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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은 만렙이다-100화 (100/200)

< 이야기는 하나로 귀결된다. >

성시연은 아무것도 없는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검은 구름이 별과 달까지 가려 보이는 게 온통 덜 검고 더 검은 것들뿐이다.

“무엇을 그렇게 보고 계십니까.”

세르비체다.

블랙 바실리스크의 알을 훔치고, 다시 명계에서 ‘백’이 된 괴수들의 살점도 훔치고, 31번 구역을 공격하는 마족과 화신체를 막으며 친해졌다.

그리고 어떨 땐 연애상담도 하곤 한다.

“그냥.”

“또 한성님 생각을 하십니까?”

세르비체는 하얗고 작은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성시연이 섹시한 얼굴이라면 세르비체는 귀엽고 순수한 이미지다. 청순하다고들 한다.

“근데 넌 반말하라니까. 나보다 나이도 훨씬 많은데.”

“그래도 사모님이지 않습니까.”

“사, 사모님이라니! 아직 연애도······ 아니. 그냥 친구거든!”

“제가 이 검은 땅에서 활동할 때는, 구역주라는 게 거의 대통령이었고 왕이었습니다. 제가 감히 구역주님이 좋아하시는 분을 편하게 대합니까.”

그래도 처음엔 조금 더 편했던 거 같은데, 한성을 한 번 본 이후로는 더 그런다. 성시연이야 처음에는 존대를 사용했지만, 편하게 지내면서 슬슬 편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이런 이상한 관계가 된 것이다.

“뭐, 한성이랑 친해지면 괜찮아지겠죠.”

세르비체는 한성에게 목숨을 구함 받았다. 그저 하나의 목숨이 아니라 안톤의 목숨까지 구한 것이나 마찬가지. 게다가 검은 땅에서 신격과 대등한, 아니, 그 강한 릴리스를 죽이는 것까지 봤으니 이런 반응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이번에 아마존으로 가신다는데.”

“······.”

“아마존에는 드래곤 슬레이어를 만들 많은 재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저희 출장 한 번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지.”

“어차피 저희 아버지가 신화의 태동을 시작하면서, 이곳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고요.”

“아주 대단한 아저씨지.”

“또, 아마존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저희가 한성씨나 후보생들을 지켜주는 게 도리 아니겠습니까?”

“하긴, 세르비체도 이제 전설을 걷기 시작했지?”

“그럼요. 한몫은 충분히 해드릴 수 있습니다.”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

둘은 화신체다. 그러다 보니 마왕이나 가지고 있을 법한 [마력 기관]을 가졌고 인간으로 볼 수 없는 튼튼한 육체까지 지녔다.

게다가 31번 구역에서 마족을 막아내며 얻은 ‘업적’은 일반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아마존에서 한성의 손을 보탤 정도는 될 것이다.

성시연은 세르비체가 좋았다.

단순히 이런 것들 때문만은 아니다.

*  *  *

아마존에 도착한 후보생은 강사 세 명을 제외하고 총 100명이다. 당연히 상위 100명이고 한성의 예상보다 강한 후보생이 많았다.

이번 대격변으로 신격이 인간들과 가까워진 덕이 컸다.

“자, 이곳부터는 아마존의 땅입니다.”

한도석이 책임자를 맡았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작은 도시였다. 중앙에 워프 게이트가 있고 사방엔 최소 A등급 이상의 영웅과 용병이 돌아다닌다. 다들 실전 경험이 가득해 보이는 베테랑들이었다.

도시를 감싸는 방벽엔 수많은 결계와 마법이 덕지덕지 발려 있었다. 상당히 난잡해 보였는데, 부서지고 고치고를 반복하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현상이었다.

오히려 그런데도 끊김이나 충돌 없이 잘 발동되고 있다는 것이 대단했다.

이것 또한 정연이 개입했을 것이다.

“저기 멀리 보이는 나무가 세계수입니다.”

한도석이 이 도시의 위치를 알려줬다.

세계수가 정면에 보이고 화룡의 화산이 좌측, 빙하의 탑이 우측에 있다. 이곳은 그나마 지배종이 적은 곳이면서 지저세계의 입구와도 멀기에 인간이 자리 잡은 것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안전하기도 한 곳이지만, 일주일에 두 번은 습격받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곳엔 SSS등급에 이른 영웅이 세 분이나 계시니까요.”

“오오!”

후보생들이 눈을 빛냈다.

알만한 사람은 안다. 그런데 막상 그 이야기가 나오려 하자 혹시 볼 수 있는 것인가 기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탁의 기사 랜슬럿과 계약하신 [검은 검의 기사] 이안님이 화룡을 막고 계시고, 갈라틴의 주인 가웨인과 계약한 [빛의 기사] 드몽님이 빙조를 막고 계시죠. 또, 대천사와 계약하셨다는 이필모님도 계십니다.”

“오오! 혹시 저희도 볼 수 있는 건가요?”

누군가 그렇게 소리쳤다.

이창석은 그 모습을 허세 가득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자기는 이곳에서 오래 생활했다 이거다. 물론, 이창석에게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운이 좋다면요. 혹은 운이 너무 없거나.”

