뛰어나갈 수 있도록.
하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희미한 장막. 뿌옇게 변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속이 보이기 시작했다.
또 정지된 화면이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한성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한쪽 팔이 없었으며 검은 사라져 있었다. 적은 수백, 수천 개의 촉수 그대로였다.
“아아.”
성시연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구멍이 난 듯, 그녀는 한성을 바라보지 못하고 하염없이 울었다. 그리고 분노했다. 당장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에.
하지만 그때였다.
하늘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황금빛 오라를 잔잔하게 뿜어내며 한쪽 팔만 허리춤에 올려두고 있었다. 아니, 한쪽 팔 뿐이었다. 그는 도복을 입고 있었다.
마치, 옛날의 무사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는 한성과 드높은 신격이 있는 희미한 장막으로 다가갔다.
“아빠.”
진훈의 중얼거림. 주변의 시선이 진훈에게 쏠렸다.
진훈의 아버지라니.
한별을 제외하고는 처음 듣는 일일 거다.
게다가 저 ‘격’을 보라. 드높은 신격과 한성의 전투가 일어나는 공간에서도 독보적이었다. 뜨겁게 타오르는 불바다 속에서 오롯이 서 있는 모습이랄까.
그의 ‘격’은 사방에서 몰려든 다른 ‘격’을 몰아냈다. 아니, 다른 ‘격’들이 그를 피하는 느낌이었다.
“금안(金眼)의 외팔 무투가.”
한도석의 말이었다.
몇몇은 그를 아는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도 그가 진훈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에 놀라워하기도 한다.
그는 조용히 장막에 다가가 손을 뻗었다.
그의 격은 장막을 아무런 저항도 없이 뚫었다. 동시에 모든 장막이 걷혔으며, 처참하게 죽어가는 한성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아.”
“꺄아악!”
누군가의 비명.
드높은 신격의 촉수가 한성의 얼굴로 향했지만, 한성은 포기한 듯 눈을 감고 있었다. 누가 봐도 막을 수 없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금안의 외팔 무투가.
진훈의 아버지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한성과 드높은 신격 사이에 나타났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드높은 신격의 촉수가 걸레짝이 되어 사라졌다.
툭.
한성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 높은 하늘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금안의 외팔 무투가는 몸을 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드높은 신격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디뎠다.
푸확.
그의 뒤로 강대한 파장이 대기를 때렸다.
동시에, 드높은 신격 중심에 자리 잡은 눈동자엔 황금빛 오라가 맺힌 외팔 무투가의 주먹이 꽂혔다.
콰드드드득.
그것은 마치 댐에 난 균열처럼 드높은 신격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본체에 금이 가고 그곳에서 황금빛이 뿜어진다. 그리고 하나씩 소멸한다.
금안의 외팔 무투가는 주먹을 털어내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쟤는 왜 저러는 거야?”
금안의 외팔 무투가를 먼 곳에서 지켜보던 ‘포식자’가 말했다. 옆에 있던 ‘마룡’은 매끈한 비늘을 촤르르 세웠다 눕히며 대답했다.
“저기 아들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에이, ‘무황(武皇)’이 자식 때문에? 오히려 재앙을 더 키우는 거면 모를까.”
“하긴, 뭐 뜻이 있겠지.”
둘의 대화에 재미없다는 듯 딴 곳을 바라보던 ‘무희’는 눈을 슬쩍 돌리더니, 갑자기 신기하다는 듯 몸을 돌렸다.
“저놈은 뭐야?”
그 모습에 포식자가 웬일이냐는 듯 대답했다.
“누구. 저기 떨어지는 작은 신격?”
“응.”
“이번에 성배를 얻었다는······ 이명이 뭐였더라 ‘관종의 신’이었나?”
“엑. 무슨 이명이 저래.”
“진짜 관종이래. 너 본 적 없냐?”
“당연하지. 저런 작은 ‘신격’ 신경 쓸 일이 뭐가 있냐.”
그들에게 ‘작은 신격’은 관심 밖이다.
이들이 활동하는 [혼돈]에서는 비천한 신격 따위가 설 자리는 없으니까.
“하긴, 나도 이번 성배 전쟁으로 초월 신화가 세상에 나왔다는 것 때문에 찾아봤으니까. 흐흐. 근데 쟤 진짜 관종이던데.”
“으흠.”
“그런데 웬일이야? 싸우는 것 말고는 관심 없는 무희가.”
“쟤한테 신기한 냄새가 나.”
“잉? 여기서 저기 냄새가 난다고?”
수백 킬로. 어쩌면 천 킬로가 넘어가는 먼 거리다. ‘무황’이라 불리며 ‘금안의 외팔 무투가’인 그가 한국에 갔기에 마법으로 구경하고 있었기에 보이는 곳.
“아니! 그런 거 말고. 이상한 기운 같은 거 있잖아. 쟤 뭔가 정보 좀 찾을 수 없을까?”
“······너 스마트 워치는 쓰냐?”
“나? 안 쓴지 몇 년 됐는데.”
“튜브는 알지?”
“응, 그 이상한 동영상 나오는 거?”
“이상한 건 아니지만······ 하여튼 거기에 ‘관종’이라고 치면 바로 나오거든? 거기에 신상 명세랑 모든 정보가 다 있어.”
“······요즘 튜브는 스토킹도 하냐?”
“뭐라는 거야. 쟤가 올린 거야. 관종 쟤.”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포식자를 바라봤다.
포식자는 머리에 돋아난 가시를 부르르 떨며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스마트 워치를 보여준다. 그곳에서 튜브를 들어가 구독 리스트를 들어가자 방금 봤던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와, 너 구독도 했냐?”
“그럼, 나 요즘 튜브에 빠졌잖아. 얘가 상당히 병맛이라 재미있어.”
“네가 그러니까 맨날 나한테 지는 거야.”
“뭐? 갑자기 그 말이 왜 나와?”
“언제부터 [혼돈]에 인터넷까지 뚫려서. 에휴, 이러다 여기도 밖이랑 다를 바 없게 변하는 거 아닌가 몰라.”
“야, 너야말로 세상 돌아가는 거에 신경 써야지. 요즘은 싸움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머리를 써야지, 머리를.”
“어이구. 그래서 네가 나 이기세요?”
“······어허, 육체 싸움 말고!”
“혼돈에서 마빡이나 터지지 말고 너도 튜브 그만 보고 싸움이나 해!”
무희는 포식자를 갈궈 저쪽으로 보냈다.
그리곤 슬쩍 숨겨놨던 포식자의 스마트 워치를 꺼내 그 인간의 동영상들을 바라봤다.
뭐가 폭발하고 뭐가 정점이며······.
“뭐야 이거.”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도저히 못 보겠는데?
“야! 무희! 내 스마트 워치 내놔!”
“에잇!”
무희는 아쉽다는 듯 혀를 차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야! 어디가!”
포식자는 씩씩대며 주변을 둘러봤다.
[혼돈]이라는 곳에서 일어난 소소한 일상이었다.
< 금안의 외팔 무투가.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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