몇몇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들이 막는 지배종이 얌전하거나, 이쪽으로 습격이 오거나.”

한성의 말이었다.

그 말에 몇몇 후보생이 놀란다.

그건 한성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너, 여기 와 본 적 있어?”

옆에 있던 세르게이가 묻는다.

한성은 어떻게 대답할까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아닌 척하다가 오해받는 것보다는 낫다.

“와, 역시. 넌 안 해본 게 뭐냐?”

“연애······?”

농담이었지만, 다른 친구들은 진심으로 알아들은 모양이다. 세르게이아 한성의 어깨를 툭툭치고 진훈과 한별이 고개를 젓는다.

“······자, 장난이거든?”

“괜찮아. 못해볼 수도 있지.”

“아니라니까!”

“성시연도 있잖아. 남자가 확 대시 해야지! 그러다 평생 연애 못 한다.”

이번엔 안혜림이었고 얜 샤를까지 옆으로 와서 한성을 위로했다.

“크흠, 하여튼 오늘은 도시를 돌아보고 이 도시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는 한도석 강사마저 한성을 보며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다.

“······될 대로 되라지.”

여기서 농담도 제대로 못 하겠다.

한도석은 후보생들을 이끌고 며칠 동안 머물 숙소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구석구석 어떤 곳인지 설명을 곁들였고 유명한 영웅을 만나 후보생들이 환호를 지르기도 했다.

그렇게 첫날은 평화롭게 지나가고 있었다.

*  *  *

신격이 현세에 개입하기 쉬워졌다는 것은 보기보다 복잡한 상황이다. 원래는 신격이라는 게 현실에 강림하기 위해서는 화신체를 거칠 필요가 있다.

또 하나의 방법.

그것은 이 현세의 존재가 신격으로 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존엔 특히 신격이 많다.

보통 몬스터가 성장하고 깨달음을 얻어 지배종이 되고 그 지배종은 다른 지배종과의 전투를 겪으며 오랜 세월 업적을 세워 신격이 되곤 한다.

아마 지구에서 가장 많은 신격이 있는 곳을 꼽으라면 이 아마존일 것이다.

“철의 도시에 100여 명의 인간이 추가되었습니다.”

세계수의 중심, 귀 끝이 붉은 붉은 귀 엘프였다. 장로와 족장을 비롯한 12명의 지배자가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화룡의 거점에서 전투 화룡 10여 마리가 태어났으며 빙조의 탑에서 엘리트 빙조 30여 마리가 부화했습니다.”

“지저세계는?”

“4층에 있던 ‘뱀룡’들이 2층까지 올라왔다는 정보입니다. 6층의 강철 사마귀족 때문입니다.”

“뭔가 일어나긴 할 모양이군.”

귀의 절반이 붉은 족장이 표정을 굳혔다. 정확히 100년을 이곳에 있었다. 다른 세상에서 이곳에 떨어지고 세계수를 키우며 지켜온 땅이다.

위기는 많았고 그때마다 수많은 엘프를 희생하며 지켜내었다.

하지만 이번엔 지켜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7층에 있는 드워프들에게 연락은?”

족장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5층과 6층이 혼란입니다. 어떻게 접촉하긴 했지만, 당장 도움을 줄 수는 없다고 합니다. 그들도 스스로 지키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입니다.”

얼마 전 신격이 고개를 치켜들면서 커다란 혼란이 시작되었다. 이곳에서 ‘빛’을 원하는 신격은 지배종에서 신격을 갖춘 존재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신격의 참여는 겨우 ‘화신체’를 이용한 것뿐. 당연히 큰 위험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지켜만 보던, 그리고 화신체로만 도전하던 신격들이 직접 오기 시작했다.

지저 세계는 혼란에 빠졌고, 그 혼란은 지상으로까지 올라오고 있다.

그때였다.

“족장님!”

밖에서 ‘수호령’이라 불리는 엘프 한 명이 회의에 난입했다. 11명의 장로와 1명의 족장이 진행하는 회의다. 당연히 보통 일은 아닐 터.

“무슨 일인가.”

“인간 한 명이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옆에 있던 장로가 불쑥 끼어들었다.

당연히 철저한 경계가 이뤄지고 있다. 항상 이곳을 주시하는 대천사의 신격과 계약한 인간이 아니라면 몰래 세계수에 도달할 인간은 없다.

그 인간은 수호령들이 상시 감시하고 있기에, 그 사람은 아닐 터.

“강철의 도시에 새롭게 들어온 인간으로 보입니다. 신화의 태동의 끝에 서 있는 인간이기도 합니다.”

그 정도 격이면 이곳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조용히 접근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결계의 생로(生路)를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생로로 찾아온 것 같습니다.”

흔히 말에 비밀 통로이자, 지름길이라고 한다. 결계의 저항 없이 안전하고 은밀하게 세계수에 도달할 수 있는 길. 당연히 아는 엘프는 이곳에서도 극소수.

그런데 인간이 그곳으로 온 거라고?

“족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족장은 진실의 눈으로 수호령을 살폈다. 당연히 진실. 그 누구도 족장 앞에서 거짓을 고할 수 없다. 그것이 100년 가까이 세계수를 지킨 수호령이라도.

족장은 괜한 의심을 했다는 것에 수호령에게 미안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갑자기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 외국인이 찾아와 할 말이 있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그런데 그때였다.

회의실 끝에 작은 공간이 갈라지며 인간 한 명이 등장했다. 수호령은 검을 꺼내 들고 족장은 ‘신격’의 기세를 뿜었다. 11명의 장로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모두 신화의 태동을 마치고 ‘신격’에 오른 자들.

회의실 안은 순식간에 거대한 기운들로 가득 찼다.

“안녕하십니까.”

그 인간은 한성이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뒤에 있던 의자에 앉으며 손을 내저었다.

“어후, 찌릿찌릿하네, 좋은 거래하러 왔습니다. 기운들 거두시죠.”

족장이 먼저 기운을 거뒀다. 앞의 인간의 격이 훤히 보인다. 예민해진 상태라 기세를 끌어 올렸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 약자(弱者)다.

“한 번 들어는 보지.”

족장이 그렇게 말했다.

수호령이나 몇몇 장로는 세계수의 중심에 인간이 불쑥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한성을 찢어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족장이 저렇게 말한 이상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엘프들에게 족장은 단순히 가장 강한 존재가 아니다.

정신적 지주이자, 그들의 유일한 왕(王)이다.

족장의 말이라면 당장 할복(割腹)할 수 있을 정도로 장로와 수호령은 족장을 존경하고 믿는다.

“앞으로 3일. 아마존엔 지금까지 없었던······ 아니, 50년 전 이후로 가장 커다란 전쟁이 일어날 겁니다.”

그 말에 회의실은 정적이 흘렀다.

족장만이 진실의 눈으로 한성을 뚫어지게 볼 뿐이었다.

이미 전쟁은 예상하는 도중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큰 전쟁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리 신격들이 참전했다고 해도 수십 년 동안 유지한 아마존의 질서를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제 대화할 마음이 생기십니까?”

한성은 족장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족장은 잠시 표정을 굳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 단추는 잘 꾀었다.

*  *  *

이번 퀘스트는 전쟁이다.

지저 세계와 이상을 세 등분하는 엘프, 화룡, 빙조 세 지배종의 전쟁. 그 사이에 인간이 끼게 되고 현재 인간 중에서 10선이라 불리는 이들 중 두 명이 죽게 되는 큰 사건이기도 하다.

한성은 이걸 그냥 둘 생각이 없었다.

“자자, 이곳은 아마존입니다. 튜브 친구들!”

한성은 생방송을 켰다.

후보생들을 설명하고 도시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마존의 기본 정보를 전달한다. 옆에서 하얀이가 한성에게 도전을 신청하고 진훈이 튜브 영상을 찍는다며 훈련을 하고 있다.

이틀째, 모든 수업이 끝난 이후의 상황이었다.

멀리 보이는 화룡의 화산, 엘프의 세계수, 빙조의 얼음탑. 한성은 그 모든 것들을 찍기도 했다. 십선에 드는 이안, 드몽, 이필모를 소개하기도 했다.

한성은 지금 사전 설명을 하는 거다.

전쟁은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이런 건 따로 ‘설정’할 필요도 없다. 악(惡)이 습격을 해 오고 선(善)이 그것을 막는다. 시청자들이 그것을 보면서 응원하는 쪽은 힘을 얻고 욕하는 쪽은 힘을 잃는다.

어떻게?

아직 이 세상은 권선징악(勸善懲惡)을 원하고 한성과 친구들의 팬인 시청자들은 당연히 한성의 편을 응원하게 된다.

그것으로 하나의 업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 와, 이런 곳이 아마존이야?

- 거의 다른 세계 같아!

- 미쳤다. 지배종이라는 것들은 또 뭐야?

- 뭔가 불안하다······ 한성은 불행은 코난급이라고.

- 에이, 설마. 이건 설정도 안 될 텐데?

- 아니야. 한성은 인생이 튜브고, 튜브가 삶 자체라고.

- 한성은 가능할지도.

시청자들은 한성이 방송을 키자마자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가 방송을 켤 때마다 사고가 터졌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항상 위기를 겪는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극복할 거라 생각하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상식적으로 주인공보다 적이 강하게 등장하니까.

아주 흔한 클리셰지만, 언제나 잘 먹히는 전개방식이기도 하다.

- 저거 뭐야.

- 먹구름 이상한데? 왜 마른 하늘에 번개람.

- 하늘에 저거 구름······ 이 아니라 몬스터 같은데?

- 뭐야. 이거 뭐야. 진짜 설정이야?

- 화산 터진다. 젠장!

- 하늘이 얼어가고 있어! 얼음의 탑에서 이상한 게······

- 세계수위에 저 마법진은 뭐야. 왜 그래. 이상해.

- ㅅㅂ 설마 진짜야?

- 도대체 이한성은 어떻게 되먹은 인생이냐.

- 거진 악운과 행운 만렙 아니냐.

< 이야기는 하나로 귀결된다.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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